항상 피아노책상 앞에 앉으면 페달을 찾는다. 

피아노책상이란 컴퓨터책상을 말한다. 나는 겸용을 하고 있다. 

음악작업의 일이 아니고서 컴퓨터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나는 좀처럼 페달을 찾고서야 안심을 한다. 


안심이 되는 일들이 많아야 여행은 떠날 수 있다.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며 나로서는 페달을 밟을 수 있는 위치에 와있어야 한다. 

페달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갔지, 라고 한들 제시간에 떠나는 비행기를 잡을 수는 없다. 

휴양이라는 성격의 여행이다. 나에게는 첫 비행이거나, 첫 나들이인 셈이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으나, 

처음이라는 단어가 당연할 정도로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 여행의 목적지, 태국


정확히는 코사멧. 섬의 이름은 사멧이다. 코는 섬을 뜻하는 그 나라의 언어라고 하니까. 

태국은 어디에 있는 나라지, 인구는 얼마나 되며, 주식은 무엇일까. 하는 것들에서부터 시작하여 가 볼만한 곳은 어디인지, 나는 무엇을 먹어야 할지, 결국에 무엇을 즐기며 놀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공항이라는 곳에 발을 들여놓으니 아, 이제 가야하는 구나. 새삼, 그랬다. 




아, 잠깐 나는 두고 온 것에 잠시 눈이 팔렸다. 탑승구 옆 네이버 스퀘어 부스로 들어가 넥센과 기아의 프로야구 중계를 틀었다. 잠시동안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씁슬했다. 여행은 잠시잠깐 나의 일상을 놓아두고 가는 것이라 해도 나는 계속 뒤돌아보았다. 어디 멀리라도 가서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지 않은데도 나는 그 조그만 일상의 재미조차 포기 못했다. 망각을 못하겠다. 










밤이 되고 아침이 오는 것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연스럽게 시간의 부름에 묵묵히 대답하고 산다. 사람들은, 

나는 저 빛이 좋다가도 싫다. 

한낮의 환한 빛들이 이제는 피곤한 빛으로 젖어들 때, 

빛의 끝자락에 있는 색들이 어느 것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경계에 머무를 때 서성일 때, 그것이 꼭 내 모습 같아서 싫다. 

아침이 오는 빛에도 그건 마찬가지, 

또한 나는 이것도 저것도 막을 힘이 없다. 

늘 경계를 경계하는 짓만 되풀이 할 뿐.                                     

                                                                                                        - 비행이 시작되고 잠시잠깐 속이 울렁거리더니 마음이 뿌옇다.











 

                                                                                                                                                                                                                                 



'오늘 뭘 먹지?' 라는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민이자 

              최대의 고민은 한번도 나를 괴롭힌 적이 없다.

              언젠가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자, 

틀니를 낀 아버지는 날더러 불쌍한 놈이라 했다. 

그래도 상관없다,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

 생각하기에, 움직이기에, 

어느정도 참고 투정부리지 않을 정도로 유지하는 게. 

그런데 작다. 나는 맛 따위 잘 모른다. 

맵고 짜고 달고 하는 정도의 자극만 있어준다면 

별로 불평하지 않는다. 

나는 제법 입이 까다롭다고는 하나 

때와 장소를 가린다. 

그런데 양이 많고 적음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 


옆좌석 그녀의 주스까지 야금야금 빼앗아 먹었다. 

화장실은 가지 않았다. 







설레임이 잦아들 무렵, 

스튜어디스 언니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여러분, 

전선 위 참새는 '짹짹'

외양간 송아지는 '음메'

뒷골목 고양이는 '야옹'

그렇다면 바다 밑 오징어는? 


바로 옆 그녀는 "꿈틀꿈틀" 이라고 중얼거렸고, 

운좋게 빅뱅사진이 담긴 볼펜을 기념품으로 받았다. 

내가 핸드폰 게임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 

벌어진 일이었다. 

스튜어디스 언니들은 예쁘지 않았으므로. 






# 기다림, 그리고 범행




"숙박비를 아끼려 공항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대기를 할까, 

그런데 우리는 서로 졸리네, 졸리지 않네,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에 짐을 꼭 끌어안고 대기의자에서 누워버렸네. 


나는 선잠이 들었다가 너를 보았을 때 너는 완연히 자고 있었지.

공항 직원인지 두 명이 내 발 밑에 누워있어

캠핑을 온 듯한 이방인들도 저 쪽에서 밤을 보내고 있네. 


나만 눈 뜨고 있는 이 시간이 낯설어 눈을 깜빡거리다 

밤공기를 마셔볼까, 이방 나라의 밤은 습했지. 

잠든 너가 보이는 곳에서 담배 한개피를 피워올렸지. 


아무것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걸어가는 데로 길이 있고, 쉬어가는 곳에 의자가 있겠지. 

머리를 뉘이는 곳에는 늘 별 감춘 하늘이 있겠지."





라고 생각한 건 크나큰 오산이었다. 






여권분실, 정확히는 도난, 그것이 큰일임에도 불구하고 탓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또한, 낯선 곳에서는 늘 조심해야 함이 당연하지만

나쁜 일이 있음에 좋은 일로 갈 수 있겠지 싶어 설마 못돌아갈까, 생각했다. 

첫 단추를 잘 못 꿰어 어디로 흘러가든 첫 단추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날까, 조심하기로 하고. 


잘못된 정보였든,  불확실한 의사소통의 결과였든, 타고가야하는 버스가 정차하지 않는다는 공항에서

선잠을 잤고, 여권을 잃어버렸다.  이것이 처음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처음이자 마지막일 일이 되면 좋겠다. 





# 첫 날의 일기 


여행지에서의 모든 일들은 쉬이 벌어지고 쉬이 사라짐에도, 겪어 기억에 남기는 법이다. 

너는 곤히 자고 있는 터라 나는 혼잣말을 일삼고 있지만, 그런들 어떠랴. 

함께 온 길을, 함께 온 밤을 꾸밀텐데. 그것은 서로 바라보고 있지않더라도 가능한.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우리 눈으로 볼 텐데. 

너는 카메라의 눈으로 나는 또 다른 나의 눈으로 각자가 간직하고픈 것들을 담을 텐데. 

그것들이 하나로 모일 수만 있다면 서로다른 이야기일 지라도 남음이 있을텐데. 

나는 곧잘 생각하므로 생각의 순간에 니가 나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꼭 눈으로 보지 않아도 즐거운 법을 알고 있거든. 

둘러싼 이 느낌의 모양을 그림으로 남길 수 없어 안타깝지만, 

그 언젠가 또, 노래로 남음이 있겠지. 


그럴 수만 있다면 이 느낌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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