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닭, 옥수수 스프

저녁에 무얼 먹일까 고민하다 냉동실에 얼려놓은 옥수수 생각이 나서 닭과 야채를 이용해 스프를 만들어보았다. 옥수수 껍질 까는 데에만 족히 1시간은 걸렸는데 세어보니 스무알 정도. 무모한 아빠 덕분에 은수랑 놀아줄 오후를 홀랑 날려먹었다. 

1. 물 500ml 기준 양파 1/4개, 당근 1/5개, 브로콜리 작은 것 2개, 버섯 큰 걸로 1개를 준비하고 닭은 이유식용 닭 1팩 정도

2. 물이 끓으면 닭을 넣고 10분, 순차적으로 당근, 양파를 넣고 나중에 버섯과 브로콜리를 넣는 게 좋다. 아무래도 식감 때문에, 

3. 닭 육수가 야채를 충분히 적셨다고 생각되면(20분 정도) 우유 반컵과 옥수수 으깬 것을 넣고 졸인다. 

4. 끈적해지면 치즈(아기용 치즈보다는 일반치즈를 넣었다, 소금간을 안했기 때문에)를 넣고 1~2분 정도 저어주면 끝. 



#11 사고 2

계단에서 여자비명과 함께 '쿵' 소리가 났다. 아내가 은수에게 빠빠 엄마 회사다녀올게요, 하고 나간 직후였다. 은수를 뒤로하고 허겁지겁 나가보니 여덟계단은 굴러떨어진 듯, 많이 아파보였다. 일으켜 세워주며 심하게 아픈 데는 없는지 물었다. 그보다, 은수는? 이라고 아내가 재차 물었다. 아니, 은수는 가둬놓았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보다 당신은? 난 괜찮으니까 어서 은수한테 가봐. 옷을 털어주지도 못하고 은수에게 왔다. 엄마가 쿵하고 아야~했어, 걱정하지마 괜찮대 라고 설명아닌 설명은 했지만 종일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부러진 데는 없는 것 같다고 연락이 왔고 내일 되어봐야 안다고 내가 말했다. 그날 밤 냉찜질할 얼음이 없어 냉동블루베리 한뭉치를 수건으로 감싸 한시간 넘게 발목찜질을 했다. 내일 되어봐야 안다니까, 내일 너 못일어날 수도 있어. 



#12 연차

엄마와 함께한 하루, 아빠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엄마랑 재밌게 노는 아이를 보니 나도 즐겁다. 어제 다친 후유증으로 아랫목에 틀어박혀 있는 신세지만 그래도 얼굴보고 있자니 좋은가보다. 밥도 뚝딱, 똥도 듬뿍, 잠도 쿨쿨 그리 좋더냐. 핑구 어린이집에서 자리가 하나 났다고 연락이 왔다. 주위 평가도 좋고 직접 가서 보니 넓고 쾌적한 데다가 아이들의 인상도 좋다. 선뜻 나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더니 그럼 3월부터 보내는 걸로 하잔다. 가슴 한켠이 휑하다. 얼마나 아빠랑 같이 있었다고,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습관들에 이제 익숙해졌고 은수도 그런 아빠를 잘 따라줘서 고맙다고 느낄 무렵이었는데 그냥 아쉽기만 하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간다, 하루가 짧다. 오늘은 아홉시 십분에 잠들었다. 부디 좋은 꿈 꾸어라.




#13 호기심

엄마가 자석칠판과 나무책장을 구해(?) 들어왔다. 좁은 집에 놔둘 데가 어디있다고 자꾸만 들고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가 자라는 과정 중에 한번은 스치고 갈 물건이겠지.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가 나가야하는데 그 법칙이 아내에게는 없는 모양이다. 어찌됐든 하나씩 들어오는 은수의 물건들이 은수랑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놓아두기보다 적극적으로 공세를 해 은수가 즐거우면 좋겠다. 책을 읽고 싶으면 책을, 쓰레기를 보면 쓰레기통에 직접, 숟가락은 본인이. 이제 스스로 하고 싶은 욕구를 표현한다. 호기심, 이것은 좋은 흐름이다. 나만 조심하면 된다. 아이가 무얼 하려고 들 때에 잠자코 기다려주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부딪히기 직전에, 입에 넣기 직전에, 떨어지기 직전에 구해야하는데 매번 사고가 난 후에 울음을 달래고 약을 발라주며 후회를 한다. 안되는 것이 참많지, 은수야. 아빠도 하면 안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꽤 싫구나. 





<모락 작업실 & 벨레빈에서> 



#14 말다툼2

오늘은 그다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오늘은 그냥 생각만 많고. 

아내와 심심찮게 말다툼을 하고 난 뒤면, 

그 와중에 은수는 잠에서 깨 칭얼댄다.

그럴 때마다

듣고 기억할 너에게 몹시 미안한 마음만, 



#15 무릎높이

밥을 차리고 치우고 또 차리고 치우고 이런 반복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아이는 커가는데 밥과 반찬은 그대로다. 소고기, 무우, 호박, 가지, 양배추, 메추리알, 두부, 게란, 시금치, 콩나물, 갈치, 조기, 병어... 이 중에 무얼 잘 먹고 잘 먹지 않는지_ 그것만 보려고 하면 언제 아이랑 놀며, 가르치며, 함께 즐길지. 정해진 방법은 없는 것 같다.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주고 제안할 사항이 떠오르면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을텐데, 하지만 아이를 키울 때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어렵고 하기 싫으며 어른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일이 이것이다. 어렵겠지만 아이의 눈높이, 실제로 아이를 볼 때 무릎을 굽히고 그 높이에서 눈을 마주치자. 그것이 아이의 눈을 가장 빛나게 하고 또한 그 빛나는 것을 내가 볼 수 있는 많지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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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유

예전 나 어렸을 때 매일우유 한팩을 한솥 끓이는 중인 된장국에 넣어서, 그렇게 데워서 먹었던 것이 생각났다. 아이가 먹는 우유는 냉장보관이 필요없는 멸균우유라는 것인데 이것도 내가 아빠가 되고나서 알았다. 그 우유에 달린 빨대의 비닐을 뜯고, 넘치지 않게 우유의 양 날개를 펴서 그 중간에 꽂아 아이에게 건넨다. 아, 그 전에 우유곽을 눌러 안에 든 내용물이 온 집안을 더럽히지 않게 플라스틱 용기 안에 우유팩을 넣어서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2 1987

1987 영화를 보았다. 그 때의 청춘들이 지금 쉰을 바라본다. 쉽게 이룬 쉰이 아니었을 게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절 사람들이 보낸 시간은 지금과 같이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10대와 20대에 써보지 않았던 일기를 다시금 쓰게 되었다. 써보려고 노력한다. 지나고보니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서다. 정확히는 흘려보낸 시간을 기억하지 못함에 대해서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해 나는 어떤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지에 대해. 그 모든 일상사들은 매순간마다 단단히 붙잡아두지 않으면 언제 소리도 없이 부서져버릴지 모를 정도로 연약하기 때문이라고 적어둔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아내와 부부관계를 가졌다. 



#3 육아퇴근

복싱을 시작했다. 집에만 있는 것도 답답하고 아이를 돌보려고 하니 체력도 필요했고, 어떤 식으로든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낼 요량으로. 책 <모방범>을 읽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 잠깐씩 읽을 생각이었는데 현실은 책읽을 시간을 벌기위해 반찬 만드는 일을 미루다시피한다. 가급적이면 이야기의 연재가 되지 않는 비소설을 읽어야겠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읽기보다 읽고 싶은 걸 읽겠다. 해야만 하는 것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것을 뒤에 한다. 그럼에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직 육아 시작 전인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4 말다툼

오늘 장볼 것_ 카누라떼, 국거리, 칫솔, 은수가 먹을 고기와 야채등(생협)

오늘 해야할 것들_ 전기세, 아내를 위해 구입한 코트 금액지불


말다툼, 생각의 차이, 기억의 모호함, 핑계의 구차함, 대화의 단절, 온도의 차이, 흐르는지 고여있는지,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 문제라기보다 서로가 각자에 대한 각인이 필요해.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데보다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그리고 당신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는지. 나는 그것에 대한 서로의 차이, 그것에 대한 단절이 아쉽기만 하다. 



#5 뜻밖의 선물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직접 소고기를 먹이는 것보다 밥을 질게 해 소고기 잘게 다진 것을 비벼먹인다. 간지럼을 태우거나 비행기소리를 내주면 은수가 입을 벌리는데 그 순간 밥한숟가락을 밀어넣는다. 세번 중 한번은 뱉어낸다. 일본뇌염 1차접종과 A형 간염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대기하는 중에 남자아이와 딱지치기를 했다. 은수에게 다가와 같이 하자고 말하는 것을 "아직 어려서 이런 건 잘 못해, 아저씨랑 하자" 고 30분 정도 땀흘리고 놀았다. 먼저 온 남자아이가 진료실에 먼저 들어갔고 잠시 후 어마어마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마도 주사를 맞는 듯. 아무것도 모르는 은수는 아직도 내 무릎 아래에서 헤헤 거리며 딱지를 조물락댔다. 엉엉 울면서 진료실 문을 나온 남자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은수 손등에 작은 스티커를 붙여주고 떠났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손톱만한 크기의 애벌레 스티커였다. "은수야~ 먹는 거 아니야!"   



#6 요리는 어렵다

가지찜 - 가지 2개를 8~10분 정도 센 불에서 쪄준다. 국간장(아기간장을 굳이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양으로 조절한다, 시중에 파는 것은 못미더워서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멸치액젓으로 대신했다) 반 스푼, 참기름 반 스푼, 볶은참깨 한 스푼, 다진 마늘 아주 살짝. 손으로 가지를 아주 잘게 찢어서 양념에 고루 섞어준다. 은수가 잘 먹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음식이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먹어주면 좋으련만, 위 아래 네개씩 여덟개의 앞니로 음식을 살짝 물더니 뱉어낸다. 간을 하지 않은 음식을 간을 보다가 원재료 본연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은수 덕분이다,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안먹어! 


버섯두부전 - 버섯은 표고, 새송이, 양송이, 뭐든 상관없이 2개. 브로콜리 1개, 파프리카 1/2개, 계란, 두부는 반모. 재료들은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믹서로 적당히 갈아준다. 물이 돼버리면 곤란하니 적당히, 파프리카와 양파는 물이 생기기 때문에 가능하면 칼로 잘게 다져주는 게 좋다. 두부는 으깨서 천으로 물기를 짜준다. 모든 재료를 섞고 계란으로 반죽해준다. 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 구워준다. 기름이 튀기 때문에 가능하면 기름을 붓고 천이나 키친타올로 닦아내 팬에 기름이 묻어있는 느낌이 좋다. 두부에 물기가 아직 남아서 부칠 때 부서질 경우 부침가루 혹은 밀가루를 두스푼 정도 넣어주면 식감도 살고 맛있다. 아내와 먹을 때는 이렇게 먹었다. 



#7 사고

버섯두부전을 부치다 그만, 기름 한방울이 은수 눈가로 튀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환기를 시키느라 전을 뒤집느라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급한 마음에 찬물로 씻어내리고, 그 언젠가 엄마가 내게 붙여준 감자가 생각나서 그렇게 해보려다 울고 보채는 아이를 안아주느라 다 관두고 약국으로 냅다 뛰었다. 아내는 수화기 너머로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119에 전화를 걸어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고 했다. 빨갛게 부어오른 아이의 눈가를 호호 불어가며 약국에 갔더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약사는 최소한의 응급처치에 대한 조언도 생략한 채 아이를 위해서는 병원부터 찾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약사의 입장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성의가 없는 답변이 아닌가 싶어 다른 약국을 들렀지만 아르바이트 직원인지 약도 구분 못하고 십여분이 흘렀다. 우여곡절 끝에 퇴근한 아내와 만나 부랴부랴 밤 늦게까지 하는 병원엘 찾았다. 은수의 주민번호를 몰라서 한참을 대기하면서 누굴 탓하겠냐 싶었다. 어른이라고 아이의 아픔을 눈으로만 보고 마음으로만 아파할 뿐 손과 발을 바쁘게 움직여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번 기회로 아니, 이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뭔가 각오가 다져지는가 싶다. 내가 살펴야 할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것보다 다른 일보다 우선 해야할 것이 아이의 안전이라고 배웠다. 잘 먹고 잘 크는 것은 그 다음의 일, 무엇보다 아이에게 눈과 귀를 떼어선 안된다. 



#8 돌 지난 아이 유치 관리법 

아이의 치아 수가 정상인지 알려면 개월 수에서 6을 빼면 그 시기의 정상치아 개수라고 한다. 은수는 13개월 이니까 13-6=7 현재는 위 아래로 8개니까 좀 빠르다고 할 수 있다. 이가 날 때 아파하는 아이에 대해, 보통 생후 12~15개월에 나는 첫 어금니와 20~24개월에 나는 두번째 어금니가 가장 아프단다. 이럴 때 차가운 것(얼음 등)과 치아발육기를 물리는 것이 근본적인 효과는 없어도 잠시 통증을 멎게 해준단다. 최근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의사선생님께 물었더니 너무 아파하면 부루펜 시럽이나 타이레놀 시럽을 한 스푼 먹여도 된다고 한다. 그보다 직접 손가락으로 잇몸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좋고 되도록이면 찬바람은 맞지 않게 해주라고 했다. 유치 관리 원칙 첫번째는 젖병을 끊는 것, 두번째는 단 것을 적게 먹이는 것, 세번째는 엄마 아빠와 함께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지금 은수 혼자 치카치카 하는 중이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부모가 직접 해주는 것이 좋다. 



#9 아빠의 식사

내가 밥을 먹을 때 되도록이면 은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은수가 볼 만한 곳을 바라보거나 딴청을 피운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렇게 정신을 '아빠'에게서 돌리는 1~3분여 동안 후루룩,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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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초췌한 몰골로 찾아와서는 기타동호회에서 이것 저것 연주는 같이 해봤는데 좀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다고 했던 여진씨가 생각난다. 그게 벌써 1년 전이다. 그리고 얼마 뒤에 함께 연주하고 싶어하는 동생 명신씨가 찾아왔고, 이런 저런 연주로 맛을 보고 난 뒤에 6개월동안 띵가띵가 놀면서 만든 노래가 <아무것도>라는 노래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의 아무것도, 노래에는 만들고 부르는 사람의 전부라고 여길만큼의 에너지가 담긴다. 언제고 음원 하나를 꼭 발매하고 싶다는 그들은 벌써부터 밴드명까지 지었다. 나의 '흥' 너의 '끼'를 줄여 '흥끼'. 

사람들은 즐겁다. 교습생들은 즐겁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은 공간에 기타를 퉁하고 튕기다가 이제는 말도 제법하고 발가락도 가끔 까닥거린다. 에너지 쓰기를 좋아하는 둘 덕분에 서핑도 함께 가고 노래도 함께 부르게 되었다. 그 동안의 이야기가 굉장히 길지만 이렇게 몇줄 써 놓는다.  


아직도 반쯤 남아있는 밤, 알람이 없는 토요일 아침 
주말에 하려고 미뤄두었던 빨래도 설거지도 너랑 연애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

오늘은 느슨하게 내일은 또 휴일이잖아
일단 잠 좀 자고 일어나서 
아니 일어나지마 게으르면 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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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네담벼락, 결성한 지 10년이 넘었고 2장의 정규앨범과 3장의 싱글앨범을 냈고 그렇게 자주는 아니어도 꾸준히 활동을 해왔다. 각자 생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함께 만나 곡을 만들고 연습을 하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는데도 아직까지 호흡을 맞추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엊그제 우리는 전주에서 새롭게 발매한 싱글앨범을 기념하는 공연을 했다. 한 달전에 녹음차 만나 두어번 합주한 것이 전부였지만 함께한 시간의 힘을 믿었다.

무대위에서 노래하는 동안 몇가지 생각때문에 공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함께 한 시간의 힘이 지금 살아가는 각자의 시간을 이기기란 힘든 것이구나 하는 것과 연습부족으로 실력이 녹스는 것보다 밴드색깔이 모호해지는 것을 더 경계해야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 한번 하는 공연이 오랜만에 만나 서로 존재만 확인하는 수준의 것이 되어버렸다는 점과 어디에다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 그 지점이 멤버들 각자에게 서로 다른 점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무언가 한바탕 치루고 나서 핑계를 찾기에 급급한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우린 서로에게 좋은 친구이고 형이고 동생이고 하지만 적어도 음악을 할 때에 그로부터 훨씬 이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고 늘 해왔던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서로에게 확인하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라 드러내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었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부터 그런 생각을 실제로 사람들에게 알려야하고 다툼이 싫어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아야했음에도 지루하게 끌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공연을 하는 동안 얼굴이 벌게져 고개를 들기가 힘들었다. 우리가 보낸 시간이 고작 이것이었나,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 창고를 만들었나. 창고 안에 곡식은 썩어져 버릴것이 많았고 어느 순간부터 아예 굳게 닫혀있다시피했다. 지붕엔 비가 새고 곳곳이 녹슬고 구멍이 난 곳곳에 쥐들이 들끓었다. 이제 새로 창고를 지어볼까 하던 참이었는데.

우린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 꽤 쓸만한 창고를 가진 농부들이라고 여겼다. 농부의 일로만 살아가기가 힘에 부쳐 다른 옷을 입고 산으로 바다로 나가기도 했지만 말이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창고, 그 창고를 돌보지 않아 생긴 많은 사건들 사고들을 뒤로 한 채 창고를 새로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시각각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변하고 그 안에 우리도 변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변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는 없다. 그러자고 시작한 일인데 실제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안되겠다. 오늘 밤, 굳게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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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교습생들은 나보다 래퍼토리가 더 많다. 

민물장어의 꿈, 째즈까페, Friends, 일상으로의 초대, 매일 그대와 등등

곡을 통해 배우고 녹음을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단축되어 간다. 

이번 주에는 무얼로 배워볼까요, 두 사람의 성향을 알기 때문에 곡 선정도 비교적 수월하다. 

이제는 습득하는 속도가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는걸요, 이곡. 이 곡도 좋고 저 곡은 어때요? 

선생님요, 그런데요 잊어버리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졌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지 말고 복습을 해요, 복습. 


어떤 이야기를 해볼까 고민을 하던 차에 내게도 래퍼토리를 주어서 고마워요. 

그래요, 나 또한 예전에 내가 연주한 동영상을 보면서 배우곤 해요. 방법이라기보다는 그 때의 심정을, 

우리가 처음 배웠던 곡들을 다시 연주해보고 그 때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들,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들을 

펼쳐 봅시다. 그 때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지요? 어렴풋이 그 때의 마음도 떠오르고 말이죠. 

지금에서야 우리는 서로 편한 친구처럼 대화를 나누고 야구도 보고 하지만 그 때엔 뭔가 조심스러웠지요. 

처음 마음을 기억하는 것이 나에게도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어서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그러지 말고 복습을 합시다, 복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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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사람들, 교습생.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서로 안부를 묻고 답하며

우리가 왜 만나게 되었는가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으며

기타를 더듬더듬 만지작 만지작. 


왜 아직도 더듬어요? 

그러게요, 연습을 못해서. 

연습할 시간을 주면 되나요? 

그러지 말고 같이 한번 맞춰봅시다. 


나는 여러가지로 가르치고 

너는 한가지로 배우기를 몇 날 며칠

아무래도 우리는 시간을 함께 보내야겠어요. 

지금 당장에 만족시켜드릴 순 없으니까요.


일주일에 고작 한번 만나는 사람들, 교습생

그렇게 일주일을 일 년, 삼 년 동안 만나서 오면

우리가 왜 만나게 되었는가 가물가물한 기억보다

지금 우리가 왜 만나서 이렇게 있을 수 있는가 

이럴 수 있는가. 


아, 언젠가 헤어지겠지만 

그리 슬퍼할 일이 아니면 좋겠다.

우리가 왜 만났는가보다 무엇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가

그 질문에 늘 정확히 답을 주는 시간들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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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 - 김정선  (0) 2017.02.23


오늘 밤 찾은 철봉에 서너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방금 도서관에서 나온 듯한 대학생과 딱봐도 운동 좀 하게 생긴 대학원생, 가슴 근육보고 놀랐고 그 밑에 뱃살을 보고 더 놀랐던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치킨집 사장님과 겉옷을 옆 철봉에 걸어두고 셔츠 단추를 두개 풀어놓은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장님이 서로 번갈아가며 철봉에 매달려 훅훅 소리를 냈다. 직접 물어봤냐고? 이런 것쯤은 그냥 눈썰미로 알아맞춰보는거다. 그보다 어떻게 운동하는지 관찰하다보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맞추는 게 아니라 상상해보는 재미란 게 있는거다. 


첫번째로 소개한 대학생은 내가 오자마자 철봉에 힘껏 매달려보고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금세 내려와버렸다. 그 다음 차례인 대학원생은 매달려 턱을 철봉위에까지 당긴채로 양 다리를 하늘로 들어올리기를 반복했다. 한동안 아무도 철봉 근처로 오지 않았다. 대학원생이 조금 떨어진 평행봉으로 자리를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치킨집 사장님이 반팔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붙이고 철봉에 매달렸다. 팔과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다섯 번을오르락내리락 하더니 배가 부풀어올랐고 그제서야 땅으로 착지를 했다. 손을 탁탁 털더니 거만한 자세로 윗몸 일으키기를 하는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몸을 풀고 있는 나를 보고 셔츠 단추를 풀어헤친 부장님이 먼저 해도 된다고 손짓을 했다. 아니, 순서를 지키겠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수박을 먹는 자세로 매달린 부장님은 끄윽끄윽 소리를 내며 결국 세개를 해냈다. 말을 걸어준 친근감 탓인지 부장님 하나만 더요, 라고 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나는 아무래도 부끄러워 일곱 개를 빠른 속도로 하고 내려왔다. 배치기를 하면 뭔가 시선이 집중될까봐 오로지 등과 어깨로만. 그렇게 우리가 서로 순서를 기다려주고 혹은 거기를 떠나는 사이 지나던 할아버지도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이도 한번씩 철봉에 매달리다 갔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각자 자기 몸무게만큼 매달렸다. 하지만 무거운 사람이 가볍게 매달렸을 수도 있고 가벼운 사람이 무겁게 매달렸을 수도 있다. 땅으로 끌어당기는 힘이란 무게로 정해져있지만 하늘을 잡아당기는 힘은 정해져있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노력한만큼 생겨나는 힘이란 매일같이 한계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지혜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곧 정직한, 정직의 힘이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는지 어느 책에서 본 글귀였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이 된다 것은 상상력을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여기서 상상력은 '해야만 하는 것' 의 반대의미로 읽힌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 행동들.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에 들어가지 않는 것, 예를 들어 철봉과 같은 것들. 


우리가 매달린 것이 내 몸의 무게일까 아니면 다른 것의 무게일까. 상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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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들었지만, 즐겨부르지는 않았다. 시원시원하게 뱉어내는 노래를 불러본 게 너무 오래된 나머지. 

형준이는 이 곡을 좋아한다고 했다, 순이네담벼락 2집에 실린 [고래의 습격]이라는 노래. 


언젠가 아내가 날더러 네가 쓴 가사는 너무 마초적이라고 했었다. 가사내용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수많은 다툼 뒤 커다란 고래가 닥쳐온다고 해도 이제는 두번 다시 그 떄로 돌아갈 수 없으니

어떻게든 나를 믿고 살아가줘' 라니. 

지금에서야, 그만한 힘이 다 떨어져버려서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해본다. 


어찌됐든 형준이는 젊은 패기로, 또 그만한 목소리로 훌륭히 불렀다. 

얼마 전 내 공연에서도 이 곡을 불렀다. 그야말로 열창,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목소리처럼 꿋꿋하게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얼마 전 형준이가 담배를 피우며 쑥쓰럽게 웃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어느새 이렇게 어른이 되었네, 군대도 잘 다녀오고. 

마지막 남은 수업시간도 잘 채워보자. 




이런 생각을 했다, 

형준이가 성장하는 동안 나는 무얼 하며 지냈나. 

그저 바라보고 흐뭇해하기엔 나 또한 젊지 않은가, 

애니메이션 <충사>에 삽입되었던 그 음악, 사실 이것 때문에 Lucy Rose를 알게 되었다. 

다른 편곡이 필요하지 않아서 좋은, 기타 그대로의 코드를 열거해도 충분히 드라마가 되는 그런 음악이다. 

규연씨가 평소 즐겨듣는 음악이 아니어서 불러본 노래가 아니라서 좋았다고 했다. 

노래를 눌러서 부르는 것보다 툭툭 뱉어내듯 불러보는 것도 매력있다고 할 만큼 좋은 경험이었다. 


G Major7th 톤의 연주가 주요하다는 점에서 튠을 E-A-D-F#-B-E로 한 것이 연주의 전부다. 

튠을 달리했으니 각각 잡는 코드의 운지도 다르다는 것을 먼저 알고 코드를 만들어가면 재미있다. 

근음 연주와 나머지 스트로크 연주를 잘 섞어내는 것도 꾸준히 연습해야할 부분이다. 


 


나 스스로 올해에 커버곡 10곡 이상 연주를 목표로 했고, 

교습생들에게도 커버곡을 제안했다. 그것도 아주 수준급으로 연주하면서 노래까지, 


가르치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 같이 합주도 해보고 녹음도 해보고, 

한 소절이나 후렴부 몇 소절 부르는 것 이상으로 연주의 흐름과 노래를 충분히 소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선씨의 선잠, 원곡은 제이래빗의 선잠을 먼저 연주해본다. 


음원을 듣고 코드를 따고, 코드가 익숙해지면 코드와 코드를 연결하는 멜로디를 연습했다. 

난 원하지 않았으나 정선씨가 원해서 원곡과 같은 구체적인 선율의 연주까지 넣었다. 물론, 스스로 해왔다. 

이제는 어떤 설명을 해도 이해가 빠르고 그보다 연습량이 많아졌다. 

오래 배운 친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른손 연주의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에 있다고 생각한다. 


목소리는 늘 훌륭했고, 연주까지 많이 나아져 기분좋게 녹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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