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은 시각에 냉장고를 열었다. 

다섯개 들이 요구르트 중 하나를 따서 목을 축이다, 문득

내 집 냉장고에 늘 같은 향기의 반찬통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낸다. 


늦어도 두 달에 한번 씩, 저 밑의 나의 부모가 사는 땅에서 보내준 음식들. 

사실, 나는 그것을 보기만 해도 늘 배가 불렀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보기만 했지, 꺼내 실컷 먹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값이 비싼 굴비며, 정성껏 볶은 멸치며 김 부각이며 하는 것들을.

나는 좀처럼 힘을 내 먹지 못하고 늘, 새로 온 반찬에 밀려 냉동고나 혹은, 

음식물 쓰레기에 눈물을 머금고 쳐박아 두었다. 그랬다, 


반찬은 내 뱃속에 있던 것이 아니라, 늘 눈에 찼고 마음에 찼다. 

그림의 떡이란 옛 말이 이것과 맞는 말은 분명 아니었겠지만, 나로서는 그랬다. 

그 자리에 그 통에 늘 담겨있는 것이라고 물을 마실 때마다 냉장고를 열어 확인했다. 


까만 밤, 불 꺼진 거실에 냉장고를 열 때의 그 옅은 주황의 불빛 속에서 타고 있는 것처럼. 

어머니의 사랑은 늘 그렇게 타올랐다. 나는, 그것이 내가 늘 그려온 그림처럼 눈에 닿아, 

만족하고 만족하면서 먹을 줄 몰랐다. 그것이 그렇게 보란 듯이, 보란 듯 만들어온 집의 반찬. 


어두 컴컴한 밤 하늘에 그 하나 밝게 떠서, 

약하나 은은한 빛을 내는 달에, 

타오르는 서늘한 정원의 냄새. 그것이, 난다. 


그러면서도 먹을 줄 몰라, 매번 삭힌 보리차를 코로 숨을 쉬지 않은 채로. 

맛을 음미하지 않고 벌컥 마셔댄다. 숨이 차오르는 그 때가 오면 뒤돌아보지 않고, 

냉장고문을 훅, 닫아. 식기 전에 다시 타오르게 한다. 


달빛 정원의 

그 묘한 풍경을 나는 냉장고를 통해 본다. 

눈으로 보고 코로 맡으며 정작 입에 닿지는 않는다. 


병이다, 

나는 이 풍경이 언젠가 끝날 것을 알지만, 두렵다. 

또한 그 날이 속히 올 것이라는 것도 알아서, 두렵다.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그리고 잃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 깟, 반찬의 풍경 앞에서 늘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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