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 끝에서부터 언니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현관문 비밀번호를 입력하기도 전에 현관문 가까이 다가가서 들릴듯 말듯 "야옹"을 읊조린다. 

개와 다른 것이 있다면 꼬리를 흔들거나 품에 안기는 적극성이 없다는 것인데, 

그런 이유로 언니는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청이를 먼저 안는다. 

나도 신발을 벗고 언니를 안아주기 전에 청이를 먼저 안을 때가 많다. 


고양이는 늘 적당히 움직이고 적당히 본다. (청이를 통해 본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당히 먹고 체념하듯 입주위를 핥고 적당히 바라보고 이내 고개를 돌린다. 청이의 어릴 적, 장난감을 가지고 놀때면 적당히 라는 말을 스스로 이해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물론 그것은 고양이의 관심없는 '척'에 불과하다는 것이거나 내가 고양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밥을 먹고 적당한 시간이 되면 혼자 우다다(고양이가 노는 모습을 표현한 의성어+의태어)를 하는데, 그 방법이란 이렇다. 저 혼자 생각으로 저만큼 금을 그어 놓고, 쏜살같이 뛰어 그 금에 닿으면 파울을 친 야수선수가 다시 타석에 들어가는 것처럼 제 자리로 돌아간다. 다시 시작선에 위치하면 누가 보고 있지도 않은데 홀로 경계를 취하며 상상속의 먹이감을 향해 온 털을 곤두세우며 재빠르게 돌진한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면 나란 인간은 그것을 보다 못해 까삭까삭 윙윙(고양이 장난감 이름)으로 놀아주기 위해 청이의 놀이를 방해한다. 딱, 거기서 끝이다. 더이상 놀지도 않고 뒤돌아서 뜨거워진 발바닥을 핥고 침대 밑으로 사라져버린다. 가끔 나의 정성이 청이에게 가서 닿아 몇 번 놀아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청이가 외로운 나를 위해 놀아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 그런 모습은 자주 찾아볼 수가 없다. 온종일 지켜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예전에 비해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그래서 심심해졌다. 결국에, 청이와 노는 것은 내 즐거움이지 청이의 즐거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 또한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가 적당히 노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청이와 비등비등한 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지금에서야 말 할 수 있다. 





아이야 안아주는 것을 자주 하다보면 버릇이 든다고 하지만, 고양이는 그런 법이 없다. 

새끼도 아닌 것을 자꾸 들어다 자기 배위에 올려놓거나 원하지 않은 높은 곳에 데려다 놓으면 좋아할 리가 없다. 

청이는 늘 눈으로 주고 받는 인사를 하기 원하지만 나는 왜 욕심을 부려 녀석의 겨드랑이를 붙잡는지 모르겠다. 

나의 인사법으로 녀석을 한번 훑고 나면 청이는 분을 풀기 위한 장소로 으레껏, 향해 간다. 

어릴 적에는 소파 귀퉁이와 오돌토돌한 벽지가 남아나질 않았지만 지금은 자기 몸통만한 널판지에 올라타 있다.

분에 삭힌 발톱을 드러내 갈고 또 갈고. 아침 저녁으로, 혹은 내가 그럴 때마다. 





한번 알려주면 알아서 척척, 

화장실도 발톱손질도. 

절대 내 하는 일에 방해하는 일도 없고, 

귀찮게도 하지 않는 너를. 

속으로 삭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뒤돌아선 너를 매번 붙잡는다. 


아아, 

나도 너처럼 상대방을 강제하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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