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렇게 시작해 보자, 

'누가 흔들어 깨운 것 아닌데 눈이 떠지는 마음'

곧, 가을 아침의 문틈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찬 공기도 그렇거니와

창을 때리는 빗소리 또한 조용하게 마음을 두드린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믹스커피의 윗 부분을 가위로 잘랐다. 

사과 한 개를 꺼내려 냉장고 제일 밑 칸을 열었더니 먹다 남은 사료 한 봉지가 눈에 들었다. 


신대방 역 앞 건널목에서 노란 눈의 러시안 블루를 안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체구가 작은 걸 보아하니 아직 새끼인가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멈춰 서 눈을 맞춘다. 

핸드폰을 꺼내 청이 사진을 몇 개 찾아서 보았다, 목도리 도마뱀 처럼 나온 사진들이 유독 많다. 

수술자국을 꿰맨 데에 마데카솔을 하루 두 번 아침 저넉으로, 아니 그건 주사였던가. 약이었던가, 

쓸데 없는 생각을. 건널목 신호는 이미 바뀌어 있고 내 옆의 사람들은 자리를 떠났다.





나는 세상의 이름 중에 너의 이름이 가장 좋다. 청, 

blue에서 따왔을까 심청이에서 따왔을까 여하튼 그것의 의미보다는, 

'생'이란 단어처럼 생겨서 좋다. 그것보다 너는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고양이에게 청이란 이름은 네가 유일할 것으로 믿는다. 

네 언니의 선택은 늘 만족스러웠단다. 





나에게 삶의 의미란 간단해 주어진 이름으로 사는 것

'맑고 깊은' 빛을 내는 고양이라 불러줘

한점 거짓없는 삶이기를! 

너의 눈 속에 나를 가두지 말기를! 

하늘의 달 물에 달 물에 달이면 내 마음에 달 아닌가

이만한 삶이라면 그냥 좋겠네


나에게 삶의 의미란 간단해 주어진 이름으로 사는 것





물과 기름처럼 슬픔과 기쁨은 잘 섞이지 않았다. 

물과 기름으로 나뉜 한달 일주일 하루, 그 동안 우리는 서로 

말의 주인으로 살았다. 마음의 주인은 너에게 가 있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고 우리보다 네가 수없이 외쳤겠지. 


청아, 우리 마흔 될 때까지만 살자. 


그렇게 말해놓고 잊어버릴까봐 이렇게 쓴다. 

사람이 사는 과잉의 땅 위에 너를 풀어놓기보다 

우리들 사랑의 진홍빛 노을이 조용히 번져가는 데

너를 놓아둔다. 


언제나 너를 키운 건 그녀의 웃음이었단다, 

언제나 네 상상에 맡기듯.


오늘도 너는 비밀의 잠을 자는구나. 

안녕, 




'일반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양이, 청 - 앞과 뒤  (0) 2013.09.15
고양이, 청 - 7  (0) 2013.09.11
고양이, 청 - 6  (2) 2013.09.09
고양이, 청 - 5  (0) 2013.09.05
고양이, 청 - 4  (0) 2013.09.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