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말이 많았던 5학년 때 이야기를 하겠다. 

이성일, 오세영, 박정원, 성종훈. 이렇게 네 명은 약방의 감초같은 존재들이었다.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무언가를 했는데, 그 무엇이 무엇이었을까. 아주 조숙한 두명과 서서히 조숙해가는 한명, 그리고 나. 나를 제외한 세명은 현 용봉중학교 근처에 위치한 금남학원에를 다녔는데, 난 어머니를 몹시 졸라서 공부핑계를 대고 그들과 함께 하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가 파해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었으니까. 핸트폰 없던 시절엔 그렇게 저렇게 해서 어떻게 해도 만났다. 그렇다면 나보다 조숙한 아이들과 과연 무엇을 했느냐가 관건인데. 예상하는 것처럼 그거다. 그거. 

조숙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조숙한 아니는 미모를 중시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아니는 그 어떤 것보다, 어린 시절에 예뻤으면 다 좋았다. 비교적 조숙한 아이들은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미모를 따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대신 박정원이는 한우물을 팠다. 대단하다 그 나이에 벌써부터 한우물이라는 걸 알다니. 순수해 정말. 

대체적으로 같은 반 여학생들과의 접촉은 순수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던지, 싫어한다던지. 하는 얘기는 재미없었고 우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다름아닌 전기놀이. 그것도 부모님 안계시는 여학생 집에 네 명이 놀러가 하는 전기놀이. 물론 그 때에도 짝은 맞췄던 기억이. 누가 뭐래도 남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스킨쉽이란 걸. 우리는 게임을 통한 경험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는 사실. 




때때로 정원이 집이 비었었는데, 그럴 때면 순수한 여학생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남자들기리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했다. 찬장 높은 곳에 위치한 양주를 따서 뚜껑에 한잔 두잔 따라마시고, 정원이는 열심히 김치 안주를 날랐다. 난 절대 먹어선 안된다고. 그럼 나쁜 어린이라고. 혼자 속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무너진 건, 다름아닌 에로 비디오. 네 명이서 비디오 두 편을 30여분만에 독파했다. 어찌 보면, 정원이 집에는 없는 게 없었다. 그렇게 정원이는 모든 범죄의 근거지를 제공한 셈이 되었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난 나름의 그 자부심이 부러웠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몇년 전에 영화 '친구'가 개봉 했을 때. 나는 그 친구들 생각이 간절했다. 어쩌면 영화와 같은 이야기를. 우린 서로 밟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정원이와 함께 해도 떫떠름한 기분을 감출 길 없다. 다행히 그 중 한명은 옆에 있지만 기억은 서로 가지고 있는 네개의 파편들로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그런 정원이의 집 또한 내게는 기억의 파편들 중 하나다. 


정원이의 집. 궁금하지 않은가. 
정말 내가 수많은 사람들의 집에 가봤어도 그렇게 내집 처럼 편한 적이 없었고. 
그렇다고 너무 익숙한 우리집 풍경과는 너무도 다른. 무엇이 꼭 있었다. 
익숙한 그 집에는, 양주와 에로비디오. 그 외의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는데. 
일일히 말하기 번거러워 생각날 때 다시 말해두기로 하겠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