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졸업을 했다.
각기 다른 학교로 진학을 했지만,
한 동네에서 우린 계속 마주쳤고,
아니, 오히려 마주친 횟수보다
더 많은 만남을 가져왔다.
 
264-5869
아직도 기억에 남는 그녀석의 집 전화번호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들은 무한하다.
학교가 파하면 전화를 해서든 무작정 집에 찾아가든
이유야 어쨌든 만나서, 함께 있었다.
난, 사실 그녀석이 끓여준 라면이 먹고 싶었다.
국물은 최대한 없이, 가능한 불어터진 면발을
무르익은 배추김치와 함께 입안으로 넣으면, 아. 배고프다.
 
그녀석은 자기가 나보다 항상 키가 크다며 날 비웃곤 했다.
그리고, 내가 녀석 집에 놀러가는 날 대부분은
반쯤 벗어제낀 알몸으로 날 맞으며, 그랬다.
내 팔에 울긋불긋한 핏줄좀 봐.
뭐, 그런 걸 자랑할까 하면서도,
난 그게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사실 난 조금 통통해서, 그런 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한가지, 자신이 새가슴인것을 무척 못마땅해햇다.
그럼에도 난, 내게 없는 그것일지라도, 못내 부러워했다.
 
기타를 가르쳐준댄다.
처음으로 기타를 만져보았다.
녀석은 내게 로망스를 선보였으며,
난 또, 그걸 그렇게나 부러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여전히 녀석은 녹슬지 않은 그 때 그실력 그대로였다는거.
녀석의 형이 드럼을 쳤던 기억에, 드럼도 가르쳐준다고 했던
기억도 있었는데, 그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실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그 모든 것들은
뽀록임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뽀록인생 박정원이의 인생사는 이제부터다.
이제 오늘은 잠을 자고, 내일 또 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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