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방향으로 간다. 
목적지로 가는 게 아니라, 떠나온 곳의 반대방향이다. 
정류장을 지나고 길을 건너며 모퉁이를 돌아 가기만 한다. 
다행히, 일정시간이 지나면 '돌아'간다. 
다시, 떠나온 곳을 향해 돌아'온다'.

인간은 삶에서 났으며 죽음으로 '돌아'간다. 
말만 따지고 보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방향을 향해 계속 가는 것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다른 곳을 '향해' 가는 셈이 된다. 

그러나

온다, 온다라는 말을 썼다
인간의 삶 대부분이 반대방향으로 갔다가 회귀한다.
회귀할 곳이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 맞아주실 그 곳의 '님' 혹은 '분'의 관점에서는 온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온다, 온다라는 말을 썼다. 
죽음이 온다.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은 생물학적 나이듦과 병듦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절대알 수 없는 죽음의 시기는 우리가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찾아'온다'.
닥친다, 라는 말이다. 

가는 것을 멈추는 것은 가능하지만, 
오는 것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늘 수동적이다.
 
오늘 나의 오래된 사람의 죽음 또한 수동적이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받아들일 수 없다. 받아들이기 힘들다. 라는 것, 또한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11월 24일에 나의 외숙모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후로 쉴새없이 시간이 흘렀다. 
오늘 나는 no more tears라는 도현형의 노래를 듣다. 
죽음이라는 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때의 마음들을 다시금 꺼내 본다. 

나는 숙모를 보내드리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받으셨다. 하나님은 다시금 온 곳으로 불러들였다. 
가는 것을 슬프게만 받아들였고, 보낼 수 없다고 여태 멍하니 하늘만 보았다. 
기다리시는 그 곳에서. 나의 숙모를 맞아주셨겠지. 
그 품에서 편히 쉬시겠지. 이제는 눈물없는 곳에서. 



no more tears - 김도현

내겐 소망이 있죠
눈물 같던 나날 견디게 한
오래 전 당신이 약속하신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그 곳
눈물도 슬픔도 없는 아름다운 곳

내 낡고 바랜 슬픈 노래
기억 속에 잊혀진 노래겠죠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내 눈물 닦아주시는 그 품에 편히 쉬겠죠

당신을 본 적 없지만 
당신이 그리워요
오래 전 당신이 약속하신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그 곳
당신의 손잡고 마냥 거닐고 싶어요

그 날이 어서오기를 나 기다리고 있어요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
어서 오소서 이 낮고 천한 땅 위에
눈물 많은 이 곳에 아픔많은 이 곳에





'이방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하여  (0) 2012.02.13
Thanks god  (0) 2011.08.24
평안  (0) 2010.07.21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0) 2010.04.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