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네담벼락, 결성한 지 10년이 넘었고 2장의 정규앨범과 3장의 싱글앨범을 냈고 그렇게 자주는 아니어도 꾸준히 활동을 해왔다. 각자 생업에 종사한다는 이유로 함께 만나 곡을 만들고 연습을 하는 시간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는데도 아직까지 호흡을 맞추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엊그제 우리는 전주에서 새롭게 발매한 싱글앨범을 기념하는 공연을 했다. 한 달전에 녹음차 만나 두어번 합주한 것이 전부였지만 함께한 시간의 힘을 믿었다.

무대위에서 노래하는 동안 몇가지 생각때문에 공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함께 한 시간의 힘이 지금 살아가는 각자의 시간을 이기기란 힘든 것이구나 하는 것과 연습부족으로 실력이 녹스는 것보다 밴드색깔이 모호해지는 것을 더 경계해야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 한번 하는 공연이 오랜만에 만나 서로 존재만 확인하는 수준의 것이 되어버렸다는 점과 어디에다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지, 그 지점이 멤버들 각자에게 서로 다른 점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무언가 한바탕 치루고 나서 핑계를 찾기에 급급한 서로의 모습을 보는 것은 지루한 일이다. 우린 서로에게 좋은 친구이고 형이고 동생이고 하지만 적어도 음악을 할 때에 그로부터 훨씬 이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것이고 늘 해왔던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서로에게 확인하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라 드러내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었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부터 그런 생각을 실제로 사람들에게 알려야하고 다툼이 싫어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아야했음에도 지루하게 끌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공연을 하는 동안 얼굴이 벌게져 고개를 들기가 힘들었다. 우리가 보낸 시간이 고작 이것이었나,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 창고를 만들었나. 창고 안에 곡식은 썩어져 버릴것이 많았고 어느 순간부터 아예 굳게 닫혀있다시피했다. 지붕엔 비가 새고 곳곳이 녹슬고 구멍이 난 곳곳에 쥐들이 들끓었다. 이제 새로 창고를 지어볼까 하던 참이었는데.

우린 오래되었지만 아직까지 꽤 쓸만한 창고를 가진 농부들이라고 여겼다. 농부의 일로만 살아가기가 힘에 부쳐 다른 옷을 입고 산으로 바다로 나가기도 했지만 말이다. 우리가 만들어놓은 창고, 그 창고를 돌보지 않아 생긴 많은 사건들 사고들을 뒤로 한 채 창고를 새로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시시각각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변하고 그 안에 우리도 변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변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는 없다. 그러자고 시작한 일인데 실제로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안되겠다. 오늘 밤, 굳게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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