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이 되면 너는 참 힘들어도 했다. 

늘 에어컨 앞이나 선풍기 앞에 자리를 잡고, 

그것도 모자라 꼬리로 부채질을 하는 것이. 


너를 두고 여름휴가를 떠난다는 것이, 

긴 출장을 다녀온다는 것이,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가끔 집을 비우게 되는 명절 때나 여행을 다녀오는 일이 

계획을 세우게 되는 때에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가 많았고. 

너 또한 외로움을 잘 견딜 것이라는 진단을 내려봤자

그것은 서류상 이야기일 뿐, 외로움에 강한 생명이 있을까. 


한번은 내가 밥을 먹을 때에 너도 밥을 먹는 걸 보았다. 

뭔가 뭉클한 마음에 밥숟가락을 놓고 한참 사료를 음미하는 너를, 

너의 밥상에서 빼앗아 내 품에 안겼. 고마웠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책을 읽다보면 조용히 내 옆에 엎드려 있는 널 발견하곤 한다. 

언니를 닮아 책을 좋아하는가보다 생각했다가,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을 대하는 법이고. 

어릴 때부터 언니가 책을 읽을때면 가만히 자기를 만져주는 습관 덕에 생긴, 

기다림이라고 여겼다. 혹은 책을 읽을 때 생기는 주변의 고요함이 네 발걸음을 이끈 것일테고. 

네모난 종이덩어리에서 나는 냄새를 너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고양이의 삶, 그렇게 나쁘지 않아. 

 언니는 늘 이렇게 얘기하지.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다고. 

 인간들처럼 누굴 미워하는 마음이

 내 안에 큰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지 않아. 

 누구든 내게 먹이를 주는 사람과, 

 나를 안아주는 사람 그것이 꽤 귀찮은 일임에도

 나는 조금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나는 누굴 미워하지 않아. 

 그렇다고, 상냥하게 구는 법도 없지. 

 고양이의 방법이야, 

소유했지만 소유되지 않았어, 나는 앞으로도. "





코에 맺힌 이슬방울로 아침을 맞는다. 

재채기 하는 소리에 언니가 잠에서 깬다. 눈은 감은 채로 청이를 부른다. 

얇고 긴 소리로 운다, 이건 분명 배가 고프다는 소리다. 그릇에 담긴 사료가 아직 반이나 남아있다. 

엊그제 맛본 연어통조림을 먹고 싶다는 얘긴가, 배가 고플 때 청이는 애교가 깊다.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면 어느샌가 달려와 내 다리를 쓰윽 문지른다. 후훗, 

뭔가 먹고 싶다는 녀석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꼽이 다크서클처럼 흘러내려와있다. 


물을 좋아하는 고양이는 유투브 고양이 특집영상으로 몇번 본 적은 있지만 고양이가 물을 좋아할 리는 없다. 

물탱크(청이는 물통에 있는 물을 혓바닥으로 툭툭 쳐서 먹는다)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좋아하지만,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우렁찬 물줄기는 녀석을 괴롭히는 나보다 훨씬 더 싫어한다.

매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 털이 많이 빠지는 시기가 되면 바지를 걷어올리고 청이의 옷을 벗겼다. 

옷을 벗긴다, 옷을 빗겨서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내 손은 언니의 것보다 많이 서툴고 억세다. 

아버지의 등을 미는 것처럼 녀석을 씻겼다면 청이의 단벌옷은 남아나지 않았을 게다. 


가끔 녀석이 부러울 때가 있는데 그것은 샴푸 하나로 온 몸을 씻을 때다. 


드라이기로 아주 멀리서 조금씩 말려준다. 뜨겁지 않게, 

적당히 마르면 손에 물을 묻혀 머리부터 꼬리까지 몇 번을 훑어준다. 

면봉으로 녀석의 귀에 물이 들어갔을까, 확인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 부끄럽다. 

 어떤 말로도 내 모습을 변명할 수 없다. 

 언젠가 생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는 

 초침에 붙은 시간의 살점이라고 했는데, 

 그 말 오늘 이 시간만큼은 취소다! 


 잔뜩 신경질이 나 있는데

 오빠가 한 술 더 떠 사진을 찍는다. 

 피카청이랜다. 

 그렇다고 내가 피카! 피카! 하고 울까 보냐. 


 슬픈 눈을 지어보일까?

 언젠가 영화에서 본 것도 같은데.


 오빠의 엄마가 그랬단다. 

 소도 여물 몇 번 주는 것보다 

 한번 목욕시켜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여보세요, 

 저는 고양이라구요. 

 

 사람들은 내가 동물이기 전에, 

 고양이라는 걸 깜빡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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