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다니고 있다, 말을 하지 못한 까닭에 어디가 좋지 않은지 알 수가 없다. 

진단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수에 가려 초음파도 엑스레이도 소용이 없단다. 

얼마 전부터 그랬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습관적으로 자기 항문을 핥던 녀석이었는데. 

매번 포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번은 주저 앉아 자기의 배를 한번 보더니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모든 결과에 비춰 과정을 지켜보니, 그랬다. 뭔가 좋지 않아서 일상이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거처를 옮겼다, 병원 이동의 용이성을 감안해 내가 사는 용산구 후암동으로.

병원에 다닌다, 아침 저녁으로 주사 세 대를 맞는다. 엉덩이와 목덜미는 이미 벌집이 되었다. 

진단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료는 종류별로 샀고 간식도 쌓여만 갔지 잘 먹지 않는다. 

하루에 하는 것은 고작, 오줌을 통해 배에 찬 물을 빼는 것 밖에 없다. 

2주 째, 하루 두번 병원에 가는 것 외에 복수를 조금씩 빼내고 있는 것 외에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견뎌내고 있다, 잘 먹지 않은 채로 견뎌내고 있는 걸로 보인다. 





문턱을 베개 삼아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는 언니의 집이 아니다. 오빠의 집이다. 

난생 처음으로 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아픈 것보다 그것이 더 아프다. 

밥맛이 없다, 삶의 유일한 낙인 먹는 것을 앞에 두고 실의에 빠졌다. 

아무도 내 아픈 곳이 어딘 줄 모른다, 오빠는 시도 때도 없이 내 배를 조물락조물락 거린다. 

많이 아프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침묵이다. 아이처럼 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병원에 가면 연두색 의자위에 올라 앉는다, 선풍기 바람이 제법 모이는 곳이다. 

의사선생님이 나를 부른다, 발톱을 세워 연두색 의자의 모서리를 잡아보지만 오빠의 팔 힘을 당해낼 수 없다. 

시큼한 냄새를 좋아하지만 알코올의 시큼한 냄새는 너무 싫다, 흰색 테이블에서 늘 그 냄새가 난다. 

참을성이 많다, 아픔을 참아내는 기술 덕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지만. 이왕 참을 바에 더 참아보겠다. 

주사를 맞는 동안 오빠는 내 코에 자기 코를 맞대고 윙크를 해댄다, 물고 싶다. 





산책이나 갈까, 하고 녀석을 집어 든다. 

뒷발은 내 왼손바닥위에 가지런히 두고 앞 다리 사이에 손을 끼워 넣으면 비교적 안정적인 자세가 된다. 

배가 많이 눌리지 않게 느슨하게 안고 있지만 녀석은 어딜 도망가거나 하지 않는다. 

너의 심장과 내 심장을 비슷한 위치에 두고 턱으로 녀석의 이마를 문지르거나 하면 

적어도 우리가 어딜 향해 가는지 의심은 안하겠다 싶었다. 

퍽이나, 곧바로 녀석은 발톱을 곤두세워 지나가는 모든 이들의 시선과 소리와 마주해 나를 갈가리 찢겨 놓는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몇 가지가 있다, 그러나 내가 자주 애용하는 길은 시끄럽지 않은 길이다. 

한번은 대수롭지 않은 클락션 소리에 청이가 내 머리 꼭대기까지 타고 올라갔다, 다행히 내 손을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세계에서 본 우리가 사는 세계는 굉장히 시끄럽고 복잡한 것이었을 테지, 언덕을 지나 편의점 골목으로 들어간다. 

목욕탕 앞에서 종이박스를 정리하는 노인은 우리 둘을 늘 반갑게 맞아준다, 우쭈주. 아이도 아닌데 우쭈쭈라니. 

시장골목을 지나면 건널목이 나온다, 무단횡단이 가능한 데라지만 녀석을 데리고 있기에 아무래도 파란불이 좋겠다. 


청이 아빠 왔어요, 라고 간호사가 의사선생님을 호출한다, 나는 오빠다. 





사람들 무릎 아래 세상은 너무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나를 가두기 싫어 품에 넣고 간다지만. 

여름이 아쉬워해 태양은 더 힘주어 열을 내는데, 굳이 나를 품에 안아 가는 이유가 무어냐. 

헥헥대는 오빠의 숨소리를 통해 더운 열기가 내 이마에 와 닿는다, 좋은 길 놔두고 언덕을 넘는 이유는 또 무언가. 

그래도 골목 사이로 부는 바람이 오빠와 나 사이의 비좁은 틈을 핥고 지난다, 조용한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돈다. 

할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잠시 멈춰섰다, 오빠는 할아버지와 몇 마디 나누더니 나를 더 꽈악 안는다. 

어깨 너머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우쭈쭈. 할아버지 눈동자에서 무언가 반짝거렸다. 

오빠는 보지 못했다, 우쭈쭈. 우쭈쭈. 가 아니라 냠냠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걷는다. 오빠는 보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눈동자에 추억이 반짝거리고 있었음을. 나에게는 보였던 그 영롱함을. 


'요리와'라는 어린노무 고양이새끼는 내가 가는 병원의 주인행세를 한다, 시비를 건다, 나보다 한참 어린 게. 

그런데 덩치는 비슷하다, 내 꽁무니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 '이리와'라는 고양이는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인다. 

그네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의자에 올라와 여기는 내 땅, 을 외치지만 늘어뜨린 내 꼬리를 두고 장난을 친다. 

애써 참고 주사를 맞고나면 금방이라도 오줌보가 터질 것만 같다, 나는 숙녀이므로 아무 데서나 자세를 취할 순 없지. 

오빠는 집에 갈 생각이 없는가보다, 간호사 언니랑 별 쓸데 없는 소리나 하고 앉아있다. 

요리와와 이리와가 지내는 병원의 한 구석에 화장실이 있다는 풍문을 듣고 이래저래 타이밍을 찾고 있었는데, 

오빠는 나를 안고 "청이 화장실 가야지~" 큰 소리로 말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빠는, 오빠는. 


아, 부끄럽다. 

 



청이와 집으로 가는 길은 뭐랄까, 아이를 업고 집에 가는 기분이랄까. 

아침 저녁으로 힘든 일정이지만 그 사이 녀석이 뭘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지, 

어떻게 안으면 덜 불편해 하고 어느 길을 좋아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 

앞으로 차차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찾아오는 오묘한 기쁨 같은 것이. 이 때만큼은 너와 나 둘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 


아참, 오늘 언니 온댔는데. 청인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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