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때도 잠잠했던 글쓰기를 이제 또 시작해본다. 

그만큼 이제는 좀 여유가 생긴것인지, 아니면 무슨 할 말이 있어서인지. 

기억해보고 써나가다 보면 뭔가 내게도 남음이 있겠지. 


제목을 정하기란 글쓰기에서 중요하다. 

나의 경우엔 제목이 글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덕목이라서, 

그리고 어떻게 생각해야 좋은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 제목이라서, 그렇다. 

간혹 글을 쓰고 나서 제목을 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썼던 글을 지우고 다시 써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 하겠다. 





2015년이 밝고 일주일 전에 예정을 했던 부산으로 가능한 가벼운 짐을 챙겼다. 

나는 아내가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기에 중간중간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에 대해 

입을 다물고 모른 척을 했다. 거의 대부분 아내의 사진은 내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었다. 

KTX 매거진을 펼치고 증도에 관한 기사를 읽던 중에 내가 말했다. 

"예전엔 몰랐는데 여기 쓴 이 글은 아주 감성적으로 잘 썼네, 원래 이 매거진이 정보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 있는 쪽을 힐끔 보더니 힐끗 웃으며 "그래." 하고 아주 짧게 대꾸를 했다. 

아마 그 즈음 이었을 것이다. 그 기사의 중간부분에 이렇게 적혀 있던 걸 보았다. 

"모든 흐르는 것에는 생명이 있다"





무엇을 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매번 아내를 비롯한 누구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누는 그런 계획들, 

그런 것들이 내게는 의미심장하지 않다. 다만, 

누구를 만나게 될 것인지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인지. 

그런 것들이 내게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꼭 '좋은 것'이 되었다. 

잠깐, 제목을 짓게 된 것에는 이런 이런 배경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잠시 뒤 우리가 부산에 도착했을 때 말쑥이를 타고 온 정화를 만날 수 있었다. 

말쑥이는 말리부의 여성형 이름이라고 했다. 







정화를 소개하려면 시간은 2009년 겨울로 돌아가야 한다. 

나와 아내가 처음으로 여행을 떠난 그 때, 필자는 그 여행의 제목을 "서른에게 보내는 편지" 라고 했다.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을 아내와 친구인 채로 보냈던 그 때에 처음으로 정화를 보았다. 

원래 나의 친구였지만 이제는 아내의 친구로 더 가깝게 지낸다. 나는 그것이 내게 더 좋은 일이 되었다고 여긴다. 

순이네담벼락 2집의 마지막 수록곡인 <서른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문장을 써서 내게 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친구였던 아내를 지금의 아내로 삼을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것보다 매번 쪽머리를 하고 늘 저렇게 웃으며 늘 했던 말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2009. 12. 29. 15:34

 

기차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기차를 놓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때론 더 가치있는 선택이 될 수 있겠지.


그렇게 쓰여있다, 내 편지에는 그렇게. 

그렇게 6년여가 지났고 지금 나는 그 선택에 대해 만족하며 삶을 살고 있다. 

그 때 갔던 장소와 흔적을 찾기를 바랬지만 이번 여행에 대해 나는 내 안으로만 속수무책했다. 

아내는 동물원을 좋아한다.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TV를 켜고 동물농장을 본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동물다큐를 좋아해 나를 유혹해 자기 옆에 앉게 한다. 

나 또한 동물의 세계를 줄곧 시청했었다. 구체적으로는 큰 동물이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광경을 보기 좋아했다. 

그렇든 말든 동물과 동물원이, 동물다큐가 내게 준 것은 그 친구를 살펴보고 이해하고 존경하는 마음이었다. 

지금 우리는 동물과 동물원과, 동물다큐와 상관없이 부산의 어느 작은 마을에 있지만 말이다. 

사랑하는 것을 제일 첫번째 목표로 했던 지난 날과는 별개로 살아가는 것을 제일 첫번째 목표로 하는 오늘 날, 

그 오늘이 있기까지 나는 아내와 동물원에 갔던 그 어느 날이 갑자기 생각이 났고. 

그 어느날에게 참 많은 감사를 했던 오늘 날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돌풍이라고 한 말을 들어본 일이 없지만, 

나는 그 국제시장이 여기 부산의 그 국제시장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부산에 사는 정화도 우리도 그런 것은 뒤로 한 채 아내가 검색한 트리축제와 씨앗호떡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나는 어서빨리 어둑어둑해지길 기다렸다. 

말쑥이를 주차해두고 두터운 옷을 벗어놓고 맛있지 않아도 도란도란, 서둘러 어느 곳을 가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야기 전에 흠뻑 취하고 싶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커피도 마셨고 씨앗호떡도 먹고 충무김밥과 비빔국수도 순차적으로 먹어왔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기 전날과 그 이튿날은 확연히 다르다. 

'풀어놓는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그것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과 달리

단추가, 나사가 풀어진다는 의미로 풀어놓는다의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풀어진 채로 아니, 나만 풀어진 채로 첫째밤을 보냈다. 

나는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묻어둔 채로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풀어졌다 보니 그 이틑날 채워야 할 단추가 많았지만 말이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늘 이야기하는 기억이 아니라 기억이 나지 않는 기억이다. 

나는 모르는 그 기억을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차라리 그것이 더 기억답다고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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