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찾은 철봉에 서너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방금 도서관에서 나온 듯한 대학생과 딱봐도 운동 좀 하게 생긴 대학원생, 가슴 근육보고 놀랐고 그 밑에 뱃살을 보고 더 놀랐던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치킨집 사장님과 겉옷을 옆 철봉에 걸어두고 셔츠 단추를 두개 풀어놓은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장님이 서로 번갈아가며 철봉에 매달려 훅훅 소리를 냈다. 직접 물어봤냐고? 이런 것쯤은 그냥 눈썰미로 알아맞춰보는거다. 그보다 어떻게 운동하는지 관찰하다보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맞추는 게 아니라 상상해보는 재미란 게 있는거다. 


첫번째로 소개한 대학생은 내가 오자마자 철봉에 힘껏 매달려보고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금세 내려와버렸다. 그 다음 차례인 대학원생은 매달려 턱을 철봉위에까지 당긴채로 양 다리를 하늘로 들어올리기를 반복했다. 한동안 아무도 철봉 근처로 오지 않았다. 대학원생이 조금 떨어진 평행봉으로 자리를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치킨집 사장님이 반팔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붙이고 철봉에 매달렸다. 팔과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다섯 번을오르락내리락 하더니 배가 부풀어올랐고 그제서야 땅으로 착지를 했다. 손을 탁탁 털더니 거만한 자세로 윗몸 일으키기를 하는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몸을 풀고 있는 나를 보고 셔츠 단추를 풀어헤친 부장님이 먼저 해도 된다고 손짓을 했다. 아니, 순서를 지키겠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수박을 먹는 자세로 매달린 부장님은 끄윽끄윽 소리를 내며 결국 세개를 해냈다. 말을 걸어준 친근감 탓인지 부장님 하나만 더요, 라고 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나는 아무래도 부끄러워 일곱 개를 빠른 속도로 하고 내려왔다. 배치기를 하면 뭔가 시선이 집중될까봐 오로지 등과 어깨로만. 그렇게 우리가 서로 순서를 기다려주고 혹은 거기를 떠나는 사이 지나던 할아버지도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이도 한번씩 철봉에 매달리다 갔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각자 자기 몸무게만큼 매달렸다. 하지만 무거운 사람이 가볍게 매달렸을 수도 있고 가벼운 사람이 무겁게 매달렸을 수도 있다. 땅으로 끌어당기는 힘이란 무게로 정해져있지만 하늘을 잡아당기는 힘은 정해져있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노력한만큼 생겨나는 힘이란 매일같이 한계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지혜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곧 정직한, 정직의 힘이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는지 어느 책에서 본 글귀였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이 된다 것은 상상력을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여기서 상상력은 '해야만 하는 것' 의 반대의미로 읽힌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 행동들.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에 들어가지 않는 것, 예를 들어 철봉과 같은 것들. 


우리가 매달린 것이 내 몸의 무게일까 아니면 다른 것의 무게일까. 상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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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타이밍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중요한 사실은. 

적당한 것은 쉽게 드러나지 않아 드나드는 문이 아니라 뒷문 혹은 창문으로 지나가버렸다는 거다. 

애초에 타이밍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이제는 어린아이처럼 밥먹는 데만 집중할 수 없으니, 

나는 하나지만 나와 관계된 것들은 하루가 생겨나는 것만큼 늘어 둘과 셋이 돼버리니 말이다.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살' 길을 모색하기 위함이었고, '즐거운' 삶을 누리기 위함이었다. 
첫번째의 '살' 길은 밥벌이와 관계된 것이지만 내가 하는 공부는 그런 의미에서 실용적인 공부가 아니다. 
멀리 내다보면 자격증을 딸 수도 있고 자격증을 이용해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살' 길은 언어이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다. 말하고 듣고 생각하고 내가 표현하는 방법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두번째 '즐거운' 삶을 누리는 것은 '지금'에 관한 얘기다. 
현재 내가 집중하기 위한, 다른 시름을 잊고 지내기 위한 방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분간 노래를 만드는 일을 중단했다. 먹고 사는 방법은 최소한으로, 틈틈히 있는 기타교습외에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
주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행위도 자제했다. 그것은 '즐거운' 시간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즐거운' 삶의 연속은 아니었으므로. 

작년 11월에 일본에 다녀왔다. 아는 동생의 권유와 도움으로 시부야의 작은 술집에서 공연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전부터 일본에 대한 로망은 있어왔다, 문화와 취향의 다양성, 상상의 고도, 음악의 섬세함 등 눈과 귀로 담아두고 싶었다. 
5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살아보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일궈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움직임의 시작이었다. 
마음에 바람만 잔뜩 들었다는 표현보다는 그 즈음의 순간에 바람이 불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일단은 일본어에 대한 공부다. 일본문화에 대한 공부는 가랑비에 젖어가는 외투처럼 될 것이다. 
책을 사고부터 시작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바람에 두달 가까이 한권의 책에만 매진했지만, 
일단은 재미있다. 수능을 공부할 때처럼 오답노트도 따로 만들어두었다, 나한테 시험을 치는 느낌으로 버스 좌석에서 중얼거린다. 
하루를 채우는 시간들을 쪼개 틈틈히 책을 보고 떠올리고 혼잣말도 해본다. 자의로 공부해 본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이다,

언어에 대한 공부는 '켜켜이' 쌓아야 하는 데 있다. 시간의 쌓음이자 결국 삶들의 쌓음이다. 
그들 삶을 엿보기 위해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내게 중요한 것은 그들 생각의 표현이다. 
'그들'이라고 쓴 것은 아직은 내게 생소한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나 '같이'가 되기 위해서는. 
내 안에 많은 것들이 쌓여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쌓여가는 오늘과 내일이 '살' '즐거움' 이면 좋겠다. 

뚜렷한 목표는 이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가 옮겨지고 언어가 가지는 특성을 이용해 글을 써보는 것"
"글을 읽고 표현하는 소리를 통해 노래로 옮겨가는 것"
"음악에 대한 공부 또한 타지에서 시도해볼 것"

민나노 니홍고 초급 1과 2를 보고 있고, 한자책도 겸해서 보는 중이다. 
영화도 애니메이션도 좋지만, 일본의 대중가요와 소위 인디한 음악들의 가사를 많이 읽어보자. 
좋아하는 표현을 적어놓는 일도 게을리 하지말고, 그 표현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말해보는 것도. 
마음을 급하게 먹지 말고 시간을 보내자. 즐겁게,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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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 혹은 질서를 두고 산다. 혹자는 그것을 두고 죽은 시간이라고 했다.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했다. 어제 내가 키우는 고양이가 벌에 쏘였다.

이불을 털고자 창문을 열어놓은 탓에 벌 한마리가 들어온 것이다. 

날아다니는 것에 영혼을 빼앗긴 몽(고양이의 이름)은 주저함 없이,

엄지손가락만한 벌에게 앞발을 날렸다. 코를 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절룩거리는 녀석을 구경하듯 보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 역시 그런 일로 병원가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고양이다. 생전 처음 맛보는 고통에 녀석의 얼굴은 일그러져있다. 

하는 수 없이 케이지에 넣고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폭염주의보. 어제의 일기는 그랬다. 택시를 타기도 그렇고_택시도 잡히지

않는다_야옹거리는 녀석을 버스에 싣기도 망설여졌다. 하는 수 없이 

걸었다. 샴 고양이네요? 자신있게 고양이의 품종을 써내려갔다. 

어르신!_선생님이라고 하기엔 너무 늙었다_코라트라는 종입니다. 

아, 그래요? 샴이랑 너무 비슷하네요. 그런 식이라면 모든 고양이는 같아요. 

부엉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 대문짝하게 걸려있는 그 병원은 아마도, 

조류전문 동물병원이었던 것 같다. 요즈음 벌에 쏘인 고양이와 개를 데리고

오는 손님들이 부쩍 많아요. 간단하게 소독하고 해독제를 투여하면

별 문제는 없을 거에요. 말은 안해도 엄청 아파하고 있을 겁니다. 

통조림 하나 드릴테니 약을 잘 섞어서 주세요, 하며 2천원을 더 받았다. 


동영상 편집도 해야하고, 미용실에도 가야하고, 수업도 해야하는데

벌 때문에 나는 지금 폭염속 아스팔트를 녀석을 짊어진 채 걷고 있다. 

흔들리는 케이지 안에서 연간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녀석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미안하지만 나도 무겁고, 덥다. 쉬었다 갈까, 

나무그늘아래 바위에 걸터 앉아 아까보다 더 부어오른 몽이의 왼발을

쓰다듬어주었다. 아프기도 하겠다, 그러니까 파리와 벌을 구별하라고! 


통조림에 약을 섞어 주니 왼발을 부르르 떨면서 잘도 먹는다. 

청(얘도 고양이 이름)이는 왜 자신은 주지 않냐며 냥냥거린다. 

너도 벌에 쏘여, 그럼 줄게. 엄마처럼 말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하다 만 이불털기를, 화분을 옮기고 베란다 물청소를 하는 동안

몽이는 저 쪽에서 의기소침해 있을 줄 알았더니, 왠걸. 

커다란 파리 한마리를 쫓아 이 방 저방을 날아다니고 있다. 

나의 바램대로 되었다! 벌과 파리를 구별할 줄 알게 되다니!

녀석에게도 규칙이 생겼다. 오늘 나의 규칙을 어기고 너의 규칙을 

만들었다. 내 생각이긴 해도 고양이게게 규칙이라니. 규칙이라니, 


일과 사람에게 규칙을 정해두는 것을 보통일로 한다. 

어쩌면 그 습관 덕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도 같다. 

심지어 고양이들도 화장실이 더러우면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규칙을 져버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삶의 결정적 순간에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귀한 친구를 만나고 사귀고, 

뜻밖의 마음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그래서, 혹자가 질서있는 삶을 죽은 삶이라고 표현한 것에

나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라고 한 것이다. 

나에게 규칙을 어기게 하는 순간들이 앞으로 수도 없이 찾아올 테지만

예전처럼, 어릴 때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 가능할까. 

술부터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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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하나에 물방울 하나가 더해져 물방울이 된다. 

아름답다고 하는 것에는 물방울이 물방울을 끌어들이는 힘과 같이,

그것은 매력처럼 끌리는 것과는 달리, 그저 물과 물이 섞임 같은 것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부는 날이었고, 비가 그쳤다. 

고백과 같은 것을 하고 싶었고, 그것은 고해성사와 비슷한 것이었다.

광화문 광장의 하늘에 대고 그 비슷한 일을 했다. 

바람에 실려 날아간 내 말과 글자들이. 

다시금 물방울이 되어 내린다면, 하고 생각해보았다.


평소보다 일찍 버스에 올라 책을 꺼내들었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야. 나는 그저 기록자야. 

모든것은 기록되지. 

문자로든, 화석으로든,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로든. 

존재하고 있는 것은 모두 기록되고 흔적을 남기지. 

그러므로 여기에 있는 자료들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기록되었고 기록되어졌기 때문에 보관되고 있는 것이야. 

우리가 싫어하든 그렇지 않든, 믿기든 믿기지 않든. 

우리의 혐오와 증오와 편견에 상관없이. 

이들은 단지 있기 때문에 기록되는 것이야. 

위대하거나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우리 옆에 있기 때문에 기록되는 것이지. 

나는 이 기록들을 보관해왔어. 

그것이 내가 한 일이야."


그저 우리 옆에 있기 때문에 기록되는 것이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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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00원이 찍혔다. 벌써 보름이 지났나 했지만 아직 삼분의 이나 남았다. 교통비의 인상으로 내 인상도 찌뿌려졌다. 아주 좋은 꿈을 꿨었다. 깨고 싶지 않을정도로, 다만 기억나지 않을 뿐. 손가락이 욱신 거려서 깬 것은 아니란 것만은 확실했다. 번쩍 눈을 떴다, 오늘 서둘러 해야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번쩍'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번쩍 눈이 떠졌다. 


택시가 잡히지 않자 서울 콜택시 경기콜택시를 연거푸 호출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부근에 빈 차량이 없다는 문자가 수신함에 가득차고 있었다. 열두시 오십분을 넘어 새벽한시로 가는 동안이 너무 길었다. 잠시 앉아 쉬자고 셔터가 내려진 은행입구에 털썩 앉았을 뿐이다. 


아내 꿈을 꿨었나 싶다.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좋은 꿈이었지 않았을까 되짚어본다. 몇몇 사람들이 오갔고 청소부 아저씨가 내 발밑을 쓸고 있다. 그러니까 택시를 잡은 기억은 있는데 집으로 간 기억은 없다! 양가죽이었는지 소가죽이었는지 그런건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굉장히 개운하게 잔 것만은 사실인지라 가방에 고마워했다. 현금다발이 무사한지 확인했다. 핸드폰이 없다, 요즘 세상에 누가 폴더폰을 가져간단 말인가. 등 뒤쪽에서 이걸 찾나, 자네. 건물을 지키는 어르신의 쇳소리가 났는데 그냥 돌려주기는 싫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만원짜리 지폐를 꺼내들자 그렇게 많은 돈은 됐고 담뱃값 정도만. 만원짜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마터면 말할 뻔 했다. 


오전 6시 6분에 첫차가 왔다. 승객이 없을 줄 알았는데 거의 절반의 좌석이 차있다. 나와 비슷한 꼬락서니의 남자옆에 앉았다. 내 냄새를 지우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려웠다, 내 탓이다. 오늘 일을 꼭 일기에 적어놔야겠다고 라면을 먹으면서 아내는 말했다. 나는 몇숟갈 뜨지 못했다. 샤워를 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나를 집으로 데려다 준 버스일까 잠시 의심을 해봤다. 삐빅하고 66300원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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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못쳐먹겠다 라는 소리가 턱밑까지 차올랐다.

오랜만에 앉아본 피아노 앞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손을 놀려봤는데, 

내 손은 2012년을 마지막으로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당연한 거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선율이란 일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랑

오래전 보았던 풍경을 되살려내는 것이랑 엇비슷하다.

때때로 내가 못해먹겠다,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렸을 때

가지고 있던 좋았던 느낌마저 사라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때문이다. 

행동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_노래를 만들어야 하는_이 올 때까지 그저 머릿속으로만 그린다. 

사실, 이 때가 가장 즐겁다.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음악이란!


가사가 없을 때라야 가장 음악답다, 그려지는 것도 수려하다. 

'아' 와 '스' 와 '오'를 적절히 섞어 우물우물거리는 정도와

기타의 스트링 소리가 막 접신을 시도한다. 그거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땀을 닦을 줄도 모른다.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익숙해지길 바래서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것을 소형 녹음기에 담아놓는다. 

그리고 다시 틀어놓고 그것의 배음을 찾아 흥얼거려본다. 

때로는 춤을 춰보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한다. 

무한반복 속에 나는 규칙을 찾고자 여러방법을 동원한다. 


만일 그 한나절과 반나절에 규칙을 찾지 못하면 그것으로 그것은

어딘가에 묵힌다. 그대로 묵어 놓는다. 

나는 한 가지의 사람으로 그 때 그때의 느낌이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묵어놓은 느낌과 지금 살아 있는 느낌을 두고

비교를 하기도 한다. 비교라는 말보다 차이가 더 정확하겠다. 

차이에서 오는 공간감이 때로 좋은 역할을 해 줄 때가 있다. 

그 비어있는 곳에 예를 들어 1년 전과 하루 전의 일들을 모아둔다. 

규칙을 찾는다, 글을 써보기도 하고 묵묵히 바라만 봐도 된다. 


외로움이 근원이 되어 시작한 일이다. 시작된 일이다. 

소꿉놀이도, 비행기접기도, 잠자리잡기랑도 비슷하다. 

혼자하는 일 중에 가장 으뜸은 가만히 앉아 생각하기다. 

생각하기 전에 멍 때리는 일이다. 색색깔의 세상이 검은색으로,

때로는 흰색으로 물들어갈 때 외로움과 벗삼아서 해본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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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인 부추닢에 고양이 털이 두어개 묻어있는 것을 보았다.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것은 이렇듯 귀여워하면 할 수록 털이 많이 날린다는 것을 부정하고서는 못산다. 

모르고 먹으면 약이라고 하지만 이건 뭐 벌써부터 콧잔등이 가렵기 시작한다. 

아내가 코를 부비작부비작거리는 습관이 있는데 아무래도 고양이 털 때문이었을까, 

된장국에 밥을 많이도 비벼놨는데 모래밭에서 진주를 찾는 격으로 했다간 오늘 안으로 밥을 먹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사려깊은 고양이 청은 내가 밥먹을 때만 찾아오는 사려깊음으로, 사려는 무슨 사료만 아는 몽은 시도때도 없으나 

내가 밥먹을 때만은 가만히 나를 놓아두는 사려깊음으로, 고양이 두마리와 함께하는 아침식사와 사투를 벌인다. 

사투라고는 했으나 맞은편 자리에 아무도 없는 식탁에서 혼자 밥숟갈을 뜨는 것을 애처롭게 바라봐주는 청이나, 

밥을 먹을 때만이라도 좀 쉬자는 몽이의 시선이 느껴져 고맙기는 하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와 대화를 시도한다, 이거 줄까. 저거 줄까. 배고프니,

왼쪽으로 와, 너는 오른쪽으로 오고. 아니 거기는 올라가지 말고. 

백번의 말 중에 하나라도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생기면 녀석은 머리가 좋은 고양이가 되거나 내 말을 알아듣는 고양이가 되고. 

그런 흥미로운 사실들에 콧노래를 부르며 반찬 한가지를 입안에 넣고 흡족해한다. 

설마 내가 밥을 먹는 것에 대해 너희들도 흡족해하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너희들 밥을 주고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너희들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설거지통에 빈 그릇을 넣고 물을 채워넣고 뒤를 돌아보면 어느 한낮 꿈처럼 고양이들은 사라지고 없다. 


성북동 비둘기에 등장하는 돌 깨는 소리가 마을_내가 사는 곳은 동네라기 보다 마을에 가깝다_을 울린다. 

오늘은 사이렌 소리까지 합쳐져 유난히 시끄럽다. 

고양이는 시끄러운 거 싫어하는데.


20150706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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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허풍이 좀 심한 편이야,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친구가 내게 말했다. 

아주 정확하게 봤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한 말을 두고 나는 친구란 이런 거구나,

너는 친구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고 확신했다. 


내가 허풍을 떤다고 하는 네 말에 나는 무슨 핑계거리를 찾는 대신

나의 허풍과 맘먹을 정도의 네 약점을 찾아내는 대신

너는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줄 것에 밑줄을 그었다. 

그 친구가 보내준 에어컨 (띄고) 바람을 쐬다가 생각이 난 '허풍'에 

잠시 옛 생각을 해볼 기회가 생겼다. 


볼륨이었다, 내가 의도한 것은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크기, 내 말을 믿던 안믿던 그것보다. 

일단은 내 말의 전달이 중요했다. 약간의 과장을 버무려서 주었다. 

엄마는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감탄사와 수사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할아버지 논이 떠내려갈 정도로 비가 많이 와! 이렇게. 


양치기소년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친구들은,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잘못된 점만 이야기했고,

나는 내 잘못이 드러나는 것 같아 꽁꽁 숨고 싶었다. 

기말고사에 양치기소년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묻는 주관식문제가

나오지 않기를 바랬다. 거짓말과 허풍을 구분하지 못하는 때였다.

사춘기 무렵 나는 양치기 소년을 어느정도 이해하려고 애썼다. 

애썼다기 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생각했다. 


아이들이 모인 자리나 어른들이 모인 자리나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보다는 누구의 말이 재미있을까다. 

나는 이제 별로 허풍다운 허풍을 떨지 못하고 사뭇 진지하다. 

어른이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재미가 없다. 

거짓말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살면서 누구한테 거짓말을 가장 많이 했나 싶어서 생각해보니 여지없이 엄마였다.


201507030958

내리막을 걸을 때 아무래도 무릎 연골이 걱정이 된다면, 
그게 바로 나이를 먹은 증거라 여긴다. 오늘이 그랬다, 
내리막을 걸을 때 그런 것보다 불어오늘 바람이라던지
내리막을 걸을 때 그런 것보다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이라던지
내리막을 걸을 때 무엇 보다 땀을 식히는 맛이라는 게 있는데 
나는 오늘, 평소에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는 내 무릎연골을, 
심지어 골똘히 생각하면서 걸어내려왔다.


작업실 에어컨을 설치하는 기사의 목소리가 너무 근사해서, 
나는 그만 목소리가 참 훌륭하시다 멋쩍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위험수당을 더 달라, 말하는 그 목소리 또한 좋았다. 
방음벽이 제일 까다로운 작업인데 그냥 해드리겠다, 고마워요. 
천오백원짜리 파리바게트 아이스아메리카노로 인사를 했다.


로맹 모네리의 <낮잠형 인간>을 마저 읽었다. 
"나는 매일 집세 낼 방법에 대해 조금씩 더 고민하게 되었다." 
라는 부분에서 이번달 집세를 아직 내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나를 가난한 음악가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얼굴은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집주인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기억안나는 얼굴이지만,


이제 야구를 시작하려면 30분이 남았다. 
남들은 퇴근 6시를 기다리지만, 나는 야구중계와 가까운 6시를 기다린다. 
가끔 수업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교습생이 고마울 때가 더러 있다. 
오늘부터는 내 방에서 지낼 수가 있다, 에어컨은 좋은 발명품이다. 
이제 노래도 만들고, 연습도 잘 할 수 있다. 
그 동안 더위를 핑계로 피운 게으름을 만회할 시간이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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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질을 위아래로 수십번은 한 것 같다.

이럴 때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반복이 계속되자 고양이 몽이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럴 여유가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걸레를 잠시 놓아두고 녀석의 코와 귀를 만지작거렸다. 

나를 따라와보라는 시늉으로 베란다로 나가더니 빗 앞에 멈췄다. 

너는 참 빗질을 좋아하는구나, 이미 청소기를 돌린터라 

더 이상 털이 날리는 걸 원하지 않는데 어쩌니. 

빨래가 다 되었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세탁기 문을 열자 헹굼제 향기로 가득한 옷가지들이 쏟아졌다. 

이럴 때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옷을 널 때에도 마찬가지. 

건조대 아래로 무럭무럭 커가는 식물들이 보였다. 

손을 가져다 대자 식물 특유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아직 흙은 마르지 않은 상태라 물을 줄 필요는 없겠다, 

어제 누군가 빨래를 색색깔별로 널어놓는다는 말이 생각나

나도 그래볼까 하다가 색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생각을 하면 안된다니까, 그냥 하던대로. 

빨래 건조대 위로 껑충뛰어와 냥냥거리던 몽이를 집어 땅바닥에 던졌다. 

고양이는 체조선수니까, 던져도 알아서 잘 착지하겠지, 

번번히 몽이는 넘어지거나 부딪히거나. 여전히 빗 앞에서 서성댄다. 

금요일에 먹고 남은 김밥이 냉동실에 있는 걸 발견했다. 

고양이들에게 줄 닭고기를 찾다가 내 밥도 찾아서 지금은 해동중이다. 

닭고기가 녹을 때까지 뭐를 할까 하다가 음악을 틀어놓고 

뭔가를 써보려고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컴퓨터 옆에 식은 커피가 반 쯤 남아있다, 아 이건 아까 마시려고 한 건데.

한 모금 입을 가득 적셔놓고 흘러나오는 노래의 제목을 검색하려고 하자

해동이 다 되었다는 신호음이 주방쪽에서 나왔다. 


생각을 말자, 생각을 말자. 

나는 눈에 민감하니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빨래바구니를 세탁기 옆으로 가져다 놓을 때 

지나가면서 재활용쓰레기가 가득 들어찬 것을 볼 것이다.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주섬주섬 가지고 나가 분리수거를 하겠지. 

미리 이것을 하자, 나중에 하자, 하는 생각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 

지금껏 충분히 생각하고 생각해왔으니 오늘과 내일과 모레까지는 

생각을 말자, 생각을 말어.


20150701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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