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녀석이 아프기 전부터 고양이에 관한, 청이에 대한 노래를 쓰고 있다. 

날렵한 몸매와 앙증맞은 발, 둘리를 닮은 혀와 피카츄의 귀를 하고 있는 녀석을 찬양(?)하는 내용의. 

창문으로 껑충 뛰는 모습에 늘 반하곤 해서 그 부분의 묘사는 어떻게 할지 고민중이다. 

다만 아픈 녀석의 눈을 보면서 즐겁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죄스러워 내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오늘 수술받은 부위의 실밥을 뜯어냈다. 상처를 핥지 못하게 해둔 장치를 풀어주었더니 반기는 눈치다. 

침대에 함께 누웠다, 이젠 눕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누운 채로 간식을 받아먹는다. 

눈 주위에 탈모현상이 보인다, 털에서 녀석의 오줌 냄새가 난다, 샤워는 아직 이르다. 

홀쭉한 배에 주름이 잡힌다, 글쎄 얼굴도 푸석한 느낌이다, 샤워는 아직 이르다. 

다리사이로 손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내가 잠들어버렸다. 


꿈인가. 


난데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하늘은 죄인이 되었고,  

밤 골목 사이에 나타나 째려보는 고양이 또한 죄인이 되었다. 

인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덕에 입밖으로 튀어나온 욕이 순간 죄수복을 입혔다. 

그러나, 무한유한한 그들의 생명에 인간들이 부리는 손과 발들이 얼마나 죄악인가!

죄 없는 푸른 하늘이고 죄 없는 푸른 고양이다. 

고양이 청이란 그 뜻일까 잠시 생각해본다. 


내 안에 들어온 청이가 이야기를 한다. 

인간의 잔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분명,

인간의 눈에는 관심이 많다. 

그들이 먹고 마시는 것들 중에 내게 던져질 것은

꼭 그들의 눈과 나의 눈 사이에 존재하니까. 


꽃을 좋아한다. 그래서 자주 언니의 꽃잎을 먹는다. 

한번은 오빠가 언니에게 사다 준 후리지아 꽃잎을 먹었다. 

꽃과 나는 늘 창가에서 만난다, 유일한 친구다. 

그래서일까, 

홀로 남아있는 용기를 가진 꽃과. 나 사이. 

거리를 좁혀 앉았다, 나는 말할 수 없이 너를 삼켰다. 

 

"나 시집 보내줘" 

아침에 배겟머리 앞에서 언니를 바라보고 외친다.

교미하지 못하여 서럽게 우는 밤이 어제였던 걸 감안해야 했다. 언니는,

아직 사료가 남아있는 데에다 연어통조림을 섞어주었다. 

나는 말할 수 없이 먹었다. 


꿈인가.


너에게 우연이었고 

나에게도 우연인 이 만남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만나서 헤어지는 것을 목전에 둔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래서 애초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간혹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는 일 이 얼마나 다행인가도 싶어,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운 것인가 싶어. 





사람의 마음에 결말이 있는 것은 죽음도 이별도 아니라 잊혀지는 데 있단다. 

바람이 불면 모든 것이 깃발이 되듯 녀석의 아픔은 내 안의 것들을 끄집어 내게 했다. 

잊혀지지 않게 하는 방편일수도 있다, 다만 네 발톱처럼 한순간 솟구쳐 나왔다가 사라지지만 않았으면. 

무관심을 사랑하는 네 마음을 무관심으로 대처하지는 않기를 바라며. 


틈틈히 네 얘기를 두고 두고. 

쓰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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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렇게 시작해 보자, 

'누가 흔들어 깨운 것 아닌데 눈이 떠지는 마음'

곧, 가을 아침의 문틈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찬 공기도 그렇거니와

창을 때리는 빗소리 또한 조용하게 마음을 두드린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믹스커피의 윗 부분을 가위로 잘랐다. 

사과 한 개를 꺼내려 냉장고 제일 밑 칸을 열었더니 먹다 남은 사료 한 봉지가 눈에 들었다. 


신대방 역 앞 건널목에서 노란 눈의 러시안 블루를 안고 있는 여자아이를 보았다. 

체구가 작은 걸 보아하니 아직 새끼인가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멈춰 서 눈을 맞춘다. 

핸드폰을 꺼내 청이 사진을 몇 개 찾아서 보았다, 목도리 도마뱀 처럼 나온 사진들이 유독 많다. 

수술자국을 꿰맨 데에 마데카솔을 하루 두 번 아침 저넉으로, 아니 그건 주사였던가. 약이었던가, 

쓸데 없는 생각을. 건널목 신호는 이미 바뀌어 있고 내 옆의 사람들은 자리를 떠났다.





나는 세상의 이름 중에 너의 이름이 가장 좋다. 청, 

blue에서 따왔을까 심청이에서 따왔을까 여하튼 그것의 의미보다는, 

'생'이란 단어처럼 생겨서 좋다. 그것보다 너는 마음에 드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고양이에게 청이란 이름은 네가 유일할 것으로 믿는다. 

네 언니의 선택은 늘 만족스러웠단다. 





나에게 삶의 의미란 간단해 주어진 이름으로 사는 것

'맑고 깊은' 빛을 내는 고양이라 불러줘

한점 거짓없는 삶이기를! 

너의 눈 속에 나를 가두지 말기를! 

하늘의 달 물에 달 물에 달이면 내 마음에 달 아닌가

이만한 삶이라면 그냥 좋겠네


나에게 삶의 의미란 간단해 주어진 이름으로 사는 것





물과 기름처럼 슬픔과 기쁨은 잘 섞이지 않았다. 

물과 기름으로 나뉜 한달 일주일 하루, 그 동안 우리는 서로 

말의 주인으로 살았다. 마음의 주인은 너에게 가 있었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 고 우리보다 네가 수없이 외쳤겠지. 


청아, 우리 마흔 될 때까지만 살자. 


그렇게 말해놓고 잊어버릴까봐 이렇게 쓴다. 

사람이 사는 과잉의 땅 위에 너를 풀어놓기보다 

우리들 사랑의 진홍빛 노을이 조용히 번져가는 데

너를 놓아둔다. 


언제나 너를 키운 건 그녀의 웃음이었단다, 

언제나 네 상상에 맡기듯.


오늘도 너는 비밀의 잠을 자는구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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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몸이 아프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에, 몇 번 더 아프다는데. 

녀석도 고향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미 젖을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사실 네가 어디서부터 온 건지 아침부터 궁금해 내내 너를 쳐다보고 있다. 

언니의 말로는 알고지낸 신부님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 품에 담아왔다고 하던데, 

그럼 너의 어미는 신부님의 고양인가, 나머지 형제들의 안부를 물었다. 

아프면 그런 게 궁금해질 것 같아서 나 또한 너의 곁에서 함께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것보다, 왜 등 돌려 벽만 쳐다보고 있는지 간혹, 네가 아픔을 참는 방법이 그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집에 오는 발걸음에 속도가 붙었다. 오르막길이긴 해도 네가 혼자 있다는 생각에, 

밥은 먹었을까, 물은 부족하지 않았을까, 화장실은 자주 갔을까.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계단을 두 개씩 밟아나갔다, 현관에서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낯선 동네, 낯선 소리들에 둘러싸여 종일 긴장했을까 싶어 현관에서부터 나는 네 이름을 불렀다. 

침대 끝에서 귀만 쫑긋 내밀고 있는 너를 못본 척 했다. 찾는 시늉을 하면서 천천히 네게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너를 매만졌다. 아프진 않았니, 외롭진 않았니. 왜 요즘 우리는 이렇게 인사를 할 수 밖에 없나, 

너의 누운 모습이 안쓰러운지 창밖의 새들이 시끄럽게 우는구나.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고 일어난 아침 녀석의 눈가에 눈물의 양이 점점 늘어만 갔다. 

일단은 언니가 있는 녀석의 집으로 보내 주었다, 작별인사도 없이 한남대교를 지났다고 연락이 왔다. 

며칠 후 언니 일터 근처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단다. 비장 종양, 어디까지 전이가 되었을지는 수술해봐야 안다고 했다. 

나는 열심히 치료했다고 생각했는데 너와 로맨스만 나눈 건 아닌지, 

그 동안의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것에 자책감이 몰려왔다. 

4시간의 수술,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지만. 그 후의 청이의 의지가 얼마나 발현이 될지, 후유증은 없는지. 

언니가 보내준 너의 모습에 나는 눈물을 왈칵 쏟을 뻔 했다. 고생했다, 고생 많았다. 정말이지 잘 견뎌줘 고맙다. 

내가 다 고맙다. 





이젠 좀 자렴

나비가 날아와도 깨지 말고 

배고픔도 잠시 잊고 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보고 싶은 얼굴을 마주해

이제 곧 청아한 하늘 앞에서 심호흡 하고

바람이 네 목덜미 간지르면 평소 읊던 네 울음

그거 한번 시원하게 들어보자


저물녘 짧은 꿈 속에서 깨면

밀려드는 네 시장기를 사랑으로 채워주마

아직은 네 눈의 조리개를 닫을 때가 아니다


여름 바람 시원한 날

겨울 햇볕 따뜻한 날

그처럼 너도 우리도

감사한 날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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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다니고 있다, 말을 하지 못한 까닭에 어디가 좋지 않은지 알 수가 없다. 

진단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복수에 가려 초음파도 엑스레이도 소용이 없단다. 

얼마 전부터 그랬다, 화장실을 다녀오면 습관적으로 자기 항문을 핥던 녀석이었는데. 

매번 포기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번은 주저 앉아 자기의 배를 한번 보더니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모든 결과에 비춰 과정을 지켜보니, 그랬다. 뭔가 좋지 않아서 일상이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거처를 옮겼다, 병원 이동의 용이성을 감안해 내가 사는 용산구 후암동으로.

병원에 다닌다, 아침 저녁으로 주사 세 대를 맞는다. 엉덩이와 목덜미는 이미 벌집이 되었다. 

진단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료는 종류별로 샀고 간식도 쌓여만 갔지 잘 먹지 않는다. 

하루에 하는 것은 고작, 오줌을 통해 배에 찬 물을 빼는 것 밖에 없다. 

2주 째, 하루 두번 병원에 가는 것 외에 복수를 조금씩 빼내고 있는 것 외에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견뎌내고 있다, 잘 먹지 않은 채로 견뎌내고 있는 걸로 보인다. 





문턱을 베개 삼아 시원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는 언니의 집이 아니다. 오빠의 집이다. 

난생 처음으로 언니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아픈 것보다 그것이 더 아프다. 

밥맛이 없다, 삶의 유일한 낙인 먹는 것을 앞에 두고 실의에 빠졌다. 

아무도 내 아픈 곳이 어딘 줄 모른다, 오빠는 시도 때도 없이 내 배를 조물락조물락 거린다. 

많이 아프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침묵이다. 아이처럼 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병원에 가면 연두색 의자위에 올라 앉는다, 선풍기 바람이 제법 모이는 곳이다. 

의사선생님이 나를 부른다, 발톱을 세워 연두색 의자의 모서리를 잡아보지만 오빠의 팔 힘을 당해낼 수 없다. 

시큼한 냄새를 좋아하지만 알코올의 시큼한 냄새는 너무 싫다, 흰색 테이블에서 늘 그 냄새가 난다. 

참을성이 많다, 아픔을 참아내는 기술 덕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지만. 이왕 참을 바에 더 참아보겠다. 

주사를 맞는 동안 오빠는 내 코에 자기 코를 맞대고 윙크를 해댄다, 물고 싶다. 





산책이나 갈까, 하고 녀석을 집어 든다. 

뒷발은 내 왼손바닥위에 가지런히 두고 앞 다리 사이에 손을 끼워 넣으면 비교적 안정적인 자세가 된다. 

배가 많이 눌리지 않게 느슨하게 안고 있지만 녀석은 어딜 도망가거나 하지 않는다. 

너의 심장과 내 심장을 비슷한 위치에 두고 턱으로 녀석의 이마를 문지르거나 하면 

적어도 우리가 어딜 향해 가는지 의심은 안하겠다 싶었다. 

퍽이나, 곧바로 녀석은 발톱을 곤두세워 지나가는 모든 이들의 시선과 소리와 마주해 나를 갈가리 찢겨 놓는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은 몇 가지가 있다, 그러나 내가 자주 애용하는 길은 시끄럽지 않은 길이다. 

한번은 대수롭지 않은 클락션 소리에 청이가 내 머리 꼭대기까지 타고 올라갔다, 다행히 내 손을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세계에서 본 우리가 사는 세계는 굉장히 시끄럽고 복잡한 것이었을 테지, 언덕을 지나 편의점 골목으로 들어간다. 

목욕탕 앞에서 종이박스를 정리하는 노인은 우리 둘을 늘 반갑게 맞아준다, 우쭈주. 아이도 아닌데 우쭈쭈라니. 

시장골목을 지나면 건널목이 나온다, 무단횡단이 가능한 데라지만 녀석을 데리고 있기에 아무래도 파란불이 좋겠다. 


청이 아빠 왔어요, 라고 간호사가 의사선생님을 호출한다, 나는 오빠다. 





사람들 무릎 아래 세상은 너무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나를 가두기 싫어 품에 넣고 간다지만. 

여름이 아쉬워해 태양은 더 힘주어 열을 내는데, 굳이 나를 품에 안아 가는 이유가 무어냐. 

헥헥대는 오빠의 숨소리를 통해 더운 열기가 내 이마에 와 닿는다, 좋은 길 놔두고 언덕을 넘는 이유는 또 무언가. 

그래도 골목 사이로 부는 바람이 오빠와 나 사이의 비좁은 틈을 핥고 지난다, 조용한 골목을 굽이굽이 돌아돈다. 

할아버지가 일하는 곳에 잠시 멈춰섰다, 오빠는 할아버지와 몇 마디 나누더니 나를 더 꽈악 안는다. 

어깨 너머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우쭈쭈. 할아버지 눈동자에서 무언가 반짝거렸다. 

오빠는 보지 못했다, 우쭈쭈. 우쭈쭈. 가 아니라 냠냠이야, 라고 중얼거리며 걷는다. 오빠는 보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눈동자에 추억이 반짝거리고 있었음을. 나에게는 보였던 그 영롱함을. 


'요리와'라는 어린노무 고양이새끼는 내가 가는 병원의 주인행세를 한다, 시비를 건다, 나보다 한참 어린 게. 

그런데 덩치는 비슷하다, 내 꽁무니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는 '이리와'라는 고양이는 나와 비슷한 연배로 보인다. 

그네들로부터 자유롭고 싶어 의자에 올라와 여기는 내 땅, 을 외치지만 늘어뜨린 내 꼬리를 두고 장난을 친다. 

애써 참고 주사를 맞고나면 금방이라도 오줌보가 터질 것만 같다, 나는 숙녀이므로 아무 데서나 자세를 취할 순 없지. 

오빠는 집에 갈 생각이 없는가보다, 간호사 언니랑 별 쓸데 없는 소리나 하고 앉아있다. 

요리와와 이리와가 지내는 병원의 한 구석에 화장실이 있다는 풍문을 듣고 이래저래 타이밍을 찾고 있었는데, 

오빠는 나를 안고 "청이 화장실 가야지~" 큰 소리로 말한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빠는, 오빠는. 


아, 부끄럽다. 

 



청이와 집으로 가는 길은 뭐랄까, 아이를 업고 집에 가는 기분이랄까. 

아침 저녁으로 힘든 일정이지만 그 사이 녀석이 뭘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지, 

어떻게 안으면 덜 불편해 하고 어느 길을 좋아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 

앞으로 차차 내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될 때에, 

찾아오는 오묘한 기쁨 같은 것이. 이 때만큼은 너와 나 둘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 


아참, 오늘 언니 온댔는데. 청인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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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끝에서부터 언니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현관문 비밀번호를 입력하기도 전에 현관문 가까이 다가가서 들릴듯 말듯 "야옹"을 읊조린다. 

개와 다른 것이 있다면 꼬리를 흔들거나 품에 안기는 적극성이 없다는 것인데, 

그런 이유로 언니는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청이를 먼저 안는다. 

나도 신발을 벗고 언니를 안아주기 전에 청이를 먼저 안을 때가 많다. 


고양이는 늘 적당히 움직이고 적당히 본다. (청이를 통해 본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적당히 먹고 체념하듯 입주위를 핥고 적당히 바라보고 이내 고개를 돌린다. 청이의 어릴 적, 장난감을 가지고 놀때면 적당히 라는 말을 스스로 이해하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물론 그것은 고양이의 관심없는 '척'에 불과하다는 것이거나 내가 고양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해서이기도 했다. 밥을 먹고 적당한 시간이 되면 혼자 우다다(고양이가 노는 모습을 표현한 의성어+의태어)를 하는데, 그 방법이란 이렇다. 저 혼자 생각으로 저만큼 금을 그어 놓고, 쏜살같이 뛰어 그 금에 닿으면 파울을 친 야수선수가 다시 타석에 들어가는 것처럼 제 자리로 돌아간다. 다시 시작선에 위치하면 누가 보고 있지도 않은데 홀로 경계를 취하며 상상속의 먹이감을 향해 온 털을 곤두세우며 재빠르게 돌진한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면 나란 인간은 그것을 보다 못해 까삭까삭 윙윙(고양이 장난감 이름)으로 놀아주기 위해 청이의 놀이를 방해한다. 딱, 거기서 끝이다. 더이상 놀지도 않고 뒤돌아서 뜨거워진 발바닥을 핥고 침대 밑으로 사라져버린다. 가끔 나의 정성이 청이에게 가서 닿아 몇 번 놀아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마치 청이가 외로운 나를 위해 놀아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 그런 모습은 자주 찾아볼 수가 없다. 온종일 지켜보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예전에 비해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그래서 심심해졌다. 결국에, 청이와 노는 것은 내 즐거움이지 청이의 즐거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 또한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가 적당히 노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청이와 비등비등한 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지금에서야 말 할 수 있다. 





아이야 안아주는 것을 자주 하다보면 버릇이 든다고 하지만, 고양이는 그런 법이 없다. 

새끼도 아닌 것을 자꾸 들어다 자기 배위에 올려놓거나 원하지 않은 높은 곳에 데려다 놓으면 좋아할 리가 없다. 

청이는 늘 눈으로 주고 받는 인사를 하기 원하지만 나는 왜 욕심을 부려 녀석의 겨드랑이를 붙잡는지 모르겠다. 

나의 인사법으로 녀석을 한번 훑고 나면 청이는 분을 풀기 위한 장소로 으레껏, 향해 간다. 

어릴 적에는 소파 귀퉁이와 오돌토돌한 벽지가 남아나질 않았지만 지금은 자기 몸통만한 널판지에 올라타 있다.

분에 삭힌 발톱을 드러내 갈고 또 갈고. 아침 저녁으로, 혹은 내가 그럴 때마다. 





한번 알려주면 알아서 척척, 

화장실도 발톱손질도. 

절대 내 하는 일에 방해하는 일도 없고, 

귀찮게도 하지 않는 너를. 

속으로 삭히는 모습을 보면서도, 

뒤돌아선 너를 매번 붙잡는다. 


아아, 

나도 너처럼 상대방을 강제하지 않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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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여름이 되면 너는 참 힘들어도 했다. 

늘 에어컨 앞이나 선풍기 앞에 자리를 잡고, 

그것도 모자라 꼬리로 부채질을 하는 것이. 


너를 두고 여름휴가를 떠난다는 것이, 

긴 출장을 다녀온다는 것이,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가끔 집을 비우게 되는 명절 때나 여행을 다녀오는 일이 

계획을 세우게 되는 때에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가 많았고. 

너 또한 외로움을 잘 견딜 것이라는 진단을 내려봤자

그것은 서류상 이야기일 뿐, 외로움에 강한 생명이 있을까. 


한번은 내가 밥을 먹을 때에 너도 밥을 먹는 걸 보았다. 

뭔가 뭉클한 마음에 밥숟가락을 놓고 한참 사료를 음미하는 너를, 

너의 밥상에서 빼앗아 내 품에 안겼. 고마웠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책을 읽다보면 조용히 내 옆에 엎드려 있는 널 발견하곤 한다. 

언니를 닮아 책을 좋아하는가보다 생각했다가,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을 대하는 법이고. 

어릴 때부터 언니가 책을 읽을때면 가만히 자기를 만져주는 습관 덕에 생긴, 

기다림이라고 여겼다. 혹은 책을 읽을 때 생기는 주변의 고요함이 네 발걸음을 이끈 것일테고. 

네모난 종이덩어리에서 나는 냄새를 너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을까, 




"고양이의 삶, 그렇게 나쁘지 않아. 

 언니는 늘 이렇게 얘기하지.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다고. 

 인간들처럼 누굴 미워하는 마음이

 내 안에 큰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지 않아. 

 누구든 내게 먹이를 주는 사람과, 

 나를 안아주는 사람 그것이 꽤 귀찮은 일임에도

 나는 조금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나는 누굴 미워하지 않아. 

 그렇다고, 상냥하게 구는 법도 없지. 

 고양이의 방법이야, 

소유했지만 소유되지 않았어, 나는 앞으로도. "





코에 맺힌 이슬방울로 아침을 맞는다. 

재채기 하는 소리에 언니가 잠에서 깬다. 눈은 감은 채로 청이를 부른다. 

얇고 긴 소리로 운다, 이건 분명 배가 고프다는 소리다. 그릇에 담긴 사료가 아직 반이나 남아있다. 

엊그제 맛본 연어통조림을 먹고 싶다는 얘긴가, 배가 고플 때 청이는 애교가 깊다.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면 어느샌가 달려와 내 다리를 쓰윽 문지른다. 후훗, 

뭔가 먹고 싶다는 녀석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꼽이 다크서클처럼 흘러내려와있다. 


물을 좋아하는 고양이는 유투브 고양이 특집영상으로 몇번 본 적은 있지만 고양이가 물을 좋아할 리는 없다. 

물탱크(청이는 물통에 있는 물을 혓바닥으로 툭툭 쳐서 먹는다)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좋아하지만,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우렁찬 물줄기는 녀석을 괴롭히는 나보다 훨씬 더 싫어한다.

매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난히 털이 많이 빠지는 시기가 되면 바지를 걷어올리고 청이의 옷을 벗겼다. 

옷을 벗긴다, 옷을 빗겨서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내 손은 언니의 것보다 많이 서툴고 억세다. 

아버지의 등을 미는 것처럼 녀석을 씻겼다면 청이의 단벌옷은 남아나지 않았을 게다. 


가끔 녀석이 부러울 때가 있는데 그것은 샴푸 하나로 온 몸을 씻을 때다. 


드라이기로 아주 멀리서 조금씩 말려준다. 뜨겁지 않게, 

적당히 마르면 손에 물을 묻혀 머리부터 꼬리까지 몇 번을 훑어준다. 

면봉으로 녀석의 귀에 물이 들어갔을까, 확인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아 부끄럽다. 

 어떤 말로도 내 모습을 변명할 수 없다. 

 언젠가 생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는 

 초침에 붙은 시간의 살점이라고 했는데, 

 그 말 오늘 이 시간만큼은 취소다! 


 잔뜩 신경질이 나 있는데

 오빠가 한 술 더 떠 사진을 찍는다. 

 피카청이랜다. 

 그렇다고 내가 피카! 피카! 하고 울까 보냐. 


 슬픈 눈을 지어보일까?

 언젠가 영화에서 본 것도 같은데.


 오빠의 엄마가 그랬단다. 

 소도 여물 몇 번 주는 것보다 

 한번 목욕시켜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여보세요, 

 저는 고양이라구요. 

 

 사람들은 내가 동물이기 전에, 

 고양이라는 걸 깜빡하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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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살이다. 할머니다 할머니, 

그러나 사람들 말로 나는  '동안'이란다. 

새끼를 가진 적이 없다. 고로 엄마인 적이 없다. 

그러나 엄마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나에게 언니는 엄마처럼 대해주었기 때문에, 

나의 필요를 채워주었고 때로 내게 뭇매를 주었다. 

크래미를 좋아한다. 치즈도 좋아한다. 요거트도 즐겨 먹는다. 

오빠가 엄마 반찬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어릴 적 즐겨먹던 그것들을

잊지 못한다. 


이런 나를 두고 언니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크래미 섬이 있다면 아마도. 너를 데리고 꼭 가보고 싶어.

오빠가 노 젓고 언니가 나를 무섭지 않게 꼭 안아서 가보자고 했다. 

사람들은 그 광경을 두고 줄곧 '가족'이라고 했다. 

아, 언니와 오빠와 함께 먹고 마실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이 가족이구나. 

저 쪽에서 오빠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른다. 내 노래라고 하면서 나를 부른다. 


" 보일락 말락 보일락 말락 크래미 섬으로 가자. 

  노 저어 가자. 노, 노, 노, 저어 가자. 

  물에 비친 밤별 낮별 파도가 와서 부서지기 전에 어서 입을 벌려, 

  물고기 열매가 열린 그곳에 가서 

  물고기 씨앗을 뿌려, 물고기 농사를 짓고. "


아, 너무 시끄러운데. 그리고 나는 물고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본다면 난 아마 무서워서 근처에도 가지 않을꺼에요. 

나는 계속 불평했지만, 오빠는 듣는 둥 마는 둥.


" 청이도 좋아서 저러는 것 좀 봐. 자기 노래 부른다고 좋아하네? "


언니가 오빠를 부추겼다. 아, 그게 아닌데. 

왜 한시도 나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건가요, 

어서 밤이 오면 좋겠어요. 그래야 내 볼일을 보겠거든요. 





"가끔은, 

달콤한 나의 고독이야

방해하지 말아주세요. 


그러나, 

너를 염려하는 밤이야

달아나지 않을꺼에요. 


유리창에 늘 같은 그림이 걸려있어

소원을 빌기 위한 별 하나.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만나게 될

이 모든 세계를 

따뜻하게 함께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세요. 


나를 키운 언니 웃음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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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숫자를 셀 줄을 몰라, 나에게 하나는 늘 하나인 전부.

  나를 너에게 끌고 온 내 호기심 하나, 그리고 너 하나. "



하고 많은 녀석들 중 왜 너였을까. 

나를 속이는 말도 비난의 말도 없이 묵묵히 내 얘기를 들어주는 너의. 

말보다는 행동으로 전하는 진심. 

내가 부족해도 조금 모자라도 언제나 한결같이. 

그것이 내가 너와 함께하는 진짜 이유. 





뒷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주면 좋아한다. 고양이들이 다 그런가 싶어 지나가는 고양이를 붙잡아두고 해보려고 했지만, 

붙잡힐 리도 없고 붙잡아도 할퀴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네 눈에선 늘 초록별이 빛난다. 연어가 뛰어오르는 폭포라던가,

고등어가 몰려다니는 바다의 빛깔과 같이. 사람을 볼 때에도 눈을 보는 것처럼 너를 볼 때에도 늘 눈을 바라보게 된다

그렇지, 네 눈은 바라보게 된다. 빛이 있으면 있는대로 어둠이 있으면 있는대로 바라만 보게 된다. 


"잿빛 구름으로 엮은 옷을 입은 그의 눈에는 고독한 신비가 있었네"


낮에는 잠만 자는 청이를 참고 보지 못했다. 그것이 화근이었던지, 혹 그것을 내내 기억하고 있었던지. 

새벽에 한참 코를 골고 자던 내 배위를 눈 위에 발자국 새기듯 꾹꾹 밟고 지나간다. 

작은 방이지만 수 많은 길을 꿰고 있는 녀석임을 알고 있었던 터라 그 의도가 복수임을 이내 짐작했다. 

이미 내 배는 녀석의 뱃길이 되었고 거기에 조각배를 띄우고 어디로 갈 셈인지 가끔 궁금했다. 

좋을 데로 생각해보자고 하면서 나 또한 내 꿈 속에 배를 한 조각 띄웠다. 


"밤새 그녀의 숨소리를 듣고, 너의 꿈을 엿듣고. 모래의 사막을 건너 바다라는 수평선에 닿으면

 뱃사공 되어 조각배 하나 띄웠네. "





고양이가 자주 등장하는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주일 아침에 울리는 알람처럼 TV 동물농장도 빼놓지 않았다. 

청이가 먹다 남은 간식이나 사료를 챙겨다 길고양이들에게 조금씩 나눠주는 일도 하게 되었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는 아랫집 할아버지와 말다툼 하기 일쑤지만 덕분에 세상에 고양이를 비롯한

많은 생명들과 즐거움을 나누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청이의 즐거움과 나의 즐거움을 혼동해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무관심도 사랑의 일부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은빛 물고기 한마리 낚아 선물로 주고 싶다. 


" 너는 가난한 어부와 결혼해도 좋아, 

 그리하여 나에게 매일 물고기를 던져준다면. 

 나는 너희의 말없는 허수아비가 되어 

 날아든 괴로움의 새를 멀리 쫒아내 줄 수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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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는 중이었는데 문을 비집고 들어와 내 왼편에 앉았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으나 내 비밀을 들켜버린 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하루를 털어놓는 유일한 상대. 

나의 알몸을 보고 나의 표정에 담긴 느낌을 읽고 나의 근심을 바라보는 유일한 녀석. 


개와 고양이를 혐오하지는 않아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와는 별개로 살아가는 이웃집 여자 쯤으로만 생각하지.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해치지는 않고, 도움을 청하면 어느정도 손을 뻗어줄 수 있는.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생명체들에 대한 관심은 애초에 없었다. 


그녀의 고양이를 만났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먹구름 색 옷을 입은, 녹색 눈과의 조화로운 생명.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스레 걷고 뛰어오르며 품에 알맞게 안겼다. 

무엇보다, 고양이는 예뻤다. 이름을 물었다. 

"청이" 






"이 도시를 통틀어 가장 멋진 이름은 나일껄, 

이 도시의 고양이들은 낭만이 없어. 

자기 이름이 무언지 관심이 없지. 


나는 많이 먹지 않아, 

기관지가 좋지 않은 탓일수도 있고. 

젊었을 적 호기심에 집을 나간 후로 

살이 잘 찌지 않아.

 

그래도, 두고봐. 언젠가 때가 되면 보란듯이, 

날렵하게 날아오를테니. "







풀과 나무가 자라듯 살아가는 줄 알았다. 

대부분의 이들은 나처럼 생각한다, 저 알아서 살아가는 줄로. 

사실, 그렇게 살아만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산다는 것이 뭘까. 생각나지 않도록, 


때때로 너의 필요는 생각해보지 못한 채, 나의 필요로 너를 안았다. 

늘 말없이 안겨주었지만, 가끔 네가 나를 할퀴고 돌아설 때에는 말이다. 

너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워 하는 마음에 너를 아프게 했나보구나, 생각했다. 

그것도 한참이 지난 어느 날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너의 자는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날에 나는 참 놀랐다. 

맵시있는 외모에 비해 너무 형편없는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하다, 

나는 네게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었나. 너에게까지 내 욕심의 일부를 던져주었나. 

먹지 않으면 걱정하는 것보다 실망부터 먼저 하는, 그것이 인간인 나의 모습인가. 

  



" 인간들이 사랑할 때는

있는 힘껏 사랑한다고들 하지. 


그런데 그 힘 조절에 실패하면 

누군가 많이 아파한다는 걸 아는지 몰라. 


들풀을 보는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대해주면 좋겠어. 


꽃이 예쁘다고 꺾으면 안되듯이

내가 예쁘다고 있는 힘껏 만지거나 안으면, 


나는 너의 사랑에 상관없이

너를 할퀴거나 도망을 하겠어. 


그러니, 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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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켜놓고 글을 써본 지가 얼마만인가!


요즘 즐겁게 시청하는 일밤의,


진짜 사나이

정보
MBC | 일 18시 20분 | 2013-04-14 ~
출연
류수영, 서경석, 김수로, 손진영, 미르
소개
스타들이 군 부대에서 장병들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똥 싸고 오겠습니다~!" 샘 해밍턴이 그렇게 말했을 때 즈음 나는 줄곧 그 때 그시절 생각이 났다. 

월차를 내고 파주 출판단지에 현이와 놀러갔다. 물론 내 월차는 아니다, 

보급병으로 사단업무를 줄기차게 다녀야 했던 나는 운전병 만큼이나 그 곳 길들에 익숙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둥 마는 둥, 광고찍는 전지현을 멀리서 구경하다가. 

옥수수 2개에 2500원, 레쓰비 캔커피 3개와 칸쵸를 샀다. 

파주 광탄면 마장리, 





노랗게 타들어가는 오후, 

차를 타고 가릿고개를 넘은 적은 처음이었다. 

부대 앞 정류장은 새로 페인트칠을 한 듯 환하게 웃고 있었고, 

불광동에서 33번을 타고 여기 내리면 가까운 위병소에서 낯익은 얼굴이 반갑게 외친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혹은 어여 튀어와, 라던지. 서로의 지위고하에 따라, 





부대는 일찌기 이사를 갔다고 했고, 

닫혀진 철문이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세계최강은 무슨, 정예수색은 무색, 

밖에서 본 위병소 안과 안에서 본 위병소 밖은

천지차이다. 여태 그렇더라, 





본부중대 근무소대 2.4종 보급병 이병 성종훈

본부중대 근무소대 1종 보급병 상병 손희선

본부중대 근무소대 병기계 상병 박준영

본부중대 근무소대 탄약계 일병 이재균

본부중대 근무소대 장교계 일병 이수홍

본부중대 근무소대 경리계 이병 문만석

본부중대 근무소대 사병계 상병 김재훈 2분대장

본부중대 근무소대 작전병 1 이병 김정범

본부중대 근무소대 작전병 2 상병 정철오

본부중대 근무소대 작전병 3 병장 고승훈 분대장

본부중대 근무소대 정보병 1 이병 이용섭

본부중대 근무소대 정보병 2 이병 이태섭

본부중대 근무소대 인터넷교육병 1 이병 김두현

본부중대 근무소대 인터넷교육병 2 병장 여용대


그리고 본부중대 수송소대 3종 보급병 일병 최휘철


막내, 참 오래도 해먹었었다. 





위병소 옆 솔개타운, 

유일하게 부대원들에게 술을 파는 곳. 

맥주는 1000cc까지. 그러나 잘 지켜지지는 않았고, 

매일 밤 점호는 붉게 물든 얼굴의 병장들 내지 상병의 말들로 가득, 

막내가 좋았던 이유는 간혹 분대장들이 데리고 가서 여지없이 술을 멕였던 것. 


사고가 나면 문을 닫는다는 조건 하에, 

그나마 모든 병사들의 위안이 되었던 것, 

해질 무렵, 삼삼 오오 줄을 지어 찾던 솔개타운. 

훈련 후 맥주의 맛, 아니 근무 후. 





선착순! 

찍고 찍었던 축구골대나 탄약고 철조망도 이제는 없다. 

파란 지붕의 교회와 녹색 지붕의 식당, 매일 1.5km 구보의 연병장, 

그리고 멀리 숨어있는 분리수거장, 그것들이 모여 시절을 논한다. 


이제는 사람없는 곳에, 

넘쳐나는 이미지들, 그리고 그리운 동무들의 냄새. 

노랗게 타들어가던 오후의 냄새가 진동할 무렵, 

사들고간 레쓰비 커피 하나로 입맛을 다신다. 


연인과 헤어지고 복귀한 어느 병사의 귀대길에, 

벚꽃과 가까운 것들이 피어있었다. 

사실 그보다, 

반갑게 혹은 가혹하게 맞아준 그대들이 있어서,

몇 개월을 버텼고, 또 그대들을 기억할 수 있었지.


이제는 민방위 1년차인. 

나의 소중했던 이십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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