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이 싸이추방 대작전 : 원래는 친구의 못된 행태를 낱낱이 밝혀 온라인(예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발도 못붙이게 할 심산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구와 나와의 일들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기 위함으로 변질된. 여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할 이야기 모음집. 








< 누군가가 쌓은 돌,  누군가가 쌓은 마음 >


사랑 한번에 하나씩 쌓아갔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돌을 쌓아왔을까.  

사랑 한번에 쌓은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 






< 밥,  욕쟁이 할머니가 지어주신 밥 >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것만 같은 그런 밥상.  그런데 굴비(조기)는 너무 작고 그 나물에 그 밥상. 남도음식 치고는 뭔가 소홀한 듯한 밥상.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은 된장국.  맛을 기억한다면 아마도 쌀뜨물에 양파와 멸치를 우려내고 그 안에 감자와 버섯을 넣은 된장찌개, 거기에다 두부 한 모를 큼직하게 썰어서 소복하게 얹은.  그런 된장찌개라고 내 혀는 기억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그 허여멀건한 된장국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이번참에 그 맛을 기억해냈다. 살림 2년 정도하니까 뭐에뭐가 들어갔는지 알겠다 싶다.  계란찜은 손도 대지 않았다. 

 전날 밤 우리는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숙소를 잡고 허기진 배를 무엇으로 채우나 살펴보았다.  편의점은 많았으나 그것보다는 따뜻한 음식, 따뜻한 음료가 필요했다.  처자들은 피곤하여 눈이라도 붙여두라고 말하고 나온 나와 정원이는 9km를 다시 돌아와서 족발집과 이러저러한 집을 찾아다니다 결국 문 연 가게는 닭발집 하나 뿐이라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매운 닭발을 맵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드리며 주문을 했다. 나는 소주와 맥주와 산사춘과 쿨피스와 맥스봉(소시지) 4개를 적당히 섞어 샀고 정원이는 닭발과 주먹밥 2인분 그리고 문제의 계란찜을 주문했다.  처자들은 아쉬운 마음이었는지 자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얼마되지 않은 양이었다. 술은 반도 줄지 않았는데 닭발과 주먹밥, 그리고 계란찜은 게눈 감추듯 없어져갔다.  계란찜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닭발이 매운 이유였을지도, 그런데 술도 안먹는 니네들이 안주를 하나씩 먹어치울 때마다 나는 조금 속이 타들어갔다. 정원이는 그랬다.  처자들 좀 먹게 고만 먹으라고.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다.  그럴 생각이면 좀 더 많이 사오지 했다. 나는 홀로 산사춘과 소주를 연거푸 비우고 냅다 잠자리에 들었다. 허름하긴 했어도 방바닥은 따수왔다. 

 재밌는 이야기 하나,  우리가 묵은 숙소의 주인장 청년 두명.  산골에 사는 터라 그랬는지 너무 순진무구한 모습들.  방 두개 주세요 했더니 6만원을 이야기 한다. 신용카드도 아니고 체크카드로 긁어달랬더니 "3개월 할부로 해드릴까요?" 란다.  아니요 그냥 일시불로 해주세요 했더니 "우와 이런 거금을 한번에 쓰신다니요!" 하며 굽신굽신 대며 부자취급 해주었다. 뭔가. 이거는. .. 뭔가. 이거는... 웃을 수도 없고. 아항.







< 정원이는 '늘' 이렇게 생겼다.  >

 나는 이런 사진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사람의 사진.  맑은 미소와 고운 눈빛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 그 자체로 채워진다.  노래가 들려온다. 우리가 숨쉬던 그 작은 곳을 세상이라고 했지. 맞는 말이다.  사람이 채워야 세상이다.  오래전의 기억들을  간직한 사람들이면 그 자체로 나는 좋다.  지리산에 가는 길이다. 가는 길에 들렀다. 벛꽃이 만개한 논길 한 가에 차를 세워두고 걸었던 논길과 저수지 사이를 바람이 파고 들었다. 옷깃을 살며시 들춘다.  쳐다본다. 바라본다. 멀리있다. 가까이온다. 다시 바라본다. 장난기 가득하게 네 눈이 보인다. 선글라스 안이 보인다. 네 눈이. 

 황사먼지로 가득한 하늘도 굽 높은 구두덕분에 움푹움푹 땅이 패여도 나는 이 곳이 참 좋더라.

 -  화엄사에서 지리산 노고단 가는  길 중  - 







< 사진을 찍을 때에도 나는, 나보다 상대방을 더 생각한다.  >


 벚꽃보다는 개나리보다는 목련보다는 수양버들이 좋다고 하는  1981년 6월 14일 생의 정원이와 그녀는.  나와 관계한 사람들이다.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이다. 그저 아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름과 생일을 비롯한 상대방의 정보만을 가지고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 적어도 나와 한가지 이상의 기억은 공유해야 하니까.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  지금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까? 하는 질문에 그렇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나요? 라는 대답을 기분좋게 해야만 하는 기분이 든다.  사랑. 그것은 우정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연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행위와 생각의 덩어리들이 사랑과 관계하여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사랑을 위해서 살지는 않는다.  그 분을 본받기로 작심을 했지만 사랑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나는 곧, 지쳐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공기가 있고 그 안에는 미세먼지가 있고 또 그 안에는 또 더 작은 것들이 층층히 있을까.  나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꼭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먼지보다 더 미세하고 공기보다 더 가볍거나 무겁다.  바람이 분다.  공기를 일으키는 바람,  되려 공기가 움직여 일으키는 바람.  나는 그것이 마음과 같아서 좋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공기가 있지만 침묵하는 공기보다는 바람이 좋다.  나는 그 바람이 마음이었으면 싶다. 결국에 바람을 의미하는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라면 좋고, 공기가 없는 한 바람도 없기 때문에 흘러갈 곳이 없는 바람은 소용이 없듯 내 마음을 흘려보낼 '너'가 없다면 나의 사랑도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공평한 사랑이 있고 사람과 신과의 사이에는 믿음이 있다.  사랑이 공평하다는 것은 이런 말이다.  믿고 배신하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하는 것에 대한 공평함. 그것은 곧 용서와 화해,  끌어안음과 고개숙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도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상처를 주는 사람이 상처도 받기 때문에 공평하다기 보다 상처를 받았음에 위로를 받기 때문에 공평하다는 말이다.  무조건 주고 받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은 그 자체로 너무 선하고 아름다운 선물일 것이다. 나는 그래서 사랑의 마음이 좋다. 공평하기 때문에. 동전 한닢으로도 살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떄문에.  혹은 절대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마음에 들어있다. 사랑은.  등 뒤에 마음이 붙어 있는 한 절대로 볼 수 없다. 가슴 한가운데로 가져오기를 기다려본다. 

정원이와의 짧은 기억은. 
이런 저런 생각을 낳고. 
본의 아니게 흘러왔다. 








벚꽃

작사/곡  yunje

떨어지려 할 때 순간을 담아.
아주 잠깐이지만 그 마음을 담아. 
멀어지려 할 때 그 마음을 잡아. 
아주 잠깐이지만 그 다음은 없어. 

그대로 있어 날 사랑한 채로. 
날 보고 있어.  널 떠날 때까지.
걷다가 보면 늘 마지막으로. 
누군가 내게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줘.






 

박정원이 싸이추방대작전 : 원래는 친구의 못된 행태를 낱낱이 밝혀 온라인(예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발도 못붙이게 할 심                                                           산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구와 나와의 일들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기 위함으로 변질된. 여                                                           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할 이야기 모음집. 



정원이와 꽃놀이를 갔다.
그리고 몇 장의 사진과 함께. 
해묵은 내 몸뚱어리의 곤함도 함께. 
그렇게 돌아왔다. 




< 남원 시내에서 9km 떨어진 곳의 파크모텔 앞 개나리, 자세히 보면 사랑이 보인다. >

 
 왜 꽃이 좋은가 물어보면 그다지 할 말은 없다. 왜 나는 너가 좋은가 물어봐도 그다지 할 말은 없다. 누구는 수백가지를 말할 수야 있겠지마는 나는 그렇지 않다. 좋은 이유야 수만가지지만 싫은 이유야 딱 한가지라 오히려 싫은 이유를 말하기가 더 쉽다.  나는 늘 그래와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 싫음에 대한 선입견보다 좋음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서 그런다 치자. 그것이 좋고 싫고를 떠나서 꽃 앞에서랴. 나는 노오란 색이 좋다. 더구나 노오란 색의 옷도 좋다. 개나리보다는 겨자색이 좋다. 하지만 꽃이다. 꽃 앞에서 나는 너보다 겨자가 더 좋다고 말 할 수야 없지 않은가. 

 우리가 만난 것은 밤. 고즈넉한 찻집. 밤이 늦어 아침을 맞고자 서둘러 차를 탔다. 매번 그랬지만 이번에도 그랬다. 무모한 친구녀석과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녀석 탓에 운전을 해야하는 녀석 탓에 나는 늘 재미와는 먼 길을 간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하는 걱정도 없다. 그럼에도 입은 쉬지 않는다. 혼잣말, 그것이 장시간 운전하는 녀석의 졸음운전 방지법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졸음운전 방지법이기 이전에 애초부터 말 많은 녀석이었음을 아니까. 굳이 끼어들어 함께 간 처자들의 기대를 져버리게 하지는 않았다. 하동과 구례의 경계에 있는 쌍계사는 애초 우리의 목적지였음이 분명하다. 허나, 꽃놀이의 계획이 우리에게만 있을 것은 아니었고 번개로 콩볶듯 계획을 짠 우리에게 숙소는 두 팔 벌려 환영해주지 않았다. 물리적 거리로 한시간 가량을 무려 네시간을 헤매이다 남원 시내에서(원래 계획은 지리산, 그것도 구례쪽과 가까운) 9km 떨어진 외곽 산자락에 자리한 음습한 모텔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간의 과정은 너무 한심하여 스스로 퇴고를 거듭한 점 너그러이 이해해달라. 







< 구례, 화엄사. 심리적으로 '그래!'를 외치게 된 구례의 오래된 절. > 

 
 다음 날의 모습을 담았다. 시간의 순서와는 상관없이 마음이 흐르는 데로 사진도 글도 편집을 했다. 기행문이라고 하는 것이지만 나는 늘 순차적으로 배열하지 못한다. 사건의 앞 뒤는 꼭 마음의 앞 뒤와 연결되지 않았다는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까.  view라고 하는 것. 흔히 사진을 찍을 때라던지 눈으로 보는 경치에 관한 영어로 된 말. 나는 그것의 좋고 나쁨에 관해서도 잘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쉽지 않다. 마음이다. 늘 말해왔지만 또 그 '마음'이다. 실제로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다름은 눈이 아닌 마음에서 오는 것이 맞다. view는 그런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안정적이기 보다는 급하고 뒤엉켜서 늘 마음이 등 쪽에 붙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감추고 싶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여 나는 마음이 저 멀리 있다면 아마도 등 쪽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제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자 유머를 만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가고 있는 '구례'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그리하여 어떤 질문과 어떤 걱정에도 우리는 구례를 대신한 '그래'를 구례식으로 발음하며 매번 깔깔댔다. 이것은 정원이와 나 둘만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불편한 사람과 어쩌면 민망한 사람과 섞여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초특급 울트라..어쩌고 저쩌고.. 하는 개그를 하면서 울고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능한, 사람이 만난 자리에는 이야기가 필요하며 그것이 어떤 목적을 가진 이야기기 보다는 적당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유머가 넘치는 남자, 센스있는 남자는 곧 그런 방향성에 대한 감각이 꽤 서있는 듯한 남자일 것이다. 일과 밥과 잠 밖에 모르는 남자를 만나면 당연히 여자는 피곤할 것이다. 그것도 마음이. 그런 의미에서 정원이는 약간의 센스와 약간의 유머가 넘치는 그런 남자들 중 한 명이다. 꼭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나의 마음이 닫혀 있다고 생각되던 순간>


 채도가 강하지 않은 '듯한' 사물이 좋다. 꾸밈이 없다는 말도 그 한 줄기.  살아오면서 장만한 옷들도 거의 그렇다. 희끄무레하다던지 물이 빠진 색 같다던지 하는 말. 꾸밈이 없다는 말과 꾸미지 않았다는 말은 곱씹어보면 참 다른 말인 듯 하여 나는 꾸밈이 없다는 말이 더 좋다. 그래서 친구가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연인과 친구의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것은 솔직함의 유무. 물론 누구에게는 솔직하고 누구에게는 솔직하지 않단 말은 아니되 이 사람과 나눌 말과 저 사람과 나눌 말을 가린다는 의미이다. 모든 이야기들을 공평하게 나눴다면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줄 수 없었겠지 않을까.  나는 마음이 늘 닫혀있는 사람으로 그래서 친구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한번은.  
 고통받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나는 그 통증을 즐거이 겪고 분연히 일어나 또 걷고. 넘어지더라도 가급적이면 흉터는 아주 잘 보이는 곳으로 하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싸움과는 다르게 나는 홀로 고된 싸움을 붙이고 말리고. 그런 모든 과정들을 저 혼자 간직하고. 목구멍 밖으로 나올 만하면 술로 가라앉히고 혹은 기도로. 그것이 과연 질 좋은 삶의 모양일까 생각도 해본다마는 방도는 늘 다르지 않았다. 친구. 나는 나의 친구가 그런 나의 모습을 먼 곳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니 참으로 좋다.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말보다 그런 나의 모습이 보인다니 더 좋다.  왜 나는 늘 문을 열고 나오지 않을까. 열린 문이 더 보기 좋지 않을까 하여. 나는 문이 닫힌 저놈의 사진을 찍고 한참을 바라보다 '너 마음의 문도 그러지 않느냐!' 하는 생각에 흠칫 놀랬다. 그래서 나는 내내 저 문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는 고민에 사로잡혔다. 안다. 열어본다고 좋을 것 하나 없다.  열기 전에 내 마음부터. 나는 무엇으로 감추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나는 무엇으로부터 감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 돌계단, 나는 너희를 한 켠에 두고 또한 나를 한 켠에 담는다 .>


 뒷짐지지마, 아저씨 같아.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는 어느새 세월을 벗삼아 서로 비슷한 행동을 취하며 걷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네가 아주 어릴 적에 손을 모으는 것을 나는 일찌기 본 적이 없다. 있었다 하더라도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과연 그런 것들이 왜 생각이 났을까. 나는 너의 말을 듣고 들었다. 



너는 일관적이어서 좋다.
친구를 떠나 사람이 일관적이라는 것은 본디 좋은 것일게다. 
욕을 해도 그모양 그꼴로 하고 웃어도 그모양 그꼴로 웃는다. 
내 얘기를 할 때에도 과거의 모습에 비춰 나를 혼구녕 낸다. 
나는 너의 습관적인 태도에 익숙하다.  그럼에 좋다. 
누군들 변하지 않고 살까마는 내게 비친 너는 정말 변하지 않아서 좋다.

나에게 '원래 너는 그랬어' 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좋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온 편지를 읽는 것처럼 달콤하고 끈적해서 좋다. 
나는 늘 좋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싫다고 하여도 네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홀로 담았다. 너는 어떤 그릇에 담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번 홀로 담았다. 
네가 한 말과 네 표정. 말은 하지 않아도 네 마음과 비슷한 사물들을 담았다. 
그것은 어쩌면 사진일지도 모르고 스쳐지나간 어떤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너를 담아온 내 모든 세월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함께. 나는 그것을 믿는다. 
너를 믿는 것이 아니다. 함께.라는 심정을 믿을 뿐이다.  



2000년도에 졸업을 했다. 0이란 숫자의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지만, 좋게 받아들였지. 아마도 우리들 마음속에서도, 0, 0이라고 외쳤었겠지. 년도의 일의 자리수와 우리 나이는 같이가. 절대 잊어버릴 수 없지. 나중에 그게 되려 흠이 될 수도 있을꺼야. 뭐, 연말이 다가오니까. 또 한 살 먹는다고 생각하니까. 그 때 그때 그런 생각했던 생각이 또 생각나. 그렇게 졸업을 하고, 서로의 전공을 찾아 공부를 하러 다들. 떠났다. 학교를 떠나고, 집을 떠나고, 이제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 그렇다고, 마음에서 멀어져 버린건 아니라고, 생각했지. 정원이 코가 더 생각나고, 수훈이 눈썹이 더 생각나고, 그랬지. 과거를 떠올리면 좋겠다. 싶을 때에 꼭 전화를 하거나. 지금 내 마음을 쉽게 이해해주지 못하는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무 힘들어하거나 그럴때면. 주저없이 만나기도 하고, 그랬지.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또 주절주절 대고 들어왔지.


이제 마지막으로 빽수훈이 얘기를 할까 하는데, 재미는 없어. 정원이만큼 재미있는 얘기는 딱히 없는데. 내 생각에는. 재밌게 하면 괜찮겠지 않을까.


 

고2였던가? 고3이었던가? 생각해보니까 비오는 월요일이었어(난 참 기억력도 좋지,,흠) 아침일찍 등교를 해서 한참을 앉아서 멍하니 있는데, 신발장쪽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는거야. 그리고나서 주한이라는 친구가 내게 달려오더니 하는 소리가 빽수훈이 좀 보란다. 그래서 봤지. 봤는데. 이거야 원. 그렇게 일이 없었을까. 주말에 집에서 쉬는 동안. 혼자 자기 머리를 가지고 어떻게하면 멋있을까, 고민한 흔적이 아주 고스란히 보이더란 얘기지. 보통 앞머리는 약간 촉촉한 상태든 그렇지 않든

아주 자연스런 채로 두고 살포시 다듬어야 예쁜데, 어떻게든 그걸 한손으로 부여잡고, 가위로 한움큼 베어낸 거야 그러니 어떻게 되었겠어. 그때, 그 가수 이름이 뭐였더라. NRG의 귀여운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전에 스타 골든벨에도 출연하던, 그 녀석 머리와 완전 똑같이 된거야. 그래도 수훈이 녀석 얼굴이 곱상해서 뭐, 나름 봐줄만했는데. 애들은 어찌나 놀려댔던지, 학교에 모자를 쓰고 올 수도 없고, 보통 등교를 늦게 하는데, 그 날은 버스맨의 명성이 난처했던 모양인지, 꽤나 일찍 등교를 했더라고, 뭐 그랬다고. 아마 그 사건부터였던지. 그 다음 사건이 더 가관이야.

 

매주 월요일마다 우리는 자기 원하는 자리에 앉곤 했는데. 원래 그렇잖아. 한번 앉은 아이와 계속 앉게 되는 그런 습관. 그건 누가 명령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건데. 하루는 어떤 아이가 내 자리에 앉아 있는 거야. 그래서 나도 이제그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반에서 공부잘하는 아이 옆, 가장 첫째줄에 앉게 되었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빽수훈이가 등교를 하고 사건 정황을 확인했던지, 내게로 와서 그럴수가 있느냐고, 뭐. 그러더라고. 이제 우리 공부해야지 하면서, 난 그냥 위로 했는데.

많이 섭섭한 눈치였어. 그냥 나오라고 하면 되는데 뭐하러. 그랬느냐고, 막 따지는데, 그래도 규칙은 규칙이니까. 다음주에 내가 일찍 와서, 자리 앉으면 되지. 하고 말았어. 근데 그게 일주일 이주일 지나도 별로 변함이 없는거야. 물론 나도 공부욕심이 생기더라고, 대학은 가야하지 않겠어.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훈이는 나를 매점을 데려갔어. 2교시가 끝나면 항상 가는 매점에서 딸기우유와 팡야라는 빵을 항상 먹었는데, 그 맛은 절대 잊을 수 없었지. 지금도.여튼. 그 날은 빵먹는 내내 심각했어.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

 

"그 친구,  날 좋아하는 거 같애."

 

친구로써 좋아하는 건 당연한데 뭘 그런거 가지고 그러느냐고, 그랬더니, 그런 게 아니래. 그럼 그런게 아니면, 뭐냐. 동성애 비슷한 거래. 우린 사실 그때까지 그런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없는 일인줄 알았는데, 자기는 그걸 느꼈대나. 난 웃음이 나오는데, 심각한 빽수훈이의 표정을 보고, 참았지. 그친구가 빽수훈이를 사랑한다라...요놈은 여자한테도 모자라서 남자한테도 사랑받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 땐 그게 꽤나 심각한 얘깃거리였어. 그런 심리 있잖아. 누군가를 똑같이 따라하고픈 심리. 그런 느낌을 받고, 나에게 와서 얼른 자리를 바꿔주란 부탁을 하더라고, 흠. 정말 심각했어. 그런데도 난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지. 난 정말 그게 심각하지 않다고 여겼지. 왜 그런지, 난 지금에서야 알겠어.

 

빽수훈이 이자식은 왕자병은 아닌데, 눈치가 아주 빨라. 근데 꼭 그런 눈치여야돼.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한다던지 그렇지 않은 감정이라던지. 그러한 느낌을 굉장히 빨리 알아채. 그런데, 너무 그것에 치중해, 쉽게 단정지어버리지. 그런 습관은 지금도 마찬가지야. 누군가의 마음을 송두리째 읽고 있는 듯한. 그런 말투로 얘기를 자주하는데. 난 그럴때마다, 그게 아니면 하는 생각을 요즘은 하게돼. 예전에는 아마 그런 생각 못하고, 정원이의 말처럼 믿어버렸지 그런 눈치 덕분에 사실 그렇지도 않았던 것을 그렇게 믿어버리고 혼자서 아주 격분한다던지, 좋아한다던지. 그래. 걸음이 빠른것처럼, 그렇게 생각도 빨리빨리 하는 건가. 몰라.

내 생각엔 그래. 그게 사회생활 하면서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일른지는 몰라도,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의 상황이 꼭 있게 되는 법이거든. 그래서 모든 좋은 것의 좋은 것만 바라보던지. 좋은 것의 나쁜 것을 우려하는 습관은 꼭 있어야 한다고 봐. 절대적이란 것은, 오늘처럼의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라고 보는 것보다, 예수님의 탄생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것이지. 맞는 비유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내 생각은 그래. 풋.

 

결과적으로 빽수훈이는 굉장히 사랑받는 인물 중에 하나였음이 분명해. 물론 박정원이와는 다른 근거로 인해. 정원이의 코와 수훈이의 눈썹은. 달라도 너무 다르지. 성탄절, 그렇게 이 친구들과 보냈는데, 내게는 이런 생각할 여유를 제공했던 유익한 시간이었지. 돌아보면 그랬던 일들이,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았던 것들이 꽤 있었어. 물론 당사자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얘기겠지만. 내 좁은 시각으로 그간의 일들을 이렇게 발설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무거우면서도 나에게 또한, 유익한 작업이었구나.하는 생각에 지금 행복해지려고 하는데, 막상 모르겠어. 아, 물론 이 얘기에서 끝내려고 하는 건 아냐. 이 제목으로 앞으로도 여지없이 끌어나갈꺼니까. 그리고, 잠정적인 결론은 이 다음편에서 내릴까 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무조건 박정원이 얘기를 화두로 해.

 

가끔 귀가 간지러울 때가 있는데, 그때엔 이 친구들이 아마 내 얘길 하고 있는 걸꺼야. 지금도 조금 가렵긴 해. 그래도 내 얘기 하고 있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아주 행복한 일이야. 그렇지 않아?





 이 녀석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렇다. 자기는 나 때문에 그렇다고 하나, 인정할 수 없는 사실.세월이 사람을 바꾸는 것은 확실해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이제부터 할 얘기의 제목을 붙이자면 '19번 버스맨' 자, 정독하시라.

 

 앞서 얘기했듯이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유난히도 하얗고 복슬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착해보였는데.행색은 어찌나 깔끔하고 건전하게 보였던지, 오해할 정도로. 헌데, 정원이와 마찬가지로, 그 녀석의 뽀록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날(신세계 백화점 커피숍 사건, 사건이라고 해도 될는지,) 이후 우리 둘은, 가까워졌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는데. 아직 이 녀석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였기 때문에 확실히 구미가 당겼다. 앎에 대한 의지는, 내게 사람 이외의 것은 거의 없다. 확실히 여자는 많았다. 지금 정원이만큼 있었으니까...구체적으로 얘기해보겠다. 


 이 녀석은 혼자서는 무얼 잘 못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그렇긴 하다. 여튼 그런 스타일은 정말 친구들 고생시킨다. 한번은, 아니 여러번 그랬는데, 예전 삐삐가 대세일 때 이 친구도 어디서 돈이 났는지 삐삐 하나를 장만해가지고서는 쉬는 시간마다 공중전화로 달려가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왜 삐삐라곤 구경도 못해본 내가 같이 가야하는 것인지, 하긴 내가 마음이 여리긴 해. 게다가 자기 수첩(예전에 지갑에 들어가는 작은 규모의 수첩이라고 하면 다들 아하~ 할 것이다.)에 담겨있는 수많은 여학생들의 삐삐 번호면 전화번호며 하는 것들을 내게 보여주며 자랑은 왜 하는지. 더구나 왜 자기 삐삐 음성을 내가 들어보아야 하는 것인지. 원. 중요한 건 난, 시키는 대로 다 했다는 거. 더 중요한 건, 지금은 남은 여자며, 번호며 아무것도 없단 사실.

 

 버스맨이란 버스에서 눈에 확 띄는 그런 남자(학생)에게 붙여주는 별명이라는 게 보통의 정석인데, 빽수훈이도, 그랬다. 말 앞뒤가 안맞다고 뭐라하지 말고, 나름대로 기대심리 가지고 장난좀 치고 싶었으니까. 이해해 주시라. 하튼, 19번을 타고다녔으니까. 19번 버스맨, 정원이와 나는 6,9,51번 버스맨. 이 버스맨이란 호칭도 정원이랑 나처럼 다양한 버스를 타고 다니는 녀석들에게는 붙이기 힘들다. 딱 버스 하나만 타고 다녀야 매번 마주칠 수도 있을 것이기도 하니까. 역시, 모든 현상을 파고들면 빈틈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지. 버스맨이라는 별명에 대해 빽수훈이도 나름 자부심이 있었던 모양인지,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즐기는 눈치였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것과 관련해서.ㅋ

 

 고3, 한참 수능에 열올리고 있을 무렵에. D-Day 챙겨주는 것이 수능점수 1점보다 더 중요한 때가 있었다. 물론 친구에게, 뭐네뭐네 하면서 시험잘 보라고, 고마운 날이지만.때로 타 여고에서 택배로 꽃이며, 케잌이며 오는 날은 더 없이 짜증 나는 날이기도 하다. 거기에 목숨 거는 애들 몇도 봤다. 빽수훈이와 내 번호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서인지, 서로 챙겨주면 오고, 가고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다른 친한 친구들과도 교환하면서. 헌데, 언제부턴가 선물의 규모와 루트가 다양해지면서 자신의 디데이가 다가오면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뒷번호 놈하고 비교되면 안되는데, 하면서 슬슬 진땀이 나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마 빽수훈이가 그런 녀석들 중 하나였을 것으로 기억된다. 그랬기 때문에 정말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나는 녀석을 위해 정말 말도 안되는 거짓말로축하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정말, 가지 않아야 할 길을 가고야 말았던 것이다. 사건의 전개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내가 아는 여학생에게 부탁해 평소 수훈이에게 관심있어하는 옆학교의 여학생의 이름과 성향을 파악해서 그 여학생이 보낸 것처럼 해서 깔끔한 글씨의 편지와 정성스럽게 이름까지 파서 준비한 케잌을 배달주문하게 된다. 물론 사건 당일 이전에 그 여학생이 너에게 마음이 있다는 소문아닌 소문을 넌지시 비춰주었고, 모든 알리바이는 다 성립되었다고 아주 좋아했다. 사건 당일, 저녁 시간이 지나 야자시간에 돌입할무렵, 피가 타고 있었다. 난. 저녁밥 시간에 오기로한 선물상자가 오지 않고 있었다. 5분 밖에 안남았는데, 이런 제기랄.그렇게 야자시간이 시작되고, 잠시 뒤에, 복도 중간 쯤에서 시끌벅적 한것이. 아마도, 불길했던 것이었다. 무섭기로 유명한 감독 선생님과 배달원이 티격태격하면서, 내가 주문한 그 상자. 아뿔사.

 

"백수훈이, 나와."

 

 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렇게 뒤지기 쳐맞고. 케잌도 학급 청소도구함에 쳐넣어버리고. 그때, 순간 정말 미안해졌는데. 털어놓으면 절대 안되겠다. 싶었다. 사실대로 얘기하면, 나 정말 그날로 세상 하직할지도 모를 분위기. 그런데, 매를 맞고 자리로 돌아오는 빽수훈이의 얼굴에는 아픈데도 기분좋은 웃음이 한그득, 참. 내가 할말이 없드라. 그렇게 좋나. ㅋ 청소도구함 가서, ㅋㅔ잌 빼와, 편지 읽어. 키킥대. 참. 나. 여튼, 더 이상 참을수가 없어서. 쉬는 시간에 정중히 다가서서. 무릎을 꿇었다. 녀석은 왜 이러는지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가. 갑자기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지더니, 이제서야 알아챈 듯. 귀여운 놈. 그래도, 친구라고 아파도, 뭐라 말도 안하고. 참 그때는 내가 많이 미안해했다.

 

 정원이는 여자를 대놓고 좋아하는 반면. 수훈이는 은근슬쩍 여자를 좋아한다.나? 나는 뭐. 아무도 모르게 작업하는 편이지. 오늘은 여기까지. 너무 길어져 버렸다. 백수훈 편은 또 있다. 하하하.






며칠 쉬었더니 감정이 메말라버렸다. 맺힌 한 같은거. 말이다.

 

제주도 가는 배안에서 빽수훈이는 멀미를 엄청 했었던 것 같다. 안그래도 하얀얼굴, 완전 창백해져가지고는 꼬라지 봐라. 여튼 이 사진은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사진 중, 딱 하나밖에 없는 수훈이와의 사진이다. 정원이와의 사진은 너무 양아치같이 나와서 내가 사장시켰다. 사실 고등학교 들어서는 정원이와 약간은 멀어진 것도 같은 느낌. 너무 오래 붙어다녀선가, 이젠 같이 있어도 별로 흥이 나지도 않고, 그놈의 코에 질려버렸던가. 이제부턴 코에 대한 얘기를 한번, ^^



박정원이의 코에 대해서 사람들은 너무 모르고 있다. 혹부리 영감은 혹에 무한한 얘기를 담아다닌다했지. 박정원이 코안에는 무궁무진한 사연이 담겨있다. 우리 어머니께서 어릴적 부터 정원이가 오는 날이면, 꼭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그다지 친구를 반기시는 분은 아니신데, 정원이만 오면, 그놈의 코만 보고 히죽히죽 웃으시더만, " 쇠떼... ㅋ" 이렇게 한마디만 툭 던지셨다. 난 그 뜻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정작 정원이 자신은 복코라 여기고 애지중지 했었는데, 그 애지중지 여기던 코 때문에 나와 빽수훈를 비롯, 반경 2미터 사정거리 안에 있던 녀석들은 고생좀 했을 것이었다.

 

"팽~"하고 소리가 들리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가는데, 하긴 시간이 지나고 적응이 되고나선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든 재밌는거 보여준다하여, 코푼 화장지를 탁 하고 터뜨려 코안의 구성물들이 흰색 천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광경을 선사한다. 참, 재주도 많은 놈이지. 그런 것도 재주라고, 그리고 나서 코푼 화장지는 당연히 쓰레기 통으로 가야 할 것을, 녀석의 자리 밑에는 말할 것도 없이, 앞뒤좌우의 친구들 자리에까지 그 화장지는 침범하고야 만다. 난 박정원이 자리에 흰색 카펫을 깔아 놓은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면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화장지ㅡ 청소 시간에 반친구 녀석들이 얼마나 애먹었는지, 누군들 손으로 그걸 집고 싶었겠는가. 그때마다, 자신의 코를 가리키며 불쌍한 표정으로 사정을 하던 박정원이의 표정은 상상+?

 


코를 잘 후비기도 하였는데, 후비고 지나간 자리에는 꼭, 흔적이 남는다. 머리좋은 자식이 그걸 책상 밑에다 붙여놓지 않고, 창틀(정원이 자리는 늘 창 쪽이었다.) 밑으로 삐져 나온 시멘트선반 안보이는 아래쪽에 붙여놨던 것이었다. 이건 빽수훈이 기억에서 나온 것으로, 사실 난 가물가물하다. 아마 빽수훈이도 창가 쪽에 앉았었기 때문에 확실한 근거가 될 듯하다. 나도, 빽수훈이도 뭐,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본다던지 그럴만한 것은 전혀 없었는데, 다만. 그 다음 해에 그 반을 차지하게 될 후배놈들 중 그 자리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코를 파서 그 자리에 대충 붙여놓고자 하는 녀석이 말라 비틀어진 자신의 것과 유사한 유물을 발견했을때, 표정이 궁금할 뿐이다. 불쌍한 녀석. 그런 경험도 하고... 쯔쯧.

 

쇠떼, 박정원이는 상황에 대한 순발력이 참 좋다. 말주변이 좋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놈 옆에는 항상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지금도 그 말주변으로 먹고 살고 있지 않은가. 남자든 여자든, 뭐 특히 남 자에게는 말주변이라는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언어에는 분명 확실한 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쓰는 사람에 따라서. 풋. 한번은 정원이를 비롯한 여타의 친구들과 도색잡지를 보고 있었는데, 엄청 무서운 선생님께서 뒷문에 서서(다행히 들어오시지는 않으셨다.) "너희들 모여서 뭐해~!!!" 하고 큰소리로 야단치시는데, 우리의 박정원이 일어나서 하는 말 " 저, 음담패설좀  하고 있었습니다!!!! " 라고 자신있게 말하니, 선생님 어이가 없으신지, 그냥 가버리신다. 음담패설. 과 도색잡지.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뿐인데. 그러고 나서 박정원이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너희들이 무서워서 떨고 있을 때, 나 봐라. 이런 순발력이 어디서 나오겠냐. 니들 음담패설이 뭔지 아냐? "

 

하긴 "야한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하면 정말 웃길 듯. 정원이의 유식한 한 마디 때문에 그렇게 잘(?) 넘어갔지만. 난 아직도, 도색잡지와 음담패설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잘못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선지, 지금도 정원이가 그렇게 살고 있을까봐 걱정이다. 분명, 너나 잘해, 하겠지. 그래. 난 어서 밥먹으러 가야지. 밥먹고 기운내서, 또 하나의 사건을 꾸며봐야지.





고등학교 1학년 우리 셋은 만났다. 와, 사진 너무 적나라하다. 셋 다 용됐다. 정말. 많이도 변했구나 하는 생각. 

오늘은 백수훈이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아마도 오늘 하루 종일 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렇지만 해야지, 아무렴 해야 되겠다. 백수훈이는 겁나게 하얀 애였다. 정원이와 나랑 비교하면, 무슨 사료만 먹고 자란 놈마냥 희고 복슬한 것이, 속눈썹까지 아름답게 재수없는 놈이었다. 녀석은 곧잘 여자얘기를 해댔는데 그래서 정원이가 좋아했다. 지금도 하는 얘기 중 하나는 이거다. 

정원 : " 나의 싸부는 백수훈이야..." 그러면, 

수훈 : " 청출어람이지, 뭐." 한다. 

그럼 난 : " ... "

하긴 나도 백수훈이랑 친구가 된 것이 여자 때문이기는 하다. 
어느 날, 수훈이랑 쇼핑을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날 수훈이는 어떤 여학생과의 미팅 관례로 다른 친구 한놈과 도서관 창문을 넘었다. 나와 그다지 멀지 않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 현장을 목격한 나는, 정말 말도 안나왔다. 그런 면에서 정원이는 수훈이보다 백 배는 낫다. 정말 약속안지키는 애들은. 쩝. 하여튼 그 덕에 난 홀로 아무말도 못하고, 이래저래 학교생활만 줄기차게 열심히 고독하게 하고 있을 무렵, 그 일이 있은지 일 주일이 되는 일요일 오후, 나는 교회에서 노닥노닥 거리고 있는데 뒷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아까 말한 복슬한 놈이 들어오지 않겠는가. 백수훈이었다. 그 때 미팅한 여자아이와 잠깐 사귀었는지, 아니면 그냥 만나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튼 그 여자와의 이별을 맛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래서 뭐할까 난 무지 고민했었는데 수훈이는 나를 신세계 백화점 1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데리고 갔다. 처음으로 가보는 커피숍이었다. 모든 게 처음인 그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내 마음도 그런 의미에서 처음이었다. 그 일 이루로 급격하게 우리는 친해졌다고 해도 뭐. 봐도 된다. 별다른 일없이 지냈으니까. 

잠깐 박정원이 얘기를 소홀히 한 것 같은데, 아마 이때즈음 박정원이는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걸로 기억한다. 앞선 편에서 얘기 했듯, 과외선생님 하나두고, 무지하게 수학문제 하나를 풀어제꼈을 것이다. 단순히. 우리에게 자랑하기 위해. 아, 이런 일도 있었다. 박정원이는 어딜 가서도 이쁨받고 인정받는 아이였기에 고등학교를 와서도 그 현상은 여전했다. 1학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이들 이름을 거의 외우지 못했었는데, 꼭 정원이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호명할 때면 " 박정원이 옆에~!!(나) ", " 박정원이 앞에~!!(수훈) " 이렇게 부르시곤 했다. 역시 박정원이다. 또 한번은 지금 전공하고 있는 것이 생물인 것에 근거하여 생물 과목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생물선생님마저 좋아했다. 생물선생님은 서른 가까운 여선생님이셨는데, 그 선생님도 정원이를 꽤 좋아했던걸로 기억한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숫놈냄새? 여튼 하루는 그 선생님께서 수업시작하자마나 잔소리에, 뭐에, 화까지 내시는 걸 보고 있던 박정원,

" 선생님 그날이십니까..."  했다. 

그 날 박정원이는 참 많이도 맞았다. 옆에서 웃음을 참고 있던 우리도 조금, 아주 조금 맞았지만 정원이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여튼 정원이는 어디서건, 자신의 영역표시는 확실하게 했다. 숫놈냄새, 지극한 그런 놈이었다. 





누군고 하니, 박정원이다. 
각기 다른 학교로 진학을 했는데도,
정원이의 꼬임에 빠져 또, 학원엘 다니게 되었다.
난 사실, 별로 학원 같은 데에 취미가 없었다.
여튼 또 같이 중학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박정원이는 어디서건 이쁨을 받았다. 그것도 아주 깊이.
사진을 봐서도 잘 알잖겠는가.
아마도 저건, 개그맨 임하룡씨가 추던 추억의 춤.
그걸 자신의 것으로 소화를 해내는 데 아주 대단한 재주를 가졌다.
지금 목포대에서 박정원이 이름을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것처럼,
저때에도 학원에서 박정원이 이름을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이유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생각해보면, 그때 한참 유행하는 춤이 H.O.T의 캔디춤이었는데
정원이는 복고를 다시 유행시킬 정도로, 하튼 그랬다.

보통 주말에는 용봉 중학교 운동장에서 농구를 즐겼다.
정원이가 아주 좋아하는 운동이 농구였다는게 이유다.
뭐, 나도 그리 싫어하지는 않았다. 다치기 전까지는.
한번은 정원이 집에서 짬뽕을 시켜먹고 농구를 하러 갔는데
그 날 난 덩크슛 흉내를 낸다고 하여 빈 쓰레기통 거꾸로 세워 놓고
점프를 하다가 팔목 인대가 끊어져버리는 아주 큰 부상을 당했다.
그 때, 정원이는 내 눈빛이 아주 간절하고 간절해서, 죽을 때까지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그날 먹은 짬뽕때문에 체해서 깁스보다 더 큰 시련을 견뎌야 했다.
내가 이번 편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이것과 관련이 깊다. 

그 때 팔목을 다친 이래로 난 정말 자주 부러지곤 했다.

싸우다 부러지고, 길가다 넘어졌을 뿐인데 부러지고,

또 농구하다 부러지고, 수없이 부러지고, 다치고 긁히고,

그런 자국들 투성이다, 내 몸엔 아직도 그런 흉터가 많이 남아있다.

헌데, 정원이는 그렇지 않다. 조심성이 많으니까 그렇겠지 하면서도

그건, 언뜻 봐서 그런다. 정말 자기몸 소중한 것을 너무 티낸다.

 

소주를 못마시는 게 아니다. 안마시는 것이다.

몸에 좋은 것은 무조건 먹는다. 먹고 나서 본다.

먹고 나서 보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건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본인은 자신이 좀체 어려보이지 않아 큰일이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우리 셋 중에 얼굴은 제일 좋다. 왜. 좋은 것만 먹으니까.

나눠먹자. 우리도 좀 건강해진다면 좋겠다. 정말이다.

 

뽀록은 이런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

속을 깊이 들여다봐도 보이지 않는 것은.

제 혼자 뭐든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제발 좀, 같이 좀 먹자.



1994년 졸업을 했다.
각기 다른 학교로 진학을 했지만,
한 동네에서 우린 계속 마주쳤고,
아니, 오히려 마주친 횟수보다
더 많은 만남을 가져왔다.
 
264-5869
아직도 기억에 남는 그녀석의 집 전화번호와 마찬가지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들은 무한하다.
학교가 파하면 전화를 해서든 무작정 집에 찾아가든
이유야 어쨌든 만나서, 함께 있었다.
난, 사실 그녀석이 끓여준 라면이 먹고 싶었다.
국물은 최대한 없이, 가능한 불어터진 면발을
무르익은 배추김치와 함께 입안으로 넣으면, 아. 배고프다.
 
그녀석은 자기가 나보다 항상 키가 크다며 날 비웃곤 했다.
그리고, 내가 녀석 집에 놀러가는 날 대부분은
반쯤 벗어제낀 알몸으로 날 맞으며, 그랬다.
내 팔에 울긋불긋한 핏줄좀 봐.
뭐, 그런 걸 자랑할까 하면서도,
난 그게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사실 난 조금 통통해서, 그런 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한가지, 자신이 새가슴인것을 무척 못마땅해햇다.
그럼에도 난, 내게 없는 그것일지라도, 못내 부러워했다.
 
기타를 가르쳐준댄다.
처음으로 기타를 만져보았다.
녀석은 내게 로망스를 선보였으며,
난 또, 그걸 그렇게나 부러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여전히 녀석은 녹슬지 않은 그 때 그실력 그대로였다는거.
녀석의 형이 드럼을 쳤던 기억에, 드럼도 가르쳐준다고 했던
기억도 있었는데, 그건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사실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그 모든 것들은
뽀록임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뽀록인생 박정원이의 인생사는 이제부터다.
이제 오늘은 잠을 자고, 내일 또 논해봐야겠다.





가장 말이 많았던 5학년 때 이야기를 하겠다. 

이성일, 오세영, 박정원, 성종훈. 이렇게 네 명은 약방의 감초같은 존재들이었다.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들은 무언가를 했는데, 그 무엇이 무엇이었을까. 아주 조숙한 두명과 서서히 조숙해가는 한명, 그리고 나. 나를 제외한 세명은 현 용봉중학교 근처에 위치한 금남학원에를 다녔는데, 난 어머니를 몹시 졸라서 공부핑계를 대고 그들과 함께 하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가 파해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었으니까. 핸트폰 없던 시절엔 그렇게 저렇게 해서 어떻게 해도 만났다. 그렇다면 나보다 조숙한 아이들과 과연 무엇을 했느냐가 관건인데. 예상하는 것처럼 그거다. 그거. 

조숙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조숙한 아니는 미모를 중시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아니는 그 어떤 것보다, 어린 시절에 예뻤으면 다 좋았다. 비교적 조숙한 아이들은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미모를 따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대신 박정원이는 한우물을 팠다. 대단하다 그 나이에 벌써부터 한우물이라는 걸 알다니. 순수해 정말. 

대체적으로 같은 반 여학생들과의 접촉은 순수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던지, 싫어한다던지. 하는 얘기는 재미없었고 우리들이 가장 좋아하는 건 다름아닌 전기놀이. 그것도 부모님 안계시는 여학생 집에 네 명이 놀러가 하는 전기놀이. 물론 그 때에도 짝은 맞췄던 기억이. 누가 뭐래도 남녀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스킨쉽이란 걸. 우리는 게임을 통한 경험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는 사실. 




때때로 정원이 집이 비었었는데, 그럴 때면 순수한 여학생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남자들기리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했다. 찬장 높은 곳에 위치한 양주를 따서 뚜껑에 한잔 두잔 따라마시고, 정원이는 열심히 김치 안주를 날랐다. 난 절대 먹어선 안된다고. 그럼 나쁜 어린이라고. 혼자 속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무너진 건, 다름아닌 에로 비디오. 네 명이서 비디오 두 편을 30여분만에 독파했다. 어찌 보면, 정원이 집에는 없는 게 없었다. 그렇게 정원이는 모든 범죄의 근거지를 제공한 셈이 되었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난 나름의 그 자부심이 부러웠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몇년 전에 영화 '친구'가 개봉 했을 때. 나는 그 친구들 생각이 간절했다. 어쩌면 영화와 같은 이야기를. 우린 서로 밟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정원이와 함께 해도 떫떠름한 기분을 감출 길 없다. 다행히 그 중 한명은 옆에 있지만 기억은 서로 가지고 있는 네개의 파편들로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그런 정원이의 집 또한 내게는 기억의 파편들 중 하나다. 


정원이의 집. 궁금하지 않은가. 
정말 내가 수많은 사람들의 집에 가봤어도 그렇게 내집 처럼 편한 적이 없었고. 
그렇다고 너무 익숙한 우리집 풍경과는 너무도 다른. 무엇이 꼭 있었다. 
익숙한 그 집에는, 양주와 에로비디오. 그 외의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는데. 
일일히 말하기 번거러워 생각날 때 다시 말해두기로 하겠다.























사진첩을 뒤적이다, 현재과 과거를 잇는 사진과 현실은. 정원이 밖에 없구나. 했다. 

어찌보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혹, 과거에 집착할 수 있게도 보이나 그럴만한 과거가 없는 것보다는 무조건 나은 일일 것이다.

 

확실히 변했다. 물론 나도 많이 변했다. 

변하지 않고서 사는 동물이 있을까.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들이 과연 있을까. 

사랑까지도 변하는 마당에, 친구란 더 그렇지 않느냐. 

내 작은 새장속에 가둬둔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속에 내가 갇히고야 말았다. 

그런 꼬락서니 하고는, 나는 혼쭐이 났다. 다행히 그 어떤 이들보다도, 친구로부터 난 혼쭐이 났다.

 

앞서 얘기했듯이 정원이는 파브르 박, 꼭 파브르처럼이 아니라, 

파브르와 같이 연구하고 살고 싶었던, 그의 작은 소망이 엿보이는 웃음가득한 별명. 

자주 산에 다녔다. 꽃이 피는 봄부터, 눈덮인 겨울에까지. 끊임없이 우리집 뒷산을 누볐다. 

난 며칠 전에도 다녀왔다. 그 곳엔 아주 많은 것들이 살고 있다. 

다람쥐도 있으며, 산딸기도, 무시무시한 뱀도, 

무엇보다 그것과 관련한 기억들도 고스란히 살아있다.

 

나는 잘 모르니까, 정원이가 말하면 다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다. 

모든 게 다 그렇다. 내겐. 여튼 정원이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아는 듯 했다. 

뱀보다 구렁이라고 하면 믿었고, 앵두보다 산딸기라고 하면 다 믿었다. 

31사단 사격장하고 가까워 그곳에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정말 혼비백산한 마음까지, 

드러내보이진 않았지만, 모든 정원이의 말을 난 믿었다. 

설령 그게 거짓이라고 해도, 난 믿어서 나쁠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런 이유에서라도 믿었다. 

믿었더니, 정말 정원이는 지금 파브르가 되어있다. 아니, 되어가고 있다. 신기하다. 

그건 지켜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일이다.

 

갑자기 칭찬이냐고 따분해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안다. 모든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글에도 밀고 땡기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내 말을 마지막으로, 이번 편은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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