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써왔다

뜻을 찾아보았더니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사랑이라고 했다

나의 어머니는 나보다 동생에게 마음이 향하는 것으로 설명했으나

정확한 뜻을 이야기하기 보다, 나는 지금 그것을 이렇게 이야기 해보고 싶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살아왔는지 우리 자식들은 모른다. 

아주 오래전에 나는 그것을 갚을 요량으로 부모를 향해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런 나에게 부모는 네가 커온 것으로 받았다, 라는 투의 눈빛으로.

네가 향하는 곳으로 갚음의 대상을 삼으라 말했다. 

특별히는 하나뿐인 동생, 너보다 주리고 목마른 사람을 위해

결국에는 하나뿐일 나의 사랑과, 심지어 내가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을 위해

하지만 나는 그것은 당연하거니와 나는 받은 것과 받을 것에 대해 마음의 계산은 정확히 하고자 했다

나는 그것의 대상이 부모가 첫번째라고 여겼음을 말했다


요즘 들어 부쩍 고민의 흔적들이 많아진 나는

낯선 교회를 찾아 눈인사를 하는 안내위원의 시선을 피해 앉았다

오늘 찾은 낯선 교회의 목사님은 그간의 고민에 대해 이렇게 말해주었다


한마디로 아가페의 사랑은 타인지향적 사랑이며 하나님 의존적 사랑이라고


어느 마을에 추장의 아들이 나이가 결혼할 때에 이르러

관습에 따라 마음에 합한 사람에게 사람의 가치만큼 준비한 예물을 주고 청혼을 했다

보통은 황소 1마리로 부족함 없이 결혼식을 행할 있음에도 추장의 아들은 황소 9마리를 끌고 갔다

마을사람들은 "역시! 추장의 아들이야!" 하며 연신 감탄을 자아냈고 덧붙여 청혼의 대상을 못내 궁금해했다

추장의 아들이 발걸음을 멈춘 집은 펑범하고 평범하고 평범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집의 여인이었고,

모두의 실망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추장의 아들은 결혼을 했고 년뒤 집을 방문한 사람은

몰라볼 정도로 우아하고 기품있으며 아름다워진 추장의 아내를 보고 추장에게 질문을 했다


"어찌하여 때의 볼품없는 아내가 이렇게 아름다워질 있습니까?"


"나는 그 사람의 값어치를 황소 9마리로 생각하였소. 평생 나와 함께 할 사람의 가치는 

그 이상이라도 내가 부담할 수 있다고 여기는 바, 보시오. 이 사람은 지금 그 가치 이상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지 않소."


나의 형편에 맞추어 나의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던 나였다. 

비록 지금의 나는 이렇지만 후일의 나는 더 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그것이 최선이라 믿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나의 상대방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은 초점을 맞추고 살아왔던 게 들통이 났다. 

타인 지향적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긴 했으나, 그뿐이었다.

나는 결코 타인 지향적 사랑을 내보인 적이 없었다. 

내 사랑의 진품인 너를 위해 나는 황소 1마리도 아까워 했다. 


모든 사람은 변하거니와 모든 사랑도 변질된다. 

너와 내가 사랑해서 시작된 삶이 늘 순풍에 돛단 배 처럼 나아갈 지 그 누가 알까. 

내 사랑이 사랑을 낳지 않고 미움과 배신을 낳고 실망을 안겨줄 지 어떻게 알겠는가.

노력이다. 그것은 나의 노력과 너의 노력을 포함해 사랑을 주신 분께 의지하고 구하는 것이다. 

교회를 다니건 다니지 않건 이것은 중요하다. 


하나님 의존적 사랑은 타인 지향적 사랑을 위로하고 지켜준다.

나는 사랑이 마음이라기 보다 마음을 감싼 의지라고 여긴다. 

또한, 그 의지는 나의 감정적 산물이기보다 구해서 얻는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함을 담보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고 있는지 보면 안다. 

내 마음 편하고자 그것이 솔직하여서 좋음의 의미로 던질 때, 

그것이 우리에게 항상 좋음의 결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봐도 안다. 

감정적 산물로 사랑이 소모되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때,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그 보다 더 큰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것. 

또한 그 깨달음이 살면서 자연스레 찾아온다기 보다 나의 의지로 구해 얻는 것. 

공허한 마음 달랠 길 없어 찾은 그 누구와 그 술 한모금과 그 한 자리에 없는 것. 

그것을 우리는 매번 잊고 살아왔던 것. 아니, 우리보다 내가 그래왔던 것. 


이 두가지의 사랑은 결국 나의 부모가 나에게 안긴 사랑에 대한 답이었다. 

오늘 나는 그것이 "내리사랑"의 다른 이름임을 알았다. 

부모가 나에게 준 사랑의 다른 이름으로 너 또한 사랑을 일궈 열매를 맺으란 말이며. 

그 열매가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열매를 열게 할 것을 기대하라는 말일 것이다. 

슬프더라도 절망은 없을 것이고, 아프더라도 죽음은 없을 것이란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아가페의 사랑은 그 누구를 '위하여'라는 이름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그 누구'가 더 크게 자리잡고 있는 나의 마음은 사랑해도 사랑을 몰랐다. 


대상을 물색하고 대상이 중요하며 그때마다 다른 나의 사랑법은.

오늘에서야 결말에 이르러 죽었다. 아니, 죽으려 하지 않아 지금도 노력중이다. 

너를 위하여 네가 얻게 됨을 바라고 네가 잃게 되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서 다행이며

이 모든 것이 다가오는 나와 너의 열매에게 전해져 그것이 어떤 사랑의 씨앗이 되는 것이. 

나와 너의 즐거움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오늘 낯선 목사님의 말씀이. 

결국에 하나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 너무 감사한 나머지. 


물 한잔을 따라,

위하여. 


'이방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no more tears  (0) 2011.12.15
Thanks god  (0) 2011.08.24
평안  (0) 2010.07.21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0) 2010.04.13

반대방향으로 간다. 
목적지로 가는 게 아니라, 떠나온 곳의 반대방향이다. 
정류장을 지나고 길을 건너며 모퉁이를 돌아 가기만 한다. 
다행히, 일정시간이 지나면 '돌아'간다. 
다시, 떠나온 곳을 향해 돌아'온다'.

인간은 삶에서 났으며 죽음으로 '돌아'간다. 
말만 따지고 보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방향을 향해 계속 가는 것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다른 곳을 '향해' 가는 셈이 된다. 

그러나

온다, 온다라는 말을 썼다
인간의 삶 대부분이 반대방향으로 갔다가 회귀한다.
회귀할 곳이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리고, 맞아주실 그 곳의 '님' 혹은 '분'의 관점에서는 온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온다, 온다라는 말을 썼다. 
죽음이 온다.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은 생물학적 나이듦과 병듦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절대알 수 없는 죽음의 시기는 우리가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무턱대고 찾아'온다'.
닥친다, 라는 말이다. 

가는 것을 멈추는 것은 가능하지만, 
오는 것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늘 수동적이다.
 
오늘 나의 오래된 사람의 죽음 또한 수동적이다.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받아들일 수 없다. 받아들이기 힘들다. 라는 것, 또한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11월 24일에 나의 외숙모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후로 쉴새없이 시간이 흘렀다. 
오늘 나는 no more tears라는 도현형의 노래를 듣다. 
죽음이라는 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 때의 마음들을 다시금 꺼내 본다. 

나는 숙모를 보내드리지 않았어도, 
하나님은 받으셨다. 하나님은 다시금 온 곳으로 불러들였다. 
가는 것을 슬프게만 받아들였고, 보낼 수 없다고 여태 멍하니 하늘만 보았다. 
기다리시는 그 곳에서. 나의 숙모를 맞아주셨겠지. 
그 품에서 편히 쉬시겠지. 이제는 눈물없는 곳에서. 



no more tears - 김도현

내겐 소망이 있죠
눈물 같던 나날 견디게 한
오래 전 당신이 약속하신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그 곳
눈물도 슬픔도 없는 아름다운 곳

내 낡고 바랜 슬픈 노래
기억 속에 잊혀진 노래겠죠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내 눈물 닦아주시는 그 품에 편히 쉬겠죠

당신을 본 적 없지만 
당신이 그리워요
오래 전 당신이 약속하신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그 곳
당신의 손잡고 마냥 거닐고 싶어요

그 날이 어서오기를 나 기다리고 있어요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
어서 오소서 이 낮고 천한 땅 위에
눈물 많은 이 곳에 아픔많은 이 곳에





'이방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하여  (0) 2012.02.13
Thanks god  (0) 2011.08.24
평안  (0) 2010.07.21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0) 2010.04.13


어떤 상황이 와도. 노래하리.
들을 수 없는 귀에 말할 수 없는 입에도 불구하고 나는 노래하리.
그것이 생각보다 나음을.

나의 나된 목소리를 통해, 나의 편협한 눈을 통해서라도,
나는 노래하리.
그것이 생각보다 나음을. 

'이방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하여  (0) 2012.02.13
no more tears  (0) 2011.12.15
평안  (0) 2010.07.21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0) 2010.04.13










신의 존재를 믿는다. 신은 지금까지,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계속된나를 

시험하고 계시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밝아진다.

 이 기분, 늘 간직한 채 살고 싶다.  









'이방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하여  (0) 2012.02.13
no more tears  (0) 2011.12.15
Thanks god  (0) 2011.08.24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  (0) 2010.04.13

"사람들은 마치 먹고 마시고, 학교 가고, 취업하고, 
집 사고, 차사고, 시집 장가가려고 태어난 것처럼 삽니다. 
이 일로 염려하고 애쓰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삽니다. "

난 기도하는 중에 
"저는 솔직하게, 당신께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라고 말해버렸다. 

언제까지 이방인으로 살 것인지. 
언제까지 방관하며 살 것인지. 
내가 어떤 것을 잃어야. 
얻는 그 무엇에 늦은 후회를 할지. 

나는 그럼에도. 
이방인으로 여기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끝없는 사랑을 주고 싶다. 


'이방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하여  (0) 2012.02.13
no more tears  (0) 2011.12.15
Thanks god  (0) 2011.08.24
평안  (0) 2010.07.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