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닭, 옥수수 스프

저녁에 무얼 먹일까 고민하다 냉동실에 얼려놓은 옥수수 생각이 나서 닭과 야채를 이용해 스프를 만들어보았다. 옥수수 껍질 까는 데에만 족히 1시간은 걸렸는데 세어보니 스무알 정도. 무모한 아빠 덕분에 은수랑 놀아줄 오후를 홀랑 날려먹었다. 

1. 물 500ml 기준 양파 1/4개, 당근 1/5개, 브로콜리 작은 것 2개, 버섯 큰 걸로 1개를 준비하고 닭은 이유식용 닭 1팩 정도

2. 물이 끓으면 닭을 넣고 10분, 순차적으로 당근, 양파를 넣고 나중에 버섯과 브로콜리를 넣는 게 좋다. 아무래도 식감 때문에, 

3. 닭 육수가 야채를 충분히 적셨다고 생각되면(20분 정도) 우유 반컵과 옥수수 으깬 것을 넣고 졸인다. 

4. 끈적해지면 치즈(아기용 치즈보다는 일반치즈를 넣었다, 소금간을 안했기 때문에)를 넣고 1~2분 정도 저어주면 끝. 



#11 사고 2

계단에서 여자비명과 함께 '쿵' 소리가 났다. 아내가 은수에게 빠빠 엄마 회사다녀올게요, 하고 나간 직후였다. 은수를 뒤로하고 허겁지겁 나가보니 여덟계단은 굴러떨어진 듯, 많이 아파보였다. 일으켜 세워주며 심하게 아픈 데는 없는지 물었다. 그보다, 은수는? 이라고 아내가 재차 물었다. 아니, 은수는 가둬놓았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보다 당신은? 난 괜찮으니까 어서 은수한테 가봐. 옷을 털어주지도 못하고 은수에게 왔다. 엄마가 쿵하고 아야~했어, 걱정하지마 괜찮대 라고 설명아닌 설명은 했지만 종일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부러진 데는 없는 것 같다고 연락이 왔고 내일 되어봐야 안다고 내가 말했다. 그날 밤 냉찜질할 얼음이 없어 냉동블루베리 한뭉치를 수건으로 감싸 한시간 넘게 발목찜질을 했다. 내일 되어봐야 안다니까, 내일 너 못일어날 수도 있어. 



#12 연차

엄마와 함께한 하루, 아빠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엄마랑 재밌게 노는 아이를 보니 나도 즐겁다. 어제 다친 후유증으로 아랫목에 틀어박혀 있는 신세지만 그래도 얼굴보고 있자니 좋은가보다. 밥도 뚝딱, 똥도 듬뿍, 잠도 쿨쿨 그리 좋더냐. 핑구 어린이집에서 자리가 하나 났다고 연락이 왔다. 주위 평가도 좋고 직접 가서 보니 넓고 쾌적한 데다가 아이들의 인상도 좋다. 선뜻 나도 마음에 든다고 말했더니 그럼 3월부터 보내는 걸로 하잔다. 가슴 한켠이 휑하다. 얼마나 아빠랑 같이 있었다고,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습관들에 이제 익숙해졌고 은수도 그런 아빠를 잘 따라줘서 고맙다고 느낄 무렵이었는데 그냥 아쉽기만 하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간다, 하루가 짧다. 오늘은 아홉시 십분에 잠들었다. 부디 좋은 꿈 꾸어라.




#13 호기심

엄마가 자석칠판과 나무책장을 구해(?) 들어왔다. 좁은 집에 놔둘 데가 어디있다고 자꾸만 들고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가 자라는 과정 중에 한번은 스치고 갈 물건이겠지. 하나가 들어오면 하나가 나가야하는데 그 법칙이 아내에게는 없는 모양이다. 어찌됐든 하나씩 들어오는 은수의 물건들이 은수랑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놓아두기보다 적극적으로 공세를 해 은수가 즐거우면 좋겠다. 책을 읽고 싶으면 책을, 쓰레기를 보면 쓰레기통에 직접, 숟가락은 본인이. 이제 스스로 하고 싶은 욕구를 표현한다. 호기심, 이것은 좋은 흐름이다. 나만 조심하면 된다. 아이가 무얼 하려고 들 때에 잠자코 기다려주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부딪히기 직전에, 입에 넣기 직전에, 떨어지기 직전에 구해야하는데 매번 사고가 난 후에 울음을 달래고 약을 발라주며 후회를 한다. 안되는 것이 참많지, 은수야. 아빠도 하면 안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꽤 싫구나. 





<모락 작업실 & 벨레빈에서> 



#14 말다툼2

오늘은 그다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 

오늘은 그냥 생각만 많고. 

아내와 심심찮게 말다툼을 하고 난 뒤면, 

그 와중에 은수는 잠에서 깨 칭얼댄다.

그럴 때마다

듣고 기억할 너에게 몹시 미안한 마음만, 



#15 무릎높이

밥을 차리고 치우고 또 차리고 치우고 이런 반복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아이는 커가는데 밥과 반찬은 그대로다. 소고기, 무우, 호박, 가지, 양배추, 메추리알, 두부, 게란, 시금치, 콩나물, 갈치, 조기, 병어... 이 중에 무얼 잘 먹고 잘 먹지 않는지_ 그것만 보려고 하면 언제 아이랑 놀며, 가르치며, 함께 즐길지. 정해진 방법은 없는 것 같다. 필요한 것을 충족시켜주고 제안할 사항이 떠오르면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을텐데, 하지만 아이를 키울 때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어렵고 하기 싫으며 어른의 눈높이에 맞지 않은 일이 이것이다. 어렵겠지만 아이의 눈높이, 실제로 아이를 볼 때 무릎을 굽히고 그 높이에서 눈을 마주치자. 그것이 아이의 눈을 가장 빛나게 하고 또한 그 빛나는 것을 내가 볼 수 있는 많지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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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유

예전 나 어렸을 때 매일우유 한팩을 한솥 끓이는 중인 된장국에 넣어서, 그렇게 데워서 먹었던 것이 생각났다. 아이가 먹는 우유는 냉장보관이 필요없는 멸균우유라는 것인데 이것도 내가 아빠가 되고나서 알았다. 그 우유에 달린 빨대의 비닐을 뜯고, 넘치지 않게 우유의 양 날개를 펴서 그 중간에 꽂아 아이에게 건넨다. 아, 그 전에 우유곽을 눌러 안에 든 내용물이 온 집안을 더럽히지 않게 플라스틱 용기 안에 우유팩을 넣어서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2 1987

1987 영화를 보았다. 그 때의 청춘들이 지금 쉰을 바라본다. 쉽게 이룬 쉰이 아니었을 게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절 사람들이 보낸 시간은 지금과 같이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10대와 20대에 써보지 않았던 일기를 다시금 쓰게 되었다. 써보려고 노력한다. 지나고보니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서다. 정확히는 흘려보낸 시간을 기억하지 못함에 대해서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해 나는 어떤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지에 대해. 그 모든 일상사들은 매순간마다 단단히 붙잡아두지 않으면 언제 소리도 없이 부서져버릴지 모를 정도로 연약하기 때문이라고 적어둔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아내와 부부관계를 가졌다. 



#3 육아퇴근

복싱을 시작했다. 집에만 있는 것도 답답하고 아이를 돌보려고 하니 체력도 필요했고, 어떤 식으로든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낼 요량으로. 책 <모방범>을 읽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 잠깐씩 읽을 생각이었는데 현실은 책읽을 시간을 벌기위해 반찬 만드는 일을 미루다시피한다. 가급적이면 이야기의 연재가 되지 않는 비소설을 읽어야겠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읽기보다 읽고 싶은 걸 읽겠다. 해야만 하는 것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것을 뒤에 한다. 그럼에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직 육아 시작 전인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4 말다툼

오늘 장볼 것_ 카누라떼, 국거리, 칫솔, 은수가 먹을 고기와 야채등(생협)

오늘 해야할 것들_ 전기세, 아내를 위해 구입한 코트 금액지불


말다툼, 생각의 차이, 기억의 모호함, 핑계의 구차함, 대화의 단절, 온도의 차이, 흐르는지 고여있는지,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 문제라기보다 서로가 각자에 대한 각인이 필요해.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데보다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그리고 당신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는지. 나는 그것에 대한 서로의 차이, 그것에 대한 단절이 아쉽기만 하다. 



#5 뜻밖의 선물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직접 소고기를 먹이는 것보다 밥을 질게 해 소고기 잘게 다진 것을 비벼먹인다. 간지럼을 태우거나 비행기소리를 내주면 은수가 입을 벌리는데 그 순간 밥한숟가락을 밀어넣는다. 세번 중 한번은 뱉어낸다. 일본뇌염 1차접종과 A형 간염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대기하는 중에 남자아이와 딱지치기를 했다. 은수에게 다가와 같이 하자고 말하는 것을 "아직 어려서 이런 건 잘 못해, 아저씨랑 하자" 고 30분 정도 땀흘리고 놀았다. 먼저 온 남자아이가 진료실에 먼저 들어갔고 잠시 후 어마어마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마도 주사를 맞는 듯. 아무것도 모르는 은수는 아직도 내 무릎 아래에서 헤헤 거리며 딱지를 조물락댔다. 엉엉 울면서 진료실 문을 나온 남자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은수 손등에 작은 스티커를 붙여주고 떠났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손톱만한 크기의 애벌레 스티커였다. "은수야~ 먹는 거 아니야!"   



#6 요리는 어렵다

가지찜 - 가지 2개를 8~10분 정도 센 불에서 쪄준다. 국간장(아기간장을 굳이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양으로 조절한다, 시중에 파는 것은 못미더워서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멸치액젓으로 대신했다) 반 스푼, 참기름 반 스푼, 볶은참깨 한 스푼, 다진 마늘 아주 살짝. 손으로 가지를 아주 잘게 찢어서 양념에 고루 섞어준다. 은수가 잘 먹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음식이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먹어주면 좋으련만, 위 아래 네개씩 여덟개의 앞니로 음식을 살짝 물더니 뱉어낸다. 간을 하지 않은 음식을 간을 보다가 원재료 본연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은수 덕분이다,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안먹어! 


버섯두부전 - 버섯은 표고, 새송이, 양송이, 뭐든 상관없이 2개. 브로콜리 1개, 파프리카 1/2개, 계란, 두부는 반모. 재료들은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믹서로 적당히 갈아준다. 물이 돼버리면 곤란하니 적당히, 파프리카와 양파는 물이 생기기 때문에 가능하면 칼로 잘게 다져주는 게 좋다. 두부는 으깨서 천으로 물기를 짜준다. 모든 재료를 섞고 계란으로 반죽해준다. 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 구워준다. 기름이 튀기 때문에 가능하면 기름을 붓고 천이나 키친타올로 닦아내 팬에 기름이 묻어있는 느낌이 좋다. 두부에 물기가 아직 남아서 부칠 때 부서질 경우 부침가루 혹은 밀가루를 두스푼 정도 넣어주면 식감도 살고 맛있다. 아내와 먹을 때는 이렇게 먹었다. 



#7 사고

버섯두부전을 부치다 그만, 기름 한방울이 은수 눈가로 튀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환기를 시키느라 전을 뒤집느라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급한 마음에 찬물로 씻어내리고, 그 언젠가 엄마가 내게 붙여준 감자가 생각나서 그렇게 해보려다 울고 보채는 아이를 안아주느라 다 관두고 약국으로 냅다 뛰었다. 아내는 수화기 너머로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119에 전화를 걸어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고 했다. 빨갛게 부어오른 아이의 눈가를 호호 불어가며 약국에 갔더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약사는 최소한의 응급처치에 대한 조언도 생략한 채 아이를 위해서는 병원부터 찾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약사의 입장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성의가 없는 답변이 아닌가 싶어 다른 약국을 들렀지만 아르바이트 직원인지 약도 구분 못하고 십여분이 흘렀다. 우여곡절 끝에 퇴근한 아내와 만나 부랴부랴 밤 늦게까지 하는 병원엘 찾았다. 은수의 주민번호를 몰라서 한참을 대기하면서 누굴 탓하겠냐 싶었다. 어른이라고 아이의 아픔을 눈으로만 보고 마음으로만 아파할 뿐 손과 발을 바쁘게 움직여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번 기회로 아니, 이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뭔가 각오가 다져지는가 싶다. 내가 살펴야 할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것보다 다른 일보다 우선 해야할 것이 아이의 안전이라고 배웠다. 잘 먹고 잘 크는 것은 그 다음의 일, 무엇보다 아이에게 눈과 귀를 떼어선 안된다. 



#8 돌 지난 아이 유치 관리법 

아이의 치아 수가 정상인지 알려면 개월 수에서 6을 빼면 그 시기의 정상치아 개수라고 한다. 은수는 13개월 이니까 13-6=7 현재는 위 아래로 8개니까 좀 빠르다고 할 수 있다. 이가 날 때 아파하는 아이에 대해, 보통 생후 12~15개월에 나는 첫 어금니와 20~24개월에 나는 두번째 어금니가 가장 아프단다. 이럴 때 차가운 것(얼음 등)과 치아발육기를 물리는 것이 근본적인 효과는 없어도 잠시 통증을 멎게 해준단다. 최근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의사선생님께 물었더니 너무 아파하면 부루펜 시럽이나 타이레놀 시럽을 한 스푼 먹여도 된다고 한다. 그보다 직접 손가락으로 잇몸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좋고 되도록이면 찬바람은 맞지 않게 해주라고 했다. 유치 관리 원칙 첫번째는 젖병을 끊는 것, 두번째는 단 것을 적게 먹이는 것, 세번째는 엄마 아빠와 함께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지금 은수 혼자 치카치카 하는 중이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부모가 직접 해주는 것이 좋다. 



#9 아빠의 식사

내가 밥을 먹을 때 되도록이면 은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은수가 볼 만한 곳을 바라보거나 딴청을 피운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렇게 정신을 '아빠'에게서 돌리는 1~3분여 동안 후루룩,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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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생일, 그 아침에. 

나는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던 탓인지 새벽에 잠에서 깨서

거실 등을 켰다. 아직 세상은 고요하고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 웅웅댔다. 

소곤소곤 잠든 아내의 얼굴을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을 통해 보았다. 

그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참 좋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어제와 다를 오늘이 될 이유는 없었지마는,

새삼 낯설게 여겨지는 것이라면 오늘이 일년 중 하루(만)이기 때문이겠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배즙을 하나 뜯어 컵에 따라붓고 혀로 단맛을 느껴가며

목젖으로 흘려보냈다. 아직도 고요한 탓인지 꿀꺽이는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그것 뿐이었다, 잠시잠깐 어머니의 고통에 대한 회상의 묵념을. 


일곱시가 되자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는 아내의 모습을 

침대에 누워 바라보았다_여섯시 즈음 조용히 다시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고 있었다_

갈치를 굽는 냄새가 났고, 미역국에 넣을 소고기를 미처 사놓지 못해 탄식하던 어젯밤 

아내가 생각나 피식 웃었다. 괜찮다했으니, 괜찮을 것이다. 아내도 나도, 

방금 아버지한테 축하전화를 받았다. 미역국은 먹었니? 라는 물음에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맛있든? 그래서 예전에 드셔보지 않았습니까? 하하 했다. 


아내가 안방으로 가더니 이내 책을 한권 들고 나온다. 

내가 그 동안 페이스북에 올린 1년여의 흔적을 책으로 만들어 선물이라고 주었다. 

나는 그 때 그것을 잠시잠깐 훑어보았고, 지금은 자리를 깔고 천천히 읽는다. 

과연, 아내는 내게 그 동안 시간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와 내가 함께 한 기록과 사진, 그리고 순간의 마음들이 오늘에 와 닿는다. 

그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려는 듯이, 앞으로도 같이 순간을 나누자는 말이. 

지금 곁에 와 있다. 





일하는 재미와 사는 재미가 같아서

나의 경우에는 그래서, 음악 외의 것들을 조금은 소홀한 면이 없지 않다. 

곧 성탄절인데, 함께 트리를 꾸미고 기분을 만끽하면 좋겠다는 아내의 제안에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다. 

사는 재미가 일하는 재미에게 말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재미로 사는 재미를 대신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나와 내 가정과 주위 사람들과의 순간들을 

구차하게 읽어보아야 하고, 발을 담가보아야 한다. 

춥다고 장갑을 낄 것이 아니라 주머니에 깊숙히 손을 찔러넣고 걸을 것이 아니라, 

손을 빼고 손을 잡고 웅크린 채 있는 나와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고양이 두마리가 보일러를 대신해 집안을 훈훈하게 만든다. 

그 체온과 함께 추운 겨울을 보낸다는 것이 놀랍도록 감사하다. 

우리에게 아직 아이는 없다. 그 체온이 하나 더 늘어나면 좋을 일이지만, 

불행히 아직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_과거의 일은 잘 되지 않았다. 

언젠가 그 체온이 우리에게 안전하게 온다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다섯이 혹은 여섯이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따뜻한. 

겨울과 사계절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어서, 무엇을 해야지 싶을 때. 

아니, 네 이야기를 듣고 네 생각을 하고

우리, 사는 재미에 폭 빠져 일하는 것을 뒤로하고

그냥, 크리스마스 트리나 종일 만들어 

보자, 보자. 



그리고 이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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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간 집을 비운 사이
맑게 갠 하늘을 향해
몇 개가 또 꽃을 피웠다. 

내가 바라는 시간 이외로
시간이 바라는 시간도 흘러가
'바야흐로' 라는 말이 새삼, 

'잠잠히'
분위기나 활동 따위가 소란하지 않고 조용히 라는 뜻의 이름을 
곰곰히 생각하다 아침에 그랬다. 

"잠잠이로 할까?"

그랬으면 좋겠어서 
모든 상황들 속에서 잠잠히 
시간을 달래는 아이가 된다면, 

그랬으면 좋겠어서 
내가 아닌 시간이 키우는 꽃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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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 남자와 여자는 평등하니, 서로를 위하고, 도우며 살아간다. 


작년 결혼예비학교를 통해 알게 된 결혼과 혼인의 차이는 '서로'에 대한 문제였다. 

그 말이 그말이지 않느냐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말의 차이가 아니라 생각의 차이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시간동안에 자주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혼인을 하기로 했다.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거울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사랑으로 밥을 짓거나 사랑으로 청소하는 일을 까맣게 잊고 살 때면, 

언젠가 그럴 때가 온다니, 우리는 서로 거울이 되기로 약속했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해서 각자가 행복한 것이 아니니, 

먼저는 너와 내가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되자. 

넘치는 것보다 부족한 것에 민감하여 늘 미간을 찌푸리더라도, 

이웃에게 꾸어주는 사람이 되자. 가끔은, 기분이다 싶게 줘버리자. 

열가지를 나눌 때에 공평하게 다섯개씩 나누자고 해도, 

늘 마음속으로는 네개만 바라자. 네개만 가져도 좋다고 하자.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우리에 대한 바램이나, 

너의 우리에 대한 바램 또한 서로 위하고 살아가자.   


우리는 혼인식을 올리기로 했다. 

나는 밥도 짓고 음악도 짓고 학생들과 좋을 시간을 지어보겠다고, 

너는 밥도 짓고 사진도 짓고 고양이와 좋을 시간을 지어보겠다고, 

결국에 영원한 것이 없는 이 땅에 작은 집을 지어보겠다고, 

잠시동안 쉴 만한 우리들의 평안한 집을. 


함께 산다는 것이, 

손내밀면 닿는 곳에. 때로 멀리 있다고 해도, 

마음 닿을 곳이면 그 곳이 집이라고 해서, 

너와 내가 만난 것이 아닌가. 

너와 내가 만난 그 곳이 집이 아닌가. 

생각해보는 오늘 밤, 


시작을 같이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지금. 

우리가 서로 생을 다할 때에, 그것 또한 당연하게 여길 수 있을까. 하는

헝클어진 생각을 나는 지금 버릴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혼인식을 올리기로 했다. 

혼인에 대한 준비는 늘 감사하는 마음에 있다고, 했다. 

하나님께, 부모님께, 이 모든 것을 허락한 것들에게. 

인사를 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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