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녹음 중이다. 

정확히 노래다, 기타 연주도 아니고 믹싱도 아니고 노래를 녹음 중이다. 

오래전 써놓은 '고스트 댄스'라는 노래를 다시 불러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억으로 이뤄진 바람이 다시 불어오고 있다. 


2008년 다니던 대학교의 수업 시간에 발표할 과제가 영화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같은 팀의 형이 15분짜리 독립영화의 마지막 엔딩을 위한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했다. 

영화의 내용인 즉, 후천성 면역결핍증으로 삶의 의미를 잃고 떠돌아 다니는 젊은 청년이, 하루는 

병원 대합실 의자에서 밤을 보내다 다른 시한부 인생의 여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어 밤새 대화를 나눈다는 것. 

대화의 주된 내용은 사랑을 해봤느냐, 그래서 키스는 해봤느냐, 

결국 남자는 자신이 후천성 면역결핍증이라는 것을 숨기고

처음 본 여자와 키스를 하게 된다는 설정의 짧은 극이었다. 

병원을 나와 마주한 도시의 새벽이 너무나도 낯설다. 

메말라 있던 가슴 한 구석에서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다. 

기분을 만끽하며 걷는다. 미안하다, 괜찮다, 나는 오늘만 살 뿐이다. 




고스트 댄스,

 

미국 원주민 즉 인디언들의 종족 전멸의 위기에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종교운동.

며칠 동안 계속해서 춤을 추면 죽은 조상들을 만나게 되며,

그 조상의 영들이 천재지면을 예고하고, 때로는 백인들의 횡포를 막는,

그래서 결국 인디언들만의 평온한 세상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의식.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영화의 줄거리에 담은 마음을 표현하기에 나는 좀 동기부여가 필요했었다. 

함께 작업한 형이 '고스트 댄스' 라는 말을 가져왔다. 

불현듯 그 때 고향에 있는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그리고 잠시 그 때가 생각이 났다. 

20여년 전 외갓집에서 여수로 이사를 가던 날, 

할머니와 엄마의 눈시울은 붉었다. 

영영 못 볼 사이가 아닌데도 엄마와 엄마의 엄마는 서로, 

손들 잡거나 뒤돌아서거나 하늘을 보거나 했다. 

그 헤어지던 날에 나는 이유모를 감정이입으로, 

도시로 간다는 설레임을 감춰야만 했고. 

그녀들이 왜 슬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내야 했다. 

웃으며 인사를 해야 하는 그들이었지만 감추기 힘든 감정이었을 테지. 

문득 할머니의 어깨가 들썩이는 모습이 춤사위 같아 보였다. 

애써 "잘 살께..." 라고 인사를 하는 엄마의 모습이 '사랑해' 라고 말하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그 둘은 결국 아무런 말도 표현도 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을 실은 차는 뒤돌아 보고 손 흔들 충분한 시간을 줄 만큼 천천히 달렸지만

엄마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할머니의 어깨는 점점 더 들썩였다.


영화에 대한 감정이입 중의 하나는 내 안에서 뭔가가 생각나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내 유년시절에 할머니와 엄마가 헤어지는 날, 그 때였다. 

생각은 꼬리를 물어 나를 그 때로 데려갔고 나는 그 때의 바람을 맞았다. 

고스트 댄스라는 말이 어떤 연유로 만들어졌는가 보다 내게 그런 생각이 났다는 것에 집중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작은 어깨와 엄마의 속눈물이 내 안에서 꽃향기처럼 번져나갔다. 


노래는 어렵다.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 

그럼에도 나의 기억을 부른다는 것에 참 좋다. 






원곡의 느낌과 같이 불렀지만 이제부터 작업할 '고스트 댄스'는 좀 더 밝은 노래가 되야 하겠기에. 

악기의 쓰임과 섞임, 노래의 편곡에 신중해야지. 진행상황을 꼼꼼히 신경써야겠다. 

다음 편에 편곡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요즘엔 작곡보다 편곡이 더 각광받는 것 같기도 하다. 


요컨대, 


첫번째 프로젝트 중 하나, 

노래 <고스트 댄스>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일곱개의 방 Projec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번째 방 - 解氷[해:빙]  (0) 2013.03.05
다음에 우리  (0) 2013.03.04
이사하는 날  (0) 2013.01.29
무얼 먹을까 무얼 입을까의 고민  (0) 2012.12.13
홈레코딩의.  (0) 2012.12.05





고스트 댄스,

 

미국 원주민 즉 인디언들의 종족 전멸의 위기에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종교운동.

며칠 동안 계속해서 춤을 추면 죽은 조상들을 만나게 되며,

그 조상의 영들이 천재지면을 예고하고, 때로는 백인들의 횡포를 막는,

그래서 결국 인디언들만의 평온한 세상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의식.

 

그런 의미를 뒤로한채,

사실 나는 우리 할머니가 떠올랐다.

평생을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허리 한번 펴지 못하신,

그래서 지금은 눈물로 과거를 지워버리신.

할머니의 눈부시도록 슬픈 춤사위가 불현듯 생각났다.

작년, 손형과 나와 다른 종훈이와 함께 새벽시장을 돌며

진한 할머니의 냄새를 맡았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세상에 나올 때까지

할머니께서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고스트 댄스

 

춤을 춰 춤을 춰 난 비틀비틀 유령처럼

춤을 춰 춤을 춰 난 비틀비틀 유령처럼 춤을,

 

난 부르튼 발로 힘겹게 춤 추며 울기도

난 부르튼 발로 힘겹게 춤 추며 웃기도

다시 뒤돌아볼까봐 사랑한다고 말해버릴지도 몰라

다시 뒤돌아볼까봐 사랑한다고 말해버릴지.

 

휘~






'음악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은 어디로 -이적-  (1) 2010.10.12
외갓집, 나의 동화의 씨앗  (0) 2010.09.09
island286 in Club Auteur  (2) 2010.07.21
그 해 여름 날  (7) 2010.07.07
새가 날아갈 때, 문득.  (0) 2010.06.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