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으면 

기대가 생겨나고 기대가 생겨난 만큼

실망도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실망할 일들이 고작 기대에 기댄 것들이라면

그 이외에 살아있는 것들은 무어냐. 

나와 너를 이루고 있는 것에는, 그리고 그 사이에는 

설명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 


동물원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가?"

아내와 정화는 어드덧 자기들끼리 약속한 것이 있는것 마냥 눈웃음을 치고 있는 중이다. 

"국수 먹으러" 콧소리에 흥이 실려 있었다. 

아, 아침상으로 정화가 정성껏 지은 '집밥'을 먹었다. 그런 것에서라면 개구리반찬이어도 좋다. 


대룡마을, 덧붙여 예술인 마을이라고 하는 부산 변두리 기장군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했다. 

공작소면, 언덕의 안쪽 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세모난 집이 정면으로 서 있었다. 

"우와, 여름엔 무지 덥겠는데?"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한다 나는. 

무인카페, 3000원을 현금박스에 넣고 에스프레소를 한잔 내려마시고 컵까지 씻어놓아야 한다. 

아늑한 실내 한켠에서는 누군가 화로에 고구마를 굽고 있고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의 쪽지가 따땃하다. 






오늘 볕은 올들어_그래봤자 3일밖에지만_ 가장 좋았다. 

봄은 아직 멀었지만 잠깐이나마 따뜻한 공기가 얼어붙은 코를 녹여주었던 듯 했고 

후후 불어먹는 우동처럼이 아니라 미지근하게 맛을 음미해볼 수 있어서 

볕과 온도 이외로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시간에 감사했다. 

그리고 휘철이가 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낯선 곳을 다니는 것이 좋은가. 

여행이라는 것이 자신의 낯섦을 일깨워주는 것이라면 

나는 과감히 말하겠다. 


옛사람과 기억의 흔적을 나누고 변하여 온 우리를 이야기하고

혹은 즐거워하고 혹은 반성하며 흐르는 우리의 시간에

무엇보다 귀한 생명이 있음을. 


좋은 사람을 소개하는 일은 앞으로 우리의 삶에

기꺼이 필요한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우리에게는 좋은 집이, 좋은 차가, 좋은 일자리보다

좋은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값지다는 것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서둘러' 느낄 필요가 있다. 

 






인류에게 종말이 있다면_있다고 믿는다_그것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때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연재해로 인한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마음의 종말이라는 뜻이다. 요사이,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겉으로 드러난 마음은 곧잘 오해라는 이름으로 옷을 바꿔 입는다. 그렇지만 오해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해란 것은 눈이 녹듯, 비가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지듯 그렇게 옷을 바꿔입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해가 풀리는 '봄'을 좋아한다. 지난 일들을 가만히 내려 놓아도 좋은, 

다툼과 오해가 상처를 줄 지언정 결코 종말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진의, 진리가 내게 남는다면 말이다. 

오해의 역사물이라고 해도 좋다. 올해 내가 실천해야하고 하고 싶은 노래의 결과물이, 


<지금까지 지내온 (오해의) 것>

 

앞서 말한 마음에 대해 '서둘러' 알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지금 말한 결과에 대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내게 '너무 늦은 서른 다섯'이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이제 겨우 서른 다섯'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2009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폰과 셀카봉

2009년과 같은 점이 있다면

함께 있는 친구와 그 이름






오늘을 구성하는 많은 순간들 중에 나는 콕 찝어 회상하는 순간이 좋다고 말한다. 

흔히들 데자뷰라고 하는 것이 그것과 가깝다. 지는 해의 빛이 갑자기 나의 마음의 빛과 닿아서 벌어지는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될 때에 그 순간을 잡아두고 싶어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댄다. 

역광 사진을 좋아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빛을 잡아두고 싶어서, 인물과 배경의 색은 안중에도 없고

색이라 말하기 힘든 해의 빛을 담아놓으면 거기서 기억을 찾아 끄집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그 만큼의 빛이 곱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응시하고 나란히 걷고 하는 중에 

늘 빛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게 사진을 찍는다. 아직까지 나는 표정보다 형태를 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예쁜 표정보다 엉뚱함을 좋아한다. 


그녀의 정말 아름다운 모습은 아마, 나만 보았을 것이다. 

그녀에게도 나의 아름다운 모습이 남아있겠지, 

우리에게는 기억의 모습이 서로 다른 채로 남아있어서, 

그래서 즐겁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얼마 전 교습생 중 한명이 해산물을 잘 못먹고 탈이 났단다,

나도 어릴 때 조개를 잘 못먹어서 크게 고생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누가 이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리. 

나는 멍게, 너는 해삼, 그리고 너는 개불. 

이른 저녁 쌉싸름하게,  







해가 저만큼 졌을 때 누군가 그랬다. 

연애를 하면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어디를 가면 좋을까, 둘이서 하면 좋은 게 뭐가 있지?

"동물원엘 가" 라고 선뜻 말했다. 마치 준비한 것처럼, 그리고선 나도 깨달았다. 맞아, 동물원처럼 좋은 게 없어. 


평일 낮이라 사람이 드문 동물원엘 가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다. 


같이 걸을 수 있는 길,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벤치, 준비한 도시락을 펼칠만한 그늘진 구석, 너를 위한 커피도 팔고 나를 위한 오징어도 팔고, 무엇보다 서로의 취향과 마음을 엿볼 수 있게 우리가 보는 생명들. 그리고 생각들, 느낌들. 서로를 응시하지 않아도 되고 함께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곳을 볼 수도 있게 되나, 그럴 때마다 서로를 이끌어 자연스럽게 손도 잡고, 소나기가 내린다면 겉옷을 벗어 함께 쓸 수도 있지. 모텔이 아닌 곳에서 서로에게 기대 잠시 쉰다는 것처럼 좋은 기회도 생긴다_이건 말이 좀 웃기지만 그래도 이렇게 쓴다. 커피숍도, 영화도 좋고 미술관과 근교 드라이브도 좋지만 가능한 큰 데로 가 하늘 아래서 노는 것이 좋다고 생각이 들었다. 만끽, 이라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지 모르겠다. 연애를 하는 데 있어서, 물론 소중한 누군가와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나는 동물원에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을 하게 된 것이다. 


동물원에 가는 것처럼, 홀가분하게 

우리가 볼 것과 나눌 것들에 대해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것들에게도.

나란히, 우리를 맞아줘.  

 






휘철이에 대해 이제야 쓴다. 

군복무 시절 선임병, 그보다 시간이 지나 좋은 친구. 

내 사투리를 즐겁게 받아주고 내 마음의 진한 부분을 보아준 사람. 

한달음에 달려와 하루를 함께 보내고 알려지지 않은 그 동안의 소식보다 그냥, 그대로의 안부를. 얼굴을, 

뒤늦게 달려온 지훈이에 대해서도 쓴다. 

결혼식 축의를 못해서 늘 미안한 마음으로 살았다며 두툼한 봉투 하나를 건네주며, 

부산에 와서 같이 살자며 휘철이랑 나를 꼬시는. 언제나 활달하고 긍정적이어 군생활에 위로가 되었던, 

이 둘 친구들을 안보고 갔으면 섭섭할 뻔 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에게 기회_짧은순간_가 찾아왔을 때에. 

그것을 얕은 여유때문에 거절하지 않고 서로를 생각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을 위해 행복을 빌어준다면. 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서, 

이대로 누군가와 함께 노닐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좋겠다, 만족하겠다. 

그리고 늘 감사하며 살 수 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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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때도 잠잠했던 글쓰기를 이제 또 시작해본다. 

그만큼 이제는 좀 여유가 생긴것인지, 아니면 무슨 할 말이 있어서인지. 

기억해보고 써나가다 보면 뭔가 내게도 남음이 있겠지. 


제목을 정하기란 글쓰기에서 중요하다. 

나의 경우엔 제목이 글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덕목이라서, 

그리고 어떻게 생각해야 좋은 것인지 알려주는 것이 제목이라서, 그렇다. 

간혹 글을 쓰고 나서 제목을 정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썼던 글을 지우고 다시 써나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 하겠다. 





2015년이 밝고 일주일 전에 예정을 했던 부산으로 가능한 가벼운 짐을 챙겼다. 

나는 아내가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기에 중간중간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에 대해 

입을 다물고 모른 척을 했다. 거의 대부분 아내의 사진은 내게 많은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었다. 

KTX 매거진을 펼치고 증도에 관한 기사를 읽던 중에 내가 말했다. 

"예전엔 몰랐는데 여기 쓴 이 글은 아주 감성적으로 잘 썼네, 원래 이 매거진이 정보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 있는 쪽을 힐끔 보더니 힐끗 웃으며 "그래." 하고 아주 짧게 대꾸를 했다. 

아마 그 즈음 이었을 것이다. 그 기사의 중간부분에 이렇게 적혀 있던 걸 보았다. 

"모든 흐르는 것에는 생명이 있다"





무엇을 보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매번 아내를 비롯한 누구와 여행을 떠나기 전에 나누는 그런 계획들, 

그런 것들이 내게는 의미심장하지 않다. 다만, 

누구를 만나게 될 것인지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인지. 

그런 것들이 내게는 시간이 지나고 나면 꼭 '좋은 것'이 되었다. 

잠깐, 제목을 짓게 된 것에는 이런 이런 배경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잠시 뒤 우리가 부산에 도착했을 때 말쑥이를 타고 온 정화를 만날 수 있었다. 

말쑥이는 말리부의 여성형 이름이라고 했다. 







정화를 소개하려면 시간은 2009년 겨울로 돌아가야 한다. 

나와 아내가 처음으로 여행을 떠난 그 때, 필자는 그 여행의 제목을 "서른에게 보내는 편지" 라고 했다.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을 아내와 친구인 채로 보냈던 그 때에 처음으로 정화를 보았다. 

원래 나의 친구였지만 이제는 아내의 친구로 더 가깝게 지낸다. 나는 그것이 내게 더 좋은 일이 되었다고 여긴다. 

순이네담벼락 2집의 마지막 수록곡인 <서른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문장을 써서 내게 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친구였던 아내를 지금의 아내로 삼을 수 있게 해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것보다 매번 쪽머리를 하고 늘 저렇게 웃으며 늘 했던 말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2009. 12. 29. 15:34

 

기차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기차를 놓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때론 더 가치있는 선택이 될 수 있겠지.


그렇게 쓰여있다, 내 편지에는 그렇게. 

그렇게 6년여가 지났고 지금 나는 그 선택에 대해 만족하며 삶을 살고 있다. 

그 때 갔던 장소와 흔적을 찾기를 바랬지만 이번 여행에 대해 나는 내 안으로만 속수무책했다. 

아내는 동물원을 좋아한다.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TV를 켜고 동물농장을 본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동물다큐를 좋아해 나를 유혹해 자기 옆에 앉게 한다. 

나 또한 동물의 세계를 줄곧 시청했었다. 구체적으로는 큰 동물이 작은 동물을 잡아먹는 광경을 보기 좋아했다. 

그렇든 말든 동물과 동물원이, 동물다큐가 내게 준 것은 그 친구를 살펴보고 이해하고 존경하는 마음이었다. 

지금 우리는 동물과 동물원과, 동물다큐와 상관없이 부산의 어느 작은 마을에 있지만 말이다. 

사랑하는 것을 제일 첫번째 목표로 했던 지난 날과는 별개로 살아가는 것을 제일 첫번째 목표로 하는 오늘 날, 

그 오늘이 있기까지 나는 아내와 동물원에 갔던 그 어느 날이 갑자기 생각이 났고. 

그 어느날에게 참 많은 감사를 했던 오늘 날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이 흥행돌풍이라고 한 말을 들어본 일이 없지만, 

나는 그 국제시장이 여기 부산의 그 국제시장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부산에 사는 정화도 우리도 그런 것은 뒤로 한 채 아내가 검색한 트리축제와 씨앗호떡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나는 어서빨리 어둑어둑해지길 기다렸다. 

말쑥이를 주차해두고 두터운 옷을 벗어놓고 맛있지 않아도 도란도란, 서둘러 어느 곳을 가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야기 전에 흠뻑 취하고 싶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커피도 마셨고 씨앗호떡도 먹고 충무김밥과 비빔국수도 순차적으로 먹어왔기 때문이다. 





술을 마시기 전날과 그 이튿날은 확연히 다르다. 

'풀어놓는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그것은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과 달리

단추가, 나사가 풀어진다는 의미로 풀어놓는다의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풀어진 채로 아니, 나만 풀어진 채로 첫째밤을 보냈다. 

나는 사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묻어둔 채로 서로의 이야기에 귀기울였다. 

풀어졌다 보니 그 이틑날 채워야 할 단추가 많았지만 말이다. 

그 시간만큼은 내가 늘 이야기하는 기억이 아니라 기억이 나지 않는 기억이다. 

나는 모르는 그 기억을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고, 

차라리 그것이 더 기억답다고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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