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습생이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더 많은 노래를 듣게 된다. 

나의 취향과는 별개로 그렇게 듣고 연주를 하다보면, 

새록새록 뭔가 느껴지는 게 있다. 나로서는 좋은 일, 


오늘 합주해본 이소라의 Track 9 또한 그런 노래인 것 같다. 

그리고 여지껏 불러본 노래 중에 이소라의 노래가 가장 어렵다. 

노래의 구성이 어렵다기보다 노래를 부르기가 그렇다는 말인데, 

본의 아니게 기타교습보다는 노래교습을 하게 되었다. 


"노래는 부를 때나 연주할 때나 기분이 좋아야 한다."


그것이 내 노래부르는 조건이다. 

감정 이외로 내가 빠져서 헤엄치는 물의 조건과 마음의 상태가 중요하다. 

듣기 싫은 소리가 나고, 도달하지 못하는 고음이 와도 상관없이. 

그저 마음에 흡족하게 부르고 나면 그것으로 나의 음악적 역사는 쌓인다. 


'풀었네'

라는 표현은 너무 좋다. 

남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좋기는 오랜만이다. 




Track 9 (정유정 Cover)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화나게 하고
당연한 고독 속에서 살게 해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게 태어났고
태어난 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혀지겠지
존재하는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Hey you, don't forget 고독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살아가
매일 독하게 부족하게 만들어 널 다그쳐 흘러가

이 하늘 거쳐 지나가는 날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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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보이는 친구라기 보다, 

음악의 앞뒤 사정을 알고 싶어하는 친구라서. 

며칠 전 그런 부탁을 했다. 


곡의 코드를 한번 따 볼래요? 


그런 건 전문가가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하죠, 전문가는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늘 하고 있는 사람이란 것이니까, 정선씨도 늘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대신, key에 맞춰서 정확하게 코드네임을 따서 악보에 적어오는 게 아니라

이 곡이 어느 길을 무슨 걸음으로 가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이야기에요. 


어렵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세요. 


피아노도 칠 줄 알고 코드도 어느 정도 읽을 줄 아는지라 부탁하는 겁니다. 

곡의 처음과 끝을 한 번에 듣고 머리속에 그려요, 그래도 안 그려지면 몇 번이고 더 들어요. 

그리고 시작을 적어요, 그리고 내가 얘기한 다이어토닉을 써 놓은 상태에서 골라요. 

대신 어느 부분이 잘 들리지 않거나 한다고 해서 그 부분만 듣는 건 안돼요, 

처음부터 들어야 해요. 막히는 길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목적지와는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요. 

다시 처음부터 또박또박 걸어가야해요, 몇 번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중까지 가세요. 

그러면 익숙해진 길이니 옆에 고양이도 보이고 꽃도 보이고 그렇게 되요, 주변을 보게 되지요.  

막히는 길은 돌아가세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의 익숙함을 코드로 풀어보고 그 느낌을 되새기세요. 


동영상을 봐도 되고 악보를 다운받아 봐도 되는 일이지만, 

걷는 길의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다. 

누구나 지금까지 내가 알려준 방법을 제대로 해온 친구는 없었다, 

정선씨는 그런 의미에서 특별하게 나의 부탁을 다소곳하게 들어주었다. 


이소라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의 연주를 보니

악보나 동영상의 도움을 받았겠거니 생각이 들어

그렇게 부탁을 했다. 지금 보는 동영상이 앞선 얘기한 그런 방법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이 동영상 때문에 내가, 그에게 그런 부탁을 한 것이 되었다. 


혼자서도 잘 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었고, 

그것보다 혼자 만족해도 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해도 된다, 고 말해주고 싶은 거였다. 


결국에 정선씨가 노래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근래에 내가 본 몇 번의 공연보다 더 좋은 공연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좋은 목소리를 만났다. 눈 앞에서, 

그걸로 되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_ 김정선>





나는 가수다. 
물론 당신들은 가수입니다.  
그렇게 선언하기까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대에서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의 관계를 피력하기 위해.
이 땅의 모든 시청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애초에 그럴 것이었다면 지대한 영향력의 뮤지션이나 평론가들을
심의의원으로 두고 했을 지 모르지요. 물론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기 위한.
어느정도의 방송성(?)을 준비코자 그런 이들의 말들을 끼워 넣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나는 가수도 시청자도 제작자도. 시간에 앞서 가서 모든 것들을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데.
무분별한 마음을 쏟아 부었다는 것을 보고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이제는 그러한 것들이 잠잠해 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정도는.
제작자가 어떤 의도였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시간 시간. 순간 순간. 
같은 마음의 다른 표현들로 서로에게 다가와 주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작자의 의도라는 것은 모릅니다. 물론 제작자도 몰라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대. 기대라는 부분은 분명히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기대가 시청률로 이어지고 맹렬한 비난과 찬사로 이어졌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나는 사람의 어떤 한 면을 보고 그 사람을 결정짓는 실수를 자주 합니다.
하지만 그 실수는 언제나 내 안에서만, 내 마음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나는 수없이 그런 나 자신을 벌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혹은 증명되지 않은 수많은 면들을 뒤로하고. 
말로 전파되어 대상의 일부분. 혹은 전체로 각인시킵니다.
말이 시초가 됩니다. 성경에서 왜 우리의 목구멍을 열린 무덤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것은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결국에 '나'는 남지 않는 상황이니까요.

구체적으로 말해보겠습니다.
나는 어떤 프로그램이나 영화 책 등을 보면서.
이 대상은 나와 관계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나와 대화를 하던 나의 문제 나의 환희를 드러내주던.
나의 상대방인 것들은 나에게 와서 얼마나 상대방의 의도대로가 아닌.
나의 의도대로 선별해서 느낌을 가질 수 있나. 하는 생각이지요.
좋은 제작자는 그런 느낌의 다양성들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도. 여기며.
나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스스로의 '나'에게 부여합니다.
그래서 조심스럽습니다. 스스로의 '나' 가 있다면 스스로의 '너'가 있다는 생각.
스스로의 '가수' 와 '제작자' 도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박정현이 좋습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을지 모르겠거든요.
그래서 나는 3주째. 그녀가 좋았습니다.



나는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습니다.
나의 삶에 박정현 같은 재능이 있었을까.
나의 삶에 김범수 처럼 노력이 있었을까.
나의 삶에 이소라 처럼 깊이가 있었을까.
나의 삶에 윤도현 처럼 열정이 있었을까.
나의 삶에 백지영 처럼 호소력이 있었을까.
나의 삶에 정엽 처럼 겸손이 있었을까.
나의 삶에 김건모 처럼 용기가 있었을까.

누구의 삶에도 가치평가를 내릴 수 없겠지만은. 
스스로 해 볼 요량은 되겠거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가수는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 그리고 열정없이는 안되는 것이라면. 
나는. 또한 누군가는. 왜 그런 가수를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방관만 일삼는 일반인이 될 수밖에 없을까. 
나는 제작자의 더 큰 마음이. 스스로의 여러분들도 이런 삶의 무대에 서시고 있지 않습니까. 
하는 외침으로 들리길 바랐습니다. 
나는 내 삶의 울타리에서 상대방의 울타리에를 넘나드는. 그리고. 일곱이면 족한. 
그만한 관계에서 서로의 열정을 부비부비하는 것에 너무 좋습니다.  



나는 종래에 좋은 공연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판단해야 할 부분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느끼고 감사해야 할 부분도 아닙니다.
사실 나는 어떤 의도에서든 자유로워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노래부르는 모습에 좋았습니다.
사실 나도 한 명의 노래부르는 이로써. 많은 걸 느꼈습니다.
왜요. 그러면 안되는가요.

나는 가수다. 
물론 당신들은 가수입니다.  
그렇게 선언하기까지.
'나'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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