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섯 살. 그 때 우리 동네에는 딱 한 대의 피아노가 있었다. 

나의 어머니와 이모가 '화자'라고 부르는 같은 동네 후배의 것이었다.

옹기 종기 붙어 있는 집들 사이로 저녁 연기가 솟아 오르고 

한 시간 가량 켜 있다가 금새 하나 둘씩 꺼져가는 불. 

초저녁이면 으례히 그랬다. 

시골의 밤은 길고. 생각의 밤은 깊었다. 

그 때마다 나의 생각의 밤을 채워 준것은 '화자'의 피아노. 

흙묻은 나의 손때를 잠시나마 부끄럽게 해준 '화자'의 피아노. 

수줍어 가까이 갈 수 없고, 배울 용기 없어 친구들 몰래 창문 옆에서 흘려 듣던 '화자'의 피아노. 

동네에 피아노 학원은 있을 리 없고, 가까스로 피아노를 만져볼 기회를 얻게 해준 것은 다름아닌 어머니. 

서커스를 보러 온 아이처럼 환호와 탄성에 저절로 입이 벌어져 시간이 가는 줄 몰랐던. 그 때. 

어젯 밤.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그 때, 그 '화자'의 피아노가 너를 만나고 싶단다." 는 내용이었다.

먼 미국 땅에서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화자는. 

영주권을 얻게 되었다며 곧 돌아갈 한국 땅 서울에서. 

어머니의 아들인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 때 언니의 아들은 정말 맑았어. 머리도 좋은 듯 했고 노래도 참 잘했지. "



돌이켜 보면 나의 어릴 적부터 스승은 모든 것, 모든 사물이었다. 

명작영화에 나온 E.T부터 바로 어젯밤에 꾼 꿈까지 모든 것들이 나에게 배움의 이유를 준다. 

'화자'의 피아노 또한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꿈을 꾸게 해주었던 것은 틀림이 없었다. 

아니, 한가지라도 갖고 싶어 꿈을 꾸었다. 사실 나는 욕심이 별로 없었으니까. 

모든 것을 버릴 각오는 되어 있지만. 꼭 한가지는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금 나를 떠올려 주다니. 참 좋은 느낌이었다. 

"저도 꼭 뵙고 싶습니다." 하고 말을 하고 끊었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만나게 되면 꼭 한가지 여쭙고 싶은 말이 있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그것이 나의 시작. 전환점. 혹은 꿈이 될 기회였다고 여기는 것이. 

그 일이 있고나서 얼만큼이 지나야 알 수 있을까요. 

한 남자의 남편으로, 두 아이의 어머니로, 몇 십 몇 백의 삶을 도우는 목회자로 사는 '화자'의 이야기를. 

나도 한 번 듣고 싶어서. 실은 '화자'의 피아노 소리를 다시 한 번 듣고 싶어져서. 

어떤 질문이라도 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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