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다. 

 

우리 외갓집 사랑채에 복만이라는 종이 살았단다.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가 어릴 적에. 

그때에는 아직 시골에는 집안 살림과 농사일을 거드는 종이 있었을 테지. 

복만이는 꽤 저숙한 사람이라고 했다. 

어느 동네가 가도 꼭 그런 사람이 한 둘은 있는 법이다. 

그것은 어쩌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들에게

대단한 사연이 한 둘쯤은 있었던 게 아닐까. 

여튼 그 복만이라는 하인은 사랑채에 머물며 집안의 온갖 잡일을 거들었다.

복만이에게는 늙은 어머니가 있었는데 거동이 불편하여 방 밖을 자주 오가는 일이 없었다. 

듣자하니 중풍이라고도 하였고 기력이 쇠하여 몸저 누웠다고도 했다. 

복만이가 여느 집 허드렛일을 마치고 받아온 떡이며 고기며 하는 것들은. 

절대 혼자 먹는 일이 없다고 했다. 물론 먼저 먹는 일도 없었다.

이런 저런 음식들이며, 품삯으로 산 이런 저런 물건들은 먼저. 

어머니께 가져가 함께 나누었다고 했다. 

겨우내 좁은 방안에서 그들 둘은 항상 함께 먹고 자고. 

울고 웃고. 좀처럼 그들의 사랑이 식을 줄 몰랐다고 했다. 

밤이 깊어갈수록 사랑방에서 나오는 웃음소리에. 

어머니는 바보도 저렇듯. 지 어미를 위할 줄 아는데. 

하물며 손 발이 멀쩡하고 정신이 멀쩡한 우리들이랴. 

하면서 내게 이야기해준 어느 겨울 밤이 생각이 난다. 

 

때는 바야흐로 겨울. 

그 이야기를 해주신 우리 어머니는 지금쯤. 

치매로 고생중이신 외할머니의 점심상을 치우고. 

입주위를 손수건으로 닦아주시고 계실지 모르겠다. 

언젠가. 나와 어머니가 밤새 수다를 떨고 있을 때

외삼촌이 우리 둘을 보고 '끝녀와 복만이'다. 라는 말을. 

나는 쉽게 듣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았던 게지. 

그만큼 나와 어머니는 사랑하고 있었고, 

아니, 분명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고 계셨고. 

나도 늙어가는 어머니를 분명 사랑해야지. 라고 생각했을 테지. 

말뿐인 것을. 항상 후회하고 뉘우치나 나의 젊음이 그 분의 늙음을 항상 앞선다. 

나의 열정이 그 분의 사랑에 항상 앞서 가려 보지 못할 때가 많다. 

 

바보를 흔히 부족한 사람이라고 칭한다. 

뭐가 부족하던지 부족한 사람은 해결할 돈도 무엇도 없기에. 

스스로 일어서기 보다 남에게 의지할 줄을 안다. 

꼭 그것이 나쁘다기 보다. 뭐든지 내가. 혹은 돈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절대 부족한 사람의 마음과 같아 질 수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흡사 겸손한 사람의 다른 말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왔다고, 모든 것은 내 힘으로 된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보다는

나의 나된 것을 가장 잘 앎이 바로 그 분의 기도라는 것을. 

늦지 않게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끝녀와 복만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쓰다듬어주는. 

사랑방에서 넘쳐나오는 것들이 과연 지금 있기나 할까. 

겨울이 다가오니. 문득 그런 것들이 뇌리에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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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기억속에서는 그랬다. 

어머니가 오늘 저녁에 만들어준다했던 그 여섯살 때의 '돈까스'를. 

오늘이 있기까지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 돈까스는. 

그래서 그 '돈까스 쟁이' 는 말로만, 말로만 행하고 

실제 행동으로는 보여준 적이 없는 그런 사람들을 두고 뜻한다는. 

그럴 듯한 자기만의 언어에.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사실 나의 인연맺기란 그랬다. 

큼지막한 일을 해내는 대단한 사람보다. 

사소한 일이라도 내팽개쳐버리지 않고, 

보다 신중하게 보다 사려깊게 임하는 그런 이들. 

그런 이들에게 자꾸만 마음이 쏠리고 그랬다. 

 

하물며  나의 거울을 닦아보았을 때, 

그것은 굉장히 더럽고 추한 나의 몰골을 확인했을 때, 

곰팡이 냄새를 풍기며 나의 몸 구석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 또한 돈까스 쟁이에 지나지 않았었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나의 인연맺기도 너의 인연맺기도. 

이런 인터넷 바다를 항해하며 누군가의 눈과 입으로 그려진.

수많은 이미지들에 반해 그렇게 지고지순했던가. 

우리는 서로를 알자고 소리를 치지만 

그것은 나좀 보아달라고 하는 말 아니었던가. 

 

왜, 우리는. 각자는. 

자기 옷 벗겨 남의 몸을 덮어주기보다. 

남의 옷 벗겨 즐겨보는 것을 택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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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아바 심보르스카_첫 눈에 빠진 사랑


그들은 둘 다 확신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정열이 그들을 묶어주었음을.
그런 확실성은 아름답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더욱 아름답다. 

그들은 만난 적이 없었기에, 
그들 사이에 아무 것도 없었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거리에서, 계단참에서, 복도에서 들었던 말들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수백만번 서로 스쳐지났을 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묻고자 하니, 
정녕 기억하지 못하는가? 
어느 회전문에서 
얼굴이 마주쳤던 순간을? 
군중 속에서 "미안합니다"라고 웅얼거렸던 소리를?
수화기 속에서 "전화 잘못 거셨는데요"라고 무뚝뚝하게 흘러나오던 말을?
나는 대답을 알고 있으니, 
그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놀라게 되리라. 
우연이 몇 년동안이나 
그들을 희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운명이 되기에는 
아직 준비를 갖추지 못해, 
우연은 그들을 가까이 밀어넣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하였으며, 
그들의 길을 방해하기도 하고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참으며 
한 옆으로 비켜지나갔다. 

그들은 읽지 못했으나, 
징조와 신호는 있었다. 
아마도 삼 년전, 
어쩌면 바로 지난 화요일, 
나뭇잎 하나 파드득거리며 
한 사람의 어깨에서 또 한 사람의 어깨로 떨어지지 않았던가?
한 사람이 떨어뜨린 것을 다른 이가 줍기도 하였으니.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유년 시절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공일지도?

문손잡이와 초인종 위
한 사람이 이전에 스쳐갔던 자리를
다른 이가 스쳐가기도 했다.
맡겨놓은 여행가방이 나란히 서 있기도 했다.
어느 날 밤, 어쩌면, 같은 꿈에 들었다
아침이면 어지러이 깨어났을 지도 모른다.

모든 시작은
결국에는, 단지 속편일 뿐.
사건의 책들은
언제나 반쯤 열려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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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정말 비가 오기 전부터.

비가 멎은 방금 전까지.

한번도 눈을 감지 않은 채로.

밖을 내다보고 또는 안을 내다본다.


비가 내리면 반드시 비가 멎고 해가 비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누구도 의심의 여지 없이, 당연히 비가 멈추면 해가 비출 것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지금처럼 지독한 어둠에서 불빛을 바라볼때면.

자고 일어나 한움큼의 햇살이 내 볼을 만지는 것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지금 내가 온통 미움과 회한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고 해도,

반드시 사랑과 행복의 마음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지난 마음이 되버릴까봐 진한 마음으로 쓴다.


난 젊지 않아 이젠 밤을 새우지 못한다는 말을 어제 친구들에게 했지만.

그것은 벌써 지난 마음이 되어버렸다.

때론 사랑의 약속이 지난 마음이 되어버릴까 두렵기도 하지만.

지난 마음에 또 다른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써줄 네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에 씻긴다. 흘러가는 빗물을 향해 떠다민다.

그것이 시내가 되어 흘러가 강이되고 바다가 될 줄은.

혹은 다시 비가 되어 내릴 줄은.

이미 쏘아진 화살처럼 내 힘에 부친 일이겠어서.

맡겨둔다.


밤이 되어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알아볼 수 없을 때라야.

내 마음이 조금은 밝아진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하기 전에.

조금은 쓸쓸한 이야기를 하나 꺼내본다.

이제는 밝아질 하늘을 향해.

조금씩 고개를 숙여야지 하며.


혼자, 조금은 쓸쓸한 기분에 비를 바라보다가.

나까지 속이지는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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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섯 살. 그 때 우리 동네에는 딱 한 대의 피아노가 있었다. 

나의 어머니와 이모가 '화자'라고 부르는 같은 동네 후배의 것이었다.

옹기 종기 붙어 있는 집들 사이로 저녁 연기가 솟아 오르고 

한 시간 가량 켜 있다가 금새 하나 둘씩 꺼져가는 불. 

초저녁이면 으례히 그랬다. 

시골의 밤은 길고. 생각의 밤은 깊었다. 

그 때마다 나의 생각의 밤을 채워 준것은 '화자'의 피아노. 

흙묻은 나의 손때를 잠시나마 부끄럽게 해준 '화자'의 피아노. 

수줍어 가까이 갈 수 없고, 배울 용기 없어 친구들 몰래 창문 옆에서 흘려 듣던 '화자'의 피아노. 

동네에 피아노 학원은 있을 리 없고, 가까스로 피아노를 만져볼 기회를 얻게 해준 것은 다름아닌 어머니. 

서커스를 보러 온 아이처럼 환호와 탄성에 저절로 입이 벌어져 시간이 가는 줄 몰랐던. 그 때. 

어젯 밤. 어머니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그 때, 그 '화자'의 피아노가 너를 만나고 싶단다." 는 내용이었다.

먼 미국 땅에서 홀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화자는. 

영주권을 얻게 되었다며 곧 돌아갈 한국 땅 서울에서. 

어머니의 아들인 나를. 만나보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 때 언니의 아들은 정말 맑았어. 머리도 좋은 듯 했고 노래도 참 잘했지. "



돌이켜 보면 나의 어릴 적부터 스승은 모든 것, 모든 사물이었다. 

명작영화에 나온 E.T부터 바로 어젯밤에 꾼 꿈까지 모든 것들이 나에게 배움의 이유를 준다. 

'화자'의 피아노 또한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꿈을 꾸게 해주었던 것은 틀림이 없었다. 

아니, 한가지라도 갖고 싶어 꿈을 꾸었다. 사실 나는 욕심이 별로 없었으니까. 

모든 것을 버릴 각오는 되어 있지만. 꼭 한가지는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시금 나를 떠올려 주다니. 참 좋은 느낌이었다. 

"저도 꼭 뵙고 싶습니다." 하고 말을 하고 끊었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만나게 되면 꼭 한가지 여쭙고 싶은 말이 있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그것이 나의 시작. 전환점. 혹은 꿈이 될 기회였다고 여기는 것이. 

그 일이 있고나서 얼만큼이 지나야 알 수 있을까요. 

한 남자의 남편으로, 두 아이의 어머니로, 몇 십 몇 백의 삶을 도우는 목회자로 사는 '화자'의 이야기를. 

나도 한 번 듣고 싶어서. 실은 '화자'의 피아노 소리를 다시 한 번 듣고 싶어져서. 

어떤 질문이라도 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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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더러워질 데로 더러워진 행주를 빨았다.

뜨거운 물에 넣어 삶고, 락스로 표백을 했다.

이젠 깨끗해지니 쓸만하다 싶어 양손 꼭 모으고 기지개를 켠다.

그러다가 찬장을 정리한다. 새 행주묶음을 발견한다.

잠시, 그렇게 하여 깨끗해진 행주와 새 행주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괜한 고생을 했는가 싶어 과감히 깨끗해진, 그러나 헤진 행주를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새 행주를 빨아 널어놓고 뒤돌아서다, 뭔가 개운하지 않음을 느낀다.

 

개운하지 않다. 그냥 내 욕심에 뭔가 빠진 듯하다.

위생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도 문제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이다.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건. 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손에 쥐어진 것들과

손에 쥐지 못하는 것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의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랑을 포함한 욕망이라는 것이 아름다워지길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차디찬 물을 끼얹고 나서 따뜻함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는 것은 잠깐이다.

잠깐의 욕망이 내 삶을 엎지르지 않도록, 쓸어담을 수 없는 물과 같은

나와 당신의 삶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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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중. 즉. 

모든 시리즈며. 하는 것들은.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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