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갓집, 동화의 씨앗 : 산골소년과 소녀. 그런 동화적 이야기가 아닌 정말 한 동네에서 마주쳤을 법도 한. 그것은 정말 시간이 지나고 보면.  신기하거나 반갑거나 하는 일. 







동화적 요소 하나, 

"우리가 서로 몰랐을 때에.  같은 길을 걷거나 같은 목욕탕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지도 모른다. "


짧은 휴가기간 동안, 나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은 고훙군 포두면 길두리에 다녀왔다. 십리나 떨어져 있었지만 버스가 다니는 길은 하나, 명절마다 빼놓지 않고 가는 목욕탕도 유일하게 하나만 자리하는 곳. 그곳을 우리는 고향이라고 얘기했다. 누구는 마음의 고향이라기도 했고, 누구는 내 부모님의 고향이라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을 쉬며 유년기를 보냈다는 것.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곳은 나와 너처럼 키가 훌쩍 자라 있었지만, 어릴 때 모습은 간직하고 있었다. 아스팔트와 유명 마트, 한옥을 개조한 한정식 집들로 군데군데 채워져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겨웠다.  "그래도, 우리가 기억하는 큰 길은 바뀌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라고 말했던 것처럼.  정말 다행히 하늘도 구름도 해도. 적당하게 비추었다 가려주었다. 











동화적 요소 둘, 

"기억은 기억과 만나서 현실을 이룬다."

구태의연하게. 
사진을 찍었다. 

여기는 하늘에서 제일 가까운. 
2층 옥상이라고 했던 말은. 
이제는 거짓이 되었다. 

두명이 앉아도 남던 자리가. 
앞뒤로 앉고 서야 채워진다. 

태권도복은 누구에게 되물림되어 버려졌을까. 
이런 저런 이야기로 우리는 수없이 만났다. 












동화적 요소 셋,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는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십년 넘게 살다가. 결국 건너게 된 것이 결혼하고 나서란다."



저 냇가는. 여덟살 먹은 내 친구녀석이 자랑한답시고 뒤로 다이빙을 펼쳤던 곳이기도 하고 물귀신이 산다하여 산 밑자락까지 헤엄쳐 간 사람은 열이면 아홉은 죽어나온다는 곳이기도 하다. 
이 다리는. 스물 중반의 내 어머니가 시집살이 괴로워 그렇게 건너가고 싶어했던 곳이기도 하고 외할아버지가 집에서 키운 개를 잡고자 목에 줄을 매달아 밑으로 던져버렸던 곳이기도 하다.
그 자전거는. 6.25 후유증으로 절름발이가 된 외할아버지의 지팡이와 같은 것이기도 하고 다리가 닿지 않아 안장에 앉지 못하고 기마자세로 발을 굴려 힘들게 탔던 나의 자전거이기도 하다.












동화적 요소 넷,

"하늘에는 길이 없다. 애초에 길이라고 하는 것은 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날개가 없다. 애초에 날개는 날짐승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꿈이 있어왔다. 아홉살의 꿈, 열세살의 꿈, 스물다섯살의 꿈. 시간의 탈을 쓰고 조금씩 바뀌어 왔지만 분명히 내게는 꿈이 있어왔다. 그것은 내게 날개가 되어 주기도 하고 날 듯 날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멀뚱히 티브이만 쳐다보거나 학원과 인터넷 게임에 지친 요즘 아이들에게는 없는 그런 유일무이한 시간이 내게는 있었다. 집안 어른들이 논에 나가고 없으면 혼자 하루종일 하늘을 쳐다보며 *이런 생각에 빠져보기도 하고 경운기 뒷칸에 천막을 치고 할아버지께서 넣어주신 새우깡 하나를 오물거리며 하루 반나절을 새우깡만 생각한 적도 있다. 새를 만지고 싶어서 뙤약볕에 허수아비처럼 두 팔을 벌리고 서 있었을 때도 있었고 궁금증이 많지만 물어보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길을 잃고 헤매어도 묻지 않고 걷기만 했다. 지나고 보면 하나같이 고생스럽고 미련한 일이었지만 그 때문에 나는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하여 두렵게만 여기지 않는 습관이 생겼고 어느 누구와 대화를 할 때는 이전에 충분히 생각하고 준비해 임했다. 어떤 것을 그려보는 것. 색을 칠하는 것보다 밑그림을 더 잘 그린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잘하는 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조화는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아는 것이며, 나의 나다움과 너의 너다움을 지켜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그녀에게도 어쩌면 가능한 생각들이었다는 것을 이쯤에서 알게 되었다. 











동화적 요소 다섯, 

"가만히 서 있으면 바람이 불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앞으로 달리면 스스로 바람을 만들어 몸을 실을 수 있다."




사람의 외모만 보고 혹은 환경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실수를 우리 사람들은 자주 하게 된다. 
성경은 겨자씨를 비유해 이 작은 씨앗 하나가 얼마만큼 큰 나무가 되며 얼만큼의 큰 그늘을 만들어 
사람들의 쉴 자리를 만들어 주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은 우주를 통털어 이제 인간밖에 남은 것이 없다. 
그렇지만 애초부터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인간밖에 없었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이치였고 너무 사랑스러운 행위였다.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짓는다고 하기도 하며,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을 뉘우치고 옳고 그른 것들 앞에서 번뇌하기도 한다. 

초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 사물의 모양이 달리 보인다는 말이다. 
중심이 어디 가 있느냐에 따라 내가 넘어질 지 앞으로 미끄러질지를 안다는 말이다. 

자전거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 큰 상처를 입히기에 충분해서 아이들에게는 위험한 도구였음에도. 
자전거는. 중심을 잡고 앞으로 앞으로 나가다 보면 어느새 바람을 불러 친구해주는 상냥한 도구라고 여겼다.




























씨앗을 심고 맡겨두자. 
기다리면. 동화처럼 내 삶이 변한다. 
외갓집, 나의 동화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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