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곧 '여행의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 많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불구경하는 마음으로 떨쳐버리려고 했으나 해가 지면 피어오르는 그것들을

나는 과감히 멀리 할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걱정없이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고, 즐거울 수 있을 거란 상상은

못되먹은 성향 때문에 여행의 기분만 만끽한 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 사라지는 구름


밤이 되고 아침이 왔다. 

어젯밤에 내린 폭우는 흔적없이 사라지고 맑게 갠 하늘이 펼쳐져 있다. 

이 곳에서의 하늘의 행진은 시시각각 아름답다. 

완벽히 그대로인 것은 없고 때를 따라 변하는 그 마음이 사람의 것과 닮아서인지

흘러가는 구름이 사라졌다가 다시 일어난다. 

불평할 것 없이 구름을 잡을 것도 없이 나는 하늘 아래에 있다. 

내 마음의 공간에 일어난 구름 또한 잡을 것이 없다. 

깊은 곳 깊은 속에 일어난 짜증과 불안, 미움으로 일어난 것들이 

그대로 흘러가 사라지게 놓아 두자. 





건너 온 다리를 건너 가 아침을 출발한다. 

친절한 사람의 웃음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 

섬의 동쪽으로 간다. 

중국인 여자 넷과 함께 탔다. 

바람이 치마 들추는 것도 모르고 꺅꺅 대며 좋아한다. 

보트 속도를 높이자 귓가에 휘파람 소리같은 것이 들린다. 



 # 역할극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이동할 때 짐과 가방은 내가 진다. 

나는 너에게 남자이고 너는 나의 지켜야 할 의무이자 마음이다. 

여행의 동행자로 지도는 내 오른쪽 주머니에 있었으며 

늘 앞장 서서 걸어간다. 

그렇다보니 우리는 함께가 아니라 점점 각자가 되어갔다. 

하나가 둘이 되는 과정을 틈틈히 겪어나갔다. 


토라져 있는 과정 중에 이런 게 있다. 

혼잣말 즉, 독백. 


연극에서나 들을 수 있는,






여행할 때 중요한 건 여행이란 말보다 결혼할 때 중요한 건 결혼이란 말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다. 

옳다는 느낌을 공유하지 못해도 함께 할 수 있는 서로가 되는 것이 여행하는 즐거움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너에게 고정되어서 다른 것을 보지는 못하더라도 너를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더 알게 되었다. 

배가 떠가는 30여분 동안 동행한 아프리카인들의 소란함 속에서 이까짓것 생각하느라고 또 한번,

당신을 보지 못했다. 나의 행동은 나의 마음을 덮으려고 하는 일종의 훼이크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도착의 의미가 내게 말을 건넸다.  


" 날이 참 좋네."



# 휴양지의 성격

 

 


 

딱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은밀한 시간이 가고,

낮과 밤만 구별할 수 있게 준비된 수평선과

가급적이면 지루하게,

지루하게 바라볼 수 있는 풍경만 있으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집이 그리워질 수 있게.

 

 


# 놀이

 

모래성 쌓기, 백사장에 이름 새기기, 등등의 연애놀음 말고도 이 곳에는 놀이가 많다. 대신 돈이 든다는 것,

낮에는 스쿠버 다이빙 등의 수상스포츠를 즐기고 밤에는 안락한 의자에 앉아 태국 정통 마사지를 받는 것이 주된 프로그램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사흘이 흘렀다. 주로 방수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백사장을 거닐었으며 구비된 수영장에서 안전한 물놀이를 했다. 배가 고프면 맥주를 마셨고 태국 음식과 섞인 탓인지 오줌에서는 원숭이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는데 나는 한번도 원숭이 비린내를 맡아본 적이 없지만 그럴 듯한 표현인 것 같아 빌려쓴다. 비내리는 밤에는 얇은 이불 깔아놓고 맞고를 쳤고 벌칙으로 인해이마와 손목는 벌겋게 물들어갔으며 태국의 드라마도 막장이 많은 듯 알아들을 수는 없어도 상황설정이 막무가내였다. 엠넷채널에서 한국의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로 특집방송을 하는 듯 익숙한 풍경이었다. 





아오 웡드안 해변으로 가는 길, 두 팔 벌린 인형이 몹시 더워 보인다. 




 

 코사멧의 동쪽 해변 중 두번째로 호화(?)스럽다는 해변, 배삯을 아끼기 위해 아오 프라오 리조트의 작은 보트를 타고 다시 반 페의 누안팁 선착장으로 돌아와 아오 웡드안 리조트로 가는 전용 보트에 몸을 실었다. 어선과 유람선의 중간 단계 정도 되는 규모와 시설, 한국의 통통배와 비슷했다. 아오 웡드안 리조트에는 일단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야 한다.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은 사람들(아오 프라오 리조트에 비해)과 배들로 가려진 해안은 사실 볼 것도 즐길 것도 많지 않았다. 다양한 여행객들과 밤을 만끽할만한 불쇼 그 정도로만. 숙소는 깨끗하지 않았으며 밤하늘이 올려다 보이는(숙소의 방 설명에 그렇게 씌여있다) 샤워장에는 설명서가 붙어있지 않은 순간온수기가 나를 당황케 했다. 내일 아침 일찍 방콕으로 출발해야하는 일정때문에 서둘러 옷을 벗었다. 산책을 하고 의자에 앉았으나 손톱만한 모기에 쫒겨 야외 수영장으로 향했다. 





러시아인으로 보이는 네 명의 건장한 친구들이었다.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불현듯 뛰쳐나가 수영장 한켠에 앉았다. 동전을 모으더니 차례로 물속으로 던졌다. 보아하니 예전 내 어릴 때 친구들과 하던 '콜라'라는 놀이다. 선을 그어 놓고 몇 발자국 뒤에서 그 선에 가장 가까이 동전을 던져놓은 사람이 나머지 동전을 따먹는 놀이, 수영장 물의 경계선이 그 선인 듯 했고 밀려나간 동전이 물속으로 가라앉으면 일등이 동전을 회수해 오고 나머지 게임에서 진 친구들이 맥주를 한병씩 사오는 룰인 듯했다. 건너편에서 나는 부러운 듯 쳐다보고는 이내 어린 시절 동네 한 구석의 냇가를 생각해 냈다. 이끼에 미끄러져 이리 저리 쓸리고 긁히고 했지만 친구들과 했던 '놀이'는 지금도 신성한 구역에서 나를 상기시킨다.  

한편 저 쪽에서 동양인 여자 한명이 방수카메라를 들고 쇼를 하고 있다. 지금 여기 수영장에는 러시아인 친구들 넷과 나와 동양인 여자 한명 그리고 중년의 미국인과 애인인 듯한 태국의 젊은 여자, 그리고 곧 등장할 프랑스 꼬마녀석. 한낮의 더위는 제각각 노하우로 잊혀져가고 있는 중이다. 



# 별이 쏟아지는 




작열하는 태양빛이 힘을 잃을 때 보다 편안하게 빛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먼 노을 그리고 여름날 저녁의 바닷물 소리, 

이미 이 곳은 공기까지 바다다. 

도시의 바람과는 달리 이 곳 바람은 그 누구에게도 닿지 않아 아무런 향기도 나지 않는다. 

진한 향수냄새나 매연, 번화한 술집의 요리냄새처럼 코에 닿지 않고 이마와 얼굴에 닿아 좋다. 

하늘이 더 가까이 온다. 높게 바라보지 않고 멀리 바라볼 수 있어서, 

별빛이 보이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평상에 기대 저녁을 먹고 저녁을 맞이한다. 





별빛은 커녕 불쇼도 못봤다. 스스로 불을 만들어 본다. 

보이는 것만 보는 눈은 금방 어두워져 늙는다. 

당신의 색깔은 내게 불빛이다. 

가지가지 색깔이 모여 환하게 탄다. 

그 빛이 내게 쏟아져 들어온다. 




# 넷째 날 일기 


벗은 몸 바다에 담가 땀을 씻기고 땀을 씻긴 바닷물을 물에 씻긴다. 

물로 물을 씻어낸다. 투명한 물로 투명하지 않은 물을 씻어내린다. 

자극적이지 않은 풍경으로 인해 노래가 멈추었다. 


내 인연 중에 가장 질긴 건 외로움이란 것이었다. 

젊은 날 나의 진심은 너무나 조용하고 깊어서 소리내어 울지 못했다. 

어떤 것에 열광하거나 환호를 보낸 적도 없었다. 


재생중인 노래를 끄고

연한 파도의 소리만 반복재생했다.


어떻게 해야지 하는 마음을 일단 접고, 

들리는 소리만 듣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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