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나는 흥정에 약했다.

거절할 줄도 몰랐고, 성큼 내민 제안에 묵묵부답함으로

그 뜻을 따를 것처럼 행동했다.

내 뜻은 내 안에만 있다. 그래서 됐거니, 했다.

 

그처럼 사니, 부당함을 느끼고 사는 시간은 없었다.

내 뜻을 내비치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사건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순리'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비겁'이었지만.

 

다툼이 싫다. 말다툼, 마음을 향하는 섭섭함 등의.

그렇다고 상대방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영원히 영원히 만나지 못할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는 셈이다.

 

이 세상에 행복한 길은 없다.

행복으로 향하거나 불행으로 치닫거나,

목적이 분명한 길들은 많지만.

 

 

 

# 명시되지 않은,

 

 

 

어려움 없이 반 페 선착장에서 방콕으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오른편 주머니에서 지도를 꺼내 현재 위치와 앞으로의 행로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지도 대신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걸어걸어 이쪽 저쪽을 다녔던 게 생각이 난다.

이동하는 중에는 내가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에 도착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사실, 그것만 그려져 있다. 지도에도 현재 내 머릿속에도 마찬가지,

 

돈을 주고 사야하는 세 가지가 제공되었다.

방콕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제공된 세가지 덕분에,

지도나 여행안내책자에는 없었던 내용들을 발견하게 된 것에,

명시되지 않은 그 무엇무엇들이 여행길 중간중간에 많을수록,

예감은 하나로 '좋다'.

 

 

 

# 하늘을 보는 것처럼 너를 본다면 좋겠다.

 

 

 

 

방콕의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다가도 그렇지 않고, 때로 폭우가 내리다가도 금방 그쳤다.

잃어버린 여권의 행방은 묘연한 게 당연하고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으려 태국 내 한국대사관으로 갔다.

친절한 현지인 안내원과는 달리 한국대사관 내 한국인 직원들은 꽤나 불친절했다. 당연하게 여겼다.

여권이나 짐을 잃어버린 여행객들을 상대로 한 민원이 얼마나 많겠냐만은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은 단 한번이므로,

낯선 곳에서 당황하고 놀란 마음을 향한 모국이 한국인 사람들의 말투와 행동에 적잖히 화가났다.

증명서 발급서류를 제출하고 내일 오전 중에 다시 방문하라는 말에 더운 바깥으로 쫒겨나다시피 나왔다.

 

방콕의 하늘은 또 한번 비가 올 것 같다가 그렇지 않았고, 뜨거운 태양이 콧등을 쓸어내렸다.

가까운 역 근처에 숙소를 잡고 짐을 풀었다. 오후부터 자정까지 구경할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일단은 강으로 간다. 지하철은 시원했고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태국에서는 지하철을 이용하고 그 외의 짧은 거리는 썽태우를 탈 것을 권한다.

비용과 시간이 택시를 타는 것보다 훨씬 저렴할 때가 많으니까.

 

하늘의 넓이를 본다.

하늘의 넓이를 보는 것처럼 하늘을 본다.

높은 하늘이지만 늘 적당한 거리에서 전체를 볼 수 있다.

타는 태양도 겹친 구름도 젖어내리는 비도 순간순간 볼 수 있다.

그렇게 너를 본다면 좋겠다. 어느 한 구석 한 모습으로 전체를 가리는 일 없이,

적당한 거리에서 너의 완연한 모습을 하늘을 보는 것처럼 한다면 참 좋겠다.

모든 인연에서 떨어져 나올수록 내게 더 가까이 다가오는 바람의 온기, 

그리고 나를 위안하는 하늘의 끝없는 넓이. 

 

 

 

 한화로 약 3만원 정도하는 모텔. Huai Khang 역 부근

 

 


# 단출한 행장

 

처음으로 짐 가방이 아닌 카메라 가방만을 가지고 거리로 나섰다.

외딴 시골의 마을에서는 반쯤 벗어놓은 상태로 활보했지만 도시에서 그러기란 쉽지 않은 일.

반바지에 슬리퍼를 걸쳐놓으니 현지인이 따로 없다. "싸와띠캅~" 인사를 받았다. 그것도 외국관광객으로 부터.


 



짜오프라야 강, 후아람풍 기차역에 내려 15분여를 걸어가니 호텔과 인접한 선착장이 나온다.

한강 유람선도 못타본 내가, 사흘 내내 배만 탔던 내가, 탈 성 싶으냐.

사진찍고 이모저모 구경할 새도 없이 약 20여분만에 그곳을 탈출했다.

무얼 먹을까, 어디로 가볼까, 해는 뉘엿 지는데 왕궁을 가야할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배고프니 밥을 먹자, 어디에서 먹을까, 여기 지나면 더 맛있고 근사한 데가 나올꺼야,

그렇게 걷다보니 고양이 친구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전자상가의 뒷골목이 나왔다.

일단은 밝은 데로, 일단은 사람 많은 곳으로, 썽태우를 탔다.

단출한 행장이어서 도리어 걷고 또 걷고,

확실한 힘듦이 없어서인지 포기를 모르고 고양이가 나오는 뒷골목만,

그렇게 서성였다.





2500원 짜리 오토바이를 타고 밥먹는 데로 가자고 했더니, 차이나 타운을 지나쳐 꽃시장으로 데려다 주었다. 

찌륵한 흙이 바닥으로부터 튀어올라 종아리며 허벅지며 엉겨붙었다. 로타리 한가운데서 쉬어갔다. 

가벼운 입씨름 후, 다시 2500원어치 오타바이를 타고 차이나타운으로 갔다. 

무얼 먹어야할지 도무지 생각이 안난다. 때는 덥고, 다리는 아프고, 동행으로부터 멀찌기 앞장 서 걸었고.

태국에서 중국음식을 먹었다. 

볶음밥. 을,




# 그 날의 일기





모종의 계획을 하고 갔건만,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었고.

피곤한 발 씻는 중에 갑자기 미련한 미련이 남아 스스로 어두워졌다. 

폰을 꺼내 조금씩 써내려갔다. 


"그 사람의 평상시다.

특별한 날 특별한 체험을 하고

특별한 모습을 본다한들,

그것이 내 선택의 전부가 될 리 없다.


그 사람의 평상시다.

그것은 늘 변하는 그의 모습이다.

자신의 맡은 바 일을 하고 삶을 사는 것이

내 발 씻겨주는 듯한, 시원하고 고마운 자극이 되어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랑이라 하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이 어떤 존귀한 선물보다 더,

고마운 그대의 모습이 되겠다.


나는 그것이 내게 사랑이라 생각된다,

너는 내게 매일처럼 프로포즈를 하는구나. "


함께 발맛사지를 받고, 멋쟁이 할아버지 옆에 앉아 피곤한 밤을, 달려 그제서야 만났다. 

마지막 밤, 그 마지막 밤에 너는 핸드폰을 잃어버려 마지막 밤은 더 애틋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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