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에 구상한 음악이건만, 

어느 결에 써질 줄 알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다가. 

가을이 깊어갈 무렵에 그렇게 내 앞에 놓였다. 


이이체 시집 <죽은 눈을 위한 송가>를 상효에게 선물받고

읽던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언어, 말 Animation. 

사전적 의미로는 '생기를 불어넣다'라는 동사의 명사격인데,

보통은 움직이는 만화를 주로 뜻한다. 

실제로 노래를 만드는 이들 또한 animate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미지를 구체화하고 우리가 하는 말에 가락을 붙여 부른다니, 

그렇게 책을 건네받은 1년여 전부터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대학시절 수업시간에 읽었던 '소리샘'이란 단편소설. 

우리가 들었던 모든 소리와 이야기는 뇌에 저장이 되는데 그것을 소리샘이라 한다, 

그렇지만 과거의 일에 목마른 사람이 없어 그 샘을 그대로 놓아두고 찾지 않는다, 

샘은 점점 말라가고 사람들의 기억력도 사라지고만다,

그런 내용이 생각이 났다, 이것 또한 애니메이션의 한 줄기가 되었다고. 


그런데 가사를 뭐로 하지, 어떤 식으로 표현을 해야할까. 

막연한 물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하나였다. 


'바다는 소라껍데기 안에 산다'


처음 선율 그대로 가고자 했지만 분명, 

가사의 음율에 맞추다보면 달라지겠지. 

우리말로 된 적절한 단어를 찾기 힘들었고, 

작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그럭저럭 모양새를 갖추었다. 


적어놓고 싶었다. 그런 저런 과정들을, 

노래하고 싶었다. 노래를 만드는 과정들을. 

노래가 만들어지는 풍경을 노래하는, 

과거에 얽매이는 것보다 과거를 통한 나와 너를 발견하는 일을.


마주치면 생각나는 것과 같이. 




<아내와 제주도 14년 여름>


Animation(141015)


내가 앉지 못하는. 저 쪽 푸르름엔가.

숲에서 우는 아이가. 숨어서 우는 아이가. 있네.


한낮이 한밤이었지. 나무가 말을 걸던가.

너는 무엇을 기다리지? 안 올지도 모를 사람?


우- 우- 

흙이 되어버린 기억들로.

우- 우-

장난감을 만들어. 장난감을 만들어.


노래는 기억이 부르는 것.

그리워하면 그럴수록.

노래는 기억을 부르는 것.

짙어가면 피어나는 꽃.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순간은 지금 아닌가.

너는 무엇을 기다리지? 안 올지도 모를 미래?


우- 우-

흙이 될 수 없는 기억들로

우- 우-

장난감을 만들어. 장난감을 만들어.


바다는 소라껍데기 안에. 

언제나 살아있다고.

우린 각자 하나의 섬이에요.

섬과 섬을 꿈꾸는 배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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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보통은 만화영화를 뜻하는 것이지만,  

동사 animate, 영혼과 생기가 없는 것을 영혼과 생기가 있는 상태로 

변화시킨다는 뜻. 즉,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 


7월이 왔다, 즉. 

반년이 갔고, 또 하나의 반 년을 맞았다. 

그 동안 세 장의 앨범, <해빙>과 <일각여삼추>와 <집으로 가는 길>을 발매했다. 

총 여섯 개의 노래를 두어 달 간격으로 발표했다. 현재까지는, 

순조롭게 잘, 이행해 왔다. 올해의 목표인 <일곱개의 방 프로젝트>


그 동안의 노래들은 작년까지 만들어 왔던 '습작'의 재구성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현실과 현실의 상상을 담은 것들이 태어나야 한다. 

네 번째 방, 9월 즈음에 발매될 노래들에 대해 구상하기로 한다. 

역시 노래는 두 개로 <애니메이션>과 <고양이, 청>으로 제목을 정했다. 


노래를 만드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그것은 현재 내 상태를 확인하는 일로 시작해서, 

내가 무엇을 원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상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즐겁다고 했다. 


사실은 이제부터 즐거워지려고 한다. 

사실은 이제까지 즐거운 고민을 하지 않았다. 

바쁜 일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저냥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생기를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기를 되찾기 위해 타이틀을 정했다. 애니메이션, 

누군가 내게, "너는 언제 네가 살아있음을 느끼나?" 하고 물어본다면. 

목마른 중에 마시는 긴 컵의 물을 마실 때, 컵으로 숨을 쉬는 가운데와 

비오는 날에 들이마시는 숨, 추운 날에 내쉬는 숨 가운데에 있다고 하겠다. 


결국에 '숨'을 느낄 때라 하겠다. 

그러고 보면 물 속에 있을 때가 가장 숨에 대해 절박하겠다, 싶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물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순수한 물의 소중함에 대한 것이고. 

나는 이제부터 물에 잠겨 '숨'의 소중함을 느껴보려고, 가까스로 생각해 낸 것이. 

목욕탕 물 안에 나를 집어넣고 내 몸이 답답한 숨을 내쉬고 있다고 여겨본다. 


나의 가장 절박한 '숨'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본다. 

바이킹을 탔을 때, 바다에 빠졌을 때, 그녀와 헤어졌을 때, 한국시리즈 7차전을 볼때, 

어느 것 하나 기억에서 제외될 만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가장 순수한 '숨'을 쉬었을 때가 언젠지. 

말을 바꾸어 그것의 절박함을 느낄 때라야 가장 순수하게 뱉어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서. 


갑작스레, 

내 이름 성종훈이란 석자가 출석부에서 호명되었을 때에. 

그 때의 어색함까지도 내 '숨'을 일깨워주었다고 생각된다. 


나의 생기를 찾기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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