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2012년 4월 무렵에. 

이렇다할 계획도 공연도 없었던 터라. 

종철이형과 음악경연대회 준비를 했었다. 


나는 또 한번의 앨범준비를 해야했고, 형은 스쿠터를 사고 싶다고 했다.

그럴려면 적절한 '돈'이 있어야 하겠기에 우리는 단번에 '하기'로 작정했다. 


대중성을 겸비한, 그리고 '뽑힐'만한 음악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리고, 적어도 내 생각은 신선해야 했다. 세련되지 않으면서, 

굉장히 뭉툭하게 아마추어같이, 그렇게 '날 것'을 만들고 싶었다. 


언젠가 대학가요제 준비를 했던 때가 생각났다. 

'하늘'과 '바람'과 '꿈' 등의 단어가 들어가야 했고,

순수한 형의 바램대로 가사는 그럴 듯 하게 지었고. 

멜로디는 서로가 부르고 싶은 것들로 채워나갔다. 


30대와 40대가 뭉쳐서 참 '순수'한 것을 만들어냈다, 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너무 순진했던 걸까, 대회 1차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노래는 행사용 음악처럼 버려졌다. 잊혀졌다. 





'정이가' 라는 팀명이었다. 사진을 뒤져보니 악보가 나왔고, 

우리는 돈이 필요했지만, 이렇게 보니 추억이 필요했지 싶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다시 한번 이 노래를 불러보면 좋겠다 싶었다. 


원래의 가사는 '파란 트럭의 짐칸에 실려~ 여기 까지 왔지' 였다. 

모티브는 여행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미지는 잘게 부숴져, 더러는 운율에 맞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결국, '만원 버스에 실려 여기까지 왔지~'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마음에 든다, 이렇게 마음 놓고 불러본 노래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곱고 고운, 형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어서도 좋고. 

그냥 대학생이 된 것 같아 참 좋더라. 





누구에게나 꿈은 있지, 하늘은 파랗다는 꿈. 


인트로의 이 메시지는 내게 늘 긍정의 힘이다. 

모두에게 공평한 저녁이 깃들기를 기도하는 매일의 저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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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 살고부터 오후부터 늦은 저녁에는 늘 윗길로 다닌다. 계단을 올라 집으로 가는 길은 뭔가 힘들어서 잡생각이 들 새도 없지만, 계단을 타고 집으로 내려가는 길은 발은 발대로 눈은 눈대로 간섭받지 않아서 좋다. 


3층 건물의 옥상이 딸린 기암절벽과 같은 구조의 집이라 햇볕을 온 몸으로 받는다. 고로, 겨울엔 추웠고 여름엔 벌써부터 찌는 듯하다. 어두컴컴한 녹음실은 벌써부터 습기가 차기 시작했다. 한번 위치를 잡고 녹음을 시작하면 두어시간은 기본으로, 땀이 머리카락을 타고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계속된다. 


어쩌자고 금연을 시작해서, 그 땀방울을 식힐 동안에 달리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그 짧은 시간을 쉬면서 담배 생각을 줄일 요량으로 각종 집안일에 매진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샤워를 한다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나, 물이 몸에 닿으면 이상하게 모든 조건들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듯해서. 


녹음하는 중간에 바람을 쐴까 해서 옥상에 올랐다. 아직 밤 바람은 서늘함보다 찬 것에 가까웠지만 상대적으로 뜨거운 내 몸이었던지라, 알맞게 식혀주기에 그만이었다. 오늘 그렇게 


'집으로 가는 길'의 모든 녹음을 완료했다. 


멀리서 바이올린 녹음파일이 오기만 하면 쓱삭해서 모든 것들의 자리를 찾아주면 된다. 내일 모레가 제출일이지만 아직 반도 하지 않았다. 앨범 자켓의 이미지와 글씨, 보도자료의 서론도 아직 구성하지 못했고. 매번 앨범의 제작과정을 써나가도록 하는 것이 '원칙' 아닌 원칙으로 정했었지만, 늘 시간을 등 뒤에업고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이라던지.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오는 길이라던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것이 종료된 후에 집에 오는 길에는, 많은 생각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걸 본다. 특히나 숙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집으로 나 있는 벽과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삼백여미터의 그 길을 나는 아주 즐거이 걷는다.  


누구나 집으로 가는 길은 새롭지 못한 까닭에 설레여 가슴이 뛰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매일 비슷한 시각에 가는 길이면서도 특별할 때가 있는 것이 집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그것은 하루의 일들이 매일같이 돌고 돌지만 나의 생각은 늘 같은 곳에 있기를 거부하는 희망의 길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희망의 길을 보는 것이 늘 집으로 가는 길 중에 있었다.


그러나 피곤한 것보다 더한 것이 외로운 길이었다는 친구의 말과 늘 술에 의지해 집까지 난 길을 오르는 친구의 눈빛과 하는 것들에서. 내가 본 희망의 길이 사라지고 왜곡과 오해로 번진 사나워 가여운 표정들을 보았다. 이제 내일은 내일로써 기다리는 것보다 오늘과 비슷한 하루의 내일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매일 일만 하고 사는 친구들에게 언제 고백이나 할 시간이야 있겠냐 싶었다. 


매번 같은 길로 집에 가는 게 싫어서 수시로 골목을 바꿔가며 집으로 갔던 대학시절 나를 떠올려 보았다. 그 때엔 그렇게 걷고 걸어 집에 갔던 일이 그토록 즐거웠는데 말이다. 이제는 좀 더 경제적으로 걷고 무료환승인 채로 버스에 몸을 싣는 나를 본다. 우리 모두가 최단거리를 검색하고 검색한다. 검색이 느는 대신에 사색이 줄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누구에게나 사색의 길이 되었을 법한데,




집으로 가는 길


작사/곡 Yunje


입술에 찬 달 밝은 밤, 더 어둔 밤 찾아 눈 감았지

끝날 것 같지 않던 밤은 어느새, 서로 다른 길로 집으로 가는 길


뻔한 가로등불에 골목길 물들어, 노랗고 붉게 어둠을 가리지

구두 밑창으로 쌓인, 추억들이 밟히고


사랑 찾아 헤맨 낮과 밤, 그리움 두고 잠 드는 날마다

어쩌다 집 떠나와 이 곳까지, 모든 길들이 흘러와 머문 곳


텅빈 희망으로 되돌아 가는 길, 어떤 구름이 비가 될는지

도시의 밤은 아무 걱정이 없고


저녁에, 정거장에 지친 별들 모여 앉아 은빛 눈물을 떨구네

누군가, 나의 고백 들어줬으면 하나 

무관심만이 무관심만이 서로를 쉬게하네


저녁에, 정거장에 지친 별들 모여 앉아 은빛 눈물을 떨구네

누군가, 나의 고백 들어줬으면 하나

무관심만이 무관심만이.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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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가 훌쩍 지나버렸다. 

그 동안 나는, 고민도 없이. 

삶을 살아버렸다. 


갑자기 여름이 되었다. 

매번 하는 기타교습 때문에 손이 얼얼하다, 

기타에서 전해오는 뜨듯한 열기로 손바닥에 땀이 찬다. 


이번에는 두 개의 노래다, 

뭐, 이번에도 두 개의 노래지. 


달력을 보았다, 

금요일. 


그래, 금요일 부터 

녹음실 창문을 가리는 것으로. 

그로부터 이제 한 달여동안 

깜깜한 세상에서 기타와 벗하고, 


지내보자. 


6월에 나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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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두번째 디지털 싱글 '일각여삼추'를 발매했습니다. 

수록곡 중에 '외갓집, 동화의 씨앗' 이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흥미 삼아 주변인들과 함께 뮤직 비디오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방법은 가족사진(대가족이면 좋겠으나, 어머니나 아버지와 단 둘이 찍은 사진도 무방)을 제 메일로 보내주시면 되요, 가급적 큰 픽셀의 사진이면 좋겠으나 폰으로 찍은 사진은 아무래도 힘들겠지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한번쯤, 가족을 기억하고 사랑을 기록하는 순간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해 봤어요.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을 기다리겠습니다. 


유투브 계정을 이용해 보실 수 있게 하구요, 

참여하신 분들의 이름을 뮤직 비디오에 넣거나, 

SNS 등을 통해 소환해서 꼭 확인하실 수 있게 하겠습니다. 

보다 좋은 음악의 용도로 쓰일 수 있다면 좋겠어요. 

궁금한 사항이나, 사진은 이 곳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dda-sic@hanmail.net


'외갓집, 동화의 씨앗'이라는 노래의 유투브 영상에 참여할 가족을 모집. 

참여는 가족사진.jpg(이름, SNS계정 등 함께 적어)을 이메일 

dda-sic@hanmail.net 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기한은 4월 30일까지로 해두겠습니다. 

가족과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보세요.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다리겠습니다. 



 




"이것은, 제 가족 사진으로 간단하게 만들어 본 것입니다. 

빛바랜 옛 사진이어도 좋고,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도 좋습니다. 

높은 퀄리티를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로 채워보겠습니다. 

가족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어준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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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왈츠,

바람소리가 매서운 4월,

그리고 묵묵히 또 한장의 앨범을 낸다.

 

1. 일각여삼추(Original Ver.)

2. 외갓집, 동화의 씨앗

3. 일각여삼추(Guitar Ver.)

 

Produced by Yunje

All songs written & arranged by Yunje

Photographed by Clauida

Designed by 최현주

A. guitar & C. guitar Yunje

Piano 최희영

Violin K

Cello 김다예

Accordion 이혜준

 

2013. 4. 15.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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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를

설득하기 위해 써놓은 손편지다.

내게 노래는 그랬고, 그래져간다.

 

어느덧 바람이 잔잔해 지고 구름이 걷히자

멀리 육지가 보인다.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게 맞는

그보다는 내가 온 물길을 뒤돌아보게 된다.

 

흔적이 없다,

어디서부터 왔는지도 찾기 힘들게

모든 것이 지워져 버렸다.

훤히 보이는 파랑과 파랑 사이의 희미한 선은

내게 늘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다시금 그 동안 써놓은 손편지를 꺼내 읽어보았다.

무슨 감정으로 썼나, 까맣다.

지워진 물길처럼 완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사실 육지가 보이면서 즐거웠던 건 맞다.

육지에 내려 시원한 물을 마시고도 코에 흙을 가져다 대도

내가 썼던 그 편지의 감정을 되살려보기란 어려운 일이 되었다.

다만 삐뚤빼뚤한 글씨의 흔적은 남아있었고,

 

그러니 나는 또 배를 탄다.

기나긴 항해

그 뿐이다.

 

 

 

 

 

잃어버리면 잊어버리고 싶은

잃어버린 갖은 흔적들을 듣기 위해

무료하고 힘들어도 물 위에 있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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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적에 선원이었던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항해의 고통은 세찬 바람도 거센 파도도 아니란다.

밤을 지나 아침이 되면 보이는 수평선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늘 같은 방향에서 오는 적막함과 무료함이라고,





한 달의 항해와 같은 일정은 끝이 났다.

저 혼자 끝이라고 해봤자 아직 시작도 아니 된 일을,

마음에서 벗어버리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매일 아침을 맞는 왼편의 작은 창문과

오리털이 보송보송 빠지는 겨울이불은

같은 방향에서 오는 뻔한 수평선일 게다.

그것도 모자라 편의점에서 산 1850원짜리 커피믹스를 하나 꺼내놓고

주전자에 불을 올리면 여튼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셈이 된다.

머리에 새가 날아들 리는 없지만 새집을 지어놓고,

밤새 재워놓은 컴퓨터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계획을 세워놓았지만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

오늘은 이만큼 가봐야지, 하는 마음은 늘 한결같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휘청하는 사이 시간은 또 저만큼 간다.

덕분에 생각할 겨를이 몰라보게 줄었다.

그럼에 기억에도 없는 어제의 일을 떠올릴 일이 없다, 아니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기계처럼 오늘의 일을 save 버튼 하나로 어제의 일에 덮어씌운다.

 


얼만큼 왔을까,

아직도 보이는 수평선은 무료하기 짝이없다.

언젠가 갑자기, 툭 하고 내 눈앞에 나타날 것이겠지.

매일 처럼 하는 일은 즐거움보다 무료함이 더 앞선다.

그 무료함이 정신을 갉아먹고 귀까지 갉아먹고 있었다.

그래도, 육지가 보이는 데에까지는 노를 저어야 겠지, 하며

열심히 시간을 달린다.

 

언짢은 내용이긴 하지만, 두번째 앨범을 준비하면서 느낀 점은 이렇다.

녹음을 할 때에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임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

그것이 관객일 수도 있고 마음 속 그리는 그대일수도 있고 마음 불편한 상대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나의 만족으로만 하려고 하다 보니, 제 풀에 지쳐 나가 떨어진다.

나는 늘 나에게 공연을 하고 있다. 그것은 참 고된 일이다.

혼잣말도 늘었고 지랄발광을 하는 몸짓이 생겨버렸다.

무료함에서 오는 짓이다.

공기, 그것은 때때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악기를 녹음할 때와는 달리 노래를 할 때는 입 안의 공기를 불어넣는 최소한의 시간을 가진 다음

임하는 게 좋다. 그리고 처음 노래할 때의 생소한 느낌을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의 글은 구체적인 방법이라기 보다

습관적인 마음가짐과 몸의 습성에 관한 이야기다.

육지가 보인다, 이제 저 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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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가 이제야 나온단다, 

이 노래를 7년만에 불러본단다, 

몇 번의 이사와 잦은 장비의 교체에도 불구,

7년 전 음원은 어느 틈에서도 살아남았다. 



원곡의 중요성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 노래를 참 좋아했었고, 지금도 그렇다. 

생각지도 못했던 어느 날 아침, 그녀의 핸드폰 모닝콜 음악이었다. 

헛헛하게 웃으며 베란다에서 그녀와 입맞춤 하던 게 생각이 난다. 

그것이 그녀와 세번째 키스였단다. 


7년 전, 먼 독일 땅에서 전화가 왔다.

7년 전보다 더 먼 곳으로 가야 한다, 그 사람은 그 보다 오래된 사람이니까. 

다니던 교회의 세살 많은 형으로, 기타리스트 손무현을 닮았다. 

그보다 나는 그의 기도가 좋았다. 토요일 저녁 손수 써놓은 편지같은 것을 들고

주일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대표기도하는 그의 모습이 좋았다. 

그보다 나는 그의 기도내용이 좋았다. 절차를 밟아가며 하는 기도와는 달리, 

그는 매번 자신의 솔직함을 담아 주일학교 부장선생님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런 그의 기도내용이 나는 참 좋았다. 전도사님의 말씀보다 그게 더 좋았다. 


그 형의 전화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한국 땅에 있다고. 

그래서 그녀의 생일이 곧 다가오는데 네가 음악을 만들어 줄 수 있느냐 물었다. 

나는 어떤 의미로 "yes"라고 답했을까, 할 수 있다기 보다 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일각삼추, 혹은 일각여삼추


이렇게 제목을 정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네 생각대로 해보길 바라고 부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길로 나는 광주에 있는 계림동 연습실을 새벽마다 찾았다. 

몇 번의 가사를 썼다 지우고, 책을 봤다가 그림을 그렸다가, 영화를 봤다가. 

나는 딱 한 줄 그것만 썼다. 


'잘 있어요, 나의 사랑'


나의 경우 곡을 쓸 때, 주로 한 구절을 만들고 거기에다 소극적으로 가져다 붙인다. 

사실, 다른 부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부분을 향해 달려가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내가 쓰는 곡조의 느낌이라고 말하고 싶다. 2주일이 지났을 무렵, 

이 노래를 부르기까지 되었다. 피아노를 시작할 때라 페달을 밟고 뗄 줄도 몰랐다. 

완성이라기 보다, 그 때엔 이렇게 만족. 했었다. 


시디로 굽고, 포장을 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4시간을 달려, 

10분정도 기다렸다 전해주고, 다시 광주행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메일로 보내줘도 된다고 하였지만, 

내가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리워하는 마음을 엔터하나로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삐뚤빼뚤한 옛 일기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나, 사뭇. 

그 느낌의 때가 좋아 원곡은 늘 가지고 있다. 

그리고 원곡의 순간은 시절이 지나면 잊혀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아련한 순간이자, 가장 황홀했던 순간이다. 


지금은 또 지금의 상대를 찾아 노래는 날개를 달아야 하겠고, 






일곱개의 방 프로젝트 중, 

<두번째 방>  일각여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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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3년 전, 

그 때엔 다들 살아계셨지. 


나에게 외갓집은 아주 흡족한 기억의 상대다. 

그 상태도 아주 온전하게 남아 있다,  4월 그 나무처럼. 

대청마루 구들장에 숨겨놓은 나만 아는 그림 카드는 

쥐가 훔치지 않은 이상 그대로겠지. 



 구구절절한 사연 없이 노래가 있을까


음악하는 사람은 무조건 텔레비전에 나와야 한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작곡가, 연주자, 뮤지션 보다는 '가수' 라는 칭호로 

늘 말씀하셨다. 4년제 국립대학을 마치기 전부터 공부보다는 내 '할 일'에 대해 궁금해했다. 

할머니는 월요일만 되면 가요무대를 시청하며 전화를 걸었다. 

"아직 종훈이가 안뵈, 언제 나오나... "

그로부터 얼마 뒤에 할머니는 치매증상을 보이며 밭에서부터 집으로 난 길을 헤맸다. 

삼촌의 얘기로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셔 저녁즈음 마을 저수지로 발걸음을 하던 중

길을 잃어 막내삼촌은 반나절을 동네를 뒤졌단다. 그게 온전한 정신의 마지막이었다고, 


2010년 여름

외할머니는 광주 엄마의 집으로 모셔오게 되었다. 

아주 가끔씩 나와 내 동생의 이름을 불러보고 웃던 할머니의 작은 치아가 생각난다. 

그리고 가을, 추석 무렵에 할머니의 눈 앞에 보여줄 작은 선물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모부가 20여년 찍은 가족들의 사진을 배경으로 내 노래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텔레비전을 통해 몰래 틀 생각였다. 어떻게든 텔레비전으로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그렇게라도 손수 키운 손자의 '할 일'에 대해 매듭짓고 싶었으니까. 


사진 속 할머니와 외숙모, 그리고 올 해 초 할아버지까지 여의고 돌아선,

내 기억 속의 이 노래를 이벤트적 요소로 충분함에도 끝까지 붙잡고 싶어졌다. 

더 따뜻하고 풍성하게 차린 음식으로 차리고 싶어졌다고 할까


할아버지가 보내 준 쌀이 아직 반 가마니 남았고

4월 그 나무는 올해도 꽃을 피울 것이다.

주인없이 빈 집의 무화과나무는 가지가 무성하게 엉켜있을 것이고,

대문 앞 흔한 백구들은 자취를 감추었겠지


그러니까 3년 전, 

그 때엔 다들 살아계셨는데. 


 





일곱개의 방 프로젝트 중, 

<두번째 방> 외갓집 동화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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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를 샀다. 이름은 '기타홍'

제품명은  Alhambra Classic 7P

이제 이 녀석과 녹음실에서 뒹굴어야 한다. 잘 부탁해, 


다음 날 아침 새벽처럼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교습소 전단지를 붙였다. 

바람에 온기가 담겨 귀밑을 스치고, 

각자의 지붕 모서리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봄, 봄. 하니까 봄이 오나보다. 

놓치지 말아야지 하면서 기타에 봄을 넣어봤다.



작사/곡 yunje


어딘가로부터 아주 먼 곳을 향해 

조금씩 전진하는 달팽이처럼

꿈틀대다가 벌떡 일어서서 

불쑥 찾아온 손님처럼 그래,


오늘도 지붕에서 떨어지는 

반가운 물방울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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