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구경


여행을 통해 뭔가를 느끼겠다 생각했을까, 

너에겐 여행이 필요해 너에겐 쉼이 필요해. 라고 얘기를 들었던 만큼 

나조차도 애써 그렇게 생각하고자 했었을까. 

대답은 "아니야' 다. 

여행은 쉼도 아니고 여행은 놀기도 아니다. 

여행은 구경이다. 그것도 가장 평범한 내 삶을 구경하는 일이다. 

나는 여행에 와서도 별로, 그다지 특별해지지 않았다. 

평소에 입고 다니던 옷들을 그대로 챙겨왔고 평소에 쓰던 일기장도 챙겨왔다. 

불을 구경하듯이 그저 활활 타오르는 현상만 본다. 아무것도 아무일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냥 바라보고만 있는 순간과 순간이 계속 이어져나간다. 

책을 즐겨읽지 않는다. 

한 장을 넘기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단락을 읽어내리는 동안 

머리 속에서 수만가지 생각이 자라난다. 

읽어내려가는 것 동안 생각이 자라나는 것을 

 막을 수 없어서 한 장 넘기기도 어렵다. 

어려운 책 읽기 보다는 눈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자극을 받는 게

 그러는 게 이쪽에서는 더 수월하다. 





서성이는 개를 거의 못 봤다.

대부분이 앉았거나 누워있거나, 

말 그대로 퍼져있다. 





장을 보러 나왔다. 신경전 끝에 200밧을 주고 썽태우를 탔다. 타길 잘했다. 

핫 싸이깨우 해변, 해변의 중심가, 유흥의 시작점. 보는 것만으로 피곤한 한국형 해수욕장. 

젊은 서양여자 셋을 유혹하는 태국 젊은 남자 한명을 구경한다. 

그러면서 헤나를 시도해본다. 작업이 시작될 무렵부터 끝날 때까지 그 남자는 계속 그 곳에서 무어라 재잘거린다. 

손사래를 치던 서양여자들은 어느새 웃으며 그와 대화를 나눈다. 

온 몸에 타투가 가득한 그 청년이 또 한명을 불러들인다. 

호랑이 무늬로 할까 하다가 가격이 너무 비싸 띠 모양의 헤나를 선택했다. 

뼈저리게 후회했다. 




어딜 가든 사람구경 처렴 재미난 게 없다. 




# 대화


돈을 들여 이국 땅까지 와서 집안일 회사일 등의 신변잡기적 고민과 상황들을 늘어놓는 것은 과소비일까. 눈과 입을 만족시키는 것들에 어느정도 적응이 되면서부터 놓고 온 걱정거리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두고 온 고양이를 걱정하는 것부터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삶의 숙제까지 서너밤을 꼴딱 새도 다하지 못할 각자의 이야기들이 있다. "지금 장소가 중요해?" 개그콘서트의 생활의 발견 코너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타이밍이 서로 맞지 않아도 꼭 해야 할 말은 해야한다는 의미에 개그적 코드를 삽입해서 어느정도 유행을 탄 말이다. 생각해보건대 나는 타이밍을 참 중요하게 여겨왔다. 늘 준비해 놓은 말들을 풀어놓을 시간과 공간을 기대하고 산다. 그렇지만 대화는 내 말만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는 것, 지금 내 주제는 이게 아닌데 상대방은 다른 이야기를 꺼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노력하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는 중에 누군가 쳐들어 온다면 더 없이 좋겠다. 

게다가 너와 내가 좋아하는 고양이라면,




맛있는 음식 앞에서 나눈 대화는 유익하다. 맛있는 음식은 기분을 나아지게 하고 기분이 나아지니 마음이 가벼워 쉽게 입을 열 수 있게 되니 말이다. 적당히 분위기가 있는 곳에서 적당히 맛있는 음식과 함께 저녁을 즐길 수 있다면 오늘 아침 내가 저지른 말실수라던지 점심 무렵에 네가 투정 부렸던 일들이 스스럼 없이 풀릴 수 있다. 맛집 기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식당의 선택과 예약의 유무가 데이트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오랜만에(?) 깨달았다. 중요한 사실은 나는 얼마 먹지를 못했다. 개인적인 취향이 태국의 향신료와 정확히는 그 떫떠름한 채소가 내내 입안에 남아있던 관계로. 배를 불리기 위해 맥주만 마셔댔다. 참 양보안되는 입맛이다. 이 때 잠깐 엄마 생각이 났다. "너 장가가기 힘들겠다 네 엄마 때문에." 라고 하셨던 윚집 아줌마의 말도 불현듯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 바다


















모든 것을 다 받아 줄것만 같은 바다.

하루동안 수고한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운 노을.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로 수놓을 연한 빛 하늘. 


아무런 감정없이 그대로인 너희들을,

내 욕심으로 보기좋게 담았거나, 의미를 두었던들. 

내가 먼저 잊고 나를 잊고 사는 내가, 

너희보다 나은 게 뭘까. 



# 셋째날 일기 




다툼이 생기는 것은,

마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바라보기에서 비롯되어. 
그런 일이 있고나서부터는,
제 아무리 훌륭한 풍경과
진귀한 음식들을 가리곤 한다. 

마음이 불편해짐을 느끼되,
천천히 풀어가도록 하는 것이 
물과 바다를 혼동하여 쓰지 않게 
해주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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