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두려운 이유는 보이지 않는 깊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깊이로 인해 물의 속을 볼 수 없는 것이겠지.
사람의 속도 마찬가지,
너무 깊은 사랑과 사람은 옆에서 보는 누군가에게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물처럼 맑고 물처럼 흐르며 물처럼 누군가를 자기 안에 살게 하는 마음은,
거센 풍랑에 더러워지고 상처받았어도 시간의 자정작용으로 치유되는 마음은,
사람의 것과 닮았다. 






물의 마음.   

깨끗하여 저 속이 훤히 드러나는 것도 모른 채

스스로를 수만번 흐르게 해.

깊이를 잴 수 없는 곳에 잠기게도 하고

날 수 없는 우리 몸을 떠 있게 해주네. 

어딘가로 가는 길의 마지막은 꼭 나이길. 

모든 것을 받아, 

줄 수 있는것만 같은 바다.

그토록 마르지 않는 샘. 








그제서야 잠에서 깬 내가 보인다. 유아기적 낮잠에서 깨어나니 보이는 건 바다. 
한국의 지형적 특성에 따라 광활한 바다를 보기는 어렵지만, 나는 넓은 바다보다는 연안이 좋다.
연안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멜랑멜랑함이 좋은 걸까.
연안은 떠남의 장소이고자 만남의 장소이고자. 하는 느낌에서다. 
해변은 여름바다, 해안은 교과서에 나올법한. 쓰기 나름이지만 연안이라는 말이 나는 참 좋다.  

 자주 거닐었다. 지금 이 곳을 자주 왔었다. 집과는 꽤 멀지만 충무동에서 교동 방향으로 쭈욱 걸어가면 시끌벅적한 시장을 지나 이곳이 나온다. 하루 반나절을 이 곳 오동도에 와서 해가 저물녘까지 놀았다. '놀다'의 주체만 있을 뿐 놀이의 대상이나 놀이의 도구는 없었다. 지금의 아이들처럼 컴퓨터 게임이 일상에 자주 등장하지도 않았고 만질 수 있는 것에 늘 지루함과 따분함만 느끼는 나였으니까. 물론 가난은 금상첨화였고.  나의 외할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 배를 타고 여수나루터에서 뗄감을 팔았단다. 여행이 끝날무렵 외가를 찾아 할아버지와 저녁을 하면서 그때 배로 얼마나 걸렸는지 물어보았다. 40분 정도. 고흥 도화에서 배를 타고 이곳 여수에 와서 새벽부터 오전까지 해온 장작더미를 팔았단다. 그 돈으로 내 엄마의 형제들과 밥을 먹고 논과 밭을 사고 후에는 나를 키웠단다. 이제는 노쇠해서 흐릿한 두 눈동자에 어느 덧 기운이 불어들어갔다. 회상은 노인에게 참으로 큰 위안이자 힘이다. 아버지는 나에게 바다를 늘 안겨주었다. 그것은 사실대로, 바다의 한가운데로 나를 집어넣었다. 살아서 나오는 것은 너의 의지에 달렸다고 하는 말도 안되는 가르침에 난생 처음으로 욕을 해댔고, 그러면서 헤엄을 쳤다. 가까이에서 본 바다는 무서웠다. 뭍에서 본 것처럼 아름답지도 깨끗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는 그 맛이 짠 것을 넘어 쓰기까지 했다. 발 밑은 모래는 커녕 갯벌이 나를 삼키려 달려들었고 온전히 수면 위에 떠 있는 것만이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얼마 후에 알게 되었다. 누구나 그런 형벌을 달게 받는 것은 아니다. 나는 거절하는 법을 몰랐고 시키면 시키는 데로 모든 것을 흡수해나갔다. 지금의 나는 그 때의 물과 흙이 빚어낸 것이라고 늘 말한다. 

 



바다는 온기다. 
 
늘 따스한 기억으로 맞아주니 말이다. 
 
내가 여수를 떠난 1992년 이후로 
 
나는 늘 물이 없는 곳으로 곳으로 갔지만. 
 
기억함에 있어 바다는 신화처럼 
 
나는 그 곳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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