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이 싸이추방 대작전 : 원래는 친구의 못된 행태를 낱낱이 밝혀 온라인(예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발도 못붙이게 할 심산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구와 나와의 일들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기 위함으로 변질된. 여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할 이야기 모음집. 








< 누군가가 쌓은 돌,  누군가가 쌓은 마음 >


사랑 한번에 하나씩 쌓아갔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돌을 쌓아왔을까.  

사랑 한번에 쌓은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 






< 밥,  욕쟁이 할머니가 지어주신 밥 >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것만 같은 그런 밥상.  그런데 굴비(조기)는 너무 작고 그 나물에 그 밥상. 남도음식 치고는 뭔가 소홀한 듯한 밥상.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은 된장국.  맛을 기억한다면 아마도 쌀뜨물에 양파와 멸치를 우려내고 그 안에 감자와 버섯을 넣은 된장찌개, 거기에다 두부 한 모를 큼직하게 썰어서 소복하게 얹은.  그런 된장찌개라고 내 혀는 기억하고 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외할머니가 끓여주신 그 허여멀건한 된장국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나는 이번참에 그 맛을 기억해냈다. 살림 2년 정도하니까 뭐에뭐가 들어갔는지 알겠다 싶다.  계란찜은 손도 대지 않았다. 

 전날 밤 우리는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숙소를 잡고 허기진 배를 무엇으로 채우나 살펴보았다.  편의점은 많았으나 그것보다는 따뜻한 음식, 따뜻한 음료가 필요했다.  처자들은 피곤하여 눈이라도 붙여두라고 말하고 나온 나와 정원이는 9km를 다시 돌아와서 족발집과 이러저러한 집을 찾아다니다 결국 문 연 가게는 닭발집 하나 뿐이라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매운 닭발을 맵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드리며 주문을 했다. 나는 소주와 맥주와 산사춘과 쿨피스와 맥스봉(소시지) 4개를 적당히 섞어 샀고 정원이는 닭발과 주먹밥 2인분 그리고 문제의 계란찜을 주문했다.  처자들은 아쉬운 마음이었는지 자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얼마되지 않은 양이었다. 술은 반도 줄지 않았는데 닭발과 주먹밥, 그리고 계란찜은 게눈 감추듯 없어져갔다.  계란찜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닭발이 매운 이유였을지도, 그런데 술도 안먹는 니네들이 안주를 하나씩 먹어치울 때마다 나는 조금 속이 타들어갔다. 정원이는 그랬다.  처자들 좀 먹게 고만 먹으라고.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다.  그럴 생각이면 좀 더 많이 사오지 했다. 나는 홀로 산사춘과 소주를 연거푸 비우고 냅다 잠자리에 들었다. 허름하긴 했어도 방바닥은 따수왔다. 

 재밌는 이야기 하나,  우리가 묵은 숙소의 주인장 청년 두명.  산골에 사는 터라 그랬는지 너무 순진무구한 모습들.  방 두개 주세요 했더니 6만원을 이야기 한다. 신용카드도 아니고 체크카드로 긁어달랬더니 "3개월 할부로 해드릴까요?" 란다.  아니요 그냥 일시불로 해주세요 했더니 "우와 이런 거금을 한번에 쓰신다니요!" 하며 굽신굽신 대며 부자취급 해주었다. 뭔가. 이거는. .. 뭔가. 이거는... 웃을 수도 없고. 아항.







< 정원이는 '늘' 이렇게 생겼다.  >

 나는 이런 사진을 좋아한다.  아름다운 사람의 사진.  맑은 미소와 고운 눈빛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 그 자체로 채워진다.  노래가 들려온다. 우리가 숨쉬던 그 작은 곳을 세상이라고 했지. 맞는 말이다.  사람이 채워야 세상이다.  오래전의 기억들을  간직한 사람들이면 그 자체로 나는 좋다.  지리산에 가는 길이다. 가는 길에 들렀다. 벛꽃이 만개한 논길 한 가에 차를 세워두고 걸었던 논길과 저수지 사이를 바람이 파고 들었다. 옷깃을 살며시 들춘다.  쳐다본다. 바라본다. 멀리있다. 가까이온다. 다시 바라본다. 장난기 가득하게 네 눈이 보인다. 선글라스 안이 보인다. 네 눈이. 

 황사먼지로 가득한 하늘도 굽 높은 구두덕분에 움푹움푹 땅이 패여도 나는 이 곳이 참 좋더라.

 -  화엄사에서 지리산 노고단 가는  길 중  - 







< 사진을 찍을 때에도 나는, 나보다 상대방을 더 생각한다.  >


 벚꽃보다는 개나리보다는 목련보다는 수양버들이 좋다고 하는  1981년 6월 14일 생의 정원이와 그녀는.  나와 관계한 사람들이다.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이다. 그저 아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름과 생일을 비롯한 상대방의 정보만을 가지고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니까. 적어도 나와 한가지 이상의 기억은 공유해야 하니까. 그것은 상대방도 마찬가지.  지금 사랑하며 살고 있습니까? 하는 질문에 그렇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나요? 라는 대답을 기분좋게 해야만 하는 기분이 든다.  사랑. 그것은 우정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고 연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하는 모든 행위와 생각의 덩어리들이 사랑과 관계하여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사랑을 위해서 살지는 않는다.  그 분을 본받기로 작심을 했지만 사랑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나는 곧, 지쳐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공기가 있고 그 안에는 미세먼지가 있고 또 그 안에는 또 더 작은 것들이 층층히 있을까.  나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꼭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먼지보다 더 미세하고 공기보다 더 가볍거나 무겁다.  바람이 분다.  공기를 일으키는 바람,  되려 공기가 움직여 일으키는 바람.  나는 그것이 마음과 같아서 좋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는 공기가 있지만 침묵하는 공기보다는 바람이 좋다.  나는 그 바람이 마음이었으면 싶다. 결국에 바람을 의미하는 마음이 사랑의 마음이라면 좋고, 공기가 없는 한 바람도 없기 때문에 흘러갈 곳이 없는 바람은 소용이 없듯 내 마음을 흘려보낼 '너'가 없다면 나의 사랑도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공평한 사랑이 있고 사람과 신과의 사이에는 믿음이 있다.  사랑이 공평하다는 것은 이런 말이다.  믿고 배신하고 상처주고 상처받고 하는 것에 대한 공평함. 그것은 곧 용서와 화해,  끌어안음과 고개숙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도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상처를 주는 사람이 상처도 받기 때문에 공평하다기 보다 상처를 받았음에 위로를 받기 때문에 공평하다는 말이다.  무조건 주고 받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사랑은 그 자체로 너무 선하고 아름다운 선물일 것이다. 나는 그래서 사랑의 마음이 좋다. 공평하기 때문에. 동전 한닢으로도 살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떄문에.  혹은 절대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마음에 들어있다. 사랑은.  등 뒤에 마음이 붙어 있는 한 절대로 볼 수 없다. 가슴 한가운데로 가져오기를 기다려본다. 

정원이와의 짧은 기억은. 
이런 저런 생각을 낳고. 
본의 아니게 흘러왔다. 








벚꽃

작사/곡  yunje

떨어지려 할 때 순간을 담아.
아주 잠깐이지만 그 마음을 담아. 
멀어지려 할 때 그 마음을 잡아. 
아주 잠깐이지만 그 다음은 없어. 

그대로 있어 날 사랑한 채로. 
날 보고 있어.  널 떠날 때까지.
걷다가 보면 늘 마지막으로. 
누군가 내게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줘.






 

박정원이 싸이추방대작전 : 원래는 친구의 못된 행태를 낱낱이 밝혀 온라인(예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발도 못붙이게 할 심                                                           산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구와 나와의 일들을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기 위함으로 변질된. 여                                                           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할 이야기 모음집. 



정원이와 꽃놀이를 갔다.
그리고 몇 장의 사진과 함께. 
해묵은 내 몸뚱어리의 곤함도 함께. 
그렇게 돌아왔다. 




< 남원 시내에서 9km 떨어진 곳의 파크모텔 앞 개나리, 자세히 보면 사랑이 보인다. >

 
 왜 꽃이 좋은가 물어보면 그다지 할 말은 없다. 왜 나는 너가 좋은가 물어봐도 그다지 할 말은 없다. 누구는 수백가지를 말할 수야 있겠지마는 나는 그렇지 않다. 좋은 이유야 수만가지지만 싫은 이유야 딱 한가지라 오히려 싫은 이유를 말하기가 더 쉽다.  나는 늘 그래와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 싫음에 대한 선입견보다 좋음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서 그런다 치자. 그것이 좋고 싫고를 떠나서 꽃 앞에서랴. 나는 노오란 색이 좋다. 더구나 노오란 색의 옷도 좋다. 개나리보다는 겨자색이 좋다. 하지만 꽃이다. 꽃 앞에서 나는 너보다 겨자가 더 좋다고 말 할 수야 없지 않은가. 

 우리가 만난 것은 밤. 고즈넉한 찻집. 밤이 늦어 아침을 맞고자 서둘러 차를 탔다. 매번 그랬지만 이번에도 그랬다. 무모한 친구녀석과 될 대로 되라지 하는 나. 술을 좋아하지 않는 녀석 탓에 운전을 해야하는 녀석 탓에 나는 늘 재미와는 먼 길을 간다.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하는 걱정도 없다. 그럼에도 입은 쉬지 않는다. 혼잣말, 그것이 장시간 운전하는 녀석의 졸음운전 방지법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졸음운전 방지법이기 이전에 애초부터 말 많은 녀석이었음을 아니까. 굳이 끼어들어 함께 간 처자들의 기대를 져버리게 하지는 않았다. 하동과 구례의 경계에 있는 쌍계사는 애초 우리의 목적지였음이 분명하다. 허나, 꽃놀이의 계획이 우리에게만 있을 것은 아니었고 번개로 콩볶듯 계획을 짠 우리에게 숙소는 두 팔 벌려 환영해주지 않았다. 물리적 거리로 한시간 가량을 무려 네시간을 헤매이다 남원 시내에서(원래 계획은 지리산, 그것도 구례쪽과 가까운) 9km 떨어진 외곽 산자락에 자리한 음습한 모텔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간의 과정은 너무 한심하여 스스로 퇴고를 거듭한 점 너그러이 이해해달라. 







< 구례, 화엄사. 심리적으로 '그래!'를 외치게 된 구례의 오래된 절. > 

 
 다음 날의 모습을 담았다. 시간의 순서와는 상관없이 마음이 흐르는 데로 사진도 글도 편집을 했다. 기행문이라고 하는 것이지만 나는 늘 순차적으로 배열하지 못한다. 사건의 앞 뒤는 꼭 마음의 앞 뒤와 연결되지 않았다는 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을까.  view라고 하는 것. 흔히 사진을 찍을 때라던지 눈으로 보는 경치에 관한 영어로 된 말. 나는 그것의 좋고 나쁨에 관해서도 잘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쉽지 않다. 마음이다. 늘 말해왔지만 또 그 '마음'이다. 실제로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 다름은 눈이 아닌 마음에서 오는 것이 맞다. view는 그런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나는 안정적이기 보다는 급하고 뒤엉켜서 늘 마음이 등 쪽에 붙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감추고 싶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여 나는 마음이 저 멀리 있다면 아마도 등 쪽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제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우리는 심리적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자 유머를 만들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가 가고 있는 '구례'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그리하여 어떤 질문과 어떤 걱정에도 우리는 구례를 대신한 '그래'를 구례식으로 발음하며 매번 깔깔댔다. 이것은 정원이와 나 둘만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가능한 것이다. 어쩌면 불편한 사람과 어쩌면 민망한 사람과 섞여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초특급 울트라..어쩌고 저쩌고.. 하는 개그를 하면서 울고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가능한, 사람이 만난 자리에는 이야기가 필요하며 그것이 어떤 목적을 가진 이야기기 보다는 적당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그런 이야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유머가 넘치는 남자, 센스있는 남자는 곧 그런 방향성에 대한 감각이 꽤 서있는 듯한 남자일 것이다. 일과 밥과 잠 밖에 모르는 남자를 만나면 당연히 여자는 피곤할 것이다. 그것도 마음이. 그런 의미에서 정원이는 약간의 센스와 약간의 유머가 넘치는 그런 남자들 중 한 명이다. 꼭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나의 마음이 닫혀 있다고 생각되던 순간>


 채도가 강하지 않은 '듯한' 사물이 좋다. 꾸밈이 없다는 말도 그 한 줄기.  살아오면서 장만한 옷들도 거의 그렇다. 희끄무레하다던지 물이 빠진 색 같다던지 하는 말. 꾸밈이 없다는 말과 꾸미지 않았다는 말은 곱씹어보면 참 다른 말인 듯 하여 나는 꾸밈이 없다는 말이 더 좋다. 그래서 친구가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연인과 친구의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것은 솔직함의 유무. 물론 누구에게는 솔직하고 누구에게는 솔직하지 않단 말은 아니되 이 사람과 나눌 말과 저 사람과 나눌 말을 가린다는 의미이다. 모든 이야기들을 공평하게 나눴다면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줄 수 없었겠지 않을까.  나는 마음이 늘 닫혀있는 사람으로 그래서 친구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한번은.  
 고통받고 있다고 여기면서도 나는 그 통증을 즐거이 겪고 분연히 일어나 또 걷고. 넘어지더라도 가급적이면 흉터는 아주 잘 보이는 곳으로 하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싸움과는 다르게 나는 홀로 고된 싸움을 붙이고 말리고. 그런 모든 과정들을 저 혼자 간직하고. 목구멍 밖으로 나올 만하면 술로 가라앉히고 혹은 기도로. 그것이 과연 질 좋은 삶의 모양일까 생각도 해본다마는 방도는 늘 다르지 않았다. 친구. 나는 나의 친구가 그런 나의 모습을 먼 곳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니 참으로 좋다.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말보다 그런 나의 모습이 보인다니 더 좋다.  왜 나는 늘 문을 열고 나오지 않을까. 열린 문이 더 보기 좋지 않을까 하여. 나는 문이 닫힌 저놈의 사진을 찍고 한참을 바라보다 '너 마음의 문도 그러지 않느냐!' 하는 생각에 흠칫 놀랬다. 그래서 나는 내내 저 문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는 고민에 사로잡혔다. 안다. 열어본다고 좋을 것 하나 없다.  열기 전에 내 마음부터. 나는 무엇으로 감추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나는 무엇으로부터 감추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 돌계단, 나는 너희를 한 켠에 두고 또한 나를 한 켠에 담는다 .>


 뒷짐지지마, 아저씨 같아. 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우리는 어느새 세월을 벗삼아 서로 비슷한 행동을 취하며 걷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네가 아주 어릴 적에 손을 모으는 것을 나는 일찌기 본 적이 없다. 있었다 하더라도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과연 그런 것들이 왜 생각이 났을까. 나는 너의 말을 듣고 들었다. 



너는 일관적이어서 좋다.
친구를 떠나 사람이 일관적이라는 것은 본디 좋은 것일게다. 
욕을 해도 그모양 그꼴로 하고 웃어도 그모양 그꼴로 웃는다. 
내 얘기를 할 때에도 과거의 모습에 비춰 나를 혼구녕 낸다. 
나는 너의 습관적인 태도에 익숙하다.  그럼에 좋다. 
누군들 변하지 않고 살까마는 내게 비친 너는 정말 변하지 않아서 좋다.

나에게 '원래 너는 그랬어' 라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좋다. 
그것은 과거로부터 온 편지를 읽는 것처럼 달콤하고 끈적해서 좋다. 
나는 늘 좋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싫다고 하여도 네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홀로 담았다. 너는 어떤 그릇에 담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번 홀로 담았다. 
네가 한 말과 네 표정. 말은 하지 않아도 네 마음과 비슷한 사물들을 담았다. 
그것은 어쩌면 사진일지도 모르고 스쳐지나간 어떤 풍경일지도 모르겠다. 
너를 담아온 내 모든 세월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함께. 나는 그것을 믿는다. 
너를 믿는 것이 아니다. 함께.라는 심정을 믿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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