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우리 셋은 만났다. 와, 사진 너무 적나라하다. 셋 다 용됐다. 정말. 많이도 변했구나 하는 생각. 

오늘은 백수훈이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아마도 오늘 하루 종일 해도 모자랄 것이다. 그렇지만 해야지, 아무렴 해야 되겠다. 백수훈이는 겁나게 하얀 애였다. 정원이와 나랑 비교하면, 무슨 사료만 먹고 자란 놈마냥 희고 복슬한 것이, 속눈썹까지 아름답게 재수없는 놈이었다. 녀석은 곧잘 여자얘기를 해댔는데 그래서 정원이가 좋아했다. 지금도 하는 얘기 중 하나는 이거다. 

정원 : " 나의 싸부는 백수훈이야..." 그러면, 

수훈 : " 청출어람이지, 뭐." 한다. 

그럼 난 : " ... "

하긴 나도 백수훈이랑 친구가 된 것이 여자 때문이기는 하다. 
어느 날, 수훈이랑 쇼핑을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 날 수훈이는 어떤 여학생과의 미팅 관례로 다른 친구 한놈과 도서관 창문을 넘었다. 나와 그다지 멀지 않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 현장을 목격한 나는, 정말 말도 안나왔다. 그런 면에서 정원이는 수훈이보다 백 배는 낫다. 정말 약속안지키는 애들은. 쩝. 하여튼 그 덕에 난 홀로 아무말도 못하고, 이래저래 학교생활만 줄기차게 열심히 고독하게 하고 있을 무렵, 그 일이 있은지 일 주일이 되는 일요일 오후, 나는 교회에서 노닥노닥 거리고 있는데 뒷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아까 말한 복슬한 놈이 들어오지 않겠는가. 백수훈이었다. 그 때 미팅한 여자아이와 잠깐 사귀었는지, 아니면 그냥 만나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여튼 그 여자와의 이별을 맛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래서 뭐할까 난 무지 고민했었는데 수훈이는 나를 신세계 백화점 1층에 있는 커피숍으로 데리고 갔다. 처음으로 가보는 커피숍이었다. 모든 게 처음인 그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내 마음도 그런 의미에서 처음이었다. 그 일 이루로 급격하게 우리는 친해졌다고 해도 뭐. 봐도 된다. 별다른 일없이 지냈으니까. 

잠깐 박정원이 얘기를 소홀히 한 것 같은데, 아마 이때즈음 박정원이는 공부를 열심히 했던 걸로 기억한다. 앞선 편에서 얘기 했듯, 과외선생님 하나두고, 무지하게 수학문제 하나를 풀어제꼈을 것이다. 단순히. 우리에게 자랑하기 위해. 아, 이런 일도 있었다. 박정원이는 어딜 가서도 이쁨받고 인정받는 아이였기에 고등학교를 와서도 그 현상은 여전했다. 1학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아이들 이름을 거의 외우지 못했었는데, 꼭 정원이 이름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호명할 때면 " 박정원이 옆에~!!(나) ", " 박정원이 앞에~!!(수훈) " 이렇게 부르시곤 했다. 역시 박정원이다. 또 한번은 지금 전공하고 있는 것이 생물인 것에 근거하여 생물 과목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생물선생님마저 좋아했다. 생물선생님은 서른 가까운 여선생님이셨는데, 그 선생님도 정원이를 꽤 좋아했던걸로 기억한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숫놈냄새? 여튼 하루는 그 선생님께서 수업시작하자마나 잔소리에, 뭐에, 화까지 내시는 걸 보고 있던 박정원,

" 선생님 그날이십니까..."  했다. 

그 날 박정원이는 참 많이도 맞았다. 옆에서 웃음을 참고 있던 우리도 조금, 아주 조금 맞았지만 정원이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여튼 정원이는 어디서건, 자신의 영역표시는 확실하게 했다. 숫놈냄새, 지극한 그런 놈이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