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간직하고 있으면 병이 난다. 

나의 병은 오래 간직하는 습관 덕에 생겨난 것이므로, 

농구골대에 공을 놓고 온다는 느낌으로 살아야 한다. 

마음, 마음, 운운하면서 정작 나는 마음을 닫고 살고 있다. 

경계가 뚜렷한 것은 그 때문이겠지. 


나를 용서하는 첫번째 작업은 놓아두는 것이다. 

애써 그 일을 떠올리고 했어야 할 말들을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일련의 시나리오 작업들을 우선멈춤하고 뒤돌아보아야 한다. 

과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보아야 한다. 




# 미워하는 마음없이


  공항에서 동부시외버스터미널까지 택시  ->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라용시까지 버스    ->   라용에서 반 페 항구까지 콜택시

    300밧(한화로 약 12000원), 30분 소요      134밧(한화로 약 5000원), 3시간 소요         200밧(한화로 약 7000원), 20분 소요


관광객에 대한 교통요금의 바가지가 많다고 들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라용시까지 194km정도 되니 서울에서 전주까지 거리인데도 버스요금은 우리나라보다 싸지만 택시요금은 비싸다. 조금 고생하여 미터택시를 타면 되지만 더운 날씨에 시간에 쫒겨 일단은 가고 보자는 마음으로 잡아탄 택시는 거의 선불택시. 거리에 비해 교통체증이 있는 구간들이 많고, 고속도로를 탈 경우에는 세금까지 얹어 주어야 하며, 맞게 가는지 돌아가는지 알 도리가 없어 미터기 올라가는 모양새만 지켜보고 있자니 화가 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거의 대부분의 택시기사는 영어는 불가하고 도로를 선택하는 재주(?)도 엉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동부버스 터미널에서는 라용으로 가는 버스를 탈 필요는 없었다. 공항에서는 라용으로 가는 버스밖에 없다고 해서 선택을 했던 것. 버스 터미널에는 라용이 아닌 반 페(반페항구에서 사멧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야한다)로 직행하는 버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라용에서 반 페까지의 거리 13km, 내가 생각이 짧았다. 라용을 거쳐 가지 않고 바로 반 페항구의 터미널로 가는 경우라면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고 터미널에서 항구까지는 도보로 5분 거리이다. 짐이 많을 경우에는 20밧 정도의 금액으로 썽태우(오토바이트럭)를 이용해도 되는데 여권분실의 여파인지 마음만 급해져서 화장실에도 들르지 못하고 버스에 올랐다.  여하튼 새벽 5시 반부터 부리나케 움직여 1시 15분에 반 페 항구에 도착할 수 있었고 1시 30분에 있는 보트를 탈 수 있었다.  



라용까지 가는 버스는 제시간에 출발하지 않았다. 한국의 고속버스와는 달리 태국 대부분의 시외버스는 시간을 지키지 않고 최대한의 인원이 탈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하는 듯 했다. 마치 옛 시골의 비포장길을 달리는, 차표받는 여학생이 있는 군내버스와 같은 느낌이었다. 비슷하게 차표를 받고 탑승해 함께 목적지까지 가는 처녀가 있었고, 빵빵한 냉방 때문인지 이동 내내 담요를 목까지 덮고 잠을 잤다. 화장실이다, 버스안에 화장실이 있었다. 사용해 보지는 않았지만 버스의 상태로 보아 정말 급하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냈을 터, 난 급한 일이 없었다. 


먹는 이야기는 차후에 하겠다. 한다고 해도 입맛에 맞느니 마니 하는 이야기가 전부겠지만, 태국와서 먹은 첫번째 '밥' 이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지만 찐밥밖에 없어 날씨도 더운데 쉰 내 비슷한 밥의 냄새를 맡고 있기가 조금 힘들었다. 휴게소에 들른 버스가 차에 기름을 넣는다. 기사아저씨가 방송했을지도 모르지만 못알아듣는 통에 버스가 출발하는지 주시하며 이것 저것을 구경하다 1000원짜리 밥과 고기반찬을 샀다. 고기를 사면 밥을 주는 내용의 군것질인데 아침부터 요기를 하지 못해 밥알 스무개와 손톱만큼의 고기를 빼내 먹었다. 그래도 쌀이라고 어느정도 든든했다. 다시 버스는 출발했다. 한 명이 타지 않았다. 기사아저씨는 확인을 했음에도 그냥 출발했다. 멀리서 손님의 외침소리가 들려왔고 그제서야 버스는 멈춰 승객을 태우고 출발했다. 이런 나라구나. 



























<반페의 항구> 

항구는 총 3개가 있다, 섬의 동쪽과 서쪽을 운행하는 리조트 전용 보트가 중앙의 나단 선착장 좌우로 하나씩 있다. 

위 사진은 아오 프라오로 직행하는 보트가 있는 나단 선착장의 오른 편에 위치한 선착장. 



안도의 숨이 나온다. 날씨가 좋다. 이제 저 보트만 타면 된다. 이동의 이동, 그리고 또 이동을 했다. 그 동안의 여정동안 나눈 이야기는 고작 이것과 저것을 분별하는 질문과 대답, 그리고 외면과 한숨 그것이 전부였다. 이동의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에서야 덤덤하지만 아무 기억도 나지 않고 오로지 길과 표지판, 종이의 이름과 종이의 숫자만 붙잡았다. 이 과정의 제목은 '미워하는 마음없이'다. 왜일까, 우리는 둘이 왔다. 둘이 되어 오는 과정에 이만큼의 이동이 있었다면 마음과 행동에 얼마나 많은 제약과 갈등이 있었을까다. 이 만큼의 거리동안 마음의 거리도 한참은 떨어진 듯, 덥운 날씨에 몸이 힘들어 서로를 챙겨주지 못한 것보다 마음이 힘들어 외면하여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 않았을까. 미워하는 마음없이 저 배를 탈 수 있었을까. 어떤 큰 사건이 아니더라도 아주 중대한 사건이 아님에도, 간혹 우리의 심각한 문제들은 별 것 아닌 것에도 내동댕이 쳐질 수 있다. 




# 물줄기




시원한 물줄기가 엉덩이를 강타했다.

리조트 전용보트에는 중국인 셋과 젊은 서양 여자 둘,

내 옆으로 서양 부부 한쌍이 탔다. 

보트의 후미, 구멍이 난 옆에 앉은 나는 

일렁이는 물결 속으로 보트가 굽이칠 때마다

엉덩이로 물세례를 받았다. 종래에는 바닷물에 얼굴까지

침범했다. 오른쪽은 이미 시커멓게 젖었고 서양 부부는 

그럴 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녀도 웃었다. 그 물줄기로 웃었다. 

바다에 젖은 바람 때문에 오히려 더 축축하게 느껴졌지만

간간히 올라오는 물줄기로 인해 서로 웃었다. 



 



설탕물과 과일.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뒤끝이 달달한 물과는 다른 

시원한 설탕물과 새콤한 과일들이 그동안의 여정을 달달하게 해주었다. 

아오 프라오 리조트, 

섬의 서쪽에 위치한 인적이 드문 해변가에 드디어 우리 둘, 하얀 모래를 밟았다. 

거무퉤퉤한 피부의 현지인들은 친절했고 상냥했으며 웃음이 건강해 보였다. 

휴양이다. 쉬어야 한다. 쉬기 위해서 그렇게 고생을 했나보다. 

오는 길을 그렇게 만들어 놓은 건 쉬라고 그런 걸꺼다. 

정말이지, 쉴 수 밖에 없는 풍경이다.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풍경이다. 



.  

 






# 둘째 날 일기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니다. 

나는 여태 옳은 일에 열올리고 있다. 

여행중에 벌어진 사소한 일은 결코 사소하게 끝나지 않는다.

한걸음 더 갈수록 침묵은 더 깊어지고 마음은 서로 멀어진다.

다리를 건너면

기다리는 곳에 닿는다.


정작 닿아야 할 것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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