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화장실에 앉아 볼일을 보는 중이었는데 문을 비집고 들어와 내 왼편에 앉았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으나 내 비밀을 들켜버린 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의 하루를 털어놓는 유일한 상대. 

나의 알몸을 보고 나의 표정에 담긴 느낌을 읽고 나의 근심을 바라보는 유일한 녀석. 


개와 고양이를 혐오하지는 않아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와는 별개로 살아가는 이웃집 여자 쯤으로만 생각하지.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해치지는 않고, 도움을 청하면 어느정도 손을 뻗어줄 수 있는.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개와 고양이를 비롯한 생명체들에 대한 관심은 애초에 없었다. 


그녀의 고양이를 만났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먹구름 색 옷을 입은, 녹색 눈과의 조화로운 생명.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스레 걷고 뛰어오르며 품에 알맞게 안겼다. 

무엇보다, 고양이는 예뻤다. 이름을 물었다. 

"청이" 






"이 도시를 통틀어 가장 멋진 이름은 나일껄, 

이 도시의 고양이들은 낭만이 없어. 

자기 이름이 무언지 관심이 없지. 


나는 많이 먹지 않아, 

기관지가 좋지 않은 탓일수도 있고. 

젊었을 적 호기심에 집을 나간 후로 

살이 잘 찌지 않아.

 

그래도, 두고봐. 언젠가 때가 되면 보란듯이, 

날렵하게 날아오를테니. "







풀과 나무가 자라듯 살아가는 줄 알았다. 

대부분의 이들은 나처럼 생각한다, 저 알아서 살아가는 줄로. 

사실, 그렇게 살아만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산다는 것이 뭘까. 생각나지 않도록, 


때때로 너의 필요는 생각해보지 못한 채, 나의 필요로 너를 안았다. 

늘 말없이 안겨주었지만, 가끔 네가 나를 할퀴고 돌아설 때에는 말이다. 

너를 좋아하고 사랑스러워 하는 마음에 너를 아프게 했나보구나, 생각했다. 

그것도 한참이 지난 어느 날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너의 자는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날에 나는 참 놀랐다. 

맵시있는 외모에 비해 너무 형편없는 모습이 아니었나 생각하다, 

나는 네게 어떤 것을 기대하고 있었나. 너에게까지 내 욕심의 일부를 던져주었나. 

먹지 않으면 걱정하는 것보다 실망부터 먼저 하는, 그것이 인간인 나의 모습인가. 

  



" 인간들이 사랑할 때는

있는 힘껏 사랑한다고들 하지. 


그런데 그 힘 조절에 실패하면 

누군가 많이 아파한다는 걸 아는지 몰라. 


들풀을 보는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대해주면 좋겠어. 


꽃이 예쁘다고 꺾으면 안되듯이

내가 예쁘다고 있는 힘껏 만지거나 안으면, 


나는 너의 사랑에 상관없이

너를 할퀴거나 도망을 하겠어. 


그러니, 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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