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생일, 그 아침에. 

나는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던 탓인지 새벽에 잠에서 깨서

거실 등을 켰다. 아직 세상은 고요하고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만 웅웅댔다. 

소곤소곤 잠든 아내의 얼굴을 문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빛을 통해 보았다. 

그것 뿐이었다, 그럼에도 참 좋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어제와 다를 오늘이 될 이유는 없었지마는,

새삼 낯설게 여겨지는 것이라면 오늘이 일년 중 하루(만)이기 때문이겠다.  

어머니가 보내주신 배즙을 하나 뜯어 컵에 따라붓고 혀로 단맛을 느껴가며

목젖으로 흘려보냈다. 아직도 고요한 탓인지 꿀꺽이는 소리가 집안을 울렸다. 

그것 뿐이었다, 잠시잠깐 어머니의 고통에 대한 회상의 묵념을. 


일곱시가 되자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는 아내의 모습을 

침대에 누워 바라보았다_여섯시 즈음 조용히 다시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고 있었다_

갈치를 굽는 냄새가 났고, 미역국에 넣을 소고기를 미처 사놓지 못해 탄식하던 어젯밤 

아내가 생각나 피식 웃었다. 괜찮다했으니, 괜찮을 것이다. 아내도 나도, 

방금 아버지한테 축하전화를 받았다. 미역국은 먹었니? 라는 물음에 먹었습니다. 

그랬더니, 맛있든? 그래서 예전에 드셔보지 않았습니까? 하하 했다. 


아내가 안방으로 가더니 이내 책을 한권 들고 나온다. 

내가 그 동안 페이스북에 올린 1년여의 흔적을 책으로 만들어 선물이라고 주었다. 

나는 그 때 그것을 잠시잠깐 훑어보았고, 지금은 자리를 깔고 천천히 읽는다. 

과연, 아내는 내게 그 동안 시간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녀와 내가 함께 한 기록과 사진, 그리고 순간의 마음들이 오늘에 와 닿는다. 

그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려는 듯이, 앞으로도 같이 순간을 나누자는 말이. 

지금 곁에 와 있다. 





일하는 재미와 사는 재미가 같아서

나의 경우에는 그래서, 음악 외의 것들을 조금은 소홀한 면이 없지 않다. 

곧 성탄절인데, 함께 트리를 꾸미고 기분을 만끽하면 좋겠다는 아내의 제안에 

흔쾌히 그렇게 하자고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다. 

사는 재미가 일하는 재미에게 말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재미로 사는 재미를 대신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나와 내 가정과 주위 사람들과의 순간들을 

구차하게 읽어보아야 하고, 발을 담가보아야 한다. 

춥다고 장갑을 낄 것이 아니라 주머니에 깊숙히 손을 찔러넣고 걸을 것이 아니라, 

손을 빼고 손을 잡고 웅크린 채 있는 나와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고양이 두마리가 보일러를 대신해 집안을 훈훈하게 만든다. 

그 체온과 함께 추운 겨울을 보낸다는 것이 놀랍도록 감사하다. 

우리에게 아직 아이는 없다. 그 체온이 하나 더 늘어나면 좋을 일이지만, 

불행히 아직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_과거의 일은 잘 되지 않았다. 

언젠가 그 체온이 우리에게 안전하게 온다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 다섯이 혹은 여섯이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따뜻한. 

겨울과 사계절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어서, 무엇을 해야지 싶을 때. 

아니, 네 이야기를 듣고 네 생각을 하고

우리, 사는 재미에 폭 빠져 일하는 것을 뒤로하고

그냥, 크리스마스 트리나 종일 만들어 

보자, 보자. 



그리고 이날,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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