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유

예전 나 어렸을 때 매일우유 한팩을 한솥 끓이는 중인 된장국에 넣어서, 그렇게 데워서 먹었던 것이 생각났다. 아이가 먹는 우유는 냉장보관이 필요없는 멸균우유라는 것인데 이것도 내가 아빠가 되고나서 알았다. 그 우유에 달린 빨대의 비닐을 뜯고, 넘치지 않게 우유의 양 날개를 펴서 그 중간에 꽂아 아이에게 건넨다. 아, 그 전에 우유곽을 눌러 안에 든 내용물이 온 집안을 더럽히지 않게 플라스틱 용기 안에 우유팩을 넣어서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2 1987

1987 영화를 보았다. 그 때의 청춘들이 지금 쉰을 바라본다. 쉽게 이룬 쉰이 아니었을 게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절 사람들이 보낸 시간은 지금과 같이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10대와 20대에 써보지 않았던 일기를 다시금 쓰게 되었다. 써보려고 노력한다. 지나고보니 흘려보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서다. 정확히는 흘려보낸 시간을 기억하지 못함에 대해서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무엇을 느끼는지에 대해 나는 어떤 순간을 기억하고 싶은지에 대해. 그 모든 일상사들은 매순간마다 단단히 붙잡아두지 않으면 언제 소리도 없이 부서져버릴지 모를 정도로 연약하기 때문이라고 적어둔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아내와 부부관계를 가졌다. 



#3 육아퇴근

복싱을 시작했다. 집에만 있는 것도 답답하고 아이를 돌보려고 하니 체력도 필요했고, 어떤 식으로든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낼 요량으로. 책 <모방범>을 읽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 잠깐씩 읽을 생각이었는데 현실은 책읽을 시간을 벌기위해 반찬 만드는 일을 미루다시피한다. 가급적이면 이야기의 연재가 되지 않는 비소설을 읽어야겠다. 하지만 닥치는 대로 읽기보다 읽고 싶은 걸 읽겠다. 해야만 하는 것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것을 뒤에 한다. 그럼에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직 육아 시작 전인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4 말다툼

오늘 장볼 것_ 카누라떼, 국거리, 칫솔, 은수가 먹을 고기와 야채등(생협)

오늘 해야할 것들_ 전기세, 아내를 위해 구입한 코트 금액지불


말다툼, 생각의 차이, 기억의 모호함, 핑계의 구차함, 대화의 단절, 온도의 차이, 흐르는지 고여있는지, 더 좋아하고 덜 좋아하고 문제라기보다 서로가 각자에 대한 각인이 필요해.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데보다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그리고 당신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여기는지. 나는 그것에 대한 서로의 차이, 그것에 대한 단절이 아쉽기만 하다. 



#5 뜻밖의 선물

소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직접 소고기를 먹이는 것보다 밥을 질게 해 소고기 잘게 다진 것을 비벼먹인다. 간지럼을 태우거나 비행기소리를 내주면 은수가 입을 벌리는데 그 순간 밥한숟가락을 밀어넣는다. 세번 중 한번은 뱉어낸다. 일본뇌염 1차접종과 A형 간염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 대기하는 중에 남자아이와 딱지치기를 했다. 은수에게 다가와 같이 하자고 말하는 것을 "아직 어려서 이런 건 잘 못해, 아저씨랑 하자" 고 30분 정도 땀흘리고 놀았다. 먼저 온 남자아이가 진료실에 먼저 들어갔고 잠시 후 어마어마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마도 주사를 맞는 듯. 아무것도 모르는 은수는 아직도 내 무릎 아래에서 헤헤 거리며 딱지를 조물락댔다. 엉엉 울면서 진료실 문을 나온 남자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은수 손등에 작은 스티커를 붙여주고 떠났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손톱만한 크기의 애벌레 스티커였다. "은수야~ 먹는 거 아니야!"   



#6 요리는 어렵다

가지찜 - 가지 2개를 8~10분 정도 센 불에서 쪄준다. 국간장(아기간장을 굳이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양으로 조절한다, 시중에 파는 것은 못미더워서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멸치액젓으로 대신했다) 반 스푼, 참기름 반 스푼, 볶은참깨 한 스푼, 다진 마늘 아주 살짝. 손으로 가지를 아주 잘게 찢어서 양념에 고루 섞어준다. 은수가 잘 먹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처음 접하는 음식이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먹어주면 좋으련만, 위 아래 네개씩 여덟개의 앞니로 음식을 살짝 물더니 뱉어낸다. 간을 하지 않은 음식을 간을 보다가 원재료 본연의 맛을 알아가는 중이다. 은수 덕분이다, 이렇게 맛있는 걸 왜 안먹어! 


버섯두부전 - 버섯은 표고, 새송이, 양송이, 뭐든 상관없이 2개. 브로콜리 1개, 파프리카 1/2개, 계란, 두부는 반모. 재료들은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믹서로 적당히 갈아준다. 물이 돼버리면 곤란하니 적당히, 파프리카와 양파는 물이 생기기 때문에 가능하면 칼로 잘게 다져주는 게 좋다. 두부는 으깨서 천으로 물기를 짜준다. 모든 재료를 섞고 계란으로 반죽해준다. 기름을 두르고 노릇노릇 구워준다. 기름이 튀기 때문에 가능하면 기름을 붓고 천이나 키친타올로 닦아내 팬에 기름이 묻어있는 느낌이 좋다. 두부에 물기가 아직 남아서 부칠 때 부서질 경우 부침가루 혹은 밀가루를 두스푼 정도 넣어주면 식감도 살고 맛있다. 아내와 먹을 때는 이렇게 먹었다. 



#7 사고

버섯두부전을 부치다 그만, 기름 한방울이 은수 눈가로 튀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환기를 시키느라 전을 뒤집느라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급한 마음에 찬물로 씻어내리고, 그 언젠가 엄마가 내게 붙여준 감자가 생각나서 그렇게 해보려다 울고 보채는 아이를 안아주느라 다 관두고 약국으로 냅다 뛰었다. 아내는 수화기 너머로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119에 전화를 걸어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고 했다. 빨갛게 부어오른 아이의 눈가를 호호 불어가며 약국에 갔더니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약사는 최소한의 응급처치에 대한 조언도 생략한 채 아이를 위해서는 병원부터 찾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약사의 입장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성의가 없는 답변이 아닌가 싶어 다른 약국을 들렀지만 아르바이트 직원인지 약도 구분 못하고 십여분이 흘렀다. 우여곡절 끝에 퇴근한 아내와 만나 부랴부랴 밤 늦게까지 하는 병원엘 찾았다. 은수의 주민번호를 몰라서 한참을 대기하면서 누굴 탓하겠냐 싶었다. 어른이라고 아이의 아픔을 눈으로만 보고 마음으로만 아파할 뿐 손과 발을 바쁘게 움직여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번 기회로 아니, 이런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뭔가 각오가 다져지는가 싶다. 내가 살펴야 할 것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것보다 다른 일보다 우선 해야할 것이 아이의 안전이라고 배웠다. 잘 먹고 잘 크는 것은 그 다음의 일, 무엇보다 아이에게 눈과 귀를 떼어선 안된다. 



#8 돌 지난 아이 유치 관리법 

아이의 치아 수가 정상인지 알려면 개월 수에서 6을 빼면 그 시기의 정상치아 개수라고 한다. 은수는 13개월 이니까 13-6=7 현재는 위 아래로 8개니까 좀 빠르다고 할 수 있다. 이가 날 때 아파하는 아이에 대해, 보통 생후 12~15개월에 나는 첫 어금니와 20~24개월에 나는 두번째 어금니가 가장 아프단다. 이럴 때 차가운 것(얼음 등)과 치아발육기를 물리는 것이 근본적인 효과는 없어도 잠시 통증을 멎게 해준단다. 최근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의사선생님께 물었더니 너무 아파하면 부루펜 시럽이나 타이레놀 시럽을 한 스푼 먹여도 된다고 한다. 그보다 직접 손가락으로 잇몸 마사지를 해주는 것이 좋고 되도록이면 찬바람은 맞지 않게 해주라고 했다. 유치 관리 원칙 첫번째는 젖병을 끊는 것, 두번째는 단 것을 적게 먹이는 것, 세번째는 엄마 아빠와 함께 양치질을 하는 것이다. 지금 은수 혼자 치카치카 하는 중이지만 그래도 마무리는 부모가 직접 해주는 것이 좋다. 



#9 아빠의 식사

내가 밥을 먹을 때 되도록이면 은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은수가 볼 만한 곳을 바라보거나 딴청을 피운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렇게 정신을 '아빠'에게서 돌리는 1~3분여 동안 후루룩, 밥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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