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락모락 피어오르다_의 모락<morock>이다. 

할아버지는 논을 짓고 할머니는 밭을 짓고 아버지는 집을 짓고 엄마는 밥을 짓고

동생은 모래성을 짓고 나는 노래를 짓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기서 무엇이라도 짓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다.

피어오르다는 말이 좋다. 그것보다 그 앞에 붙어 맛을 더해주는 모락모락이라는 말이 좋다. 

사전적 의미로는 이렇다.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조금씩 떠오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조건없이 무엇이 떠오른다면 좋은 일, 한 줄기 한 가지라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면 좋겠다.  



# 모든 것이 이해되는 단 한 순간

 사실, 나는 그것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깊이를 다 잴 수는 없었겠지만, 그것을 드러내놓고 서로가 이내 이야기하는 순간만이라도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늦은 순간이라고 하는 지금만 남아 엉킨 것들을 억지로 풀어내다가 가위로 잘라내고 있는 나만 남겨져 있는 느낌이다. 오해를 일삼느라 내 일에도 오해가 생길까봐 걱정이 되는 와중에 아내는 나의 근심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너를 응원해, 응원이라는 말밖에 못하지만 마음을 다해 너를 응원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인가, 응원인가. 혼자서 하는 일을 수차례 겪어본 후로 나는 도움받는 일에 인색하고 응원받는 일에는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인정과 존중의 다름아닌 이름으로 알고 있어 당연히 해야하는 인사치레로 여겨짐을 나는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렇다, 나는 또 홀로 내 일과 내 일과 관련된 것들만 주구장창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어왔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버려두고 있었다. 오해가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내가 주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해가 저물도록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하는 것이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것은 나의 하루였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늦어져도, 얼룩이져도, 다시 무너지고 망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의 하루였기 때문이고, 나의 내일이 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 그러니까 모든 것이 이해되는 어떤 한 순간부터 나는 손수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계획을 하게 되었고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점점 번져가길 원했다. 최양의 방을 꾸미는 데 있어_꾸민다기 보다는 공사의 일이지만_최대한 최양의 의견과 나의 의견을 번갈아 살폈다. 최양이 내게 피아노를 보러 가자고 청한 것이 그런 일들 중에 하나라고 여겼다. 우리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 서로의 뜻을 묻고 답하는 것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음에도, 일의 수월함과 경제적 효율 때문에 줄곧 생략을 해버렸던 것이었다면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평균을 맞춰 가는 것이 나중을 위해 좋을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최양도 그런 마음이었을 테지만, 일이 점점 늘어지고 길어지는 데에 불만을 감출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천장은 잘 붙었다. 옥상에서부터 난 배수관을 어쩌지 못해 흉측한 모양으로 천장 한 구석을 장식하고는 있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그대로 두었다가 은박지로 살짝 감쌌다. 이케아에서 직접 산 조명으로 이틀을 옥신각신 했지만 천장을 이용해 달지 못해 벽면 구석을 이용해 전등을 달았다. 며칠 후 방음창문을 달고 몇가지 가구를 넣어 완성했다. 



 3월 6일 금요일 밤의 일인가 싶다. 저 때가 금요일인 것이 확실하다. 매주 금요일 밤마다 합주를 하는데 연락없이 합주를 빠지고 밤새 페인트를 발랐던 기억에서 그렇다. 최양과 페인트색을 고르고_그 고른 페인트도 주문한 것이 아니라 유선생님이 직접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_한 번 두번 덧칠을 해나가는 과정에 있어 묻고 번지는 일을 우려해 하루밤낮을 이용해야했다. 페인트를 바르고 마를 동안에 서툰 손동작으로 군데군데 실리콘을 바르고 페인트가 마른 것 같으면 다시 덧칠을 하니 어느덧 아침이 밝았다. 본드냄새와 페인트 냄새가 묘하게 섞인 가운데 교습생과 수업을 하기도 하면서 어질러놓은 장판 위에서 소주를 따 마시기도 하면서 그 주말을 보냈다. 내가 성격이 급한가 자문하기도 하면서 발라놓은 마스킹 테잎을 뜯어내고 미진한 부분을 낑낑대면서 맞춰나갔다. 공구를 찾으러 보일러실을 왔다갔다 하는 중에 옥상마당을 슬며시 비추는 달빛, 그 하나가 위안이 되는 그런 밤이 계속 되었다.   

# 첫줄

 바닥이 평평하지 않은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천장이 삐뚠 것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문이 닫히지 않는다는 것과 붙어 있던 것들이 갑자기 떨어져 나온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문의 용도는 열고 닫는 것에 있으며 고정시켜 놓기 위해 붙인 것인데 그것이 자기의 몫을 해내지 못한다면 왜 공을 들여 '일'을 했느냐는 말이다. 디자인을 고려해 그렇게 했다고 하는 것을 두고 나는 혀를 내둘렀다. 나에게 미적 감각이 없다고 해도 나는 괜찮다, 내가 우리가 여태껏 일을 하는 소기의 목적은 공간의 정확성과 효율성에 있지 보기에 좋고 아름다운 것에 있지 않았다. 꾸미고 가꾸는 것은 시간을 들여 하면 될 일,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눈과 손을 빌어 부탁할 수 있는 일이기에_자꾸 미적인 부분에서 공사의 시간을 미루는 것이 너무 싫었다_일단 기본적인 공간의 세팅을 요청했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첫줄인 셈이다. 그 첫줄을 잘 써야 그 다음줄, 결국에 하나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간을 만들기 전 주문해 놓은 현관등을 달았다. 작년 여름 함께 작업한 싱어송라이터이자 디자이너인 seine에게 전등의 완성품을 주문했다. 군더더기 없이 가지고 온 그녀의 선물에 나는 그저 웃고 받아들 뿐이었다, 사실 그럴 힘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눈을감은 상보몬에게 미안하지만 그때 기분을 표현한 사진은 이 한장이 전부니까, 남긴다. 


 손이 닿으면 페인트 부스러기가 떨어지거나 손의 얼룩이 묻기에 바니쉬를 발랐다. 그것이 바니쉬였나 할 정도로 정신없이 발랐지만 바니쉬 종류일 것이다. 놔두면 언젠가(누군가) 바르겠지만 발랐다. 지금 시간을 공들여 써야 다음 시간이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공사가 길어지는 바람에 장판 곳곳이 패이거나 찍혀있었다. 뭐 그런 거야 괜찮은 정도다. 이제야 제법 '집'과 같다. 밤이 늦도록 뭔가 해야할 일이 없는지 체크해본 후 내일을 기약하고 작업실을 나섰다. 내일 어떤 일이 닥칠 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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