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질을 위아래로 수십번은 한 것 같다.

이럴 때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좋다.  

반복이 계속되자 고양이 몽이는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럴 여유가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걸레를 잠시 놓아두고 녀석의 코와 귀를 만지작거렸다. 

나를 따라와보라는 시늉으로 베란다로 나가더니 빗 앞에 멈췄다. 

너는 참 빗질을 좋아하는구나, 이미 청소기를 돌린터라 

더 이상 털이 날리는 걸 원하지 않는데 어쩌니. 

빨래가 다 되었다는 신호음이 들렸다. 

세탁기 문을 열자 헹굼제 향기로 가득한 옷가지들이 쏟아졌다. 

이럴 때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옷을 널 때에도 마찬가지. 

건조대 아래로 무럭무럭 커가는 식물들이 보였다. 

손을 가져다 대자 식물 특유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아직 흙은 마르지 않은 상태라 물을 줄 필요는 없겠다, 

어제 누군가 빨래를 색색깔별로 널어놓는다는 말이 생각나

나도 그래볼까 하다가 색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생각을 하면 안된다니까, 그냥 하던대로. 

빨래 건조대 위로 껑충뛰어와 냥냥거리던 몽이를 집어 땅바닥에 던졌다. 

고양이는 체조선수니까, 던져도 알아서 잘 착지하겠지, 

번번히 몽이는 넘어지거나 부딪히거나. 여전히 빗 앞에서 서성댄다. 

금요일에 먹고 남은 김밥이 냉동실에 있는 걸 발견했다. 

고양이들에게 줄 닭고기를 찾다가 내 밥도 찾아서 지금은 해동중이다. 

닭고기가 녹을 때까지 뭐를 할까 하다가 음악을 틀어놓고 

뭔가를 써보려고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컴퓨터 옆에 식은 커피가 반 쯤 남아있다, 아 이건 아까 마시려고 한 건데.

한 모금 입을 가득 적셔놓고 흘러나오는 노래의 제목을 검색하려고 하자

해동이 다 되었다는 신호음이 주방쪽에서 나왔다. 


생각을 말자, 생각을 말자. 

나는 눈에 민감하니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빨래바구니를 세탁기 옆으로 가져다 놓을 때 

지나가면서 재활용쓰레기가 가득 들어찬 것을 볼 것이다. 

오늘이 수요일이니까 주섬주섬 가지고 나가 분리수거를 하겠지. 

미리 이것을 하자, 나중에 하자, 하는 생각으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 

지금껏 충분히 생각하고 생각해왔으니 오늘과 내일과 모레까지는 

생각을 말자, 생각을 말어.


20150701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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