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허풍이 좀 심한 편이야,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해온 친구가 내게 말했다. 

아주 정확하게 봤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한 말을 두고 나는 친구란 이런 거구나,

너는 친구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고 확신했다. 


내가 허풍을 떤다고 하는 네 말에 나는 무슨 핑계거리를 찾는 대신

나의 허풍과 맘먹을 정도의 네 약점을 찾아내는 대신

너는 나의 유일한 친구가 되어 줄 것에 밑줄을 그었다. 

그 친구가 보내준 에어컨 (띄고) 바람을 쐬다가 생각이 난 '허풍'에 

잠시 옛 생각을 해볼 기회가 생겼다. 


볼륨이었다, 내가 의도한 것은 그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크기, 내 말을 믿던 안믿던 그것보다. 

일단은 내 말의 전달이 중요했다. 약간의 과장을 버무려서 주었다. 

엄마는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감탄사와 수사를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할아버지 논이 떠내려갈 정도로 비가 많이 와! 이렇게. 


양치기소년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친구들은, 사람들은 양치기 소년의 잘못된 점만 이야기했고,

나는 내 잘못이 드러나는 것 같아 꽁꽁 숨고 싶었다. 

기말고사에 양치기소년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묻는 주관식문제가

나오지 않기를 바랬다. 거짓말과 허풍을 구분하지 못하는 때였다.

사춘기 무렵 나는 양치기 소년을 어느정도 이해하려고 애썼다. 

애썼다기 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생각했다. 


아이들이 모인 자리나 어른들이 모인 자리나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보다는 누구의 말이 재미있을까다. 

나는 이제 별로 허풍다운 허풍을 떨지 못하고 사뭇 진지하다. 

어른이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재미가 없다. 

거짓말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살면서 누구한테 거짓말을 가장 많이 했나 싶어서 생각해보니 여지없이 엄마였다.


20150703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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