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때인가, 교회수련회를 다녀와서 한참을 앓았던 적이 있다.
앓았던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인데 그 때 앓았던 이유는,
마음이 저리고 아픈 이유는 알았지만 설명할 길이 없어서였다고.
마음이라고까지 할 것이 없다. 그 때의 느낌이다.
그 느낌을 집에 가지고 왔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으로 믿었다.
느낌은 가지고 왔으나 느낌을 공유할 사람이 없었던 탓이라고 믿고 있다.
낯선 환경과 주어진 시간동안 나의 일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을 만끽했다.
누구도 여기서는 나갈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만질 수 있는 거리에서 서로가,
눈을 마주치고 손을 잡고 어깨를 기대면서 말이다.
나는 그 느낌이 아주 좋았다. 4일 동안의 가장 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내가 긴 시간이라고 한 것은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어서다.
매순간이 만남의 연속이었으니까, 사람과 만나고 눈빛과 만나고 느낌과 만나는.
공연을 준비하면서도 진행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느낌의 연속을 나는 지금껏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앓고 있다.
소풍 혹은 여행과 같은 일들을 지내고 나면 ,
지금에서는 공연과 같은 일들을 지내고 나면 .
어떤 선율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기도 하고 ,
선율이라고 하는 느낌이 무르익을 때까지 오히려
기다리는 중이기도 하다.
지내는 일들이 내게는 중요하다.
지내는 것은 내가 '있는' 것이고,
'있었던' 것이고, '있었던 기억'을 다시 '기억'하는 일이고,
그 '기억'에 이름표를 붙여두는 일이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나는 순간보다 순간이었던 기억을 선호하는 편이라 하겠다.
느낌만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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