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렇다. 자기는 나 때문에 그렇다고 하나, 인정할 수 없는 사실.세월이 사람을 바꾸는 것은 확실해졌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이제부터 할 얘기의 제목을 붙이자면 '19번 버스맨' 자, 정독하시라.

 

 앞서 얘기했듯이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유난히도 하얗고 복슬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착해보였는데.행색은 어찌나 깔끔하고 건전하게 보였던지, 오해할 정도로. 헌데, 정원이와 마찬가지로, 그 녀석의 뽀록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날(신세계 백화점 커피숍 사건, 사건이라고 해도 될는지,) 이후 우리 둘은, 가까워졌다면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는데. 아직 이 녀석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였기 때문에 확실히 구미가 당겼다. 앎에 대한 의지는, 내게 사람 이외의 것은 거의 없다. 확실히 여자는 많았다. 지금 정원이만큼 있었으니까...구체적으로 얘기해보겠다. 


 이 녀석은 혼자서는 무얼 잘 못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물론 지금도 그렇긴 하다. 여튼 그런 스타일은 정말 친구들 고생시킨다. 한번은, 아니 여러번 그랬는데, 예전 삐삐가 대세일 때 이 친구도 어디서 돈이 났는지 삐삐 하나를 장만해가지고서는 쉬는 시간마다 공중전화로 달려가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왜 삐삐라곤 구경도 못해본 내가 같이 가야하는 것인지, 하긴 내가 마음이 여리긴 해. 게다가 자기 수첩(예전에 지갑에 들어가는 작은 규모의 수첩이라고 하면 다들 아하~ 할 것이다.)에 담겨있는 수많은 여학생들의 삐삐 번호면 전화번호며 하는 것들을 내게 보여주며 자랑은 왜 하는지. 더구나 왜 자기 삐삐 음성을 내가 들어보아야 하는 것인지. 원. 중요한 건 난, 시키는 대로 다 했다는 거. 더 중요한 건, 지금은 남은 여자며, 번호며 아무것도 없단 사실.

 

 버스맨이란 버스에서 눈에 확 띄는 그런 남자(학생)에게 붙여주는 별명이라는 게 보통의 정석인데, 빽수훈이도, 그랬다. 말 앞뒤가 안맞다고 뭐라하지 말고, 나름대로 기대심리 가지고 장난좀 치고 싶었으니까. 이해해 주시라. 하튼, 19번을 타고다녔으니까. 19번 버스맨, 정원이와 나는 6,9,51번 버스맨. 이 버스맨이란 호칭도 정원이랑 나처럼 다양한 버스를 타고 다니는 녀석들에게는 붙이기 힘들다. 딱 버스 하나만 타고 다녀야 매번 마주칠 수도 있을 것이기도 하니까. 역시, 모든 현상을 파고들면 빈틈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지. 버스맨이라는 별명에 대해 빽수훈이도 나름 자부심이 있었던 모양인지, 싫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즐기는 눈치였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것과 관련해서.ㅋ

 

 고3, 한참 수능에 열올리고 있을 무렵에. D-Day 챙겨주는 것이 수능점수 1점보다 더 중요한 때가 있었다. 물론 친구에게, 뭐네뭐네 하면서 시험잘 보라고, 고마운 날이지만.때로 타 여고에서 택배로 꽃이며, 케잌이며 오는 날은 더 없이 짜증 나는 날이기도 하다. 거기에 목숨 거는 애들 몇도 봤다. 빽수훈이와 내 번호의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서인지, 서로 챙겨주면 오고, 가고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다른 친한 친구들과도 교환하면서. 헌데, 언제부턴가 선물의 규모와 루트가 다양해지면서 자신의 디데이가 다가오면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뒷번호 놈하고 비교되면 안되는데, 하면서 슬슬 진땀이 나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마 빽수훈이가 그런 녀석들 중 하나였을 것으로 기억된다. 그랬기 때문에 정말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나는 녀석을 위해 정말 말도 안되는 거짓말로축하를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정말, 가지 않아야 할 길을 가고야 말았던 것이다. 사건의 전개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내가 아는 여학생에게 부탁해 평소 수훈이에게 관심있어하는 옆학교의 여학생의 이름과 성향을 파악해서 그 여학생이 보낸 것처럼 해서 깔끔한 글씨의 편지와 정성스럽게 이름까지 파서 준비한 케잌을 배달주문하게 된다. 물론 사건 당일 이전에 그 여학생이 너에게 마음이 있다는 소문아닌 소문을 넌지시 비춰주었고, 모든 알리바이는 다 성립되었다고 아주 좋아했다. 사건 당일, 저녁 시간이 지나 야자시간에 돌입할무렵, 피가 타고 있었다. 난. 저녁밥 시간에 오기로한 선물상자가 오지 않고 있었다. 5분 밖에 안남았는데, 이런 제기랄.그렇게 야자시간이 시작되고, 잠시 뒤에, 복도 중간 쯤에서 시끌벅적 한것이. 아마도, 불길했던 것이었다. 무섭기로 유명한 감독 선생님과 배달원이 티격태격하면서, 내가 주문한 그 상자. 아뿔사.

 

"백수훈이, 나와."

 

 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렇게 뒤지기 쳐맞고. 케잌도 학급 청소도구함에 쳐넣어버리고. 그때, 순간 정말 미안해졌는데. 털어놓으면 절대 안되겠다. 싶었다. 사실대로 얘기하면, 나 정말 그날로 세상 하직할지도 모를 분위기. 그런데, 매를 맞고 자리로 돌아오는 빽수훈이의 얼굴에는 아픈데도 기분좋은 웃음이 한그득, 참. 내가 할말이 없드라. 그렇게 좋나. ㅋ 청소도구함 가서, ㅋㅔ잌 빼와, 편지 읽어. 키킥대. 참. 나. 여튼, 더 이상 참을수가 없어서. 쉬는 시간에 정중히 다가서서. 무릎을 꿇었다. 녀석은 왜 이러는지 어안이 벙벙한 눈치였다가. 갑자기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해지더니, 이제서야 알아챈 듯. 귀여운 놈. 그래도, 친구라고 아파도, 뭐라 말도 안하고. 참 그때는 내가 많이 미안해했다.

 

 정원이는 여자를 대놓고 좋아하는 반면. 수훈이는 은근슬쩍 여자를 좋아한다.나? 나는 뭐. 아무도 모르게 작업하는 편이지. 오늘은 여기까지. 너무 길어져 버렸다. 백수훈 편은 또 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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