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넘기며 녹음일정을 잡았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2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라고, 


1월 18일에 두번째 녹음을 시도해보았다. 

포크넘버의 곡들 위주에 관현악 편곡을 더했고 

개중에 몇몇은 밴드편곡을 해보았다. 

이번 녹음은 밴드곡을 위한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피아노 라이브녹음이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이 모두가 동시녹음이었다는 것, 

한 프로(3시간 30분)에 다섯곡을 각각 파트별로 녹음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아껴야하고 그러려면 동시녹음 밖에 방법이 없었지만

꼭 그래서라기 보다 앞서 말했던 '호흡'을 기록하고 싶어서였다. 


이전에 싱글로 발매를 했던 <집으로 가는 길>에 드럼과 베이스를 재녹음하고

덧붙여 피아노 멜로디를 입혔다. 프로그램에 내장된 드럼과 피아노 소리를 사용한 지난번과는 달리, 

일부러 공간의 효과를 주는 부자연스러움을 덜어내고자 한 것이 이번 녹음의 주된 목적이다. 

Rock적인 시원한 드럼소리가 아닌 공간의 활용을 통한 뭉툭한 드럼소리가 필요했기에

각각의 통에 마이크를 대는 것이 아니라 드럼의 정면과 후면에 마이크를 대고 그 사운드를 믹스해보기로 했다. 


첫 녹음인 곡들도 많다. 그 동안 몇번의 합주를 통해 완성된, 

그리고 앨범의 타이틀이 될 노래도 있다. <Animation), <있는 반찬에만 먹어도>   

집에서 작업을 할 때에는 오랜 시간을 두고 이런 저런 사운드의 활용방안을 연구하지만

녹음실에 오면 일단은 녹음을 먼저하게 된다, 시간을 다투는 일이다 보니. 

합주때의 느낌을 살려 5번 안에 각각 트랙을 동시에 녹음을 하고 박자가 나간 부분이나

연주가 틀린 것은 부분적으로 덧입혀 나가는 방법을 썼다. 


"모든 테이크(녹음을 한 파일) 중에 가장 잘 된(느낌이 좋은) 것은 매번 녹음의 첫 테이크다."


이것은 여태껏 집에서 작업실에서 녹음실에서 얻은 하나의 '결론'이다. 

하지만 나는, 혹은 그 누구는 이보다 잘할 수 있을 것이란 각오에 첫 테이크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좀 아쉽다. 첫 테이크를 살렸으면 좋았을 것을, 하고 집에 오는 내내 생각했다. 


<언제나 봄>의 콘트라베이스 연주를 넣었다. 드럼도 아주 살짝 효과를 삽입해 녹음을 진행했다. 

'퐁~퐁~'거리는 콘트라베이스의 소리가 좋다,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채로 놓아두어도 좋을 만큼 좋다. 


<운명>이란 곡은 언제나 꿈꿔왔던 노래이며 사운드다. 

밴드시절 흠모했던 Ben Folds Five 의 사운드를 내보고 싶었던 터라 그랬다. 

드럼과 콘트라베이스 피아노 이렇게 세가지 소리를 동시에 연주해 나갔다. 

클릭(박자)은 꺼놓은 채로 피아노에 이끌려, 때로는 드럼에 맞춰 어긋나는 소리들 모두를. 

피아노 페달 밟는 소리도, 베이스 연주자의 콧김과 드럼의 훅훅대는 손동작의 소리까지도. 

모두 넣어보고 싶었다, 정말 많이 틀렸고 박자도 왔다갔다 했지만. 


2015년 1월 18일 오후 5시에 녹음한 이 소리들은 한없이 소중하다. 

녹음은 그런 것 같다, 시간을 찍어서 기록하는 사진과도 같은 것. 

눈으로 볼 수 없는 귀로만 간직하는 사진. 





 운명을 연주한다 연주곡은 아니다 귀로만 서로를 듣는다 사실은 눈을 마주치려 고개를 돌릴 생각을 하지 못한다


20150118 이음사운드 밴드녹음 완료, 

<집으로 가는 길>, <Animation>, <있는 반찬에만 먹어도>, <언제나 봄>,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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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곡이란 무엇인가, 로 시작하지 않고 

편곡이란 무엇일까, 로 시작하게 된 것은 

나도 여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용어로 정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곡을 하고 있는 나를 볼 때는, 또한 그것을 설명하려고 하는 데에는

나름 내 표현에도 적절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편곡

특정 악곡을 다른 형식으로 바꾸어 꾸미거나 다른 악기를 쓰게 하여 

연주 효과를 다르게 하는 일이나 그 노래를 가리킨다.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고 한다, 나도 방금_처음_찾아보았다. 

그렇다, 다른 형식 / 다른 악기를 사용하여 곡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다른 형식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다른 악기를 사용하기까지 어떤 음악적 감흥이 있어야 할까. 

'음악적 감흥'이라고 한 것은 '상상력'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상상력이라고 한 것은 

'없음'에서 '있음'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있음'을 알고 기억하고 다른 곳에 그 '있음'을 있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쉽게 말해 드럼과 같은 타악기의 '있음'을 내 노래에도 있게 하는 것,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의 '있음'을 내 노래 어딘가에 살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 악기의 '있음'이 왜 있어야 하는지, 존재하는 소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악기의 음색을 이해했다면 선율을 짜본다_나는 그렇지 못했다_주변인들 중에 현악 전공자들이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런 상황은 아주 잘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나의 경우엔 프로그램 내장 악기를 이용해서 들어보았다. 

실제 소리와는 아주 다르기도 하거니와 모든 음역대에 대해 가능하다고 여긴 탓에 내가 만든 선율은

실제 악기 소리의 영역대를 훨씬 넘어서거나, 자주 사용하지 않는 '음'을 집어 넣기도 했다.

저번 현악 녹음 때 그런 부분들이 드러나 아주 살짝 부끄럽기는 했으나, 그나마 알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언제나 봄>이란 노래를 현악 4중주로 편곡을 한 실제 악보다, 포크넘버로 곡을 만들었지만 현악과 트럼본을 삽입해

곡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일단 악기에 관한 편곡을 마쳤다. 

혼자하는 일에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하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놓아두지 않고 질문과 행동을 통해. 

그렇게 한 달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악기 편곡'에 대한 것은 일단 이것으로 마친다.  





작자의 의도가 잘 '반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션 연주자를 쓰는 것은 숙련이 '잘' 된 경험을 토대로 부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이 꼭 내 경험과 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일단 우리는 같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 


합주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사실 이번 앨범녹음을 진행하면서_아직 절반밖에 못했지만_ 많은 합주를 해본 것이 아니기에, 

녹음에 앞서 설렘보다 두려움이 많았다. 잘하는 연주보다는 호흡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니까, 

그래서 두번째, 편곡이라고 하는 것은 호흡_리듬_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앞서 특정 악곡을 다른 형식으로 바꾸어 꾸민다고 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깊다. 

좋은 연주자는, 자신이 하는 연주보다 다른 연주에 더 집중을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결국에 '쉬는' 연주를 더 잘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좋은 연주자는 아니다, 음악에 욕심이 많은 나머지 자꾸 손이 가는 것을 어찌하지 못하겠다. 

한발자국 떨어져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바로 '합주'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리듬보다 호흡, 

아주 잘 연주된 개개인의 결과물보다 호흡이 맞아 떨어진 어느 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리듬편곡의 주된 목적이다. 호흡만 맞는다면 다른 형식으로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악기편곡과 리듬편곡, 

그리고 또 한가지가 더 있다면 코드편곡인데 이 부분은 작곡을 할 때에 이미 붙여둔 이름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 내 상황_마음_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원곡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상황이 곡 하나에 스며들어 결국, 나는 노래가 아닌 어떤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선율_이것은 보컬의 멜로디를 뜻한다_로 노래하기 전에 나는 어떤 상황에서 노래를 하고 싶은가, 

비가 오는 거리나, 꽃이 만개한 언덕이나, 단 둘이 있는 한적한 공원의 밤인가 하는 것. 

그런 상황들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편곡의 중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지만 담을 수 없다고 노래에만 집중하는 것에는 별 재미를 못 느끼는 듯, 

밴드 앨범과는 달리 곡 마다의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고 또한 그 마음을 연주를 통해 기록하는 것에

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편곡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나의 그 때 기분이란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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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을 바라고, 감회가 새롭다거나 그렇지는 않겠지 생각했다. 

1년 이라는 시간을 두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해결해야지 했기 때문이었다. 

2013년 봄을 시작으로 그렇게 해보자, 했던 일이 지금에서야 마무리가 되가고 있는 것이. 

어찌보면 참 다행이다 생각도 드는 아침이다. 그것은 조급한 내 성격에 비해 일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지 싶어서, 


무작정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 '일'이 되가고 있는 시점에서. 

줄곧 원래 내가 하고싶어 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었는데 되묻기도 했고, 

스스럼없이 세월을 보내는 것에 이보다 좋은 일이 이보다 내게 어울리는 일이 있을까 생각했던 탓이었지 싶다. 

그렇게 일곱개의 방_왜 일곱개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음에도_을 지어가고 꾸며가며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동안 말이다, 


11월 접어들 무렵에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과 나눠먹는 아내를 번갈아 보면서, 

엄마가 늘 하던 말을 아내에게도 건넸다. 

"있는 반찬에만 먹어도 훌륭한데, 뭐 매일을 먹겠다는 의지로만 사는지..."

그렇다고 엄마가 음식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엄마가 차려주신 밥상을 대한 적은 많아도 

엄마와 밥상을 마주한 적은 손에 꼽는다. 

그럴 때마다 같이 먹으면 더 맛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것이

저게 더 편한가보지, 하고 생각하는 것으로 옮아갔다. 

집을 떠나 7년을 서울살이를 하면서 혼자 밥먹는 습관에 무던해졌다. 

차리기도 치우기도 귀찮아 밥통을 열고 숟가락을 들이미는 경우도, 

반찬을 옮겨담기 보다 큰 김치통 하나를 통째로 열고 젓가락을 쑤시는 경우도, 

보통은 집 앞 가게에서 핸드폰과 벗하며 밥을 먹는 게 여러날이다. 


엊그제 부모님과 남동생이 친지 결혼식이 있어 서울을 방문했다. 

아내의 정성으로 우리 다섯식구가 처음. 서로. 함께. 밥을 먹는 아침이, 

나는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엄마가 기도를 하는 중에, 나는 실눈을 뜨고

둘러앉은 다섯을 보는 것이 어쩜 그렇게 벅차오르던지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 했다. 

음식맛이야 둘째치고 냠냠쩝쩝, 오손도손, 하는 소리가 그 어떤 음악보다 훌륭했으니. 


노래엔 어떤 재료가 들어가야 할지, 어떤 양념을 쳐야할 지. 


그보다, 


누구랑 먹을 건지, 나눠먹을 건지. 

그것이 노래의 제목이다. 


또한 그것이 내 삶의 제목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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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에 구상한 음악이건만, 

어느 결에 써질 줄 알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다가. 

가을이 깊어갈 무렵에 그렇게 내 앞에 놓였다. 


이이체 시집 <죽은 눈을 위한 송가>를 상효에게 선물받고

읽던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언어, 말 Animation. 

사전적 의미로는 '생기를 불어넣다'라는 동사의 명사격인데,

보통은 움직이는 만화를 주로 뜻한다. 

실제로 노래를 만드는 이들 또한 animate하지 않나 생각한다. 

이미지를 구체화하고 우리가 하는 말에 가락을 붙여 부른다니, 

그렇게 책을 건네받은 1년여 전부터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대학시절 수업시간에 읽었던 '소리샘'이란 단편소설. 

우리가 들었던 모든 소리와 이야기는 뇌에 저장이 되는데 그것을 소리샘이라 한다, 

그렇지만 과거의 일에 목마른 사람이 없어 그 샘을 그대로 놓아두고 찾지 않는다, 

샘은 점점 말라가고 사람들의 기억력도 사라지고만다,

그런 내용이 생각이 났다, 이것 또한 애니메이션의 한 줄기가 되었다고. 


그런데 가사를 뭐로 하지, 어떤 식으로 표현을 해야할까. 

막연한 물음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하나였다. 


'바다는 소라껍데기 안에 산다'


처음 선율 그대로 가고자 했지만 분명, 

가사의 음율에 맞추다보면 달라지겠지. 

우리말로 된 적절한 단어를 찾기 힘들었고, 

작업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그럭저럭 모양새를 갖추었다. 


적어놓고 싶었다. 그런 저런 과정들을, 

노래하고 싶었다. 노래를 만드는 과정들을. 

노래가 만들어지는 풍경을 노래하는, 

과거에 얽매이는 것보다 과거를 통한 나와 너를 발견하는 일을.


마주치면 생각나는 것과 같이. 




<아내와 제주도 14년 여름>


Animation(141015)


내가 앉지 못하는. 저 쪽 푸르름엔가.

숲에서 우는 아이가. 숨어서 우는 아이가. 있네.


한낮이 한밤이었지. 나무가 말을 걸던가.

너는 무엇을 기다리지? 안 올지도 모를 사람?


우- 우- 

흙이 되어버린 기억들로.

우- 우-

장난감을 만들어. 장난감을 만들어.


노래는 기억이 부르는 것.

그리워하면 그럴수록.

노래는 기억을 부르는 것.

짙어가면 피어나는 꽃.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순간은 지금 아닌가.

너는 무엇을 기다리지? 안 올지도 모를 미래?


우- 우-

흙이 될 수 없는 기억들로

우- 우-

장난감을 만들어. 장난감을 만들어.


바다는 소라껍데기 안에. 

언제나 살아있다고.

우린 각자 하나의 섬이에요.

섬과 섬을 꿈꾸는 배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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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칼을 빼 들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하지만 노래는 어떨까, 조심스럽다. 


혼인을 하고 난 후부터는, 정확히는 그것과 겹친 세월호 사건으로 아예 입을 닫아버렸다. 

웃어도 쉬이 웃지 못하고 늘 그래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좋아하던 야구도, 깨볶아야 하는 신혼도, 일상인 노래도. 

그렇게 마냥 나날들을 흩어지게 내버려 둔 채로 버거운 삶을 지탱하기 위해 수업만, 해야할 최소한의 일만 하고 살았다.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는 날 선 언론의 혀가 유가족 뿐 아니라 나와 주변인들을 많이도 힘들게 했다. 

힘이 들 지언정 힘이 되주지 못해 마음만 이리 저리 굴려보았던 터 서울의 하늘은 맑아도 보이지가 않았다. 


이제 곧 가을이다. 벌써 가을이 왔다고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는 아내와, 

털이 송송 빠지는 두 마리의 고양이들과 가을을 맞는다. 

해마다 가을을 맞이하는 나의 태도는 늘 불가항력적이다. 아내는 그걸 두고 '지랄'이라고 하지만, 

여튼 그런 '지랄'도 못해먹겠다. 뭐라도 해야지 혼자의 기분에 취해 이 계절을 두고볼 수는 없다.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마음에 두고 뭐라도 써야지 뭐라도 말을 해야지, 하지만 

예전처럼 즐거울 따름으로 흘러가는 일은 없었다. 


오늘 민방위 훈련을 간 자리에서 우연히 종석형을 만났다. 

시간이 참 빨리도 가지요? 우리가 엊그제 만난 것 같더니 벌써 6년이요, 라고 했더니

그래, 내가 아이였을 땐 하루가 참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안갔는데, 라고 한다. 

그냥 저냥 속으로 내 얘기와 그 얘기를 번갈아 생각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문득, 

노래를 써야 겠다, <가을엔> 이라고 제목을 정하고 이래 저래 써나가다 보니 <오, 가을> 이 낫겠다 싶어

두 줄로 박박 그었다. 소박한 가을정경을 노래하고픈 생각이었으나 점점 일이 커진다. 

속내를 좀 들키면 어때, 내 마음대로 하면 좀 어때, 그렇게 써지는 것을. 


아내가 추천해 준 에밀 시오랑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이라는 책과,

오늘 만난 종석형과의 대화와 얼마 전 안타깝게 사라진 우리 아이와 그 때의 내 마음과,

여태 나를 짓누르던 4월부터의 일들이 한꺼번에 오늘 모였다, 모았다. 

우연이 필연이 되는 것은 늘 노력의 열매가 되는 것임을 오늘도 깨닫는다. 


그렇게 일곱개의 방 중, 다섯번째 방이 만들어졌다. 



<언젠가 후암 약수터 앞>


오, 가을 (140930) 



왜 이 계절은 이토록 바삐 가는가

연잎에 앉은 잠자리처럼

왜 뜻밖의 추억들이 되살아나는가

구름 사이로 난 해처럼

왜 사랑한 순간들은 잊혀만 가는가

그때 한 약속은 연기처럼 흩어져만 가는 것인가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흘러갈 줄 알았다면

내가 아이였을 때 조금 더 천천히 달려갈 것을, 걸어갈 것을


이제 짧아진 계절이라 해도 서두를 필요는 없네 

신이 빚은 완벽한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모든 순간을 다 감사하겠네


올 봄에 우리에겐 슬픔이 있었네

시들더라도 꺾(이)지 않기를 바랬지

그 누가 인생을 완성하고 떠났을까


이제 짧아진 계절이라 해도 서두를 필요는 없네

신이 빚은 완벽한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데로 가 깊은 데로 가면

내가 사랑한 사람들

깊은 데로 가 깊은 데로 가면

내가 미워한 사람들까지


모두, 모두 다 만나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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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시선이 머무는 사람들의 무릎 아래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고양이에게도 꿈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늘 주위를 경계하지만 한번 쯤 가보고 싶은 곳이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그것은 '보일락 말락' 한 세계다. 

고양이도 사람도 모두가 그 '보일락 말락' 한 세계를 가보고 싶어 한다.

어쩌면 고양이 청이의 눈을 통해 내가 가보고자 하는 세계를 노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도, 그들과도 언젠가는 이별한다. 아름다운 이별에는 좋은 추억이 필요하다. 

오늘도 맛있는 음식을 주고,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고, 이름을 불러보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채우며 살아간다.

고양이를 떠올릴 때 느껴지는 따스함과 포근함이 가득한 노래가 사람들의 가슴에도 번지길 기대해본다



일곱개의 방 프로젝트 中 네번째 방_


1. 고양이, 청


Produced by Yunje

All songs written & arranged by Yunje


illustrated by 이선민

Designed by 최현주

A. guitar & C. guitar Yunje

Piano Yunje

Bass 최동일

Violin Christine Kim

 

2013. 12. 24.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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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보통은 만화영화를 뜻하는 것이지만,  

동사 animate, 영혼과 생기가 없는 것을 영혼과 생기가 있는 상태로 

변화시킨다는 뜻. 즉, 살아있는 것이 아닌 것을 살아있게 만드는 것. 


7월이 왔다, 즉. 

반년이 갔고, 또 하나의 반 년을 맞았다. 

그 동안 세 장의 앨범, <해빙>과 <일각여삼추>와 <집으로 가는 길>을 발매했다. 

총 여섯 개의 노래를 두어 달 간격으로 발표했다. 현재까지는, 

순조롭게 잘, 이행해 왔다. 올해의 목표인 <일곱개의 방 프로젝트>


그 동안의 노래들은 작년까지 만들어 왔던 '습작'의 재구성이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현실과 현실의 상상을 담은 것들이 태어나야 한다. 

네 번째 방, 9월 즈음에 발매될 노래들에 대해 구상하기로 한다. 

역시 노래는 두 개로 <애니메이션>과 <고양이, 청>으로 제목을 정했다. 


노래를 만드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그것은 현재 내 상태를 확인하는 일로 시작해서, 

내가 무엇을 원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상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즐겁다고 했다. 


사실은 이제부터 즐거워지려고 한다. 

사실은 이제까지 즐거운 고민을 하지 않았다. 

바쁜 일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저냥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생기를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생기를 되찾기 위해 타이틀을 정했다. 애니메이션, 

누군가 내게, "너는 언제 네가 살아있음을 느끼나?" 하고 물어본다면. 

목마른 중에 마시는 긴 컵의 물을 마실 때, 컵으로 숨을 쉬는 가운데와 

비오는 날에 들이마시는 숨, 추운 날에 내쉬는 숨 가운데에 있다고 하겠다. 


결국에 '숨'을 느낄 때라 하겠다. 

그러고 보면 물 속에 있을 때가 가장 숨에 대해 절박하겠다, 싶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물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순수한 물의 소중함에 대한 것이고. 

나는 이제부터 물에 잠겨 '숨'의 소중함을 느껴보려고, 가까스로 생각해 낸 것이. 

목욕탕 물 안에 나를 집어넣고 내 몸이 답답한 숨을 내쉬고 있다고 여겨본다. 


나의 가장 절박한 '숨'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본다. 

바이킹을 탔을 때, 바다에 빠졌을 때, 그녀와 헤어졌을 때, 한국시리즈 7차전을 볼때, 

어느 것 하나 기억에서 제외될 만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가장 순수한 '숨'을 쉬었을 때가 언젠지. 

말을 바꾸어 그것의 절박함을 느낄 때라야 가장 순수하게 뱉어낼 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서. 


갑작스레, 

내 이름 성종훈이란 석자가 출석부에서 호명되었을 때에. 

그 때의 어색함까지도 내 '숨'을 일깨워주었다고 생각된다. 


나의 생기를 찾기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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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에 찬 달이 밝은 그 밤에 
우린 더 어둔 밤을 찾으려 눈을 감았지 

계속해 이어진 밤이 둘로 나뉘고
서로 다른 길로 들어선 집으로 가는 길

뻔한 가로등불에 골목길은 물들어
색을 잃고 노랗게 붉게 어둠을 가리지

나는 아까처럼 더 어두워지길 바라지
입술에 찬 달빛이 간절히 생각날 때까지

일부러 깜깜해진 골목을 헤엄치듯 
유영하듯 걷고 기분이 참 맑아 
일부러 깜깜하게 해놓고 
일부러 깜깜하게 해놓고 

네 입술에 차오르던 달빛이 
간절히 생각나기까지 
두 개 발자국으로 걸어갔지 
손은 잡지 않고 어깨와 어깨가 
닿을 듯한 거리로 나란히 


2012년 8월 30일에 

노래 1 이란 제목으로, 





마데카솔이 없었다면 내 얼굴의 흉은 아마 깊이 남았겠지. 

마데카솔 생각하니 복고의 바람이 부는구나. 

예전 기억이 다시 불어 오는 곳, 그 곳으로 난 집으로 가는 길. 

 


1. 집으로 가는 길

2. 느린 걸음으로

 

Produced by Yunje

All songs written & arranged by Yunje


Photographed by 카쯔오

Designed by 최현주

A. guitar & C. guitar Yunje

Piano Yunje

Drum 천승윤

Bass 최동일

Featuring  & Djembe Noma (느린 걸음으로)

Violin Christine Kim

Accordion 이혜준

 

2013. 6. 13.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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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너무 덥다. 

매 해마다 더위와 추위는 기록을 갈아치우고.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세번째 앨범을 준비하면서, 


사실 가장 시간을 들인 것은 '구상'이었다. 

구성에 대한 구상도 있거니와 느낌에 대한 구상이 거의 대부분이다. 


계절에 대한 특정한 지시는 없지만서도 바램은, 

여름밤의 서늘함이 간간히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옅은 바람 한 줄기 이마에 땀을 스치듯이 닦아준다면,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을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툴툴거리는 느낌의 정박자 보다는 어깨가 들쑥날쑥하는 편을 택했다.


사실 곡의 인트로 부분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노래의 주 멜로디 외에 코드의 움직임만으로 내가 흥얼거릴 때까지 기다렸다. 

내가 만든 노래지만 나 또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니까, 

이건 상당히 중요한 내용인데 뛰어난 음악성은 순발력에서 나온다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내 경우에 오래된 습관으로 안정감 있게 노래에 옷을 입히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에 자칫 뻔한 느낌으로 치우칠 수 있겠지만, 일단 꼭꼭 씹어서 맛을 음미해야 하는 것이 먼저이므로,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내거나 코드와 코드 사이에 다리를 놓거나 하는 것은 이번 작업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하나의 소리를 얼마나 더 오래, 깊이 가져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다가왔다. 


노래에 온도가 있다면, 

아마 이런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담아내는 것에 붙여질 이름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은근한 음성으로 뱉어내는 행위가. 

더 어렵고 더 '열'이 나는 일이라고 여기며  36.5도에 맞춰 노래에 숨을 불어넣었다. 

상당히 더운 온도지만 그 온도로 사람들은 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 

노래 또한 그 온도를 닮아 닿아도 차갑거나 뜨겁거나 하지 않을, 그런 것으로. 


바이올린은 좋은 악기다. 

베토벤은 기타가 작은 오케스트라다 라고 하였지. 

첼로 또한 좋은 악기임에 틀림없다, 일단 현을 튕기거나 비벼 내는 소리는 참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길을 내는 것이 이번 작업의 목표였음에. 

알고 지내는 연주자에게 부탁을 했다, 흔쾌히 스무번의 연주를 보내주었고. 

그 연주를 듣고 노래는 점점 부풀어 올랐다. 


데드라인 한 시간 전에야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걸 지울 수가 없어서, 

익숙해진 멜로디에 다른 멜로디를 섞어 피아노 연주를 넣어봤다. 

연습할 시간도 수정할 시간도 없이. 그대로 넣어보냈다. 

녹음은 그렇게, 6월 10일 오전을 마지막으로 담았다

뜨거운 작업실의 온도와 나의 온도와 여름밤 집으로 향하는 온도가 알맞게 잘 섞이길,

기도할 뿐. 이제 내 손에서 멀어진 노래는 누군가의 귀를 틈타 저녁으로 가겠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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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2012년 4월 무렵에. 

이렇다할 계획도 공연도 없었던 터라. 

종철이형과 음악경연대회 준비를 했었다. 


나는 또 한번의 앨범준비를 해야했고, 형은 스쿠터를 사고 싶다고 했다.

그럴려면 적절한 '돈'이 있어야 하겠기에 우리는 단번에 '하기'로 작정했다. 


대중성을 겸비한, 그리고 '뽑힐'만한 음악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리고, 적어도 내 생각은 신선해야 했다. 세련되지 않으면서, 

굉장히 뭉툭하게 아마추어같이, 그렇게 '날 것'을 만들고 싶었다. 


언젠가 대학가요제 준비를 했던 때가 생각났다. 

'하늘'과 '바람'과 '꿈' 등의 단어가 들어가야 했고,

순수한 형의 바램대로 가사는 그럴 듯 하게 지었고. 

멜로디는 서로가 부르고 싶은 것들로 채워나갔다. 


30대와 40대가 뭉쳐서 참 '순수'한 것을 만들어냈다, 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너무 순진했던 걸까, 대회 1차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노래는 행사용 음악처럼 버려졌다. 잊혀졌다. 





'정이가' 라는 팀명이었다. 사진을 뒤져보니 악보가 나왔고, 

우리는 돈이 필요했지만, 이렇게 보니 추억이 필요했지 싶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다시 한번 이 노래를 불러보면 좋겠다 싶었다. 


원래의 가사는 '파란 트럭의 짐칸에 실려~ 여기 까지 왔지' 였다. 

모티브는 여행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미지는 잘게 부숴져, 더러는 운율에 맞게 만들어야 했으니까. 

결국, '만원 버스에 실려 여기까지 왔지~'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마음에 든다, 이렇게 마음 놓고 불러본 노래가 있었나 싶기도 하고. 

곱고 고운, 형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어서도 좋고. 

그냥 대학생이 된 것 같아 참 좋더라. 





누구에게나 꿈은 있지, 하늘은 파랗다는 꿈. 


인트로의 이 메시지는 내게 늘 긍정의 힘이다. 

모두에게 공평한 저녁이 깃들기를 기도하는 매일의 저녁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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