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못쳐먹겠다 라는 소리가 턱밑까지 차올랐다.

오랜만에 앉아본 피아노 앞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손을 놀려봤는데, 

내 손은 2012년을 마지막으로 멈춰버린 느낌이었다. 당연한 거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선율이란 일전에 본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것이랑

오래전 보았던 풍경을 되살려내는 것이랑 엇비슷하다.

때때로 내가 못해먹겠다, 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렸을 때

가지고 있던 좋았던 느낌마저 사라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때문이다. 

행동하는 것보다 상상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_노래를 만들어야 하는_이 올 때까지 그저 머릿속으로만 그린다. 

사실, 이 때가 가장 즐겁다.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음악이란!


가사가 없을 때라야 가장 음악답다, 그려지는 것도 수려하다. 

'아' 와 '스' 와 '오'를 적절히 섞어 우물우물거리는 정도와

기타의 스트링 소리가 막 접신을 시도한다. 그거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땀을 닦을 줄도 모른다. 

시간을 보내는 것은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익숙해지길 바래서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그것을 소형 녹음기에 담아놓는다. 

그리고 다시 틀어놓고 그것의 배음을 찾아 흥얼거려본다. 

때로는 춤을 춰보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한다. 

무한반복 속에 나는 규칙을 찾고자 여러방법을 동원한다. 


만일 그 한나절과 반나절에 규칙을 찾지 못하면 그것으로 그것은

어딘가에 묵힌다. 그대로 묵어 놓는다. 

나는 한 가지의 사람으로 그 때 그때의 느낌이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언젠가 내가 묵어놓은 느낌과 지금 살아 있는 느낌을 두고

비교를 하기도 한다. 비교라는 말보다 차이가 더 정확하겠다. 

차이에서 오는 공간감이 때로 좋은 역할을 해 줄 때가 있다. 

그 비어있는 곳에 예를 들어 1년 전과 하루 전의 일들을 모아둔다. 

규칙을 찾는다, 글을 써보기도 하고 묵묵히 바라만 봐도 된다. 


외로움이 근원이 되어 시작한 일이다. 시작된 일이다. 

소꿉놀이도, 비행기접기도, 잠자리잡기랑도 비슷하다. 

혼자하는 일 중에 가장 으뜸은 가만히 앉아 생각하기다. 

생각하기 전에 멍 때리는 일이다. 색색깔의 세상이 검은색으로,

때로는 흰색으로 물들어갈 때 외로움과 벗삼아서 해본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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