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 혹은 질서를 두고 산다. 혹자는 그것을 두고 죽은 시간이라고 했다.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했다. 어제 내가 키우는 고양이가 벌에 쏘였다.

이불을 털고자 창문을 열어놓은 탓에 벌 한마리가 들어온 것이다. 

날아다니는 것에 영혼을 빼앗긴 몽(고양이의 이름)은 주저함 없이,

엄지손가락만한 벌에게 앞발을 날렸다. 코를 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절룩거리는 녀석을 구경하듯 보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 역시 그런 일로 병원가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고양이다. 생전 처음 맛보는 고통에 녀석의 얼굴은 일그러져있다. 

하는 수 없이 케이지에 넣고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폭염주의보. 어제의 일기는 그랬다. 택시를 타기도 그렇고_택시도 잡히지

않는다_야옹거리는 녀석을 버스에 싣기도 망설여졌다. 하는 수 없이 

걸었다. 샴 고양이네요? 자신있게 고양이의 품종을 써내려갔다. 

어르신!_선생님이라고 하기엔 너무 늙었다_코라트라는 종입니다. 

아, 그래요? 샴이랑 너무 비슷하네요. 그런 식이라면 모든 고양이는 같아요. 

부엉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 대문짝하게 걸려있는 그 병원은 아마도, 

조류전문 동물병원이었던 것 같다. 요즈음 벌에 쏘인 고양이와 개를 데리고

오는 손님들이 부쩍 많아요. 간단하게 소독하고 해독제를 투여하면

별 문제는 없을 거에요. 말은 안해도 엄청 아파하고 있을 겁니다. 

통조림 하나 드릴테니 약을 잘 섞어서 주세요, 하며 2천원을 더 받았다. 


동영상 편집도 해야하고, 미용실에도 가야하고, 수업도 해야하는데

벌 때문에 나는 지금 폭염속 아스팔트를 녀석을 짊어진 채 걷고 있다. 

흔들리는 케이지 안에서 연간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녀석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미안하지만 나도 무겁고, 덥다. 쉬었다 갈까, 

나무그늘아래 바위에 걸터 앉아 아까보다 더 부어오른 몽이의 왼발을

쓰다듬어주었다. 아프기도 하겠다, 그러니까 파리와 벌을 구별하라고! 


통조림에 약을 섞어 주니 왼발을 부르르 떨면서 잘도 먹는다. 

청(얘도 고양이 이름)이는 왜 자신은 주지 않냐며 냥냥거린다. 

너도 벌에 쏘여, 그럼 줄게. 엄마처럼 말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하다 만 이불털기를, 화분을 옮기고 베란다 물청소를 하는 동안

몽이는 저 쪽에서 의기소침해 있을 줄 알았더니, 왠걸. 

커다란 파리 한마리를 쫓아 이 방 저방을 날아다니고 있다. 

나의 바램대로 되었다! 벌과 파리를 구별할 줄 알게 되다니!

녀석에게도 규칙이 생겼다. 오늘 나의 규칙을 어기고 너의 규칙을 

만들었다. 내 생각이긴 해도 고양이게게 규칙이라니. 규칙이라니, 


일과 사람에게 규칙을 정해두는 것을 보통일로 한다. 

어쩌면 그 습관 덕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도 같다. 

심지어 고양이들도 화장실이 더러우면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규칙을 져버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삶의 결정적 순간에

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귀한 친구를 만나고 사귀고, 

뜻밖의 마음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그래서, 혹자가 질서있는 삶을 죽은 삶이라고 표현한 것에

나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라고 한 것이다. 

나에게 규칙을 어기게 하는 순간들이 앞으로 수도 없이 찾아올 테지만

예전처럼, 어릴 때와 같이 행동하는 것이 가능할까. 

술부터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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