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찾은 철봉에 서너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방금 도서관에서 나온 듯한 대학생과 딱봐도 운동 좀 하게 생긴 대학원생, 가슴 근육보고 놀랐고 그 밑에 뱃살을 보고 더 놀랐던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치킨집 사장님과 겉옷을 옆 철봉에 걸어두고 셔츠 단추를 두개 풀어놓은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장님이 서로 번갈아가며 철봉에 매달려 훅훅 소리를 냈다. 직접 물어봤냐고? 이런 것쯤은 그냥 눈썰미로 알아맞춰보는거다. 그보다 어떻게 운동하는지 관찰하다보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생각해보게 되는데 맞추는 게 아니라 상상해보는 재미란 게 있는거다. 


첫번째로 소개한 대학생은 내가 오자마자 철봉에 힘껏 매달려보고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금세 내려와버렸다. 그 다음 차례인 대학원생은 매달려 턱을 철봉위에까지 당긴채로 양 다리를 하늘로 들어올리기를 반복했다. 한동안 아무도 철봉 근처로 오지 않았다. 대학원생이 조금 떨어진 평행봉으로 자리를 옮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치킨집 사장님이 반팔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붙이고 철봉에 매달렸다. 팔과 가슴이 부풀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다섯 번을오르락내리락 하더니 배가 부풀어올랐고 그제서야 땅으로 착지를 했다. 손을 탁탁 털더니 거만한 자세로 윗몸 일으키기를 하는 곳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몸을 풀고 있는 나를 보고 셔츠 단추를 풀어헤친 부장님이 먼저 해도 된다고 손짓을 했다. 아니, 순서를 지키겠다고 괜찮다고 말했다. 수박을 먹는 자세로 매달린 부장님은 끄윽끄윽 소리를 내며 결국 세개를 해냈다. 말을 걸어준 친근감 탓인지 부장님 하나만 더요, 라고 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나는 아무래도 부끄러워 일곱 개를 빠른 속도로 하고 내려왔다. 배치기를 하면 뭔가 시선이 집중될까봐 오로지 등과 어깨로만. 그렇게 우리가 서로 순서를 기다려주고 혹은 거기를 떠나는 사이 지나던 할아버지도 아빠 손을 잡고 나온 아이도 한번씩 철봉에 매달리다 갔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각자 자기 몸무게만큼 매달렸다. 하지만 무거운 사람이 가볍게 매달렸을 수도 있고 가벼운 사람이 무겁게 매달렸을 수도 있다. 땅으로 끌어당기는 힘이란 무게로 정해져있지만 하늘을 잡아당기는 힘은 정해져있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노력한만큼 생겨나는 힘이란 매일같이 한계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지혜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곧 정직한, 정직의 힘이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는지 어느 책에서 본 글귀였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른이 된다 것은 상상력을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여기서 상상력은 '해야만 하는 것' 의 반대의미로 읽힌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 행동들. 우리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에 들어가지 않는 것, 예를 들어 철봉과 같은 것들. 


우리가 매달린 것이 내 몸의 무게일까 아니면 다른 것의 무게일까. 상상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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