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300원이 찍혔다. 벌써 보름이 지났나 했지만 아직 삼분의 이나 남았다. 교통비의 인상으로 내 인상도 찌뿌려졌다. 아주 좋은 꿈을 꿨었다. 깨고 싶지 않을정도로, 다만 기억나지 않을 뿐. 손가락이 욱신 거려서 깬 것은 아니란 것만은 확실했다. 번쩍 눈을 떴다, 오늘 서둘러 해야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번쩍'하는 소리가 날 정도로 번쩍 눈이 떠졌다. 


택시가 잡히지 않자 서울 콜택시 경기콜택시를 연거푸 호출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부근에 빈 차량이 없다는 문자가 수신함에 가득차고 있었다. 열두시 오십분을 넘어 새벽한시로 가는 동안이 너무 길었다. 잠시 앉아 쉬자고 셔터가 내려진 은행입구에 털썩 앉았을 뿐이다. 


아내 꿈을 꿨었나 싶다.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좋은 꿈이었지 않았을까 되짚어본다. 몇몇 사람들이 오갔고 청소부 아저씨가 내 발밑을 쓸고 있다. 그러니까 택시를 잡은 기억은 있는데 집으로 간 기억은 없다! 양가죽이었는지 소가죽이었는지 그런건 중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굉장히 개운하게 잔 것만은 사실인지라 가방에 고마워했다. 현금다발이 무사한지 확인했다. 핸드폰이 없다, 요즘 세상에 누가 폴더폰을 가져간단 말인가. 등 뒤쪽에서 이걸 찾나, 자네. 건물을 지키는 어르신의 쇳소리가 났는데 그냥 돌려주기는 싫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만원짜리 지폐를 꺼내들자 그렇게 많은 돈은 됐고 담뱃값 정도만. 만원짜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마터면 말할 뻔 했다. 


오전 6시 6분에 첫차가 왔다. 승객이 없을 줄 알았는데 거의 절반의 좌석이 차있다. 나와 비슷한 꼬락서니의 남자옆에 앉았다. 내 냄새를 지우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려웠다, 내 탓이다. 오늘 일을 꼭 일기에 적어놔야겠다고 라면을 먹으면서 아내는 말했다. 나는 몇숟갈 뜨지 못했다. 샤워를 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나를 집으로 데려다 준 버스일까 잠시 의심을 해봤다. 삐빅하고 66300원이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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