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첩을 뒤적이다, 현재과 과거를 잇는 사진과 현실은. 정원이 밖에 없구나. 했다. 

어찌보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혹, 과거에 집착할 수 있게도 보이나 그럴만한 과거가 없는 것보다는 무조건 나은 일일 것이다.

 

확실히 변했다. 물론 나도 많이 변했다. 

변하지 않고서 사는 동물이 있을까.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들이 과연 있을까. 

사랑까지도 변하는 마당에, 친구란 더 그렇지 않느냐. 

내 작은 새장속에 가둬둔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속에 내가 갇히고야 말았다. 

그런 꼬락서니 하고는, 나는 혼쭐이 났다. 다행히 그 어떤 이들보다도, 친구로부터 난 혼쭐이 났다.

 

앞서 얘기했듯이 정원이는 파브르 박, 꼭 파브르처럼이 아니라, 

파브르와 같이 연구하고 살고 싶었던, 그의 작은 소망이 엿보이는 웃음가득한 별명. 

자주 산에 다녔다. 꽃이 피는 봄부터, 눈덮인 겨울에까지. 끊임없이 우리집 뒷산을 누볐다. 

난 며칠 전에도 다녀왔다. 그 곳엔 아주 많은 것들이 살고 있다. 

다람쥐도 있으며, 산딸기도, 무시무시한 뱀도, 

무엇보다 그것과 관련한 기억들도 고스란히 살아있다.

 

나는 잘 모르니까, 정원이가 말하면 다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편하다. 

모든 게 다 그렇다. 내겐. 여튼 정원이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아는 듯 했다. 

뱀보다 구렁이라고 하면 믿었고, 앵두보다 산딸기라고 하면 다 믿었다. 

31사단 사격장하고 가까워 그곳에 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정말 혼비백산한 마음까지, 

드러내보이진 않았지만, 모든 정원이의 말을 난 믿었다. 

설령 그게 거짓이라고 해도, 난 믿어서 나쁠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런 이유에서라도 믿었다. 

믿었더니, 정말 정원이는 지금 파브르가 되어있다. 아니, 되어가고 있다. 신기하다. 

그건 지켜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일이다.

 

갑자기 칭찬이냐고 따분해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안다. 모든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글에도 밀고 땡기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내 말을 마지막으로, 이번 편은 마친다.

 

 

조숙한 놈이었다. 
정원이는 항상 나보다 성적으로 우위였다.
먼저번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관심사가 나와는 달랐기 때문에. 
난 학업 이외의 시간을 운동으로 보내는 반면 정원이는 보시다시피. 
물론 정원이가 학업이외의 전반적인 시간을 저런 농담으로만 허비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자신만의 고유영역이 있었지 않았나. 싶다. 

파브르. 그의 어릴 적 별명이다. 
그냥 파브르도 아니고 파브르 박이란다.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디세어 이런 것들을 주워들었는지, 또한 영문법도 쓸 줄 알았던 것이. 
참으로 내게는 대단했던 기억이었다. 되짚어보면. 
박garden 이라고도 자기를 소개한 것 같다.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방법 중 자신의 이름과 이미지를 연상시키도록 하는 
고도의 테크닉을 구사했던 것을 보면 분명,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음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위의 글은 정원이가 자신의 또다른 친구에게. 

나를 소개하는 내용의 편지다.

관심사가 다른 이유에서 쉽게 친해지지는 못한 듯.

정원이는 나와는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정원이는 나를 여자애에게 인기가 많다는 이유로

접근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또 여자다.

그놈의 여자는 모든 남성들의 관심사이며, 공유점인가.

어쨌든 그렇게 해서라도 정원이와 친한(?)관계형성이 된 것일까.

절대로 내 성격이 좋아서 내게 접근한 것은 아니었을터.

 

저 편지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제일 밑부분 오른쪽을 차지하고 있는 날짜다.

1992년 7월 11일. 때는 여름, 그리고 여름방학이 다가오는 것.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나치려다 생각이 났다.

7월 11일의 의미는 이것이다. 바로 정원이의 생일 4일전.

내가 유추하는 바로는 정원이는 자신의 생일파티에 가능한

많은 여학생들을 초대해 줄것을 내게 원하지 않았나 싶다.

난, 학급 반장이었고, 앞서 얘기했듯이 여학생으로부터 인기가

많았던 이유에서 말이다. 본인은 급구 아니라고 하겠지만,

 


2년 전, 난 그 사건에 대한 심증을 굳혔다.

여름 바다로 놀러간 어느날,

정원이는 조개구이를 먹으면서 내게 말했다.

 

"이런 얘기는 안하려고 했는데, 말야,

  너 5학년 네 생일에는 서른 명 넘게 왔었어,

  근데, 내 생일엔 고작 열댓명 왔단 말야,

  그것도 남자애들만 득실득실... 솔직히, 섭섭했다."

 

내가 미안해야했다.

그것 말고는 정원이의 마음이 풀리지 않을 듯 했다.

난 막, 미안해하며 있었는데, 수훈이는 옆에서 자지러지게 웃고

또 웃고, 계속해서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자료출처 :광주 서산국민학교 5학년 4반 학급문고 '웃음의 꽃밭' ] 


꼬집는 것이 폭력을 퇴치하기 위해서라는 둥.
여자 같다고 해서 여자와 잘 어울린다는 둥.
이때부터 정원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를 해왔다.
공부를 잘 못하기 때문에 착한 마음으로 산다...?
이것은 또 무슨 논리인가.
대부분의 사람들 같지 않게,
정원이는 일찌감치 공부의 꿈을 접었다.
참 다행한 일이다.

문득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 다닐적에.
모의고사 수학문제 2번이었던가?
여튼 가장 쉬운 문제들중 하나였던
1번부터 5번까지의 문제 중 하나를
자기 과외선생님 덕에 풀게 되었다고
너희들(나와 수훈)도 언능 과외를 하라고.
막, 강요했던 정원이의 농섞인 말에
우리 둘은 어찌나 황당해했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순진한 구석이 많았던 녀석이었는데.
어찌하다 이렇게 되었을꼬.
 
서태지의 팬들과 장국영의 팬이 본다면,
참으로 곡할 노릇이로고,
참으로 뻔뻔한 노무자식일세 
하긴 지금도 그러고 다닌다. 
100명 중 99명이 최양락이라고 하고
어떻게든 한 명을 꼬셔서 윤계상 닮았다고 하면. 
자기는 무조건 윤계상이다. 
만약 자신이 최양락이네, 임하룡이네 하고 다닌다면. 
그것은 분명 동정심 유발 + 유머스러운 이미지 도발을 
상대방에게 구걸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자료출처 : 광주 서산국민학교 5학년4반 학급문고 '웃음의 꽃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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