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락모락 피어오르다_의 모락<morock>이다. 

할아버지는 논을 짓고 할머니는 밭을 짓고 아버지는 집을 짓고 엄마는 밥을 짓고

동생은 모래성을 짓고 나는 노래를 짓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기서 무엇이라도 짓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다.

피어오르다는 말이 좋다. 그것보다 그 앞에 붙어 맛을 더해주는 모락모락이라는 말이 좋다. 

사전적 의미로는 이렇다.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조금씩 떠오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조건없이 무엇이 떠오른다면 좋은 일, 한 줄기 한 가지라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면 좋겠다.  



#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우리가 약속한 것은 3월 1일, 쉽게 기억하기 위해서 모든 날이 시작되는 느낌이어서 1일로 잡았던 것이 아니라 유선생님이 그 전에 공사가 마무리되니 아무래도 여유있게 잡으려면 3월이 시작되는 날이 좋겠다 한것이다. 공사는 설이 지나고 사흘이면 완료될 것이라 했으니 굳게 믿고 원래 살고 있던 후암동 집을 그 때에 빼겠다고 계획했다. 명절 연휴를 지나고 2월 23일 월요일에 공사현장에 나갔다, 캔커피와 유자차를 사들고.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설 연휴에는 자재상도 쉬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나 그 외에 정리를 한다거나 전기작업을 한다거나 하는 세심한 작업을 원했던 것인데 미처 말을 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여겨져 고개를 끄덕이며 잘 부탁드린다고 하고 나왔다.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고 한 것은 작업실 공사건도 있지만 정규앨범 작업을 서둘러 마쳐야 3월에 발매를 맞출 수 있겠다고 하는 말이다. 악기녹음은 끝이 났지만 보컬 녹음이 아직 세 곡이나 남아 서둘러야 함을 말씀드리고 자리를 나와 후암동 작업실로 갔다. 덧붙여 최양의 방에는 후암동 작업실에 설비된 자재를 빼와야 공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실과 화장실은 대충(?) 마쳤으니 내 방의 방음공사를 이틀간 한다고 가정하여 수요일까지 후암동에 있는 자재를 가지고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앨범의 발매와 관계없이 작업실 공사시일에 맞춰 보컬녹음을 서둘렀다. 이틀을 꼬박 노래만 불러제꼈다, 나의 성급함이 노래에 묻을까봐 조심스럽게 만졌지만 그것이 후에 아주 큰 후회로 남게 되었지만. 





약속한 수요일이 밝았고 약속대로 자재를 싣고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잘했든 잘하지 못했든 이틀동안을 세 곡 안에 담았다. 그 때 노래한 것이 <Animation>과 <있는 반찬에만 먹어도>와 <일각여삼추>였다. 녹음한 파일들을 아이폰에 담고 이어폰으로 들으며 걸어내려간 해방촌 오거리 언덕이 생각이 난다. 친구 수훈이와 열심히 자재를 비롯한 짐을 나르고 있었을 무렵 최양의 방과 내 방에는 차음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순조롭게만 보였다. 급하게 녹음을 하긴 했지만 내 할일은 이것으로 마쳤으니 도울일이 있으면 돕겠다 청해 목요일 오전부터 이삿날인 토요일까지 공사현장에 나갔다. 


  

유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기밀성(틈을 메운다는 뜻)이 세계최고라는 3M 테잎을 고무판이 겹치는 사이에 발랐다. 그것으로 일을 시작했고, 쉬운 작업과 자재와 공구를 나르는 일을 도맡아 도왔다. 천장을 뜯어낸 이유가 천장이 낮아서였는데 다시금 두꺼운 솜뭉치로 천장을 메우기가 싫기도 하고 무게도 꽤 나가는 것을 우려하여 고른 것이 지금 사진의 '저것'이다. 비교적 비싼 자재라고는 하나 두 개의 방 천장만 하면 되니 금액차이가 얼마나지 않을 것이란 계산에 '저것'을 골랐다. 밋밋한 표면이라면 열 맞출것도 없이 붙여나가면 되는데 중량이 작고 쉽게 부서지는 종이재질로 되어 있으며 심지어 홈이 파여있어서 그것을 하나하나 맞춰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양면 테잎을 붙이고 모서리에 공업용 본드를 바르고 붙이면 끝이긴 했지만 울퉁불퉁한 천장에 그것을 고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손에 본드가 묻고 접착력이 강한 테잎이 내 손 지문을 갉아먹어도 하루면 끝날 것이라 생각해 손을 돌볼 틈이 없었다. 



이 사진은 3월 1일 이사를 하고 난 그 다음날일 것이다. 후암동 작업실에 있는 내 짐을 모조리 빼와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엌 한 구석에 놓고 교회에 다니는 장판집 아저씨가 이른 아침부터 나와 장판을 까는 중에 찍었던 사진으로 기억한다. 일요일 예배시간이 11시인 것을 감안해 8시부터 나와 민첩한 손놀림으로 비닐장판을 깔았다. 약속된 시간이 하루가 지나 별 수 없이 김형과 나와 친구 수훈이가 나와서 천장작업을 했다. 목요일부터 시작한 천장작업이 왜 아직도 한창인지 설명을 해야한다. 하루면 끝날 줄 알았던 것이, 실제로 그 작업의 환경과 방법이 서투른 탓도 있었거니와 우리의 유선생님은 나와 상의도 없이 그 비싼 자재를 거실용으로도 사용하기 위해 넉넉히 샀다고 한 탓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내가 전에 거실에서 작업을 하는 친구도 올 것이고, 때때로 거실에서 작은 공연도 열겠다고 한 말을 듣고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배려해준 것은 고마우나 왜 미리 상의하지 않고 결정을 했는지 그리고 금액적인 부분을 너무 간과한 것은 아닌지 심려가 되었다. 오랜동안 살 것이라고 얘기한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중간에서 집주인과 조율을 했다고, 집주인과 절반씩 부담해 공사를 한 것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천장에 붙이는 자재는 입자가 곱고 잘 부서져 한번 출하하면 환불이 어렵다고 한 말도 덧붙였다. 어쩔 수 없이 거실을 붙여나갔다, 그것이 토요일이다. 부엌 쪽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했지만 자재가 충분히 남아 붙여버리는 것이 깔끔하겠다고 유혹했다. 유혹만 하고, 일은 나와 수훈이가 했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쓰여 일손을 도우러 나온 김형과 그의 아는 동생분에게 양장피와 고량주를 대접하고 쉼없이 또 일을 했다. 화장실 변기를 앉히는 것도 처음 해본다는 김형 덕분에 그의 아는 동생(건축업자)이 대신해 변기를 설치하고 실리콘을 곱게 쏴주었다. 지금 여기는 모두가 초짜다. 일을 나눠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에 너댓명이 붙어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고 간섭도 많고, 앞서 유선생님은 유혹만 한다. 정확히 3월 2일 저녁의 일이다. 


나는 그 날 저녁에 이 모든 상황과 사정에 대해 절감하며, 내가 왜 며칠동안 새벽같이 나와 여기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세입자인 내가 캔커피를 사나르고 일을 맡아 하며 정리를 하고 아침에 문을 열고 밤늦게 문을 닫고 하기 위해서, 새벽에 아내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나와 밤 늦도록 일하며 컴컴한 집안에 들어가 곤히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어서 빨리 자야 내일도 일찍 나가지, 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위해서, 그보다 이 모든 것을 깨닫기 위해서. 


몸이 피곤한 것은 참을만 하나, 서로가 약속한 것이 잊히고 미안함이 없으며 서로에게 불신이 쌓여가는 것은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3월 2일 밤에 김형에게 전화를 걸어 잘 들어가셨냐고 물었다. 그렇게 2화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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