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많은 기억들을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그 안에는 단 하나의 선율도 흐르지 않는가. 

창가에 서 있는 시인이여,

나에 대해 노래해달라. 나의 지친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들에게는 없는 독특한 강점을 지녔노라고 

제발 노래해달라. 


심보선 <사랑은 나의 약점> 중에서





# 봄을 향해

 나는 계절을 셀 때 여름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봄은 제일 마지막 순서가 되는데 숫자로 하면 2-3-4-1 순서가 된다. 봄이 시작이라면 가장 추운 겨울이 마지막이 되어버려서 그렇다, 다시 1이 되는 것이 정말 1이 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_경험상 절대 그렇지는 않다_계절의 이름은 그대로인 터라 이렇게 말을 꺼낸 것이다. 결국 여름이 1인 시점에서 나는 지금 3을 지나가는 중이며, 곧 4에 도착할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이제 곧 4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생각하고 손을 털었다. 

 먼지 묻고 흠집이 난 손을 툭툭 털어보았으나 오늘 아침_그러니까 그 날 아침이다_비스듬히 내려앉은 내 방 천장을 보고 나는 다시 3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꽃샘추위가 길어진 만큼 내 방의 겨울도 길어졌다. 천장이 평평하지 않아 스티로폼 위에 나무막대들을 듬성듬성 붙여 평행을 맞추기 위함이었다고 유선생님은 이야기했다. 나무막대들을 다시 천장 스티로폼에 고정을 시키고 부분적으로 내려앉은 데를 다시 붙였다. 그러나 이미 힘이 빠진 나무막대들은 중력에 너무 쉽게 무너졌다. 결국 천장의 절반을 뜯어내_그 비싼 자재가 행여 부서질까봐 정말 조심스럽게 뜯어냈으나 그 중에 두어장은 아주 산산히 부서졌다_말라붙은 본드자국을 하나하나 없앴다. 천장에 엉망으로 고정된 나무들도 다 뜯어내 스티로폼 위에 곧바로 붙이기로 했지만 평행이 맞지를 않아 애를 먹었다. 삐뚠 곳은 칼로 흠집을 내 구브러지게 만들어 고정을 시켰고, 천장과 바닥을 이어주는 옷걸이로 자재가 붙을 때까지 고정을 시켜두었다. 본드가 어느정도 말라붙을 때까지 대략 20분이 걸렸는데 40장을 그렇게 붙여나가니 이틀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천장에 조명을 달기가 어려워 벽에다 레일조명을 달았고 아내의 권유로 소파를 골랐다. 상보몬을 소환해 창문을 막은 데에다 나무로 흡음판(?)을 만들어 걸어두었다. 사진 오른쪽이 녹음할 부스인데 커튼을 쳐놓을지 그냥 둘지는 지내보면서 결정을 해야되겠다. 아직 녹음은 안해봤으나 방음의 정도는 꽤 좋다, 큰길 가에 위치한 집인데 경적소리가 아주 작게 새어들어오는 정도를 제외하곤 고요함이 유지된다. 저음의 웅웅 거리는 소리를 잡기란 참 어렵다. 귀의 위치가 바뀌면 저음의 강도 및 확산도 아주 잘 바뀌어서 이것을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잘 안온다. 어렵게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 살면서 필요한 부분 더 채워넣거나 빼거나 해야지. 




방음에 있어 문이 제일 중요하다, 값비싼 방음문으로 하지 못하고 일반문을 두개 달았다. 창문을 막는 여닫이문도 하나 짜서 고정시켰다. 차음재와 흡음재로 감싸고 천으로 덧댔다.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 틈을 메우는 데 애를 먹었다. 



이 싱크대를 설치하는 데 무려 1달이 걸렸다. 간단한 음식을 해먹을 것이다 하고 얘기를 한 게 화근이었던지 지금 싱크대의 절반밖에 안되는, 그러니까 설거지통과 가스레인지를 올리면 끝인 두 세트로 사진의 오른쪽을 채웠다. 왼쪽에는 작은 선반을 벽에 달아 이것저것을 올려두는 것으로 합의했으나 결국 집주인이 집을 방문하고 나서야 지금의 저 싱크대로 교체가 되고 말았다. 설계를 변경했다는 변명으로 일관했지만 토를 달지는 않았다, 그것이 사실이었으니까. 나중에 잔금을 치룰 때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거실 천장을 방 안의 것과 같은 자재를 사용한 것은 비용의 두배 가까이를 들게 했다. 집 주인과 나눠 부담하기로 했지만 그 액수가 너무 커서 원래 예상한 비용을 훨씬 웃돌아 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아주 쉽게, 그렇다면 싱크대를 작은 것으로 가자고 유선생님이 말을 했고 자기가 집주인을 잘 설득해보겠다고 했다. 결국에 그것이 잘 되지 않았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여름에 물을 끓여먹기란 여간 힘든일이 아닐꺼라 말한 내 엄마가 교회집사님을 통해 장만한 정수기를 설치하고_이것도 5년이 되어가지만 필터교체비용이 만만치 않아 3년을 썩혀둔_바닥과 틈을 메웠다. 이것으로 처음에 계획된 공사가 다 끝이 났다. 3월 31일의 일이었다. 


# 기념

 음악을 시작한 지_사실 어렸을 때부터 늘 음악과 함께 했지만_10년이 되는 해다. 2005년 9월에 결성한 순이네담벼락이 나의 첫 음악적 시도였으니. 10년만에 작업실을 만들게 된 것이 참 감사하다. 이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걸어와보니 지금 여기에 닿았다고 생각한다. 나의 노력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다, 가족과 아내와 친구들과 또한 지금 만난 최양과 홍군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결과들이다. 이제 내 정규앨범을 발매할 차례다, 두가지를 한번에 진행하느라 고군분투했으나 일정이 뒤로 미뤄진 것은 그만한 때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란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도 나는 흙에 물을 주고 꽃을 피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고, 



가끔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도 나눠먹고 노래도 함께 부르고 싶다. 



무엇보다 모락모락, 

우리의 꿈과 사랑을_꿈과 희망이라고 하기엔 너무 오그라든다_피워오르게 하고 싶다. 


약속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지난 것은 지난대로 두고 

부족한 부분은 살면서 채우고 넘쳐나는 것들은 사람들과 나누고 하여

사물과 기구들은 훼손되어도 사람들과 가치는 녹슬지 않게 

아궁이에 불을 계속 지펴야겠다. 


사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굴뚝인데, 

여름이 되면 굴뚝에 낙서나 하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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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 피어오르다_의 모락<morock>이다. 

할아버지는 논을 짓고 할머니는 밭을 짓고 아버지는 집을 짓고 엄마는 밥을 짓고

동생은 모래성을 짓고 나는 노래를 짓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기서 무엇이라도 짓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다.

피어오르다는 말이 좋다. 그것보다 그 앞에 붙어 맛을 더해주는 모락모락이라는 말이 좋다. 

사전적 의미로는 이렇다.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조금씩 떠오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조건없이 무엇이 떠오른다면 좋은 일, 한 줄기 한 가지라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면 좋겠다.  



# 모든 것이 이해되는 단 한 순간

 사실, 나는 그것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깊이를 다 잴 수는 없었겠지만, 그것을 드러내놓고 서로가 이내 이야기하는 순간만이라도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때늦은 순간이라고 하는 지금만 남아 엉킨 것들을 억지로 풀어내다가 가위로 잘라내고 있는 나만 남겨져 있는 느낌이다. 오해를 일삼느라 내 일에도 오해가 생길까봐 걱정이 되는 와중에 아내는 나의 근심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너를 응원해, 응원이라는 말밖에 못하지만 마음을 다해 너를 응원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인가, 응원인가. 혼자서 하는 일을 수차례 겪어본 후로 나는 도움받는 일에 인색하고 응원받는 일에는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인정과 존중의 다름아닌 이름으로 알고 있어 당연히 해야하는 인사치레로 여겨짐을 나는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렇다, 나는 또 홀로 내 일과 내 일과 관련된 것들만 주구장창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어왔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버려두고 있었다. 오해가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내가 주도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해가 저물도록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하는 것이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것은 나의 하루였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늦어져도, 얼룩이져도, 다시 무너지고 망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의 하루였기 때문이고, 나의 내일이 또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에, 그러니까 모든 것이 이해되는 어떤 한 순간부터 나는 손수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 계획을 하게 되었고 일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점점 번져가길 원했다. 최양의 방을 꾸미는 데 있어_꾸민다기 보다는 공사의 일이지만_최대한 최양의 의견과 나의 의견을 번갈아 살폈다. 최양이 내게 피아노를 보러 가자고 청한 것이 그런 일들 중에 하나라고 여겼다. 우리가 함께 사용하는 공간에 대해 서로의 뜻을 묻고 답하는 것이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음에도, 일의 수월함과 경제적 효율 때문에 줄곧 생략을 해버렸던 것이었다면 시간은 조금 걸리더라도 평균을 맞춰 가는 것이 나중을 위해 좋을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최양도 그런 마음이었을 테지만, 일이 점점 늘어지고 길어지는 데에 불만을 감출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천장은 잘 붙었다. 옥상에서부터 난 배수관을 어쩌지 못해 흉측한 모양으로 천장 한 구석을 장식하고는 있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그대로 두었다가 은박지로 살짝 감쌌다. 이케아에서 직접 산 조명으로 이틀을 옥신각신 했지만 천장을 이용해 달지 못해 벽면 구석을 이용해 전등을 달았다. 며칠 후 방음창문을 달고 몇가지 가구를 넣어 완성했다. 



 3월 6일 금요일 밤의 일인가 싶다. 저 때가 금요일인 것이 확실하다. 매주 금요일 밤마다 합주를 하는데 연락없이 합주를 빠지고 밤새 페인트를 발랐던 기억에서 그렇다. 최양과 페인트색을 고르고_그 고른 페인트도 주문한 것이 아니라 유선생님이 직접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_한 번 두번 덧칠을 해나가는 과정에 있어 묻고 번지는 일을 우려해 하루밤낮을 이용해야했다. 페인트를 바르고 마를 동안에 서툰 손동작으로 군데군데 실리콘을 바르고 페인트가 마른 것 같으면 다시 덧칠을 하니 어느덧 아침이 밝았다. 본드냄새와 페인트 냄새가 묘하게 섞인 가운데 교습생과 수업을 하기도 하면서 어질러놓은 장판 위에서 소주를 따 마시기도 하면서 그 주말을 보냈다. 내가 성격이 급한가 자문하기도 하면서 발라놓은 마스킹 테잎을 뜯어내고 미진한 부분을 낑낑대면서 맞춰나갔다. 공구를 찾으러 보일러실을 왔다갔다 하는 중에 옥상마당을 슬며시 비추는 달빛, 그 하나가 위안이 되는 그런 밤이 계속 되었다.   

# 첫줄

 바닥이 평평하지 않은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천장이 삐뚠 것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문이 닫히지 않는다는 것과 붙어 있던 것들이 갑자기 떨어져 나온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문의 용도는 열고 닫는 것에 있으며 고정시켜 놓기 위해 붙인 것인데 그것이 자기의 몫을 해내지 못한다면 왜 공을 들여 '일'을 했느냐는 말이다. 디자인을 고려해 그렇게 했다고 하는 것을 두고 나는 혀를 내둘렀다. 나에게 미적 감각이 없다고 해도 나는 괜찮다, 내가 우리가 여태껏 일을 하는 소기의 목적은 공간의 정확성과 효율성에 있지 보기에 좋고 아름다운 것에 있지 않았다. 꾸미고 가꾸는 것은 시간을 들여 하면 될 일,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눈과 손을 빌어 부탁할 수 있는 일이기에_자꾸 미적인 부분에서 공사의 시간을 미루는 것이 너무 싫었다_일단 기본적인 공간의 세팅을 요청했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첫줄인 셈이다. 그 첫줄을 잘 써야 그 다음줄, 결국에 하나의 이야기를 써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간을 만들기 전 주문해 놓은 현관등을 달았다. 작년 여름 함께 작업한 싱어송라이터이자 디자이너인 seine에게 전등의 완성품을 주문했다. 군더더기 없이 가지고 온 그녀의 선물에 나는 그저 웃고 받아들 뿐이었다, 사실 그럴 힘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눈을감은 상보몬에게 미안하지만 그때 기분을 표현한 사진은 이 한장이 전부니까, 남긴다. 


 손이 닿으면 페인트 부스러기가 떨어지거나 손의 얼룩이 묻기에 바니쉬를 발랐다. 그것이 바니쉬였나 할 정도로 정신없이 발랐지만 바니쉬 종류일 것이다. 놔두면 언젠가(누군가) 바르겠지만 발랐다. 지금 시간을 공들여 써야 다음 시간이 생겨나기 때문이었다. 공사가 길어지는 바람에 장판 곳곳이 패이거나 찍혀있었다. 뭐 그런 거야 괜찮은 정도다. 이제야 제법 '집'과 같다. 밤이 늦도록 뭔가 해야할 일이 없는지 체크해본 후 내일을 기약하고 작업실을 나섰다. 내일 어떤 일이 닥칠 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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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 피어오르다_의 모락<morock>이다. 

할아버지는 논을 짓고 할머니는 밭을 짓고 아버지는 집을 짓고 엄마는 밥을 짓고

동생은 모래성을 짓고 나는 노래를 짓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기서 무엇이라도 짓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다.

피어오르다는 말이 좋다. 그것보다 그 앞에 붙어 맛을 더해주는 모락모락이라는 말이 좋다. 

사전적 의미로는 이렇다.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조금씩 떠오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조건없이 무엇이 떠오른다면 좋은 일, 한 줄기 한 가지라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면 좋겠다.  



#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

 우리가 약속한 것은 3월 1일, 쉽게 기억하기 위해서 모든 날이 시작되는 느낌이어서 1일로 잡았던 것이 아니라 유선생님이 그 전에 공사가 마무리되니 아무래도 여유있게 잡으려면 3월이 시작되는 날이 좋겠다 한것이다. 공사는 설이 지나고 사흘이면 완료될 것이라 했으니 굳게 믿고 원래 살고 있던 후암동 집을 그 때에 빼겠다고 계획했다. 명절 연휴를 지나고 2월 23일 월요일에 공사현장에 나갔다, 캔커피와 유자차를 사들고.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설 연휴에는 자재상도 쉬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나 그 외에 정리를 한다거나 전기작업을 한다거나 하는 세심한 작업을 원했던 것인데 미처 말을 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여겨져 고개를 끄덕이며 잘 부탁드린다고 하고 나왔다. 처음 약속한 나를 데리고 가자고 한 것은 작업실 공사건도 있지만 정규앨범 작업을 서둘러 마쳐야 3월에 발매를 맞출 수 있겠다고 하는 말이다. 악기녹음은 끝이 났지만 보컬 녹음이 아직 세 곡이나 남아 서둘러야 함을 말씀드리고 자리를 나와 후암동 작업실로 갔다. 덧붙여 최양의 방에는 후암동 작업실에 설비된 자재를 빼와야 공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실과 화장실은 대충(?) 마쳤으니 내 방의 방음공사를 이틀간 한다고 가정하여 수요일까지 후암동에 있는 자재를 가지고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앨범의 발매와 관계없이 작업실 공사시일에 맞춰 보컬녹음을 서둘렀다. 이틀을 꼬박 노래만 불러제꼈다, 나의 성급함이 노래에 묻을까봐 조심스럽게 만졌지만 그것이 후에 아주 큰 후회로 남게 되었지만. 





약속한 수요일이 밝았고 약속대로 자재를 싣고 공사현장으로 향했다. 잘했든 잘하지 못했든 이틀동안을 세 곡 안에 담았다. 그 때 노래한 것이 <Animation>과 <있는 반찬에만 먹어도>와 <일각여삼추>였다. 녹음한 파일들을 아이폰에 담고 이어폰으로 들으며 걸어내려간 해방촌 오거리 언덕이 생각이 난다. 친구 수훈이와 열심히 자재를 비롯한 짐을 나르고 있었을 무렵 최양의 방과 내 방에는 차음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순조롭게만 보였다. 급하게 녹음을 하긴 했지만 내 할일은 이것으로 마쳤으니 도울일이 있으면 돕겠다 청해 목요일 오전부터 이삿날인 토요일까지 공사현장에 나갔다. 


  

유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기밀성(틈을 메운다는 뜻)이 세계최고라는 3M 테잎을 고무판이 겹치는 사이에 발랐다. 그것으로 일을 시작했고, 쉬운 작업과 자재와 공구를 나르는 일을 도맡아 도왔다. 천장을 뜯어낸 이유가 천장이 낮아서였는데 다시금 두꺼운 솜뭉치로 천장을 메우기가 싫기도 하고 무게도 꽤 나가는 것을 우려하여 고른 것이 지금 사진의 '저것'이다. 비교적 비싼 자재라고는 하나 두 개의 방 천장만 하면 되니 금액차이가 얼마나지 않을 것이란 계산에 '저것'을 골랐다. 밋밋한 표면이라면 열 맞출것도 없이 붙여나가면 되는데 중량이 작고 쉽게 부서지는 종이재질로 되어 있으며 심지어 홈이 파여있어서 그것을 하나하나 맞춰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양면 테잎을 붙이고 모서리에 공업용 본드를 바르고 붙이면 끝이긴 했지만 울퉁불퉁한 천장에 그것을 고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손에 본드가 묻고 접착력이 강한 테잎이 내 손 지문을 갉아먹어도 하루면 끝날 것이라 생각해 손을 돌볼 틈이 없었다. 



이 사진은 3월 1일 이사를 하고 난 그 다음날일 것이다. 후암동 작업실에 있는 내 짐을 모조리 빼와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엌 한 구석에 놓고 교회에 다니는 장판집 아저씨가 이른 아침부터 나와 장판을 까는 중에 찍었던 사진으로 기억한다. 일요일 예배시간이 11시인 것을 감안해 8시부터 나와 민첩한 손놀림으로 비닐장판을 깔았다. 약속된 시간이 하루가 지나 별 수 없이 김형과 나와 친구 수훈이가 나와서 천장작업을 했다. 목요일부터 시작한 천장작업이 왜 아직도 한창인지 설명을 해야한다. 하루면 끝날 줄 알았던 것이, 실제로 그 작업의 환경과 방법이 서투른 탓도 있었거니와 우리의 유선생님은 나와 상의도 없이 그 비싼 자재를 거실용으로도 사용하기 위해 넉넉히 샀다고 한 탓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내가 전에 거실에서 작업을 하는 친구도 올 것이고, 때때로 거실에서 작은 공연도 열겠다고 한 말을 듣고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배려해준 것은 고마우나 왜 미리 상의하지 않고 결정을 했는지 그리고 금액적인 부분을 너무 간과한 것은 아닌지 심려가 되었다. 오랜동안 살 것이라고 얘기한 것이 화근이 되었는지 중간에서 집주인과 조율을 했다고, 집주인과 절반씩 부담해 공사를 한 것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천장에 붙이는 자재는 입자가 곱고 잘 부서져 한번 출하하면 환불이 어렵다고 한 말도 덧붙였다. 어쩔 수 없이 거실을 붙여나갔다, 그것이 토요일이다. 부엌 쪽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했지만 자재가 충분히 남아 붙여버리는 것이 깔끔하겠다고 유혹했다. 유혹만 하고, 일은 나와 수훈이가 했다.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쓰여 일손을 도우러 나온 김형과 그의 아는 동생분에게 양장피와 고량주를 대접하고 쉼없이 또 일을 했다. 화장실 변기를 앉히는 것도 처음 해본다는 김형 덕분에 그의 아는 동생(건축업자)이 대신해 변기를 설치하고 실리콘을 곱게 쏴주었다. 지금 여기는 모두가 초짜다. 일을 나눠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일에 너댓명이 붙어 이러쿵저러쿵 말도 많고 간섭도 많고, 앞서 유선생님은 유혹만 한다. 정확히 3월 2일 저녁의 일이다. 


나는 그 날 저녁에 이 모든 상황과 사정에 대해 절감하며, 내가 왜 며칠동안 새벽같이 나와 여기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세입자인 내가 캔커피를 사나르고 일을 맡아 하며 정리를 하고 아침에 문을 열고 밤늦게 문을 닫고 하기 위해서, 새벽에 아내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나와 밤 늦도록 일하며 컴컴한 집안에 들어가 곤히 자고 있는 아내의 얼굴을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어서 빨리 자야 내일도 일찍 나가지, 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위해서, 그보다 이 모든 것을 깨닫기 위해서. 


몸이 피곤한 것은 참을만 하나, 서로가 약속한 것이 잊히고 미안함이 없으며 서로에게 불신이 쌓여가는 것은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3월 2일 밤에 김형에게 전화를 걸어 잘 들어가셨냐고 물었다. 그렇게 2화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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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 피어오르다_의 모락<morock>이다. 

할아버지는 논을 짓고 할머니는 밭을 짓고 아버지는 집을 짓고 엄마는 밥을 짓고

동생은 모래성을 짓고 나는 노래를 짓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던 그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기서 무엇이라도 짓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다.

피어오르다는 말이 좋다. 그것보다 그 앞에 붙어 맛을 더해주는 모락모락이라는 말이 좋다. 

사전적 의미로는 이렇다.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조금씩 떠오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조건없이 무엇이 떠오른다면 좋은 일, 한 줄기 한 가지라도  모락모락 피어오른다면 좋겠다.  




# 앨범작업이 한창이던 2월의 한 중간

 목수일을 하고 있는 동생의 소개로 내부 인테리어 공사중이었던 지금 여기로 오게 되었다. 원래는 혼자 작업실을 구하려던 계획이었으나 세도 비싸고 공간도 비좁아 보다 넓은 공간을 소수 사람들과 쉐어하는 편이 더 좋겠다 싶어서 아는 몇몇을 불러모았다. 아담한 마당도 있는 3층 옥상에 있는 집, 이웃집과 맞닿아 있지만 적절히 방음공사를 하면 서로 얼굴붉히는 일이 없을 것 같아 만장일치로 이 곳을 선택하게 되었다. 큰 길가에 위치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언덕을 올라기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하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도착을 해보니 공사가 한창이었다. 사진에도 보이듯이 천장이_지붕자체가 약간 비스듬하다_왼쪽이 낮은 형태로 되어있는 언뜻보면 예쁜 공간이지만 지내기엔 좀 불편할 듯도 싶었다. 무엇보다 천장이 좀 높은 공간을 원했었는데 생각보다 천장도 낮아서 고민이 많았다. 원래 있던 화장실을 집 내부 끝으로 옮기고 외부로 나 있는 벽들은 석고보드로 보강을 했다. 사실 이것은 내 주문이 아니라 집 주인의 주문이었고, 내부 인테리어 시공에 관련된 비용은 집 주인의 부담이었기 때문에 왈가왈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방음공사를 하려면 어차피 뜯어내야 할 것이 생기는데 다행히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라고만 생각했다. 이 때에는, 





최양_실명을 거론하기가 뭐하므로 피아노방의 주인을 최양으로 지칭한다_의 방이다. 현관을 들어와 왼쪽에 있는 문을 열면 이런 공간이 있다. 천장이 원래는 얇은 합판으로 되어있었지만 안쪽 창문에 닿으면 내 머리가 천장에 닿아서 합판을 떼어버렸다. 노출된 콘크리트가 아니라 콘크리트에 붙어(절대 떨어지지 않는) 스티로폼이 보였다. 암울한 공사의 서막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현관에서 왼쪽 대각선으로 향하면 부엌과 화장실에 닿는다. 단열재를 넣고 석고보드로 마감을 한다. 피아노방 바로 옆이고 창문이 나 있는 외부벽이라 그렇다. 추가로 방음을 해야할 필요는 없었다. 열심인 상보몬_지금 이 곳을 내게 소개해준 장본인이자 공사일꾼이다, 통칭 상보'몬'이라 하겠다_과 푸근하게 생긴 50대 형님이 작업중이다. 내가 직접 할 것은 없기도 하거니와 지켜보기만 하면 부담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아주 잠시 들러 뜨거운 캔커피를 함께 마시는 정도로 며칠을 보냈다. 곧 있으면 설날이니 설 전까지 기본 설비(벽면과 수도 전기, 화장실 배관)만 마치면 설 이후로 4일정도 공사를 하면 3월 1일에는 입주를 할 수 있을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의 유선생님_공사를 도맡아 지휘하는 우리엄마랑 동갑인 아주머니를 말한다_과 근처 오리고기 집에서 최양과 상보몬과 함께 약속을 하고 예산을 짰다. 화창하게 갤 3월을 기대하며 모두가 환히 웃고 그랬었다. 그 때엔, 






부엌으로 나가는 쪽의 끝에는 화장실이 위치한다. 판넬을 대고 시멘트를 바르고 한창 말리는 와중에 김형_우리 삼촌과 비슷한 연배인 그는 아저씨보다 형의 호칭을 선호했다_이 말했다. "난생 처음 타일을 발라보겠네" 뭔가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었달까, 먹구륾이 몰려오는 소리가 있다면 그런 소리일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긴데, 여기 일하는 세 명(유선생님, 김형, 상보몬)의 조합은 굉장히 독특했다. 사실 이것도 나중에 안 사실이라 당시엔 한명 한명이 이야기하는 것과 일하는 것의 인과관계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집 주인 없이 공사를 진행하는 것의 어려움, 누가 이 일을 도맡아 효율적인 시간을 쓰며 진행상황을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 아마 이 때즈음 이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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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 그렇게 이사를 했다. 

2008년 서울에 올라와 이모집에서 살고부터 6년 동안 

네 번의 이사를 하고 현재의 이 집과 이 방에서 이름모를 또 하나의 꿈을 만든다. 


작업중인 노래를 전의 사당동 집에서 마무리를 하려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고 여기 남산 중턱에까지 가지고 올라왔다. 

옥상이 있는 3층 집, 현관에 들어서 왼편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방. 

덕분에 도시의 윙윙 대는 소음이 여기까지 미친다. 

박스 줍는 할아버지의 새벽소리와, 마트배달 오토바이의 힘겨운 엔진소리 또한. 


노래의 작업보다 먼저 작업을 해야겠어서, 

도면을 그리고 자로 재고, 칼로 자르고 못을 박고 땀을 닦는다. 


<1/19>



빛이 잘 드는 창이지만, 너무 크다. 이중창이기는 하지만 오래되어서 틈이 너무 많다. 

결로 현상이 곳곳에 눈에 띈다. 일단 곰팡이를 제거하고 하루간 말려두었다.

공사가 너무 커질 우려가 있어 차음은 하지 못하고 간단한 흡음재로 측면과 후면을 댔다. 

정면에 보이는 부분은 단열벽지(벽돌무늬)가 마음에 들어 따로 흡음하지 않고 벽지만 붙였다. 

바닥은 카펫으로 마무리하고, 가장 문제인 창문과 문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흡음재로 대고 나서 커튼으로 막았다. 창문에는 문풍지를 덕지덕지(^^::) 붙이고 차음제와 흡읍재를 붙여 판을 만들어

녹음할 때만 이중 창문 사이 틈으로 대었다가 뗄 수 있게 하고 원래 있던 블라인드가 딱 들어맞아 만족했다. 

50% 정도는 소리를 잡아준 느낌, 작업하면서 틈틈히 보완해나갈 것을 생각하고 여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1/23>



따로 구입한 것은 나무의자와 사이드 테이블 하나, 

비용을 최소로 해서 시작하고 필요한 게 생기면 하나 두울 채워넣는 게 좋겠다. 




성격이 그렇게 생겨먹었다, 

뭔가 딱딱 들어맞아야 하는, 

빈 틈을 만들어놔야 느슨하여 만족을 아는데, 

자꾸 욕망이 생기니 몸이 고생이다. 


<1/28>




소파와 스탠드를 마지막으로 밤 공간까지 꾸몄다. 

환기가 가장 문제다. 초를 피우고 있지만, 

가구협찬과 이런 저런 조언의 그녀에게 감사의 말을. 

그리고 함께 도와준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친구 수훈에게도, 


3층 옥상에서 하늘까지를 음악소리로 수놓아, 

가려져 있는 별이 보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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