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마고우인 박정원이의 과거사와, 현재사. 그 외의 수두룩빽빽한 그의 뽀록을 낱낱이 밝혀 두루두루 알리고자, 그리하여, 그가 발붙이고 설 땅. 하나도 남김없이. 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가능한 자료는 논픽션으로 할 것이나. 때에 따라서는 그것도 용서치 않고 능치처참할 생각이오니. 착오 없으시길 바라면서.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왜. 이런 짓을 하느냐구요? 

 친구를 너무도 사랑해서. 혹은 이제 곧 장가를 들게 되면 이런 것들이 그냥 기억에만 묻힐 것 같아 하는 수 없이(?) 블로그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함께 가지고 온겁니다. 이 기획물을 연재했던 것은 2006년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때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많았던 때라 우여곡절이 많은 이 기획물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이 폴더에 하나씩 담아 연재를 계속 해볼 생각입니다. 거창하게 시작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기획의 의도를 잃게 될까봐 조바심에 이렇게 마음에라도 없는 말들을 끄적여보았습니다. 이것은 분명 나에게도 좋은 일이며 독자 여러분들께도 좋은 전지적인 관점에서의 경험과 추억의 일부를 꺼내보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1991년 4월쯤. 
난 여수에서의 2년을 견디고 광주의 새집으로 이사를 왔다. 모든 새것이었다. 집도, 가고도, 학교도. 물론 내게 새 것이란 근거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높은 건물을 위시로 한 것들 위주였지만. 

"나랑 친구하자."

그렇게 내가 전학 간 날 던진 정원이의 첫 인사를 들었다. 정원이는. 그래 보였다. 사교성이 없지 않아 보였으며. 실은 그 누구도 그와 가히 친한 친구가 되어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는. 그런 생각이 내 머리를 가득 지배했던 탓이었던지. 워낙, 내가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서 그랬던 것이었던지. 그의 한마디로 인해 우리는 친구라는 끈으로 그 때부터 묶였던 것 같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역시 그는 친구가 없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밝히겠다. 자연스럽게. 

그 때로부터 시작된 내 기억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었다. 왜, 이 아이는 운동을 싫어하며, 하고 많은 장난 중 여자아이들 고무줄 끊어먹기에 관심이 많았으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장난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일까. 그것도, 그 까다롭기로 유명한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들이게. 

대단해 보였다. 
내가 어느 친구와 달리기 시합을 하여 누가누가 달리기를 잘하나 (그때, 아마도 그때에는 반에 한 아이가 전학을 오게 되면 달리기 시합을 통해서 신분(?)의 위아래를 정했던 것 같았다.) 하는 관행아닌 관행을 하게 될 즈음에도 흔히 우리시절 중간놀이 시간에도 그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여자아이들의 놀이에 끼어 줄곧 장난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왜 그럴까. 내 관심에서 비롯된 물음이 시작된 것은 아마도, 그 때 즈음하지 않았을까. 

박정원. 그의 이름값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p.s. 요새 전화통화로 소식을 전하는 그의 입에서 자신의 취미가 바뀌었다 한다. 오토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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